08-14 08:30
블로그 이미지
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못골

태그목록

공지사항

글 보관함

'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93

  1. 2021.12.03 회개와 용서는 스스로의 몫이다 (1)

광주민주화 항쟁을 총칼로 짓밟고 권력을 찬탈簒奪했던 전두환이 11월 23일 죽었다. 살인마로 불렸던 그가 90년을 꼭 채웠으니 욕을 많이 먹은 값을 하나 보다. 피해자와 시민들은 전씨가 자신이 저지른 만행을 끝까지 사과하지 않고 죽은 것에 대해 분개했다. 정치권도 외면한 빈소에는 친족과 추종자들이 오갈 뿐이었다.

비폭력의 열매를 못거둔 김대중씨

전두환은 1995년 반란죄와 내란죄 수괴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김대중씨가 사면해줬다. 사람들은 전씨에게 진심어린 사과나 추징금을 먼저 받아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랬으면 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는 궤변은 듣지 않았을 것을... 소정 선생님은 이렇게 적었다.

“김대중씨는 그에게 사형을 구형한 1980년 군사재판[정]에서 정치보복은 자기만으로 끝내자고 했다. 그는 쿠데타 정권자를 모두 용서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돕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비폭력적 조치가 과연 이 모든 이들의 회개를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음이 현실로 드러나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비폭력 투쟁을 구세력을 향해 다시 해야 하는 과제와 현실정치 속에서 비폭력의 열매를 못거둔 민주화운동의 동지, 김대중씨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관한 이중적 과제를 안게 된다”(2001: 194).

소정 선생님은 이미 20년 전에 김대통령의 사면(비폭력)이 전두환의 회개(열매)를 이끌어내지 못했음을 안타까와 했다. 기독교에서 사랑과 용서는 회개를 선행조건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개하라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며, 아무리 타락한 죄인이라 하더라도 회개할 조그만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168쪽). 이런 맥락에서 전두환과 그 추종자들은 김대통령의 사랑과 용서가 무용지물일만큼 극악무도한 죄인이다. 애초부터 회개가능성이 전혀 없는 타락墮落의 끝장에 선 자들이다.

회개와 용서는 가해자의 몫이다

회개悔改란 무엇인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고친다는 뜻이다. 소정 선생님은 “회개하고 하늘 나라를 맞이하라는 것이지, 회개를 않고서 하늘 나라를 맞이하라는 말이 아니다. … 말만으로의 회개여서는 안되고, 변화된 행동이 뒤따르는 회개여야 한다”(171쪽)라고 했고, “회개한 마음을 미루어 밖으로 실천하는 회개여야 한다”(266쪽)라고 적었다. 말하자면 전두환은 회개를 하지 않고 날로 하늘 나라를 맞이하려 한 것이다. 사과한다는 말한마디도 없었고, 추징금 납부를 미루었고, 재판 참석도 미적거리다가 죽었다. 말이든 실천이든 그에게 회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소정 선생님은 “사람의 원모습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늘 회개하는 것이며, 이 회개를 철저하게 하면 할수록 그만큼 그는 평범한 사람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회개의 목적은 사람을 원모습으로 생활을 시작하는 데 있지, 과거의 잘못을 징벌하는 데 있지 않다”(264쪽)고 했다. 사람의 원래 모습은 이 세상에 날 때부터 사람이 갖고 나온 천부天賦의 마음이며, 나쁜 정치의 영향과 구조 속에서 생겨난 악한 마음은 후천적으로 습득한 마음이다(1991: 44).사람의 원모습에서 벗어난 언행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악행을 고쳐 원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다. 전두환은 천부의 마음을 잃고 포악한 살인마가 되어 날뛰었지만, 죽을 때까지 철저하게 회개를 회피하고 외면함으로써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면 용서는 누가 하는가? 소정 선생님은 “용서할 자격이 있는 세력이 용서하고, 악을 저지른 자가 전과를 뉘우쳐야 한다” (2008: 148)고 했다. 예컨대, 정치정당성이 없는, 용서할 자격이 없는 (이명박) 정권이 용서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일본이 전과를 뉘우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하셨다. 나는 잘못을 저지른 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개과천선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미 회개를 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면 피해자의 용서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반대로 회개하지 않는 가해자를 신이 용서한다면 누가 납득할 것인가? 말장난에 가까운 의미없는 일이다. 결국 용서는 피해자나 신이 아니라 가해자 스스로 하는 것이다. 오직 진심으로 참회懺悔를 했느냐를 물을 뿐이다. 전두환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으니 영원히 스스로에게 용서받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마지막이 좋아야 한다”(2001: 219)고 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나쁘기만 했다. 일가친척과 추종자들이 골백번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마지막까지 나약했던 살인마

소정 선생님은 “관용은 자신이 한 행동을 돌이켜 보아 자신에게 섭섭하게 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행위”(2001: 488)라고 하셨다. 하지만 전두환은 사람들을 단순히 섭섭하게 한 자가 아니라 40년 넘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자다. 추총자들은 망자에 대한 예의니 인간의 도리를 들먹였지만, 왜 80년 광주시민들에게는 그토록 가혹했단 말인가? 참회하기는 커녕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부당하다며 버럭하는 그의 모습에서 번뇌煩惱하는 인간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외경畏敬조차 군홧발로 짓밟았으니 역사가 심판하지 않아도 대대손손 인면수심의 악귀로 불릴 것이다.

방송에서 본 전두환은 기세등등한 독재자가 아닌 나약한 골목대장이었다. 1995년 검찰소환에 반발하여 “골목성명”을 읽을 때도, 2019년 마지못해 광주지법에 나타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당하게 자신을 역사에 비추려는 눈이 아니었다. 사실을 묻고 진실을 외면하는 비겁한 눈이었다. 오금이 저릴만큼 무섭고 두려웠던 것일까? 필사적으로 현실에서 도망쳐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려는 자기최면이었다. 환각에서 깨어나지 않으려는 마약쟁이의 몸부림이었다. 한때는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장군이었고, 대통령을 두 번이나 해먹었던 자가 골목길에서 벌인 추태라니... 자신의 과오에 마주설 용기가 없으니 똘마니들이나 달고 다니며 세월을 묻은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背恩忘德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참회하지 못한 살인마의 죽음이 노여웁다. 

인용: 박헌명. 2021. 회개와 용서는 스스로의 몫이다. <최소주의행정학> 6(12): 1.

Comment

  1. solamoo 2021.12.03 15:00

    한겨레신문. [사설] 한마디 사죄도 없이 떠난 ‘국민 학살자’ 전두환. 2021. 11. 23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0205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