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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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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15일 현재 인구 백만 명당 확진자수가 1만 6천 명이 넘었다.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로 우뚝섰다. 윤석열씨가 집권 100일만에 이뤄낸 “과학방역”의 위엄이다. 직무수행평가 24%라는 그 어렵다는 경지를 밟았다.

윤씨의 문자질과 "막말 바이러스"

코로나 못지 않게 “막말 바이러스”도 창궐하고 있다. 막말의 순도와 강도가 높아가는 모습은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웬만한 비판은 이젠 식상할 뿐이다. 지난 달 말 윤석열씨가 여당 원내대표에게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며 보낸 문자질이 발각되었다. 자신의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준 여당 대표를 짓밟는 말이었다. 배은망덕이나 양두구육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윤씨는 음주운전과 논문표절 등의 의혹을 받고 있던 박순애씨를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라 치켜세웠지만, 박씨는 5세입학사태로 맥없이 주저앉았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뜬금없이 독립운동을 자유운동이라고 규정했다. 생뚱맞은 자유타령이다. “자유”에 한을 품고 죽은 처녀귀신이라도 씌인 것일까?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라던 김구를 비웃는 말이다. 최소임금 이하로도 일하고 싶은 자유에는 게거품을 물면서도 반지하에라도 살고 싶어하는 자유에는 침묵한다. 폭우로 침수피해가 난 것을 보고도 퇴근한 윤씨나 대통령이 있는 곳이 상황실이라고 둘러대는 비서실이나 오십보백보다. 김기춘씨는 대통령이 있는 곳이 집무실이라고 했던가. 한덕수씨는 윤씨의 아파트가 지하벙커 수준의 시설을 갖췄다며 한 술 더 떴다. 아무 말이나 나오는 대로 배설한다. 가관이다. 그럴 양이면 뭐하러 난리법석을 피우며 집무실을 옮기고 아파트 쇼핑하듯 공관을 들쑤시고 다녔단 말인가.

윤씨의 제멋대로 상식과 정의와 공정이 작두를 타고 춤추자 “막말 바이러스”가 널뛰고 있다. 사실상 폭력이다. 너 죽고 나 살자가 결국은 다 죽자로 끝난다. 당사자는 물론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화나게 한다. 상처를 헤집고 갈등을 부추기고 증오를 불지른다. 반드시 끝장을 봐야만 멈추는 보복의 악순환이다. 이런 막말 잔치에는 시시비비를 따져볼만한 터럭조차 없다. 그저 구역질나는 일이다.

박지현·박용진의 과격한 발언

대통령선거에서 간발의 차로 패한 민주당이 새 지도부를 선출하고 있다. “어대명”이니 “확대명”이니 친명이니 비명이니 반명이니 호사가들의 말잔치가 무성하다. 이재명씨가 7할이 넘는 지지를 골고루 받으며 당권을 거머쥐게 된 형국이다. 그런데 지난 5월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지현씨는 당내 “내로남불”과 “팬덤정치”를 비판하면서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586 정치인의 용퇴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필 적들의 언어로 스스로를 자학하는 어리석음이라니... 성폭력이든 뭐든 잘못한 일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밝혀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일이다. 대체 586은 무슨 죄를 지었으며, 국민 신뢰와 586 용퇴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586을 전부 땅에 묻으면 신뢰를 얻고 선거에서 이긴단 말인가? 아마도 수구세력이 만세삼창을 부르며 반길 일이다. 정치인은 나이가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진퇴가 정해질 뿐이다. 양김씨의 청년정치를 말하지만 분수도 모른 채 스스로 김대중이 될 노력은 하지 않고 감나무 밑에서 입만 쩍 벌리고 있으니...

박씨는 한걸음 더 나가 이재명씨의 불출마를 주장하였다. 여당이 보복을 해올 것이기 때문에 민생이 실종되지 않을까 우려한댄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격미달인데도 비상대책위원장을 했으니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바득바득 우기고 나섰다. 경우에 맞지 않은 소리다. 설령 대선 패배가 이씨의 잘못이라 해도 출마여부는 이씨가 정하는 것이다. 박씨의 우려는 한심한 상상이다. 그럼 여당이 보복할 가치조차 없는 후보를 내세워야 하는가? 2할대 지지율로 힘겨운 경주를 하고 있는 박용진씨도 마찬가지다. 이씨의 사법리스크를 운운하며 말을 바꿨다느니 선민의식이 있다느니 말꼬투리를 잡기에 급급하다. 군부가 김대중씨를 싫어하니 자신이 단일후보가 되어야 한다던 김영삼씨의 궤변과 무엇이 다른가? 이낙연씨가 실패한 까닭이다. 과거의 군부와 현재의 검찰이 그렇게도 공정하고 신뢰할 만한가? 그들이 싫어하면 지지율 7할 후보도 사지로 내몰고 동지도 뭐고 다 먹잇감으로 내놓을 참인가?

박지현씨도 박용진씨도 과격하다. 사람들이(적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로 경쟁자를 흔들어 자신의 잇속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박용진씨는 “한 계파가 꿩먹고 알먹고 국물까지 먹고 있다”며 이씨의 사당화를 우려했지만, 무기력과 질투심을 돌려서 말한 것이다. 노무현씨처럼 계파없이 당에 들어와 대선후보가 되고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씨에게 계파라니... 사당화는 저주에 가까운 상상이다. 두 박씨는 왜 자신이 김대중·노무현·이재명에 미치지 못하는지 냉철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그들은 누구 덕을 보지 않았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모으는 뜻을 품었고, 치열하게 깨지면서도 버티고 지켰던 사람이다. 유권자는 잠깐 정신줄을 놓을 수는 있으나 결코 어리석지 않다. 귀신같이 깜냥을 알아본다.

최소한의 발언은 경우에 맞는 말이다

소정 선생님은 비폭력을 말씀하시면서 꼭 필요한 말을 최소한으로 하라고 했다. 무서울 때에 용기를 내서 하는 말이기에 사실이고 진실이어야 한다. 본능으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연한 논리로 진심을 담아 풀어내야 한다. 애증에 휘둘리지 말고 곁가지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반면 기회주의자들은 무서울 때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상황이 호전되면 기어 나와 대중이 좋아할 만한 말을 쏟아내고 다닌다. 인기를 노린 과격한 발언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진실이든 아니든 대중을 호릴 수 있는 말이면 된다. 앞뒤가 맞든 안맞든, 아군에게 불리하든 말든 그들은 가리지 않는다. 말에 논리가 있을지언정 진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잇속이 있을 뿐 동지에 대한 배려는 없다. 쓸데없이 말이 많다. 긴가민가 혼란스럽다. 이재명씨가 간절함을 담아 꼭 필요한 말만 담하게 해주길 바란다.

 

인용: 박헌명. 2022. "막말 바이러스"와 과격한 발언. <최소주의행정학> 7(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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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꾼들이 내뱉는 말이 종종 세상을 어지럽힌다. 모호함으로 자신을 방어하면서 힘으로 정적을 찍어누른다. 참과 거짓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피아를 갈라서 이득을 보겠다는 셈법이다. 대선을 전후한 윤석열씨의 “자유민주주의”와 안철수씨의 “과학방역”이 그러하다.

Liberal vs Illiberal Democracy

“자유민주주의”는 영어로 liberal democracy라고 한다. 자유주의(liberalism)가 개인의 권리와 정부(왕의 부당한 간섭)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이념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형태를 말하는 민주주의와의 궁합은 어색하다.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주의(progressivism)와 안정을 지향하는 보수주의(conservatism)의 연속선에서도 벗어나 있다. 사실 윤씨의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와 별 상관이 없다. 자신의 잇속을 차리려는 기회주의자들의 속임수다. 그들의 이념은 정치지향이 아니라 사람을 홀리는 주문呪文이다.

그냥 “민주주의”면 그만이다. 일반 대중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시하고 그 결과(법이든 약속이든)에 따라 정치를 구현하는 제도다. 그 이름이 어찌 되었든 간에 민주주의 원리가 현실에서 구현되는가를 따져야 한다. 영국은 불문법으로도 민주주의를 뿌리내린 왕국이다. 미국은 민주주의 기수라지만 정작 헌법에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가 적혀있지 않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라오스는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라 하지만 선거를 치른다고 다 민주주의인가?

윤씨나 수구세력이 굳이 “자유”를 붙이는 까닭은 북한의 “인민”과 차별화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강박감이다. 자유와 인민의 뜻과는 상관이 없다. “자유”를 들먹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근혜, 윤석열을 보라. 뿔달린 공산당을 때려잡는다며 멸공을 부르짖는 “이승복”들 아닌가. 그들의 “자유”가 저질렀던 것은 내 편이 아닌 자들은 골라내어, 사실과 관계없이 법의 이름으로 좌익종북으로 몰고, 기득권자의 약육강식을 공고화한 것이다. 이렇게 공민권이 박탈된 “빨갱이”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적敵이다. 천민으로 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수구세력이 말하는 자유요, 법치요, 정의요, 공정이다. 이름과는 정반대로 “자유가 문드러진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다. 대중을 현혹하여 권력을 취한 뒤 내 편만 핧아주는 “유지誘舐 민주주의”다.

윤씨는 구체적인 사실이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보다는(사고가 나니까), 원칙과 일반론을 말한다. 헌법과 법률을 들먹인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야 하고 불법 파업은 엄단해야 한댄다. 누가 토를 달겠는가? 그 자체로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는 지도자의 말이 아니다. 범법자를 때려잡는 검사의 말이다. 지도자는 본인의 결단이 어떻게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는지 설명하고 책임져야 한다. 윤씨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비판을 틀어막고 벌거벗은 힘으로 자기 맘대로 해먹겠다는 소리다. 문재인 정권은 모든 것이 반헌법이고 그들은 무슨 짓을 해도 친헌법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왜냐고? 그렇게 마음을 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심(윤심이 아니라)을 거스르는 검찰·경찰·감사원·국회·법원은 그 자체로 위헌이고 국기문란이고 쿠데타다. “유지민주주의” 헌법질서와 상식이 이런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껍데기를 방패삼아 마음껏 독재를 하겠다는 소리다. “자유시장경제”는 “계획경제”와 차별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그저 “시장”이 있을 뿐이다. 경제 주체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시장은 이미 시장이 아니다. 반대로 어떠한 제한도 없는 100%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도 아니다. 윤씨의 행보는 “자유시장경제”가 가진 자들만 맘껏 누리고 나머지는 노예처럼 살라는 뜻임을 암시한다.

“과학방역” 자체가 나쁜 정치다

한편 안철수씨는 문재인 정권을 “정치방역”이라고 공격하고 “과학방역”을 강조했다. 하지만 무엇이 정치방역이고 과학방역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모호함을 최대로 활용한 선동이다. 방역 자체가 과학인데 정치방역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방역은 미신이나 마녀사냥이다. 안씨는 26일 과학방역은 방역정책을 관료나 정치인이 아닌 전문가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질병관리청장에게 방역정책에 관한 전권을 줘야 “과학방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의학을 공부하고 오랫동안 방역에 헌신한 정은경씨는 관료이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현재 질병관리청장으로 임명된, 안씨의 후배이자 집사람의 동기인 백경란씨는 전문가인가? 같은 대학의 의학박사인데도 문씨가 임명하면 돌팔이고 본인(윤씨)이 밀어넣으면 전문가인가? 문대통령은 항상 정씨가 이끄는 질병관리청의 전문성과 헌신을 존중했다. 2021년 초에는 그녀에게 백신에 관한 전권을 쥐고 전 부처를 지휘하라고 지시했고, 부처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또 <Time>이 정씨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으로 선정하도록 추천했다. 정씨의 입이 사실상 대통령의 입이었다. 대체 안씨는 어느 별에서 살다 왔길래 아직까지도 코흘리개 잠꼬대인가?

관료제와 정책과정에 대한 안씨의 이해수준은 처참하다. 방역과 같은 국가 중대사를 공직자(관료)가 아닌 민간인 전문가가 최종 결정하는 나라가 있는가? 그럼 반도체정책은 삼성전자 직원이 결정하고 부동산 정책은 유명한 공인중개사가 해야 하나? 그들이 정책을 책임지는가? 정부관료제가 무슨 비서실이나 매품팔이인가? 전문가라 해도 서로 의견이 엇갈리기 마련인데, 왜 관료인 백씨가 전권을 행사해야 하나? 전문가의 의견이 모아졌다 해도 지도자는 당연히 다른 영역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해서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자리에 따라 보는 시야와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책임은 정치인과 관료들의 몫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정치과정이자 정책과정이다. 권한위임이 아니라 지도자의 자질과 관료제의 합리성에 관한 문제다. 문정권의 “정치방역”은 순리이자 과학이지만 안씨의 “과학방역”은 방역이 아니라 나쁜 정치이다. 결과는 뻔하다. 근본없는 윤·안씨의 말장난에 쓴웃음을 짓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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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2. "자유민주주의"와 "유지민주주의". <최소주의행정학> 7(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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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깝게 지내는 분에게 안부를 물었다. 자연스레 코로나 얘기로 흘렀다. 그 분은 기다렸다는 듯이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정책을 비난했다. 부도덕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했다며 분개했다. 방역은 물론 부동산, 경제, 외교까지 최악이라고 했다. 윤석열씨가 잘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어떤 나쁜 짓을 저지른다 해도 문씨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했다. 빨갱이에 대한 증오를 초월하는 저주다. 놀란 나는 그 적개심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과격한 백성이 홧김에 벌인 난동

최고 학위까지 받은 분이 사실관계에 무감각한 것은 충격이었다.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이 미국에서 백만명이 넘고, 작년 말 한국은 인구 만명당 사망자 수에서 OECD 최저치였고, 일본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사망자 2.4만명)이 일본(3.1만명)은 물론 다른 나라보다 사망자가 더 많다고 강변했다. 애초부터 중국유입을 차단했어야 했고, 통계치가 왜곡되었고, 백신을 제때 확보하지 못했다는 등 수구세력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김정숙씨가 전용기를 타고 외국을 제멋대로 드나들었다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무슨 재주로 그 나라의 출입국 기록을 삭제했다는 것인지... 김씨의 의상이나 장신구에 관한 의혹도 마찬가지다. 이미 반증된 사실이 있고 사비로 샀다는데도 막무가내다. 사실이 어찌되었든 간에 문정권은 나빴고 또 나빠야만 한다는 것이 그들의 자존심이고 교리인 것같다. 종편과 수구 유투버들의 우민화가 승리한 것인가.

이른바 친문과 친이라는 자들도 사실과 이성과 상식과 담쌓은 극단주의자들이라는 면에서 수구세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과연 문재인씨는 “친문”의 언행에 동의할까? 이재명씨는 “친이”의 난동을 응원할까? 그 우매한 난사질을 즐기는 자들은 따로 있을터. 이재명 지지자라는 어느 지인은 문정권에 대해 극한 혐오를 보였다. 한 달새 코로나로 부모를 모두 잃은 그는 무지한 방역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비분강개했다. “대깨문” 때문에 망했고 그들과는 이성적인 대화가 안된댄다. 너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이다. 그 “반문”은 문정부의 사실을 말하던 나를 “대깨문”으로 몰아붙였다. 부모를 잃은 황망함은 이해할 수 있으나 나랏일과 뒤섞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외국에서 배울만큼 배운 사람 아닌가. 누가 적인지 망각한 채 서로 물어뜯고 치고 박다가 홧김에 일을 그르친 것이다. 죽쒀서 개준 셈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짐작이 간다. 코로나 사태가 길었던 탓일까? 피로해졌고 예민해졌고 날카로와졌다. 과격한 말전쟁에 신물이 났다. 필요한 것은 시시비비가 아니라 짜증을 해소해 줄 희생양이었다. 정신줄을 놓은 것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패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적들이 써준 주문 그대로를 염불처럼 외고 있다. 친문반문, 586책임, 반미종북, 내로남불, 오기정치, 팬덤정치... 586 전부를 생매장하고 “폭망”을 인정하고 석고대죄를 한다고 해서 수구세력이 주술을 멈추겠는가? 그들이 노무현과 김대중을 칭송하는 까닭은 죽어서 더이상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노무현을 잃은 전철을 반복하고 있다. 나혼자 살겠다며 문재인이든 이재명이든 동지들의 목을 하나하나 먹이로 내어줄 태세다.

과격한 정치꾼이 벌이는 난정

정치권의 과격함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선거기간 내내 말실수와 말폭력으로 일관했던 윤씨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디로 튈 지 본인 스스로도 모르는 언행은 과격 그 자체다. 집무실을 옮긴답시고 느닷없이 국방부를 내쫓았고, 정부부처는 연쇄반응으로 몇달째 술렁이고 애꿎은 시민들은 교통혼란을 겪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과 방사포는 계속되는데, 공언했던 선제타격·원점타격은 깜깜 무소식이다. 다주택소유자 중과세는 징벌이고, 자택 시위는 “법에 따른 국민의 권리”라 했고, 배우자의 기행에 대해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고 답했다. 이 공직자의 직함이 딱할 지경이다.

어쩌다 법무장관이 된 자 역시 과격하다. 보복수사는 물론 그 재판까지 다 해먹겠다는 자신감이다. 거침없는 배우자의 행보는 줄리와 유지 딱 그 수준이다. “내가 말을 뒤집든 뭘 하든, 니덜이 어쩔건데?” 이들에게 못할 일은 없다. 철딱서니없는 왕을 쥐락펴락하는 좌의정과 대왕대비의 품격이다. “윤핵관”들의 입도 거칠어졌다. 연이은 선거 패배로 자중지란에 빠진 야당도 과격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수구언론은 이런 말전쟁을 부추기고 정치혐오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들이 원한 판이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소정 선생님은 “과격한 정부는 민의를 수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패하고 분열하는 국민이... 한덩어리가 되어 그 과격함이 극에 달하게 된다”라고 적었다(2008: 578). 곰곰히 생각해 보라. 누가 방송과 신문에서 날선 칼을 휘두르고 있는지. 여야를 막론하고 그들이 바로 이 때다 싶어 날뛰는 기회주의자들이다. 과격한 정치꾼과 과격한 백성이 어우러져 나라를 난장판을 만들고 있다. 무자비한 폭정暴政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난정亂政이다. 기준이 오락가락하고 고무줄 잣대로 들이대니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작두에 올라탄 무당의 칼춤에 사실과 이성과 상식이 쓰러지고 있다.

절박한 반부패·반분열·반과격 저항

하지만 참혹했던 일제를 버텨내고, 야만스런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를 무너뜨린 우리다. 충분히 좌절하고, 충분히 반성하고, 충분히 절박해져야 한다. 함석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부패하지 말고, 분열하지 말고, 과격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가 궤변과 막말을 쏟아내도 과격한 발언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 폭력의 대안이 폭력일 수 없기 때문이다(1986: 290). 매를 맞으면서도 담담하게 사실과 진실을 말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 (1991: 118). 적의 양심이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말을 해야 한다(2008: 80). 끝까지 참고 감정이 아닌 이성과 상식에 매달려야 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심정으로 동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동지의 허물이 아닌 자신의 미숙함을 고백해야 한다. “대깨문”이나 “수박”을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말을 아껴야 한다. 비폭력 저항의 시작이다.

 

인용: 박헌명. 2022. 과격한 백성과 과격한 정치꾼의 난장판. <최소주의행정학> 7(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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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변수(decision variable)는 의사결정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제할 수 있는 것이고 환경변수(environment variable)는 문제해결에서 고려해야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의사결정자의 지위와 힘(자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헷갈린다. 예컨대, 예산은 행정부에게 환경변수이지만(국회에게는 정책변수) 관료들은 종종 정책변수인 것처럼 말한다. 문제해결의 첫단추를 잘못 꿰는 일이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이 분별력이 없으면 나라는 질서를 잃고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

헌법준수는 정책변수가 아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통령의 첫번째 임무는 이 헌법을 제대로 준수하고 이 헌법의 가치를 잘 실현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겉으로 보면 상식에 가까운 발언으로 보이지만 그동안 윤씨와 그 측근들이 보여준 언행을 반추反芻해 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 살배기의 걸음마처럼 위태롭다.

첫번째, 헌법준수는 지도자의 정책변수가 아니라 환경변수다. 임무가 아니라 의무이자 제약조건이다. 헌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쫓겨난다. 대통령 취임선서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라고 시작한다. 헌법이란 테두리 안에서만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윤씨 측은 환경변수를 정책변수로 착각하고 있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면 추상적이지만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국민과 국토를 지켜서 일상을 보존하는 일이다. 쿠데타, 양민학살(제주 4.3, 보도연맹학살, 거창산청함양 양민학살, 광주 5.18 등), 1997년 외환위기, 세월호 참사,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사례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뭄, 홍수, 지진 등)와는 달리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지도자의 탐욕과 무지가 불러온 인재人災이자 환란患亂이다. 국민의 일상과 상식을 망가뜨렸다.

두번째, 그냥 헌법이라 하지 않고 “이 헌법”이라고 한 대목이 위험하다. 윤씨가 해석한 헌법대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 공정이 “이 헌법”의 핵심어다. 문재인 정권을 헌법파괴, 종북從北, 사회주의, 한미동맹 파괴, 불공정으로 규정했으니 그 반대로 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는 나를 지지하는 자들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고(반대하는 자들은 공민권이 없다), 시장경제는 기업인들만 마음대로 한다는 뜻이고, 한미동맹이란 무조건 종미從美해야 한다는 뜻이고, 공정은 판검사들은 무슨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 특권(법이란 것은 힘없고 못배운 주제에 고개쳐들고 대드는 개돼지를 엮는 오랏줄일 뿐이다)을 말한다. 반공과 빨갱이칠로 정적을 쓸어버리고 돈과 힘을 가진 자들만의 세상을 공고히 하겠다는 뜻이다. 국민통합이란 기득권과 그들에게 빌붙어 사는 자들만 하나로 묶는다는 뜻이다. 평범한 백성의 자리는 없다. “이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다.

세째, 윤씨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할 수 있는 것인지, 할 수 없는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구미가 당기는 대로, 그때 그때 분위기에 따라, 아무런 구애拘礙를 받지 않고 결정을 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생각이 없으니 바람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윤핵관이든, 쥴리든, 건진이든 서로 다투어 입으로 흘러나오니 어제 말이 다르고 오늘 말이 다르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겼으니 법이든 윤리든 예산이든 누구든 그의 말에 감히 토를 달아서는 안된다.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제왕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곧 헌법이고 정의이고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줄을 가진 지도자와 고위공직자를 볼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좌절했던가...말로는 국민을 팔고 나라를 위한다지만 결국은 배때기가 터져라 사리사욕만 채우는 자들 아닌가.

무소불위와 무소능위는 매한가지

윤씨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공약과 무관하게 좌충우돌하면서 돌진하고 있다. 당선자가 아닌 점령군 사령관의 폭주다. 환경변수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정책변수인 것이다. 취임도 하기 전에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긴다며 예산타령을 하더니, 느닷없이 용산으로 옮긴댄다. 하루 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국방부는 야반도주하듯 줄줄이 보따리를 싸야 했다. 관저로 낙점했던 참모총장 공관도 외교부장관 공관으로 바꾸었다. 낡고 비가 샌다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아줌마 쇼핑에는 애초부터 계획도 논리도 없는 법이다. 식민지에 부임한 총독에게는 내 것과 남의 것의 구분이 없다.

한마디로 대책도 없이 멋대로 일을 저지르고 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부처는 물론 공관까지 밀고 들어간 것은 경우없는 짓이다. 권력남용이다. 패잔병마냥 쫓겨나는 국방부와 외교부 공직자와 장병들은 대체 뭐가 되는가. 선제타격, 사드와 전술핵, 원전육성, 종합부동산세, 검찰수사권 등도 집무실 이전과 같은 궤적을 보일 것이다. 정책과제가 복잡하고 국내외 현실이 엄중함을 망각한 말잔치다. 제도와 절차와 관행을 가볍게 본 대가를 치를 것이다. 벽에 부딫혀 용두사미가 되든지, 변명도 설명도 없이 전혀 엉뚱한 결말로 끝날 것이다. 윤씨는 과연 취임후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선제타격을 할 수 있을까? 그 기백은 가상하나 꿈꾸어서는 안될 악몽이다. 못하는 것이 없는 무소불위無所不爲니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무소능위無所能爲와 마찬가지다. 인간의 일이 아니다.

포악한 통치악으로 돌아간다

소정 선생님은 가라지와 곡식을 비유하여 참여정부가 기회주의자를 단속하지 못한 우를 범했다고 했다(2008: 574-575). 밭에 돌(가라지)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흙(곡식)이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민주화 이후의 악은 식민지, 반공정권, 군사정권의 통치악과는 구별된다(589쪽). 코로나에 지쳐 방심한 순간 얼떨결에 이전의 포악한 통치악으로 돌아가고 있다. 가장 아픈 대목은 헌법과 정의와 상식이 뒤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이제는 촛불(비폭력)로는 부족하다. 오랜 시간 깨지고 터져서 피와 땀(자기희생)을 적셔야 한다. 그리하여 끝까지 인내하고 언행을 삼가면서 이치를 따랐던 지도자가 있어 행복했음을, 감사했음을, 또 미안했음을 눈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인용: 박헌명. 2022. 무소불위無所不爲와 무소능위無所能爲. <최소주의행정학> 7(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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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lamoo 2022.06.22 10:34

    박세열. 2022. '검찰 출신으로 아주 도배를 한 인사'에 관한 유감. 프레시안. 2022. 6. 9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60909244530088

  2. solamoo 2022.06.24 10:02

    박찬수. 2021. 윤석열이 다시 꺼낸 "자유민주주의." 한겨레신문. 2021. 5. 26.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996744.html

  3. solamoo 2022.06.24 10:07

    한상권. 2012.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인 이유. 프레시안. 2012. 12. 10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5475

민주당이 대선에서 간발의 차이로 패했다. “아무리 그래도...”라며 기대를 걸었지만 격앙된 민심을 이기지 못했다. 현실과 거리를 둔 이상의 한계일까? 상처가 아무는 고비의 고통을 참아내지 못한 백성의 어리석음일까? 원한과 저주를 양분삼아 집요하게 물어뜯은 수구세력의 힘일까? 이렇게 촛불시민이 퇴화하는가?

광화문이든 용산이든 국민이 결정한다

청와대를 해체하고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던 윤석열 당선인이 드닷없이 그 공약은 재앙이라며 용산 시대를 선언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국방부는 급하게 이사할 곳을 찾아야 했다. 선거 후 1주일 안에 국민의당과 통합하겠다는 약속은 이미 물건너 갔다. 아마도 윤씨는 집권을 하더라도 똑같은 행태를 반복할 것이다. 공약과는 무관하게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내키는 대로 토론이나 설명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 법무부 폐지, 공수처 폐지 등을 통보할 것이다.

나는 의아했다.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것이 그리 중대한 일인가? 정치, 경제, 사회, 국방, 보건 등 나라 안팎으로 근심거리가 넘쳐나고 북한이 미사일까지 쏘는 마당에... 또 집무실을 당선자가 마음대로 옮길 수 있단 말인가? 청와대가 개인 소유인가?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것이 그저 보따리 몇 개 싸들고 전세방 얻어 이사하는 일이던가? 충분한 논의와 동의를 거쳐 결정할 일을 시한을 못박고 밀어붙이다니... 윤씨가 용산을 점찍은 것처럼 다음 당선자가 지방분권을 한다며 대전으로 간다면 어찌 하려는가? 환경과 관광을 생각해서 설악산으로, 바다를 사랑하여 흑산도로 집무실을 옮긴다면 어떠한가? 그 비용이 천억이든 1조원이든 그리 쓰는 것이 합당한가? 만일 새로운 도지사, 시장, 구청장이 들어설 때마다 취향에 따라 집무실과 청사를 새로 옮기고 짓는다면 어떠한가? 윤씨가 하면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하면 안되는 일인가? 공사구분을 못하는 정신줄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제왕적 당선인제?

윤씨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기 위해 청와대를 해체하겠다고 했다. 사실 광화문이든 용산이든 세종이든 뜻을 모아 잘 준비해서 옮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제왕적 대통령제”라니, 도대체 그 근거가 무엇인가? 헌법이나 법령에 못박혀 있단 말인가? 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왕정시절에 머물러 있는 백성들과 정치인들이 문제가 아닌가? 더구나 잘못된 관행이 사람이 아닌 청와대라는 장소 때문이라는 발상은 황당하다. 이런 속설이 있다 해도 어찌 점괘같은 인과설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과학인가? 미신인가? 아니면 취중객기인가? 청와대로 가는 순간 제왕적 대통령으로 찌들린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삐뚤어졌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든 깨진 바가지는 물이 샐 뿐이다. 만일 바이든 대통령이 미제국주의를 청산한다며 백악관을 해체하고 두 달 안에 하와이 군부대로 집무실을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명분이나 비용과는 별개로 방법과 과정이 전혀 터무니없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시키겠다는 윤씨의 언행 자체가 제왕적이다. 기세로 보면 영락없이 황제나 상제上帝다. 언제 국민이 윤씨에게 용산으로 낙점할 권한을 주었단 말인가? 경우없는 짓이다. 개념없는 “제왕적 당선인제”의 폐해가 너무도 크다.

무인정권의 중방정치나 도방정치다

이런 어이없는 소동을 보면서 나는 문득 고려시대 무인정권을 떠올렸다. 고려왕조는 당대 최강국인 몽고를 비롯하여 여진족(금나라)과 거란족(요나라)의 부침 앞에 풍전등화였다. COVID-19,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미사일 발사 등을 둘러싼 4대강국의 이해관계에 직면한 오늘과 비슷하다. 승패에 매달려 창칼을 휘두르는 무인과 죽기살기로 막말을 쏟아내는 정치꾼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무신의 위세에 짓눌려 허수아비가 되었던 고려황제는 정치꾼의 요설에 휘둘리는 정치(제도로서 정치체제)와 닮았다. 소위 합하閤下에게 등용된 문신관료와 수구세력에게 눈이 맞취진 언론은 묘하게 겹친다. 무자비한 살상과 말폭력을 자제하고 명분과 민생을 살피는 무신과 정치인이 살아남기 어려운 판이다.

의종을 폐하고 명종을 세운 이의방과 정중부는 정부관료제를 무시하고 무신 지휘관 모임인 중방重房에서 국사를 좌지우지했다. 무신과 거리를 두었던 경대승은 신변경호를 위한 사병조직인 도방都房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중방은 정규군이지만 도방은 사병이다. 경대승이 죽자 이의민은 다시 중방에서 권력을 휘둘렀다. 최충헌은 도방을 부활하고 최고정치기관인 교정도감을 설치하여 자손에게 물려주었다. 그의 아들 최우는 30년 동안이나 정방政房에서 인사권을 쥐고 흔들었다. 중방, 도방, 정방 모두 정규관료제(예컨대, 중서문하성,상서성, 중추원, 도당) 위에 군림한 최고의결기관이었다. 합하와 무신들은 황제의 뜻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고려왕조는 100년 동안 내우외환에 허덕이다 서서히 무너져 갔다.

주목해야 할 점은 윤씨와 수구세력이 문재인 정부를 대하는 태도다. 노무현을 주저앉힌 방식 그대로 원한과 저주를 만들고 부풀려 공격한다는 점이다. 노씨와 문씨는 이미 악마가 되었다. 울분에 찬 무신들이 문신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은 것처럼... 합리성이 아닌 증오와 광기다. 국방부를 흔들어 군기를 잡는다 해도 윤씨의 의심과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또다시 푸닥거리를 할 것이다. 믿는 것은 칼잡이 부하들이니 “중방”을 버리고 서초동에 가서 “도방”을 설치하고 “정방”을 운영할 것이다. 정부관료제는 도방에서 보낸 검사들에게 장악되어 공무원들은 부역자 신세가 될 것이다. 윤씨 내외의 심기를 위무慰撫하는 자들이 완장차고 설칠 것이다. 어쩌면 마법같은 불력佛力으로 난관을 극복한다며 법사들을 불러다 “건만대장경”을 새길는지도 모른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이 소중한 줄을 알아야 한다. 창칼과 주먹이 아닌 말과 눈빛으로 대화하고 설득할 수 있는 문신이다. 흠이 있더라도 그들의 인내와 땀과 꿈을 기억하고 지켜줘야 한다. 폭력과 무명과 주술에서 이성과 상식을 회복하는 길이다.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2. 제왕적 당선인의 중방정치와 도방정치. <최소주의행정학> 7(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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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lamoo 2022.03.28 16:06

    이종철. 2022. 청와대와 제왕적 대통령. 내외신문. 2022. 3. 27

    http://www.naewa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2998

  2. solamoo 2022.03.28 21:24

    제왕적 대통령 비판하더니 이제는 ‘제왕적 당선인’인가. 민중의 소리. 2022. 3. 21

    https://vop.co.kr/A00001610183.html

  3. solamoo 2022.03.29 08:36

    류순열. 2022. 제왕적 대통령 벗어나겠다는 윤석열 당선인의 제왕적 결단
    . UPI 뉴스. 2022. 3. 21.

    https://www.upinews.kr/newsView/upi202203210035

  4. solamoo 2022.03.29 17:39

    임병식. 2022. 대통령 집무실 이전, 국민에게 물어라. 아주경제. 2022. 3. 22.

    https://www.ajunews.com/view/20220322194604239

어떤 의사결정을 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결과(possibility)와 각각의 확률(probability)을 알 수 있는 상황을 위험(risk)이라고 한다. 가능한 결과는 알 수 있으나 그 확률을 모른다면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고 한다. 정책과정은 불확실성이 지배하고 있다.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지 못한다. March와 Olsen (1976)은 복잡성(complexity)과 모호성(ambiguity)으로 묘사하고 있다. 행위자들의 일관된 의도와 선호를 기대하기 어렵고, 인과관계에 관한 지식, 기술,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과거(history)는 계속 해석되고 재구성되며, 정책에 대한 구성원들의 관심은 바뀌기 마련이다(12쪽). 불확실성과 모호성에 직면한 인간은 겸허해야 한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 합리성을 추구하되 잘잘못을 따져 문제가 생기면 계속 오차를 수정해나가야 한다(Wildavsky 1987).

불확실성을 정책실패로 치환한 수구세력

대통령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야당 후보인 윤석열씨의 언사가 나날이 거칠어지고 있다. 독재, 부패정권, 국민약탈, 경제폭망, 방역실패에 이어 무능하고 오만한 친중·친북 정권이라고 저주을 퍼붓고 있다. 파시스트, 주사파, 무식한 3류 바보, 확정적 중범죄자, 미친 사람들, 같잖다, 돼먹지 못한 머슴, 버르장머리, 썩은 패거리까지 나온 판이다. 무조건 정권교체에만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레 현정권과 이재명 후보를 깎아내릴 수밖에 없는 사정일 터이다. 지역감정이든 남녀대립이든 세대갈등이든 이리 찢고 저리 째고 들쑤신다. 신들린 듯 널뛰는 “말길질”에 시시비비란 부질없다.

다만 수구세력이 어떻게 불확실성을 활용하는지 따져보고 싶다. 어쩌면 이들은 불확실성으로 인한 인간의 무기력과 불안감을 부추겨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데 쓰는 것같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불확실성에서 자유로운 존재인 것처럼 행동한다. 신접神接한 무당처럼 요란스레 굿판을 벌이면서 사람들을 홀린다. 신의 계시인양 밑도 끝도 없이 저주와 혐오질이다. 수구언론이 맞장구를 친다. 주술呪術이다. 무아지경에서 작두를 타며 외는 주사呪辭인가, 술먹고 횡설수설하는 주사酒邪인가. 어차피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주절거림이라는 면에서 차이가 없다.

수구세력은 COVID-19가 기승을 부릴 때 중국발 입국을 금지하고, 나아가 국경을 폐쇄하라며 문정부를 압박했다. 국제보건기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한바이러스”라고 우기는 자들이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출입국을 막으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또 문을 걸어 잠근다고 COVID-19 유입을 완전히 막을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의 행동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또 이들은 코로나 백신을 빨리 들여오지 않는다고 난리를 치다가 정작 접종을 시작하니 백신이 위험하다며 거품을 물었다. 혹자는 100% 안전한 백신을 달랜다. 그러면서 합리적인 정책오차수정을 말바꾸기나 오락가락으로 비난한다. 자기들은 COVID-19가 무엇이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데, 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해서 방역에 실패했다는 식이다. 예측할 수 없이 변화하는 COVID-19라는 불확실성을 K-방역실패로 등치시킨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수구세력의 비난은 가혹하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각종 규제로 집값을 잡겠다는 것이 오만이라고 했다. 윤석열씨는 정책을 28번이나 바꾸었지만 가격이 폭등했다며, 바보천치가 아니고선 이럴 수 없다고 했다. 서민이 집을 갖으면 보수화가 되기 때문에 일부러 집값을 올렸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아파트값을 올리고 내릴 수 있다면, 이것이 욕인가, 칭찬인가? 어찌하여 이들에게는 부동산정책이 이리도 쉽단 말인가? 가격과 수요와 공급이 서로 조화되지 못하여 시장이 실패한 상황인데,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인가? 시장논리라지만 사실상 공급자를 편들고 실수요자는 무시한 땅장사·집장사의 논리아닌가. 그리 쉬운 일이었으면 왜 이명박근혜 정권에서는 아파트값을 잡지 못했을까? 그들은 수많은 변수가 서로 얽히고 섥힌 부동산의 불확실성을 정책실패로 치환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격했던 것은?

이른바 K-방역이 해외에서 후한 평가를 받았지만 실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COVID-19 이후 주요국의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해도 한국의 상황이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불확실성 속에서 정부가 나름대로 상황 변화에 따라 정책을 수정해 온 노력을 폄하해서는 안된다. 큰 줄기로 보면 부동산정책의 방향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다주택자, 임대사업자, 대출규제, 종부세(공시가격) 등은 신중한 자세로 시행착오를 계속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불확실성을 가볍게 본 것이 있다면, 집권초 고위공직배제 5대 원칙을 천명하고 병역회피, 부동산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표절에 연루된 사람을 임명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 기준 자체는 상식에 부합했지만 제한된 후보자군과 제한된 검증능력이라는 현실을 간과했다. 성급하게 선명성을 강조하려다 보니 자승자박이 되어 수구세력의 반격을 자초하였다. 꼭 필요한 기준부터 시작해서 현실에 맞춰나갔어야 했다. 또한 2019년 11월 19일 열린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가격을 잡을 수 있다고 장담한 것은 문대통령답지 않은 과격한 발언이었다.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을 이용하지 않고 투기수요를 억제하려는 문정부의 노력은 평가해줘야 하지만, 누구도 정답을 모르는 일을 자신있다고 말한 것은 허언에 가깝다. 지금 이재명 후보가 부동산 가격폭등으로 격앙된 민심에 고전하는 이유다. 복잡한 정책문제의 모호성과 불확실성 앞에서 겸손했어야 했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참고문헌

  • March, James G., and John P. Olsen. 1976. Ambiguity and Choice in Organizations. Universitetsforlaget, Oslo.
  • Wildavsky, Aaron. 1987. Speaking Truth to Power: The Art and Craft of Policy Analysis. New Brunswick, NJ: Transaction Publishers.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2. 불확실성을 활용하는 수구세력의 주술. <최소주의행정학> 7(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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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to-Hide와 윤석열의 요설

2022. 2. 14. 12:51 | Posted by 못골

대선에 출마한 윤석열씨가 지난 9일 보도된 수구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전 정권의 적폐청산수사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동안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냐면서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문대통령은 현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로 몬 것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시하고 윤씨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아무리 선거라지만 서로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씨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면 불쾌할 일이 없지 않겠나”라고 대꾸했다. “현 정부에서 수사한 건 헌법·원칙에 따라 한 거고, 다음 정부가 자기들 비리·불법에 대해 수사하면 보복인가”라고 반문했다.

잘못한 것이 없다면 순순히 조사받으라고?

민주당은 정치보복을 선언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혹자는 계산된 선거전략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나는 탄식했다. 문정권을 수사하겠다는 대목에서가 아니다. 문제될 것이 없으면 수사를 한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대목에서다. 도둑이 제발저린다거나 발끈하는 것을 보니 켕기는 것이라도 있냐는 비아냥이다. 이른바 Nothing-to-hide의 음흉함이다. 잘못한 것이 없다면 감출 까닭이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엉터리 논리다. 반대로 말하면 무엇을 감추고 두려워하면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소리다. 그러니 묻는 대로 순순히 다 불라는 얘기다. 경찰, 검찰, 안기부 같은 권력기관이 애용하는 궤변이다. 잘못을 했든 안했든 하고 싶지 않는 말을 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드러난 혐의도 없는 현직 대통령에게 적폐수사를 운운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짐이 곧 국가이자 헌법이자 정의라는 정신줄이 아니고서야...

기억컨대, 수년 전 법무부장관이던 황교안씨가 국회에 나와서 야당 국회의원을 사찰했다는 비난과 추궁에 대해 같은 말을 했다. 궤변인 줄을 모르고 그리 답하는 것인지 알면서도 법기술자의 허세를 부리는 것인지... 아직도 일제시대 순사질과 검사질을 하고 있는가? 아무나 불러다가 몸을 더듬고 반항하면 일단 줘패고 보는 재미가 솔솔한가?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불러다 조사권과 기소권으로 찍어누르는 손맛이 짜릿한가? “생사여탈권”을 제멋대로 흔드는 쾌감이랄까? 어쩌다 죄가 드러나면 감옥에 쳐넣고, 안나오면 없는 먼지라도 탈탈 털어서 면피하면 그만 아닌가. 잘못이 없으면 적폐수사를 해도 불괘할 일이 없다니... 명색이 법무장관씩이나 된 자가, 또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전직 검찰총장이란 자가 어찌 그따위 망발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도대체 어느 법에 나와 있단 말인가? 어느 열혈 검사가 다짜고짜 윤씨를 반란죄로 체포한다 해도 고분고분 쇠오라(수갑)를 받을 것인가? 잘못한 것이 없으니 떳떳한 마음으로 고문을 달갑게 받을 것인가?

시스템이라고? 경우없는 사람이 문제다

일이 커지자 윤석열씨는 누가 누구를 보복하냐며 자신의 사전에 정치보복은 없다며 살짝 발을 뺐다. 대통령이 수사에 개입하지 않고 시스템에 따라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는 사법부의 견제와 통제를 받으면서 법절차에 따라 진행된다고 했다. 법전에 정치보복을 하라거나 인권을 유린하라거나 법조인은 서로 봐주라고 적혀있을 리가 없다. 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도 정치보복을 한다고 설치고 다니지 않았다. 폭력을 포장한 법치와 정의를 내세워 정적을 짓밟았다. 그러니 대통령 후보가 현 정권의 적폐가 있다고 단정하고, 당연히 수사를 해야 한다고 공언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현 정권에서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4년을 호의호식해놓고, 이제와서 정권이 검찰을 앞세워 범죄를 저질렀다니... 결국 검찰총장 시절 본인이 행동대장이 되어 적폐를 쌓았단 말인가? 자신이 기여한 적폐를 자신이 수사하겠다는 것 아닌가? 아님 정권이 수많은 범죄를 사주하고 적폐를 쌓는 것을 보고도 못본 척 했다는 것인가? 동업자여서? 무서워서? 아니면 능력이 없어서였나? 그럼 본인의 깡패질이나 직무유기부터 참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동안 할짓 못할 짓 다 해놓고 나서 이게 무슨 경우境遇란 말인가.

윤씨가 말한 현재의 사법시스템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검경수사권을 조정했지만 아직도 검찰은 수사권을 쥐고 있다. 김학의씨와 같이 불법을 저지른 검사들을 끝까지 감싸준 검찰이다. 사법농단을 저지른 판사들에게 하염없는 인자함으로 무죄를 선고해 준 사법부다. 한번 법조인이면 영원한 특권층이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총칼을 들이대는 독재자에게 굴종하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집권자는 물어뜯는 제도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다는 정치중립의 본 모습이다. 검찰총장이 대놓고 사람을 때려잡는다고 말하는 호시절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시스템이다.

제도가 좀 미진하다 해도 운영을 하는 사람이 멀쩡하면 된다. 윤씨는 문정권을 부패하고 무능하고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민을 약탈하는 독재라고 했다. 하지만 문정권에서 한국은 5년 만에 완전한 민주주의(23위)를 회복했고, 60년 만에 선진국으로 분류되었다. 언론자유지수는 70위(2016)에서 41위(2019)로 아시아 1위다. 경제는 망했고 K-방역은 실패했다며 윤씨는 비난했지만, 한국의 수출은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고, 경제성장은 선두권을 달리고 있고, 문화산업은 꽃피우고 있고, K-방역은 해외에서 호평받고 있다.

청문회에서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에 동의했던 윤씨는 이제 공수처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검찰왕조를 복원하려는 것인가? 또 한동훈씨가 독립운동하듯 했댄다. 그럼 문대통령은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나? 현 정부의 적폐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윤씨는 “자연스럽게 전 정부 일이 1, 2, 3년 지나며 적발”될 것이라고 답했다. 어차피 적폐는 있는 것이니 조사하면 다 나온다. 조국 장관처럼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를 인질삼아 압박하면 없는 증거도 나온다. 좀 세게 추궁하면 피의자가 초조해져서 자살한다. 뭐 이런 얘기 아닌가? 불신받는 사법시스템에서 이런 정신줄을 가진 낭만 자객이 못할 일이 과연 무엇인가? 이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범죄 수괴" 문재인을 기소하고 “확정적 중범죄자” 이재명을 때려잡을 기세다. 이미 사주팔자로 판결까지 마친 듯한 윤씨의 “관심법”이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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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2. Nothing-to-Hide와 윤석열의 요설. <최소주의행정학> 7(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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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벌써 두 해를 넘겼다. 인도에서 발생한 델타변종이 3차 유행을 이끌더니 남아프리카공화국발 오미크론(Omicron)이 4차 유행에 불을 질렀다. 모든 나라가 방역수준을 높이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 방역은 잘하고 있다

수구언론만 보면 한국의 코로나 방역은 완전 실패다. 참사다. 이미 5천만명이 다 죽어 나자빠진 듯하다. 이런 호들갑이 다 있을까?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를 폐쇄하지 않았다고 난리고, 방역마스크를 빼돌려 대란이 벌어졌다고 법석이다. 백신계획을 발표해도 계약이 늦었다고, 물량이 부족하다고 난리다. 막상 접종을 시작하니까 백신이 위험하다며 동네방네 나발을 분다. 방송에 나와 100% 안전한 백신을 내놓으라고 생떼다. 소망과는 달리 접종률이 급격하게 높아지니까 망연자실하더니 소아청소년들에게 접종하려니까 위험하다며 또다시 게거품을 문다. 대체 뭘 하자는 것인가?

눈을 좀 밖으로 돌려보자.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12월 27일 현재 우리나라는 82%가 백신접종을 마친 가운데 지난 1주 동안 확진자가 4만명(매일 평균 6천명, 인구 만명당 8명)이 발생했다. 접종완료율이 60%인 미국은 118만명(만명당 35명), 접종률 69%의 영국은 53만명(만명당 78명), 72%인 프랑스는 48만명(만명당 75명), 70%인 독일은 20만명(만명당 23명), 74%인 이탤리는 26만명(만명당 42명)이 신규로 확진되었다. 최근 확진자수가 급격하게 떨어져 국민들마저 의구심을 갖고 있는 일본은 접종률이 78%(세계평균은 46%)다. 지금까지 COVID-19로 사망한 사람은 미국이 81만명(만명당 23명), 영국이 15만명(만명당 22명), 프랑스가 12만명(만명당 18명), 독일이 11만명(만명당 13명)이다. 일본은 1만 8천명(만명당 1.4명)이고 우리나라는 5천 3백명(만명당 1명)이다. 특히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고 접종을 늦게 시작했지만, 세계 최고수준의 접종 속도와 완료율을 보여주고 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K-방역의 성과는 놀랍다.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대한민국의 위용이다.

도대체 K-방역이 폭망했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위의 수치만 따진다면 당신은 어느 나라에 살고 싶은가? 오미크론 공포가 확산되자 PCR검사를 받으려는 행렬이 길어지고 있다. 혹한에 몇시간을 기다렸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배불러 터진 소리다. 한국처럼 물쓰듯 검사를 공짜로, 전투적으로 해주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네 시간이든 열 시간이든 기다려도 좋으니 나도 한번 검사를 받아봤으면 좋겠다.

코로나 방역은 공공보건을 생산하는 공역이다

이른바 K-방역은 정치가 아닌 과학(전문가)이 주도하고, 공격적으로 검사와 격리를 지속하고, 경제와 균형을 모색하고,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수출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였고, GPD성장률은 2년 연속 선방하고 있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의료진도 시민들도 지쳐가고 있다. 긴장감이 줄고 있다.

특히 백신접종 완료율이 8할이 넘었지만 아직도 접종을 꺼리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아청소년의 확진이 늘어나면서 백신접종을 권장하고 있지만 자녀들의 접종을 머뭇거리는 부모들이 있다. 백신패스를 도입하는 것을 무리지어 반대하기도 한다. 백신을 안맞았다고 식당에서 밥을 못먹고, 학원을 다니지 못한다니 말이 되냐며 목청을 높인다. 하지만 확진이 되었을 경우 어떻게 식당과 학원에 책임을 질 것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백신을 안맞을 자유를 말하지만 백신을 접종받지 않은 손님을 받지 않을 업주의 자유에는 입을 닫는다. 백신을 맞지 않은 손님과 같은 공간에서 밥먹거나 공부하기를 꺼리는 접종완료자의 건강과 자유는 말하지 않는다. 이기주의자들이다. 나는 멋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남들은 무조건 내 자유를 존중해야 하는 의무만이 있다는 “자유민주주의”다. “살인백신 강제접종”이라니... 군대나 학교에서 사망자가 생긴다고 해서 “살인국방 강제입대,” “살인교육 강제입학”이라 할 것인가? 천둥벌거숭이들의 어처구니없는 난동이다.

전염병은 서로 접촉을 피하는 것이 요체다. 많이 모이지 말고, 일정한 거리를 지키고, 마스크를 쓰고, 환기를 하고, 잘 씻어야 한다. PCR검사를 받고 백신을 접종받아야 한다. 확진자를 가려내고, 격리하고, 치료해야 한다. 이런 것이 방역이다. 일상이 어그러지고 불편하고 마음이 답답한 일이다. 공동체 구성원이 인내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방역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자연스레 무임승차 문제가 생긴다. 방역의 혜택은 공동체 전체가 누리고, 방역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방역조치를 따르지 않는 것은 단순히 공짜로 혜택을 보려는 단순한 얌체짓이 아니라 공공의 보건을 무너뜨리는 짓이다. 자유를 빙자한 무책임하고 부주의한 행동으로 식구와 친구와 이웃과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고약한 이기주의자의 심보다.

공역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를 지불하라

여야는 지난 1년 간 재난지원금을 주네 마네, 누구에게 얼마나 언제 주네, 재정건전성이 어쩌니 밀고 당겼다. 한마디로 방역조치로 생계가 어려워졌으니 구휼미를 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휼이 아니라 코로나 방역이라는 부역賦役에 협조한 최소한의 대가를 지불하는 일이다. 정부의 방역조치로 영업을 하지 못한 자영업자의 손실을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역公役에 대한 최소한의 몫을 지불하는 일이다. 임금이나 영업손실 그대로를 보전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생존을 위해 방역조치를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은 최소한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기준은 수입이나 영업손실이 아니라 공역에 성실히 참여했는가이다. 방역에 적극 협조한 개인과 기업과 자영업자에게는 격려금과 혜택(예컨대, 영업시간 연장)으로 보답한다. 위반자에게는 부역을 거부하고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린 책임을 벌금, 행정처분, 손해배상 등으로 철저히 물어야 한다. 또 코로나 장기화에 대비하여 K-방역을 생활화하고 산업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방역 인력을 육성하여 확충하고, 관련 기술(검사, 백신, 치료제 등)을 개발하고 고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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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2. 코로나 방역에 협조한 공역에 보답하라. <최소주의행정학> 7(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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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지도자를 뽑는 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공방이 치열하다. 대장동 개발과 고발사주사건이 휩쓸더니, 윤석열씨 장모와 배우자의 불법과 탈법이 몰아치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재명씨 아들의 불법도박 의혹이 불거졌다. 이씨는 대국민 사과로 머리를 숙였다. 예측할 수 없는 난타전이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양비론이 고개를 쳐든다. 선량의 이성과 상식이 힘을 잃어가는 듯하다.

후보의 지향과 문제해결방식

선거는 후보자의 역량이 그 자리에 마땅한지를 따지는 일이다. 후보 각자가 자신의 장점을 호소하겠지만 누구도 정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 개개인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그런데 후보가 내거는 공약으로 역량을 가늠해서는 안된다. 공항건설이나 감세를 공약했다고 표를 준다면 어리석은 짓이다. 정치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는 짓이다. 나라의 일(정책)은 당시의 맥락과 환경에 따라 바뀌고, 또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평가해야 하는 것은 후보자의 가치지향과 그가 어떤 일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답을 내놓는 방식이다. 사람이 아니라 시대가 원하는 가치지향과 문제해결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른바 시대정신이다.

후보자 식구들의 행적을 따지는 것도 후보의 가치지향과 일하는 방식을 알아내기 위함이다. 개인주의에 기반한 서구 사회와는 달리 왕조와 가족주의 전통을 이어온 우리 사회에서는 지도자와 식구들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물론 공직과 관계없는 사생활을 시시콜콜 까발릴 수는 없다. 다만 과거에 저지른 잘못를 캐내어 비난하기보다는 그 잘못을 어떻게 책임졌고 어떻게 성장하여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허물을 고쳤다면 더 나무랄 까닭이 없다.

흙수저와 법조 엘리트의 차이

이재명씨와 윤석열씨의 선거운동을 보고 있자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수구세력이 지배하는 운동장이고, 정권재창출보다 정권교체 목소리가 더 큰 구도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정부가 아무리 잘해도 욕을 먹는 판이다. 백신이 늦으면 백신없어 죽는다고 나자빠지고, 백신이 들어오면 백신맞고 죽는다고 악다구니다. 임기말 지지율이 40%를 오가는 문대통령도 사정없이 물어뜯긴다. 이씨의 허물은 부풀려 까발려지고, 윤씨의 허물은 순화되고 슬그머니 가려진다. 여당 후보는 맨발로 칼날 위에 서 있고, 야당 후보는 가죽신으로 꽃길을 걷고 있다. 선거판이 이렇게 기울어져 있는데도 여당 후보가 수구세력의 파상공세에도 밀리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다.

이재명씨는 소년공 출신으로 비명문대를 졸업하고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낸 흙수저다. 윤석열씨는 기득권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검찰총장까지 역임한 정통 금수저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민주세력은 능력을 내세우고 수구세력이 오히려 정의와 도덕을 강조하는 이상한 선거다. 기자회견과 토론회에서 드러난 두 후보의 역량은 다른 차원에 있다. 이씨는 노무현씨가 돌아온 듯 맨주먹으로 핵심을 찌르고 있다. 세상과 눈을 맞추고 진심으로 허물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자세다. 윤씨는 주 120시간 노동을 비롯한 1일 1망언을 이어오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기득권의 인식을 드러냈다. 세상물정 모르고 아무렇게나 쏟아낸 말이 얼마나 사람들을 놀라고 허탈하고 힘들고 아프게 하는지... 어찌하여 매번 설화로 욕먹고 나서 취지랍시고 해명을 덧대는가... 과연 남의 말을 알아듣고 생각을 정리하여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는 한건지... 말로 싸우는 토론을 두려워하면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민주주의가 아니라 왕조시절에 최적화된 자세다.

윤석열만의 공정과 상식

수구세력은 이씨가 전과4범이며 형수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했다며 비난했다. 맥락을 뺀 악의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반면 윤씨는 기득권의 전유물같았던 일하는 능력 대신 공정과 상식을 내걸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며 기어이 정경심을 앞세워 조국을 발라냈고,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라며 추미애씨를 치받았다. 정치중립과 공정한 법집행이라는 방패로 문정부를 부패하고 무능한 독재정권이라고 찍어내렸다. 그 여세를 몰아 반문정서에 올라탔다. “낭만자객”의 서사는 이렇게 장엄했다.

하지만 윤씨의 공정과 상식은 허무한 구호가 되었다. 조국일가를 도륙할 때 휘둘렀던 칼날에 베인 것이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을 베풀지 않은 업보다. 윤씨는 추장관이 자신에게 내린 징계가 부당하다며 제기한 징계취소와 직무정지취소 소송에서 연패했다. 윤씨에 대한 징계가 정당하다는 뜻이다. 그동안 무패행진을 이어오던 장모 최씨는 추장관의 지휘권발동 이후 재판에서 연패하고 있다. 3백억원대 은행잔고를 위조한 남다른 배포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신통력에 그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장모인가 성모 마리아인가?

배우자 김명신씨는 줄리 의혹에 이어 허위 학력과 이력으로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자신의 이름자와 같은 학력에 어찌 논란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김병신”이면 과장인가? 한 획만 달라도 용납될 수 없는 사안 아닌가. 정경심씨는 표창장을 발행할 권한을 사실상 가졌고 위조할 이유가 없었지만, 김씨는 재직증명서를 발급할 권한이 없었고 위조해야만 하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 가짜박사 최성해씨의 교육자 양심은 증거로 삼고, 김씨를 알지도 못한다는 게임산업협회장과 사무국장의 진술은 못들은 척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조민씨의 실력은 고대에 입학하고도 남았지만 김씨의 실력은 쇼핑포함 5일짜리 연수조차 학력으로 적어야만 돋보인다. 밤늦게까지 줄리하느라 이력을 꾸미느라 바빠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공부할 시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김씨의 “Yuji”와 “姓明”은 최순실씨의 “공항장애”와 닮은꼴이다. 딱 그 수준이다. 그런데도 김씨는 기소는 커녕 압수수색이나 조사도 받지 않았다. 조국을 난도질한 서슬퍼런 법치와 정의는 대체로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니 죄를 니가 알렷다'

윤씨의 태도와 문제해결방식은 한마디로 “니 죄를 니가 알렷다”이다. 자신과 식구들은 잘못이 없고, 그래야만 하고, 여기에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다. 천부의 특권이다. 법은 조국이나 일반 시민들이 지켜야 할 의무일 뿐이다. 직권남용이든 문서위조든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본이 안된 불경이다. 반역이다. 이것이 진리이고 자유민주주의다. 윤씨가 국민을 향해 삿대질하고 기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이유다. 떠밀려 사과하면서도 깨끗하게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이유다. 천민인 주제에 감히 성 안으로 들어온 이재명을 인정할 수 없다. 자신에게 시혜를 받아야 할 아랫것들과 어찌 말을 섞을 수 있단 말인가. 그의 가치지향이다.

하지만 세상은 윤씨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허물을 보지 못하니 고치지 못한다. “에헴”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야당이 시끄러운 까닭이다. 그런데 조국이 정경심을 끌어안고 돌아오고 있다. 사모펀드 의혹은 이미 사라졌고, 검찰이 확보한 컴퓨터의 표창장 위조 증거력은 부정되었다. 그런데도 김건희는 방송에서 사과연애편지나 낭송하고, 정경심은 감옥에서 신음하고 있다. 윤씨가 자신이 파놓은 조국의 늪에 빠진 형국이다. 버둥거릴수록 숨통을 죄어올 것이다. 인과응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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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2. 후보의 가치지향과 문제해결방식을 보라. <최소주의행정학> 7(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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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lamoo 2021.12.30 00:49

    김호상. 2021. [만평]조국의 강. 오마이뉴스. 2021. 12. 2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97035&utm_source=dable

  2. solamoo 2021.12.30 10:38

    박재동. 2021.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146]. 경기신문. 2021. 6. 29.

    https://www.kgnews.co.kr/news/article.html?no=654268

  3. solamoo 2021.12.30 11:55

    박재동. 2021.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151]. 경기신문. 2021.7.6

    https://kgnews.co.kr/mobile/article.html?no=655654

  4. solamoo 2021.12.30 12:32

    권범철. 2021. 한겨레 그림판. 한겨레신문. 2021. 12. 29.

    https://www.hani.co.kr/arti/cartoon/hanicartoon/1025145.html

광주민주화 항쟁을 총칼로 짓밟고 권력을 찬탈簒奪했던 전두환이 11월 23일 죽었다. 살인마로 불렸던 그가 90년을 꼭 채웠으니 욕을 많이 먹은 값을 하나 보다. 피해자와 시민들은 전씨가 자신이 저지른 만행을 끝까지 사과하지 않고 죽은 것에 대해 분개했다. 정치권도 외면한 빈소에는 친족과 추종자들이 오갈 뿐이었다.

비폭력의 열매를 못거둔 김대중씨

전두환은 1995년 반란죄와 내란죄 수괴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김대중씨가 사면해줬다. 사람들은 전씨에게 진심어린 사과나 추징금을 먼저 받아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랬으면 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는 궤변은 듣지 않았을 것을... 소정 선생님은 이렇게 적었다.

“김대중씨는 그에게 사형을 구형한 1980년 군사재판[정]에서 정치보복은 자기만으로 끝내자고 했다. 그는 쿠데타 정권자를 모두 용서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돕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비폭력적 조치가 과연 이 모든 이들의 회개를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음이 현실로 드러나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비폭력 투쟁을 구세력을 향해 다시 해야 하는 과제와 현실정치 속에서 비폭력의 열매를 못거둔 민주화운동의 동지, 김대중씨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관한 이중적 과제를 안게 된다”(2001: 194).

소정 선생님은 이미 20년 전에 김대통령의 사면(비폭력)이 전두환의 회개(열매)를 이끌어내지 못했음을 안타까와 했다. 기독교에서 사랑과 용서는 회개를 선행조건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개하라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며, 아무리 타락한 죄인이라 하더라도 회개할 조그만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168쪽). 이런 맥락에서 전두환과 그 추종자들은 김대통령의 사랑과 용서가 무용지물일만큼 극악무도한 죄인이다. 애초부터 회개가능성이 전혀 없는 타락墮落의 끝장에 선 자들이다.

회개와 용서는 가해자의 몫이다

회개悔改란 무엇인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고친다는 뜻이다. 소정 선생님은 “회개하고 하늘 나라를 맞이하라는 것이지, 회개를 않고서 하늘 나라를 맞이하라는 말이 아니다. … 말만으로의 회개여서는 안되고, 변화된 행동이 뒤따르는 회개여야 한다”(171쪽)라고 했고, “회개한 마음을 미루어 밖으로 실천하는 회개여야 한다”(266쪽)라고 적었다. 말하자면 전두환은 회개를 하지 않고 날로 하늘 나라를 맞이하려 한 것이다. 사과한다는 말한마디도 없었고, 추징금 납부를 미루었고, 재판 참석도 미적거리다가 죽었다. 말이든 실천이든 그에게 회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소정 선생님은 “사람의 원모습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늘 회개하는 것이며, 이 회개를 철저하게 하면 할수록 그만큼 그는 평범한 사람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회개의 목적은 사람을 원모습으로 생활을 시작하는 데 있지, 과거의 잘못을 징벌하는 데 있지 않다”(264쪽)고 했다. 사람의 원래 모습은 이 세상에 날 때부터 사람이 갖고 나온 천부天賦의 마음이며, 나쁜 정치의 영향과 구조 속에서 생겨난 악한 마음은 후천적으로 습득한 마음이다(1991: 44).사람의 원모습에서 벗어난 언행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악행을 고쳐 원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다. 전두환은 천부의 마음을 잃고 포악한 살인마가 되어 날뛰었지만, 죽을 때까지 철저하게 회개를 회피하고 외면함으로써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면 용서는 누가 하는가? 소정 선생님은 “용서할 자격이 있는 세력이 용서하고, 악을 저지른 자가 전과를 뉘우쳐야 한다” (2008: 148)고 했다. 예컨대, 정치정당성이 없는, 용서할 자격이 없는 (이명박) 정권이 용서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일본이 전과를 뉘우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하셨다. 나는 잘못을 저지른 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개과천선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미 회개를 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면 피해자의 용서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반대로 회개하지 않는 가해자를 신이 용서한다면 누가 납득할 것인가? 말장난에 가까운 의미없는 일이다. 결국 용서는 피해자나 신이 아니라 가해자 스스로 하는 것이다. 오직 진심으로 참회懺悔를 했느냐를 물을 뿐이다. 전두환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으니 영원히 스스로에게 용서받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마지막이 좋아야 한다”(2001: 219)고 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나쁘기만 했다. 일가친척과 추종자들이 골백번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마지막까지 나약했던 살인마

소정 선생님은 “관용은 자신이 한 행동을 돌이켜 보아 자신에게 섭섭하게 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행위”(2001: 488)라고 하셨다. 하지만 전두환은 사람들을 단순히 섭섭하게 한 자가 아니라 40년 넘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자다. 추총자들은 망자에 대한 예의니 인간의 도리를 들먹였지만, 왜 80년 광주시민들에게는 그토록 가혹했단 말인가? 참회하기는 커녕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부당하다며 버럭하는 그의 모습에서 번뇌煩惱하는 인간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외경畏敬조차 군홧발로 짓밟았으니 역사가 심판하지 않아도 대대손손 인면수심의 악귀로 불릴 것이다.

방송에서 본 전두환은 기세등등한 독재자가 아닌 나약한 골목대장이었다. 1995년 검찰소환에 반발하여 “골목성명”을 읽을 때도, 2019년 마지못해 광주지법에 나타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당하게 자신을 역사에 비추려는 눈이 아니었다. 사실을 묻고 진실을 외면하는 비겁한 눈이었다. 오금이 저릴만큼 무섭고 두려웠던 것일까? 필사적으로 현실에서 도망쳐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려는 자기최면이었다. 환각에서 깨어나지 않으려는 마약쟁이의 몸부림이었다. 한때는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장군이었고, 대통령을 두 번이나 해먹었던 자가 골목길에서 벌인 추태라니... 자신의 과오에 마주설 용기가 없으니 똘마니들이나 달고 다니며 세월을 묻은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背恩忘德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참회하지 못한 살인마의 죽음이 노여웁다. 

인용: 박헌명. 2021. 회개와 용서는 스스로의 몫이다. <최소주의행정학> 6(12): 1.

Comment

  1. solamoo 2021.12.03 15:00

    한겨레신문. [사설] 한마디 사죄도 없이 떠난 ‘국민 학살자’ 전두환. 2021. 11. 23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0205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