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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최소주의행정학

고난을 딛고 돌아온 조국의 비폭력 투쟁 본문

비폭력과 최소주의

고난을 딛고 돌아온 조국의 비폭력 투쟁

못골 2024. 4. 11. 20:57

조국이 나타났다. 제 22대 총선거를 앞두고 기어이 살아서 돌아왔다. 풍비박산된 집안을 뒤로 하고 눈빛을 번득이며 주먹을 불끈 쥐고 나왔다. 검찰 독재 정권을 심판하는 저승사자가 되어 나타났다. 정치인 조국의 등장이다. 지난 3월 21일 그의 고향인 부산에서 피를 토하듯 포효했다. “이제 고마 치아라마...” 시대정신을 꿰뚫는 그의 사자후에 사람들은 비명같은 탄성을 질렀다. 이 울부짖음이 천둥번개가 되어 잠든 세상을 깨웠다. 화나고 답답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봄날 철쭉이 검붉게 불타오르듯 조국이 전국을 돌며 사람들의 가슴팍에 불을 지르고 있다. 그 불길이 번져나가 선거 자체를 삼키고 있다.

살아 돌아온 조국의 사자후

조국은 2019년 8월 9일 법무장관으로 지명되었다. 진저리치는 고난의 시작이었다. 기어코 수사권을 사수하려는 검찰이 발악하였다. 이른바 검찰 쿠데타였다. 수십명의 검사들이 달려들어 그와 그의 식구들을 넉 달 넘게 물어 뜯었다. 압수수색만 100여 차례 이루어졌고, 자녀의 일기장까지 쓸어갔다. 검찰은 세밑(12.31)에 사모펀드, 웅동학원, 대학입시 등 12개 혐의로 조씨를 기소하였고, 이듬해 1월 17일 감찰무마 혐의를 추가하였다. 하지만 권력형 비리라고 난리법석을 피웠던 “조국펀드”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인턴쉽, 체험활동, 장학금만 남았다. 딸이 수령한 600만원 장학금이 청탁금지법 위반이면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조씨는 취임 35일 만에(10.14) 장관직을 내려놓았고, 2023년(6.13)에는 서울대로부터 교수직 파면을 당했다. 1심(2023.2.3)과 2심(2024.2.8)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배우자 정씨는 소환조사도 없이 청문회 중인 9월 6일 기습 기소되었다. 자본시장법 위반, 사문서위조, 증거위조 등 14개나 되는 혐의였다. 왕조시대로 치면 대역죄 수준이지만 검찰은 증거물인 표장장도 없이 위조했네 안했네, 인턴을 했네 안했네를 따지는 수준이었다. 동양대는 2021년(8.31) 정씨를 면직시켰고,대법원은 2022년 1월 27일 징역 4년을 확정했다. 2023년 고대(2월)와 부산대(4월)는 조민씨의 입학을 취소했고, 보건복지부는 7월 조씨의 의사면허를 취소했다. 조씨는 하루아침에 10년을 잃고 고졸이 되었다. 검찰은 질질 끌다가 조씨를 7월 소환조사했고 시효만료 직전인 8월10일 기소하였다. 조국은 말 그대로 패가망신을 당했다.

의미있는 고난을 참고 견뎌온 힘

유시민씨는 이 사건을 검찰의 가족인질극으로 비유했다. 정의와 인권을 수호해야 하는 검찰이 균형을 잃었다. 조씨에게만 가혹하게 칼을 휘둘렀고, 비열하게 검찰권을 행사했다. 식구들 모두에게 현미경 잣대를 들이대고 혐의를 쪼개서 기소했다. 배우자는 파렴치범으로 손가락질받고 옥살이를 했고, 자식들은 흥정거리가 되어 검찰에 불려다녔다. 검찰은 처자식을 볼모로 야비하게 조국을 짓눌렀다. 맘을 찢어 발기고 몸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기득권 언론은 검찰을 거들어 조국 일가를 짓밟았다. 재판도 하기 전에 일가족을 여론의 늪에 담갔다. 조씨는 부처, 공자, 예수도 피하지 못할 망나니의 칼날에 난도질을 당했다. 법과 양심이 아닌 “밥과 앙심”에 따른 학살에 가까왔다. 겁대가리없이 검찰에 도전한 자가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라는 정치검사들의 협박질이었다.

하지만 조국은 검찰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무서움에 떨며 정신줄을 놓지도 않았고 좌절하지도 않았다.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지 않았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추스려 비폭력으로 대응했다. 검찰과 언론의 매도罵倒에 따박따박 말로 대꾸했다. 끊임없이 본인이 해야 할 말을 멈추지 않았다. 수구언론은 그를 부관참시 하듯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넘어졌지만 그는 끝까지 이성과 상식에 맞는 얘기만 했다. 끈질기게, 그리고 꾸준하게 그 힘든 시간을 참고 견뎌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그가 고마운 까닭이다.

폭풍으로 몰아친 조국의 비폭력 투쟁

소정은 <전쟁과 평화>가 주는 교훈을 “권력의 남용 하에서 의미있는 고난을 겪은 사람만이 평화를 만든다”(1980: 365) 혹은 “전쟁 속에서 유의미한 고난을 통해 대안을 창출하는 자가 생겼을 때에만 평화가 온다”(1991: 333)로 정리했다. 포악한 정권의 패악질을 참고 견뎌온 조국이 “쇄빙선”으로 돌아왔다. 고난을 겪으면서 찾아낸 대안이다. 더 잃을 것도 없는 그는 돌아갈 곳이 없다고 했다. 대법원의 판단이 나오면 법대로 감옥에 가겠다고 했다. 최소를 가질지 말지 하는 한계상황을 경험한 자가 그 최소마저도 상실된 상태에서의 존재를 음미하는 여유라고나 할까(1986: 96).

살아 돌아온 조국은 예전의 조국이 아니었다. 멋진 야성으로 무장한 용맹스런 선봉장이 되어 있었다. 말끔한 정장에 흰머리를 날리는 사노맹의 전사로 거듭났다. 평생 법을 연구한 지식인이자 원숙한 중년이지만 젊은 날의 뜨거운 심장은 그대로인 투사였다. 조국은 끝까지 똑같은 결기로 똑같은 마음으로 행동하겠다고 했다. 가장 단호하게 가장 강력하게 싸우겠다고 했다. 정제되고 명쾌한 말이 꿈툴거리며 강약이 조율된 가락으로 흘러 사람들의 마음을 후벼팠다.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닌 이성과 상식에 따른 냉철한 비폭력 투쟁이어서 순시간에 돌풍이 되고 폭풍이 되었다.

조국은 외모 뿐만 아니라 몸짓, 표정, 태도, 품격, 학력, 언변 등 모든 면에서 김명신, 윤석열, 한동훈과 대조된다. 훤칠한 키와 얼굴은 까치발과 폴짝 뛰기와 극과 극이다. 말끔한 옷맵시와 앞뒤를 뒤바꾸어 입은 바지를 상상해 보라. 정중하고 정성을 다하는 말과 저렴하고 성의없는 말장난이라니... 조국의 연설은 “김윤한”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의 말이고, 사람의 대화였다. 사람들이 “김윤한”에게 듣고 싶어한 말이었고, 사람들이 “김윤한”에게 하고 싶어한 말이었다. 오랜 갈증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청량한 사이다였다. 내용은 물론 발음, 호흡, 강도, 속도, 시선, 손짓 모두 탁월했다. 눈이 호강하고, 귀가 호강하고, 가슴이 호강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과 결기가 느껴졌다. 조국의 비폭력 투쟁으로 사악한 정권의 패악질이 멈추고 희망과 평화가 찾아오길 바란다.

 

인용: 박헌명. 2024. 고난을 딪고 돌아온 조국의 비폭력 투쟁. <최소주의행정학> 9(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