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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최소주의행정학

정세균의 사퇴와 이낙연의 사퇴 본문

비폭력과 최소주의

정세균의 사퇴와 이낙연의 사퇴

못골 2021. 10. 19. 17:58

지난 9월 13일 민주당 대통령선거 경선에 나섰던 정세균 후보가 사퇴했다. 지지율은 제자리 걸음인데 뽀족한 묘수가 보이지 않자 호남경선을 앞두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국회의원, 장관, 당대표, 국회의장에 이어 국무총리까지 두루 역임한 정후보여서 아쉬움이 적지 않다. 하지만 시대정신에 미치지 못함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깨끗하게 물러선 신사 정세균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정치신사 정세균의 선공후사

정씨는 기자회견에서 담백하게 다음과 같이 밝혔다.

“부족한 저를 오랫동안 성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평당원으로 돌아가 하나 되는 민주당,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백의종군하겠습니다. 나라와 국민과 당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겠습니다. 함께 뛰던 동료들께 응원을, 저를 돕던 동지들께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의 진심에는 미움과 원망이 없다. 이런 저런 가시돛힌 공방으로 마음이 상했을 법도 한데, 섭섭함은 가슴에 묻고 고마움과 감사만을 담았다. 나라와 국민과 당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두고두고 갚겠다고 했다. “나는 나를 섭섭하게 한 이를 잊고 싶고 ... 나에게 고맙게 한 이를 잊고 싶지 않다”고 적은(1991: 22) 소정 선생님을 떠올리게 한다.

또 그의 뜻에는 사사로움이 없다. 민주당과 나라를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사퇴한다 해서 그가 뒷주머니에 챙길 수 있는 이익이 없다. 그는 민주당의 성공과 승리를 위해 평생을 바쳐왔다며, 백의종군하겠다고 다짐했다. 누구를 깎아내리거나 특정 후보를 편들지 않았다. 다만 허물을 자신에게 돌리고 경쟁했던 동료를 응원했고, 도움을 준 동지들에게 감사했다(1996: 429). 한마디로 선공후사先公後私다.

선공후사를 뒤집은 이낙연의 사퇴

이낙연 후보는 지난 9월 8일 “민주당의 가치,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정권재창출에 나서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모든 것을 던져 정권 재창출을 이룸으로써 민주주의와 민주당, 대한민국과 호남, 서울 종로에 ... 진 빚을” 갚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사퇴는 뜬금없고 실망스럽다. 불쾌하다. 대의를 빙자하여 유권자를 우롱한 것이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이기적인 선택이다.

우선 사퇴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 정말 정권 재창출이 간절하여 모든 것을 던질 각오였다면 이씨는 경선 전에 사퇴했어야 했다. 자신은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면서 이재명씨에게 경기도 지사직을 내려놓으라고 계속해서 요구했다. 법과 당규와 합의사항도 아닌 일을 강요했다. 경우없는 짓이다. 이씨의 사퇴는 경선분위기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국면을 바꾸기 위해 띄운 승부수다. 궁여지책이다. 자기 주장의 일관성 부족을 채우고, 경쟁자에게 사퇴하도록 압박하기(내가 사퇴했으니 너도 사퇴해) 위한 술수다. 유리한 분위기였으면 결코 꺼내지 않았을 패다.

둘째, 종로구 국회의원이 왜 광주에 가서 사퇴를 발표한단 말인가? 본인 말대로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사람들은 광주시민이 아니라 종로구민아닌가? 광주시민에게는 전혀 생뚱맞은 짓이고 서울시민에게는 그저 황당한 짓이다. 느닷없이 사퇴선언을 하기 전에 이씨는 먼저 종로구 유권자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가장 먼저 광주시민에서 대선승리를 보고하겠다는 망발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체 종로구민을 뭘로 보고...

세째, 누가 봐도 광주전남경선을 앞두고 고향에 가서 지역감정을 들쑤신 것이다. 16일 다시 광주를 찾은 이씨는 “광주에서 반전을 일으켜 결선 투표로 가는 드라마를 만들어 주십시오. ... 광주가 저에게 지지를 보내주지 않으면 제 역할은 여기서 끝납니다”라고 읍소했다.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광주가 자신을 키웠으니, 광주가 책임지라는 소리다. 안그럼 당신이 키운 인물은 끝장난다는 협박이다. 의원직도 내놓았다며 동네사람 들으라는 듯 항아리에다 대고 울먹이는 신파극이다. 용돈을 안주면 죽어버리겠다며 숫가락을 내던지고 떼를 쓰는 못난 자식놈이다. 엉덩이에서 불이 나도록 후려패주고 싶다. 명색이 국회의원, 도지사, 국무총리까지 지낸 자가 대선승리도 아닌 고작 결선투표에 목을 맨단 말인가.

네째, 사심이 지나쳐 일을 그르쳤다. 말은 많지만 내가 아니면 절대 안된다는 것 아닌가. “저의 모든 것을 비웠다. 진정성을 받아달라”고 강변했지만, 그는 유권자와 당과 동지들과 보좌진을 비우고 자신의 욕심을 채워넣었다. 자신의 의정활동을 도왔던 보좌진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민주당은 내년 대선과 함께 어려운 보궐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결국 자신의 이득을 따진 것이지 손해를 무릅쓰는 최소주의자의 간절한 결단이 아니었다(1980: 363). 이씨는 “정권 재창출이라는 역사의 책임 앞에 제가 가진 가장 중요한 것을 던지기로 결심”했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직이 유권자에 대한 책임이 아닌 개인의 권리(재산)란 말인가? 아연실색이다.

찬물을 끼얹은 이낙연의 뒤끝

이씨는 광주에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도덕적이지 않아도 좋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민주당과 보수야당이 도덕성에서 공격과 방어가 역전되는 기막힌 현실도 괜찮습니까?”라며 호소했다. 불안한 후보가 아닌 안심되는 후보를 내놔야 한다며 에둘렀지만, 누가 들어도 경쟁자인 이재명씨를 헐뜯는 소리다. 추미애씨의 일침대로 수구세력의 의혹과 말법으로 아군을 공격한 셈이다. 10월 10일 경선결과가 발표된 직후 이씨는 이지사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잔치가 어수선해졌다. 무효표 계산을 핑계삼아 침묵을 지켰다. 경선 중에 이미 결론이 내려진 사안이었다. 이씨는 극렬지지자들의 경선불복을 사흘동안이나 방치하다가 마지못해 당무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글을 남겼다. 지저분한 뒤끝 때문인지 여론조사에서 이지사는 경선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못먹는 밥에 재를 뿌렸으니 속이 시원한가? 이낙연씨에게 그가 내뱉은 언어로 묻는다. 그대는 “5.18영령 앞에 ...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며 희생하고 헌신하셨던 선배 당원들한테 부끄럽지” 않은가?

 

인용: 박헌명. 2021. 정세균의 사퇴와 이낙연의 사퇴. <최소주의행정학> 6(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