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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최소주의행정학

"도울 김용욱”과 날조기사 공작 본문

반민주주의 증상

"도울 김용욱”과 날조기사 공작

못골 2019. 4. 14. 11:43

지난해 어느 날 아버지께서 인쇄된 종이 한 장을  불쑥 내미셨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쓴 글이라며 읽어보라고 하셨다. 평소에 볼 수 없던 일이었다. 게다가 박근혜 탄핵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던 아버지여서 의아했다. 


“도울 김용욱”이라고라?


첫 문장을 읽자마자 나도 모르게 “이게 뭐야?”라고 내뱉었다. 김용옥 선생의 문장은 고사하고 잘 봐줘도 까까머리 중학생 수준이었다. 두서없는 문단 구성과 유치한 단어 선택이 딱 그러했다. 논리도 없이 박근혜씨 탄핵을 비난하는 내용은 가관이었다. 아버지의 의도가 읽혔다. 봐라, 박근혜를 비난하고 문재인을 지지했던 도올마저 이렇게 돌아섰으니 참으로 고소하다... 나는 바로 “이거 도올 선생님 글이 아니예요”라면서 어디서 받아왔는지를 여쭈었다. 우물쭈물하시는 동안 나는 다시 글을 살펴봤다. 허탈했다. 누군가 작성한 것을 퍼나른 것인데, 작성자와 퍼나른 자가 “도울 김용욱”이라고 적었다. 순간 의도성이 다분한 선수들이 공작이라고 생각했다. 자세한 내용은 박기용 기자의 <한겨레신문> 기사(2016.12.31)를 참조하라.  


이런 날조질은 도메인 이름을 선점하거나 마치 오타를 한 것처럼 비슷한 도메인 이름을 만들어 분란을 일으키는 이름점거(Cybersquatting or typosquatting)와 구조가 같다. 예컨대, 고대와 관련없는 자가 korea.edu를 먼저 등록해놓고 흥정을 하거나  오탈자인 것처럼 kore.edu를 만들어 부주의한 방문자를 호도한다. 마치 실수를 한 것처럼 “도올”을 “도울”로 적어놓고 사람들이 도올 김용옥씨의 글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든다.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호린다. 유치하고 저열한 꼼수다. 적의 지지자의 입을 빌어 적을 치는 것이니, 지지자들의 사기를 꺾고 그들끼리 서로 다투게 만들고 끝내는 적을 무너뜨리는 전술이다. 꿩먹고 알먹고다. 전시에 사용되는 심리전으로서 흑색선전과 회색선전이다. 저열한 짓이지만 사려깊지 않은 대중을 낚는데 효과만점인 방법이다. 아버지께 이 글이 왜 엉터리인지를 설명하면서 나는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북한에 쌀을 퍼줘서 쌀값이 올랐다?


또 하루는 외출하고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JTBC <뉴스룸>을 시청하고 있는 내게 한 마디 하신다. 마침 손석희씨가 문대통령에 관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었다. “문재인은 사상이 수상해.” “손석희, 저 xx는 거짓말이나 하고...” 자다가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나는 황당했다. 어째서 문재인이 수상하다는 거냐는 내 말에 “너도 사상이 이상해”라고 답하신다. 목소리에 격해진 감정이 실려있다. 그러더니 드디어 “요즘 쌀값이 왜 오른 줄 아남? 문재인이 북한에 쌀을 다 퍼다 줬댜!”라고 폭발하신다. 부모를 죽인 원수에 대한 처절한 울분과 적개심이 이런 것일까? 도대체 누가 저 팔순 늙은이를 저리 만들었을까? 평생 쌀값은 커녕 콩나물값이 얼마인지 모르고 사신 분이 아닌가.


날조기사가 만들어지고 퍼지는 구조


얼마 전부터 <한겨레신문>는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연재물을 통하여 날조기사捏造記事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지는지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다. 김완, 박준용, 변지민 기자(2018.9.27)는 극우 기독교 세력이 이끄는 “에스더 기도운동”의 인터넷 게시판이 날조기사의 공장이자 진원지라고 밝혔다. 대표인 이용희 등이 날조기사를 만들면 이른바 “미디어 선교사”들이 인터넷에 퍼트리는 “인터넷 사역”을 맡았다고 했다. 난민, 동성애, 북핵, 문재인, 박원순 등을 혐오하고 비난하는 게시물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추천을 눌렀다고 했다. 이 기자들(2018.9.28)은 “정규재TV”와 “신의 한수”와 같은 극우 유투비(youtube) 개인방송이 날조기사를 퍼트리고 증폭시키고 있다고 보고했다.


아버지께서 매일 전자우편으로 보내온 편지를 열심히 읽고 밤늦게까지 유투비를 보신 까닭을 이제는 알 듯하다. 언젠가 우연히 아버지의 우편함을 보았는데 하루에도 수십 개 편지가 보내져 왔고, 멋있는 그림이나 시나 격언으로 포장되어 있었고, 내용은 황당무계한 혐오, 저주, 분개로 일관되었다. 아버지께서 (아마도 일부러) 크게 틀어놓은 유투비 방송은 터무니없는 내용을 짜증날 정도로 집요하게 반복했다. 예컨대, 박근혜 탄핵이 부당한 20개 이유를 선언문 낭독하듯이 또박또박 읽어내렸다. 법과 논리와 무관하고 증거와 상식과 거리가 먼 황당한 격문에 가까왔다. 대화나 토론이 아니라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불경이나 성경 구절을 독송하는 식이다. 사실과 논증이 아니라 차라리 종교였다.  


이쯤 되면 누가 무슨 이유로 누구를 대상으로 이런 날조질을 하고 있는지 알 만하다. 현 정권이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비난과 저주를 퍼붓고, 사사건건 걸고 넘어지는 세력이다. 적폐청산을 좌절시키고 정권을 망가뜨려 친일·독재·냉전 세상으로 되돌리려는 수구세력이다. 그 대상은 일반인 수준의 사리분별이 어려운 사람들이다. 쉽게 낚일 뿐만 아니라 일단 낚이면 충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박정희 신격화와 김일성 우상화와 같이 이들을 현혹하여 세뇌洗腦시킨 뒤, 포로나 노예처럼 붙잡아 놓고 통제하려는 것이다.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간첩들처럼 수많은 (젊은) 노인들이 똑같은 내용과 표현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주문을 외듯이 따라서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스더가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을 찍으면 나라가 망하고 북한의 식민지가 된다”라고 지령을 내리면 마법에 걸린 어리석은 노예들은 어찌 할 것인가?


날조기사? 가짜뉴스?


날조기사는 흔히 가짜뉴스(fake news)라고 부르지만 명백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날조기사나 가짜뉴스나 유언비어나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날조기사는 일상에서 자연스레 벌어질 수 있는 착각이나 실수가 아니라 정적을 해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기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물어뜯으려는 악의가 담겨있다. 의도가 불순하고 폭력성이 강하다.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 웹마실꾼들을 유혹하기 위한 미끼로 가짜뉴스를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둘째, 사소한 오해가 아니라 사실과 거짓을 그럴듯하게 찢고 째고 붙여서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단순한 유언비어와 다르다. 작정을 하고 적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치밀하게 짜놓은 흉계다. 세째, 그냥 뜬소문이 아니라 기사 형식으로 작성되어 사람들을 홀린다. 기사의 권위와 공신력을 빌어 뭘 모르는 사람들을 속여먹는 파렴치짓이다. 네째, 자연스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조직적으로 전투를 하듯이 퍼뜨린다. 이런 면에서 전시에 벌어지는 심리전과 다를 바 없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의를 심각하게 왜곡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적이며 사회의 암종이다. 항간에 떠도는 뜬소문과는 달리 나쁜 의도와 흠융한 내용과 비열한 방법으로 정적을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날조기사의 폐해弊害는 유언비어나 가짜뉴스에 비할 수 없이 크다.  


날조기사를 어찌할 것인가?


제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역할에 주목한 수구세력은 노무현을 저주하면서도 노사모의 온라인 활동을 모방했다. 다만 노사모의 정치의식, 토론, 열정, 헌신을 가슴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인터넷 사용 기술만을 머리로 베낀 것이 비극이었다. 마음만 급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글쇠판(keyboard)만 두드리다 보니 사달이 난 것이다. “십알단” 사건이나 국정원·경찰·국방부(기무사령부와 사이버사령부)가 협력한 여론조작과 대선개입사건이 그것이다. 모두 기사날조질과 구조가 같다.


이후 팟캐스트(podcast)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던 수구세력은 날조질을 유투비로 이어갔다. 기본 상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유투비는 팟캐스트보다 이용하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유투비는 영상과 그림을 제공하고 팟캐스트는 라디오처럼 소리만 전달하기 때문이다. 수구세력의 유투비 활동은 조직적이었고 현재 우세를 점하고 있다(한겨레신문, 2018. 9.28).


날조기사의 목표가 된 민주당은 여론을 조작하고 왜곡하고 위협한다고 했다. 날조질을 법으로 규제하겠다고 했다. 수구세력들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산 소고기수입 파동이나 촛불집회에서도 유언비어와 가짜뉴스가 난무했다고 강변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날조기사를 규제하는 것은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광우병 가능성을 보도하고 혹독한 대가를 치른 <PD수첩>은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최순실의 존재와 이명박의 다스는 뜬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과 거짓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날조기사 문제를 어찌 처리해야 하는가? 


정보통신사업자의 면책 여부


정부규제는 날조기사를 생산하는 것보다는 퍼뜨리는 과정에 집중된다. 유포과정에서 정보통신사업자(서비스제공자)의 역할과 책임을 어찌 정의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매체에 올려진 날조기사에 대한 사업자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으며, 사업자 스스로 검토하여 부적절한  내용물을 걸러내도록 할 수도 있다. 또한 부적절한 내용물을 사업자가 내리도록 강제할 수도 있다. 사업자의 책임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물을 것이냐에 따라 규제 강도는 달라진다. 

첫번째 방법은 사업자에게 면책권(immunity policy)을 준다. 미국의 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 of 1996)에 따르면 통신사업자는 통신망에 올려진 정보내용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No provider or user of an interactive computer service shall be treated as the publisher or speaker of any information provided by another information content provider” (Section 230). 이 규정은 원래는 저작권(copyright)을 위반한 게시물을 사업자가 어찌 처리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 연장선에서 보면 서비스 제공자는 올려진 정보 내용이 남을 비방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내용임을 알고서도 삭제하지 않았다 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Levmore and Nussbaum 2010: 24). 페이스북이나 유투비에 올려진 게시물은 사업자가 출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번째 방법은 서비스 제공자가 알아서 정보 내용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미 구글(유투비)은 나름의 기준에 따라 부적절한 게시물을 걸러내고 있다. 하지만 날조기사를 포함한 유언비어와 저질 정보가 인터넷을 휩쓸면서 많은 사회문제를 초래하였다. 


세번째 방법은 피해자가 합당하게 항의하면 서비스 제공자가 해당 게시물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정책”(notice-and-takedown)이다. 미국의 Digital Milledium Copyright Act of 1998의 Section 512에 따르면 사업자는 저작권침해로 신고된 게시물을 신속하게 삭제하거나 접근불가 처리를 해야 한다. 이 조항 역시 저작권에 관한 것이지만 이 논리는 일반 게시물에도 적용될 수 있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44조에 사업자가 부적절한 게시물을 “끌어내리도록” 명시하고 있다.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 침해를 받은 자는 해당 정보를 취급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침해사실을 소명하여 그 정보의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를 요청할 수 있다”(제44조의2). 사업자는 삭제·임시조치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즉시 삭제 신청인과 정보게재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 물론 어떻게 신청인과 게재인의 갈등을 관리할 것인가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조기사 문제는 이 규정을 제대로 적용하면 해결될 수 있다. 


날조기사와 표현의 자유


날조기사를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가? Levmore and Nussbaum (2010)는 표현의 자유가 추구하는 가치를 진리 발견(discovery of truth), 자율성(autonomy), 민주 토론(democratic deliberation)으로 정리했다. Mill에 따르면 불완전하고 틀릴 수 있는 존재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면 진리에 도달하는데 도움이 된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결정할 자율성을 가진 자유인으로서 다양한 의견에 접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의 필수요소인 공개 논쟁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날조기사는 진리를 발견하는 노력이 아니라 진리를 흠집내고 땅에 묻는 일이다. 애초부터 거짓인 줄을 알면서도 남을 해코지하기 위해 사실을 위조했기 때문이다. 자율성을 발현한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을 탐했을 뿐이다. 스스로를 속이는 짓이다. 또한 서로 간의 숙고와 토론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정적을 매도하고 저주하는 짓이다. 날조기사는 표현의 자유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반대를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피해자나 객관성을 가진 기관이 엄정하게 사실 확인을 하면 날조기사를 판별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대통령이 치매라는 허무맹랑한 낭설임에랴...


자율성에 기반한 민의가 여론


소정은 자율성을 가진 사회집단의 건전한 압력으로 행정기구가 변화할 수 있다고 했다(1981: vii). 즉 정당, 노조, 대학, 시민단체 등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정당한 요구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날조기사는 자율성이 있는 백성의 뜻이 아니라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의 작전이다. 민의를 왜곡하고 훼손하는 흉계다. 민의 난동이다.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 아니라 사회부채(social debt)나 사회악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문제를 살펴서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참고문헌


Levmore, Saul, and Martha C. Nussabaum, eds. 2010. The Offensive Internet: Speech, Privacy, and Reputati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원문: 박헌명. 2018. ”도울 김용욱”과 날조기사 공작. <최소주의행정학> 3(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