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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6.03.03 이해찬의 최소주의와 현실적 이상주의 1

한평생 민주화 여정을 걸어왔던 이해찬 민족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이 지난 1월 25일 영면했다. 출장을 떠난 베트남에서 심근경색으로 걸음을 멈췄다. 향년 73세이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허무한 그의 이른 서거逝去가 아쉽고 안타깝다. 이른바 백세시대 아닌가.

민주당과 한국 민주화의 산 증인

이해찬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과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에서 활동하였다. 1988년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여 관악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18대를 제외하고 내리 7선을 달린 천하무적이었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한 뒤 수구기득권에게 패배하고 핍박받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을 차례로 대통령으로 만든 전략가였다. 누가 뭐래도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정권의 일등공신이다. 진창에 버려진 진주를 건져내서 닦고 죄고 광내고 밀어주었으니 말이다. 이해찬은 김대중 정부에서 38대 교육장관(1998-1999), 노무현 정부에서 36대 국무총리(2004-2006), 2012년과 2018년에는 민주당대표를 역임했다. 특히 2019년에는 민주당을 온라인정당으로 탈바꿈시켰고, 이른바 시스템공천을 정착시켜 이듬해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휩쓸었다. 그가 바로 민주당의 과거이고 현재이다. 민주당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구기득권세력들은 이해찬을 괴팍하고 과격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좌파, 운동권, 빨갱이, 상왕, 버럭, 호통, 독설, 오만, 불통, 까칠, 뻣뻣은 물론 심지어는 “해골”이라는 멸칭蔑稱을 붙이기도 했다. 수구기득권에 도전하는 위험인물들을 정상이 아닌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고, 일반시민들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얄팍한 공작이다. 기득권의 패악질에 시시비비를 따지지 말고 그저 눈감고 입닫으라는 소리다. 김대중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화세력들에게 가해진 “왕따”질이다. 하지만 이해찬은 부당한 상황에서 강요된 침묵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아니다”를 말하고 힘센 자들의 패악질을 몸으로 받아낸 사람이다. 1990년 1월 30일 김영삼의 3당야합 때 “이의있습니다”라고 외친 노무현의 모습 그대로다.

2004년 10월 28일 국회에 출석한 이총리는 터무니없는 야당의 공세에 “국민이 잘 알듯이 한나라당은 지하실에서 차떼기하고 고속도로에서 수백억원을 받은 당인데 어떻게 좋은 당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날선 비난이 쏟아졌다. 2012년 6월 5일 YTN의 <김갑수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그는 북한인권법에 관한 질문은 받고 “저에 관한 인터뷰를 하기로 했는데 자꾸 이런 문제로 인터뷰를 하면 원래 취지와 다르지 않냐”며 전화인터뷰를 그만 하겠다고 했다. 버럭, 발끈, 무례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2018년 11월 9일에는 속보이는 “혜경궁 김씨” 사건을 묻는 기자에게 “그만하라니까”라고 했고, 2020년 7월 10일 박원순의 빈소에서 당차원의 의혹 조사를 묻는 기자에게 “그런 것을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합니까? 최소한 가릴 게 있다. 이놈의 자식같으니라고” 일갈했다. 수구기득권의 경우없는 공세와 질문에 대해 주눅들지 않고 똑똑히 “너희들이 틀려먹었다”고 말한 것이다. 빈소에서 곡하는 기자 상주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너희 아버지가 생전에 기생질을 즐겼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사하겠는가”를 묻는다면 그들은 어찌 할 것인가. 이게 질문인가?

이해찬의 최소주의, 보수주의, 현실적 이상주의

이러한 이해찬의 언행에서 소정 선생님의 최소주의를 본다. 사실 두 분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같이 끌려가 옥살이를 했으나 서로 다른 세대를 살았으니 직접 동행한 순간은 많지 않았다. 두 분 모두 달변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말은 주저하지 않았다. “일단 그 날이 오면 다칠 것을 알면서도 몸을 던지는 ... 긴요한 최소행동”(1991:25)을 한 사람들이다. 소정 선생님은 “무서웠을 때 내가 한 말은 적의 이성이 거절하지 못하는 최소의 말이었으며 그 말 때문에 나는 불이익을 입었다”(2008: 491), “나는 지켜야 할 최소를 지켜려 하는 최소주의자였다”(2008: 150), “나는 깨지도록 허용해서는 안 될 최소를 고집하는 최소주의자다”(2008: 481)라고 말했다. “때리는 것인 폭력의 반대는 매를 맞으면서 말을 하는 것이지 맞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1991: 118). 이해찬은 1980년 법정에서 “전두환 일당인 당신들을 붙잡아 이 법정에 세우겠다. 나는 당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역사적 범죄를 결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최후진술했다. 매를 맞으면서도 따박따박 바른 말을 했다.

나는 또 이해찬에게서 원칙과 신념에 충실한 사대부의 꼬장꼬장함과 대마도에 끌려가 단식을 마다하지 않은 면암勉庵 최익현의 꼿꼿함을 본다. 그가 태어난 충남 청양은 1970년대만 해도 갓쓰고 도포입은 양반들이 오가던 곳이었고, 목숨을 내걸고 위정척사의 길을 고집한 최익현의 본가이기도 하다. 경우없는 짓거리를 못참는 동네다. 그는 이치에 맞지 않는 쉰소리를 늘어놓거나 듣기 좋은 소리로 아부하지 않았다. 돌려 말하지 않고 할 말만 직설했다. 수구기득권은 그를 독설이라니 버럭이라며 몰아세웠지만, 불의를 방관하거나 몰상식에 타협하지 않은 용기와 강단剛斷일 뿐이다.

소정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이해찬은 선공후사를 내세우고 공직의 무거움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자이다. 그는 2018년 6월 14일 교통방송 <장윤선의 이슈파이터>에서 민주당이 진보보다는 보수에 가깝고, 수구세력에 맞서는 중도우파 개혁세력이라고 말했다. 웃사람의 패악질과 아랫사람의 난동을 경계하였으니 급진이 아니라 온건이다. 일의 경중을 따지고, 선후를 살피고, 속도를 조절하는 합리주의자였다. 사람들은 그를 소신파라면서도 리더쉽이 부족하다고 평했지만, 욕심으로 계파에 속하지도 않았고 계파를 만들지도 않았다.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다”고 말한 그는 현실에서 치열하게 다투면서 합당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참일꾼이었다. 이상만 쫓는 것이 아니라 이상이 자리잡을 현실을 냉철하게 살피는 현실적 이상주의자였다(1986: 138). 또한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감각과 인물을 알아보는 탁월한 식견을 가졌다. 그런 그가 같은 과科인 이재명을 알아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해찬의 안식을 기원한다

이해찬은 지난 해 10월 24일 <다스뵈이다>에 마지막으로 출연했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동년배에 비해 훨씬 노안이었던 그였다. 어느 순간부터 말이 어눌해지고 손이 떨리던 그가 그날따라 몸과 입을 놀리는 일을 힘겨워했다. “아, 그의 몸에 새겨진 훈장같은 고문이 끝내 발목을 잡는구나...” 콧물이 흘러도 얼굴에 뭐가 묻어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고문 후유증일까? 김근태도 그랬고 소정 선생님도 그랬다. 과연 이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면서 깊은 탄식을 했다. 참혹한 방법으로 인간의 존엄을 짓밟아버린 짐승들을 끝까지 찾아내어 가증스러운 인두겁을 발기고 처절하게 단죄해야 함이다.

“대장부엉이”의 급작스런 서거를 애도하고, 한국 민주화에 헌신한 위대한 업적을 기리며,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오래 짊어졌던 봇짐은 그만 내려놓고 “술먹고 자야지”라는 말처럼 평안하게 주유周遊하시라. 

같이 읽기

  • 김호경. 2026. 이해찬의 때 이른 죽음, 결국 고문 후유증 때문이었나.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6년 2월 23일.
  • 정준희. 2026. 민주주의의 거목, 이해찬을 기억하며. 정준희의 토요토론,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2026년 1월 31일.
  • 이해찬. 2025. 이해찬의 계엄. 다스뵈이다, 371회. 2025년 10월 24일.
  • 이해찬. 2022.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이해찬 회고록. 알릴레오 북 73회,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2022년 9월 22일.
 

이해찬의 최소주의와 현실적 이상주의

한평생 민주화 여정을 걸어왔던 이해찬 민족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이 지난 1월 25일 영면했다. 출장을 떠난 베트남에서 심근경색으로 걸음을 멈췄다. 향년 73세이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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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6. 이해찬의 최소주의와 현실적 이상주의. <최소주의행정학> 11(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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