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당의 유력한 공직 후보 몇몇이 성추행 의혹을 받고 공직에서 물러나거나 6월 지방선거 출마를 포기하였다.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출장을 가고 정치후원금을 기부한 일 때문에 김기식씨가 얼마 전 금융감독원장을 그만두었다. 댓글을 조작했다는 “드루킹 사건”으로 경남지사 후보로 나섰던 김경수씨가 곤경에 처했다. 물론 공직자든 아니든 법을 위반했다면 누구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조사를 받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야당은 물만난 물고기마냥 지난 대통령선거까지 들먹이며 특검과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근혜 시절 국가정보원, 사이버사령부, 기무사령부, 경찰까지 나서서 여론을 조작한 일과 마찬가지라며 총력을 다해 들쑤시고 다니고 있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다가왔어도 요즘 방송과 신문은 “드루킹 사건”으로 도배되어 있다. “최순실 정권”의 국정 농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 대통령선거 참패 등으로 절체절명에 직면한 야당의 마지막 몸부림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누가 봐도 개헌을 저지하고 지방선거 판을 흔들어보려는 정치공세이다.
수구 언론은 여야의 정치공방을 치밀한 사실 확인과 분석 없이 스포츠 경기처럼 중계하고 있다. 이성과 상식에 근거하여 사안(미투운동이든 정치후원금이든 댓글조작이든)을 다루는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이든 아니든, 가해자든 아니든, 사생활이든 아니든 일단 이런 덫에 걸려든 사람은 무차별로 까발려지고 짓밟혔다. 이른바 “정치장사”와 “언론장사”에 불쏘시개가 되어 질겅질겅 씹히다가 단맛이 빠지면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껌딱지 신세가 되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유죄판결”을 받아 낙마한 김기식씨는 벌써 호사가들의 입에서 사라졌다. 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던 김씨가 경찰이나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았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타버린 불쏘시개를 누가 거들떠 보겠는가? 이 사회의 암종이 누구인지, 적폐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적폐보다는 개혁 세력을 돌아보라
최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사건은 민심을 등에 업고 적폐청산을 추진하고 있는 개혁 세력들을 돌아보게 한다. 벌써 짧은 승리에 취해 현재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동안 수구 세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짓눌린 피해의식이나 지나친 도덕 결벽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수구세력의 덫에 스스로 빠지는 것은 아닌지... 어차피 수구세력들은 무책임한 기회주의자였지 않은가. 일제시대 이래 힘센 세력(청나라, 러시아, 일본, 미국)에게 재빠르게 빌붙어서 백성의 피와 땀을 빨아먹었던 기회주의 세력 아닌가? 자신은 무슨 짓을 해도 애국이고 자신을 비판하면 무조건 매국이고 빨갱이라는 자들 아닌가? 정권이 바뀌었다지만 사회 구석구석은 아직도 그들의 손발 아래에 있다. 촛불집회와 박근혜 탄핵에 놀라 혼비백산했던 기득권 세력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호시탐탐 반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적폐청산이라는 개혁이 지나는 길목마다 자갈길이고 가시밭길인 까닭이다. 그때 그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재빠르게 변신해온 기회주의자들을 제압하기가 쉽지가 않다. 이래서 개혁이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이런 참혹한 현실을 뼛속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굶주린 맹수처럼 어디라도 물어뜯는데 혈안이 된 수구 세력들에게 한치의 빈틈이라도 주지 않토록 조심해야 한다. 행여 억울하게 꼬투리를 잡혔다 해도 냉철하게 대응하고 차분하게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과연 의미있는 고난을 겪었는가
소정 선생님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주는 교훈은 전쟁이 끝났다고 자동으로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 뜻있는 고난을 겪으면서 대안을 창출하는 자가 생겼을 때에만 평화가 온다는 것이라고 하였다(1986: 289; 1991: 333; 2008: 270). 자신의 임무수행에 충실하고 식솔들을 잘 살 수 있도록 근면하게 일한 니콜라이 로스토프(Rostov), 온순하고 선량하여 악한 정치 체제에서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갖는 마리아 볼곤스키(Bolkonsky),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귀족 신분이면서도 인생의 진리는 자기가 가진 것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자유를 얻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피에르 베즈호프(Bezuhov)가 그들이다(2001: 172-174; 2008: 270). 혼란을 틈타 남을 속이거나 해쳐서 잇속을 챙기려는 자들은 전쟁이 끝난 후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 지금껏 누려온 부귀영화를 이어가기 위해 또다른 변신에 몰골하는 기회주의자들이다. 참혹한 전쟁이 가하는 폭력을 참아내면서 봄이 올 때까지 욕심내거나 무리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이 모든 절제는 무기력이 아니라 기다리는 힘이며 성장하는 힘이며 폭력보다 강한 힘이다”(1991: 19).
이런 의미에서 성폭력 혐의를 받고 충남지사직에서 물러난 안희정씨를 안타깝게 본다. 노무현 정부가 끝나면서 “폐족”으로 몰렸던 이른바 “친노”의 핵심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서거 당시 봉하마을의 생가 앞 논가에서 망연자실 앉아 있던 안씨를 보았다. 그랬던 그가 충남지사에 연거푸 당선되면서 승승장구했고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수행비서관이 안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며 방송에서 고발함으로써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강제로 벌인 일이 아니라 해도 처자를 둔 가장으로서, 사회의 미래와 방향을 제시했던 지도자로서 용서받기 어렵다. 지난 10년간 극심한 부침을 경험하면서 안씨가 받았을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그가 얼마나 “의미있는 고난”을 겪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정 선생님은 “최소에의 흠모 속에 있는 이는 행복하다. 물질과 이기적인 특정인 같은 것에 매어 있지 않고 사람이 사람의 수준으로 스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 최소의 것이 침범받았을 때에 본연의 인간이란 무엇일까를 더욱 생각하게 된다. ... 최소를 가질 지 말지 하는 한계 상황에 사는 사람만이 그 최소마저도 상실된 상태에서의 존재를 음미할 능력이 있다”고 했다(1986: 96). 과연 안씨는 폐족으로 몰린 한계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최소만을 생각하고 물질과 사람(여자)을 초월한 “사람의 수준”을 경험했을까? “최소마저도 상실된 상태에서의 존재”를 음미했다면 어떻게 식구들과 주변을 아프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최소마저 빼앗긴 자의 행복”을 망각하여 스스로를 망치고 동지를 배신했단 말인가? 소정 선생님은 “참는다는 것은 포악함에 시달리는 사람이 갖출 덕목의 모두”이며(1986: 336), “사람이 무엇을 이루려면 마지막을 잘 참아야 한다”고 했다(1986: 298; 1991: 198; 2008: 202). 안희정씨가 뼈아프게 귀담아들었어야 할 가르침이다.
지나친 피해의식과 도덕결벽
지난 3월 민병두씨는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자 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당사자를 만나기는 했지만 노래방에서 신체접촉을 한 일은 없다면서 문제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저는 정치를 하면서 한 인간으로서 제 자신에게 항상 엄격했습니다. 제가 모르는 자그마한 잘못이라도 있다면 항상 의원직을 내려놓을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김태규, <한겨레신문>, 2018. 3.10).
청와대 대변인을 내려 놓고 충남도지사 선거에 나서려던 박수현씨도 “내연녀 설”과 사생활 의혹이 붉어지면서 꿈을 접었다. 지난 3월 초 공주시 민주당원 오영환씨는 페이스북에 “2014년 지방선거에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의 권력을 앞세워 내연녀를 공주시 기초의원 비례대표에 말도 않되는 이유를 들어 공천”했다며 박씨의 사퇴를 요구했다. 9일에는 박씨 전처와 함께 나와 박수현씨의 여자문제 때문에 이혼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특혜 공천도 내연 관계도 아니며 수년 전 아내가 가출했다고 반박했다. 내연녀로 지목된 한 공주시의원은 오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던 박수현씨는 민주당의 권고를 받아들여 14일 후보직을 자진 사퇴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보면 공직이나 공직후보 자리를 내려놓을 만한 일이 아니다. 미투(#MeToo)라지만 민병두씨를 언급한 여성의 절실함과 실익은 커보이지 않는다. 박수현씨의 경우는 사생활을 들추어 맞네 틀리네 논란거리를 만들었다. 민주당의 최고위원회에서 사퇴나 제명을 결정하지 않은 것은 의미하는 바가 있다. 만일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경쟁자를 끌어내린 것이라면 박씨에게는 너무 가혹하다. 과거 선거에서 종종 벌어졌던 추악한 짓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진심이 아니다. 명확하게 증명할 수 없는 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전략이 현실 정치에서 효과만점이라는 점이다. 비방과 흑색선전으로 목표를 달성하기도 쉽고 설령 들통나도 처벌이 그다지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지나친 피해의식이나 도덕 결벽증이다. 민병두씨가 자신에 대해 엄격한 것은 칭찬과 존경을 받을 일이지만 그 결벽이 지나치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민씨는 인격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입법기관의 구성원이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 민주당과 박수현씨는 이성과 상식이 아니라 냉엄한 정치현실에 타협한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수구세력들의 포악과 공작에 짓눌렸던 경험이 피해의식으로 굳어졌는지 모른다. 사소한 일에도 트집이 잡히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반죽음이 되거나 불구가 되는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일까? 지나친 피해의식이나 도덕 결벽은 수구 세력들에게 주는 “손 안대고 코푸는” 선물이다. 조폭이나 양아치들이 애용하는 비열한 수법이다. 무슨 짓을 해도 면죄를 받은 것처럼 완장을 차고 패악질을 서슴치 않는 기회주의자들아닌가?
따라서 개혁을 하려는 자들은 평소에 자신과 주변을 철저하게 살펴야 할 뿐만 아니라, 수구세력에 대한 피해의식과 도덕 결벽도 극복해야 한다. 민병두씨와 같은 지나친 결벽증과 자존심은 기회주의자들이 반격할 빌미를 줄 뿐이다. 민주당은 피해의식을 떨쳐내고 자신감을 가지고 수구세력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 법과 상식에 따라 사실관계를 정확히 밝히고 합당하게 따질 것은 따지고 책임질 것은 책임져야 한다.
떳떳한 행동과 당당한 대응
네이버에서 정치 댓글을 조작한 “드루킹” 사건은 개혁 운동의 올바른 방향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른바 파워블로거로서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씨를 지지하는 온라인 활동을 했던 “드루킹”이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청탁했다가 거절당했는데, 이후 문재인 정권을 비난하는 댓글의 공감수를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늘렸다가 검찰에 꼬리가 밟혔다. 그런데 김경수씨가 “드루킹”과 모바일 편지를 주고 받았고, 김씨의 보좌관이 “드루킹” 측의 돈을 받았다 돌려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증폭되었다. 야당은 검찰과 경찰 조사를 믿을 수 없으니 특별검사를 임명해야 한다면서 몰아붙였으나 김경수씨는 떳떳하다며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
“민주화 운동은 어긋난 原則을 바로 세우는 운동이지 이해관계를 추구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다”(1991: 330). “공개적이며, 비폭력적이며, 운동원들 사이에 합의가 존중되며, 백성들에게 지지를 받을 만한” 떳떳한 운동이다(1996: 620). “운동원 간에 이용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지애”가 있으며(1996: 621), 무서울 때에 최소 행동을 하고 나서 자신의 고유생활로 돌아갈지언정 개인의 이득을 바라거나 얻으려고 애쓰지 않는다(1991: 26; 1996: 56). 소정 선생님은 시국이 무섭지 않을 때는 최소한의 말이 아니라 과격한 발언이나 과다한 요구를 하기 마련이라고 했다(1991: 26; 1996: 673). 뒷전에 숨어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나와서 인기위주의 무책임한 말잔치로 자리를 꿰어차고 잇속을 챙기곤 한다(1996: 623; 2008: 258, 582). 의미있는 고난을 겪은 혁명의 주역이 아닌 기회주의자들이 엉뚱하게 열매를 따먹고 일을 그르친다.
“두루킹”은 무서울 때 불이익을 당할 것을 각오하고 최소한의 행동(꼭 필요한 정당한 요구)을 한 순수한 운동자가 아니다. 자신에 대한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고 교만하게 개인의 이익을 과도하게 쫓다가 그만 탈이 난 것이다. 제사보다는 젯밥을 탐한 결과다. 소정 선생님은 “나는 오늘의 세상에 말이 많은 것도 걱정이다. 그런데 이 말들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익을 얻고자 하는 말이다”(2008: 615)고 했다. 바람직하지 않은 재야운동자들처럼 “드루킹”은 철저하게 비폭력을 내세우지 않았고(위법하게 부당한 말을 남발했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는 인기 위주의 말(댓글)을 하였고, 부당하게 정치 권력을 모색하다 망했다(1996: 673).
이명박근혜를 당선시켜 호의호식했던 야당은 “드루킹” 사건을 김경수씨를 매개로 문재인씨의 바지자락이라도 잡아보려고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안희정, 박수현, 정봉주, 김기식 등으로 이어지는 재미보기에 푹 빠진 모양새다. 천막까지 세워서 특검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아직까지는 김경수씨가 불법행위를 공모하거나 지시한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선거운동이나 댓글조작을 부탁한 것도 아니고, 인사청탁을 들어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작정을 하고 달려드는 선거꾼들을 좀 더 신중하게 대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병두씨와는 달리 수구세력의 파상 공세에 지레 겁먹고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대응하면서 선거에 나섰다. 소신껏 행동했으니 떳떳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노무현씨의 마지막 비서관이라지 않은가?
"제왕적 야당"과 "황제 언론"의 과격
최근 수구 세력들이 보여준 언행은 지나치다. 방송법 개정에서 시작된 “제왕적 야당”의 몽니가 이어지면서 벌써 6월 개헌은 물건너갔고, 공직선거법이나 추가경정예산도 갈 길이 멀다. 미투나 김기식이나 김경수가 아니어도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물고늘어질 기세다. 그러면서도 피감기관의 후원 내역을 전수조사하자는 데는 반대한다. 특검을 받으면 개헌이든 추경이든 전향적으로 검토해보겠다더니 민주당이 조건부 수용 의사를 내비치자 엉덩이를 빼고 있다. “황제 언론”도 개헌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서 흥미위주나 정파성에 매몰되어 있다. 성추행, 성폭력, 내연녀, 정치자금 땡처리, “드루킹” 댓글조작 등을 우려먹으면서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정말 이런 문제가 뉴스의 첫꼭지가 될만큼 중대한 것일까? 철저한 검증과 치열한 분석과 생산적인 토론과 거리가 먼 “언론장사”다. 또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의 논문을 왜곡하여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며 호들갑을 떤다.
결국은 이 나라의 주인인 백성이 이번 선거에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해야 한다.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나선 까닭이 무엇이었는지 보여줘야 한다. 똑똑한 국민이라야 수구세력의 적폐와 장난질을 극복할 수 있다.
원문: 박헌명. 2018. 안희정, 민병두, 김경수의 선택. <최소주의행정학> 3(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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