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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최소주의행정학

고대생의 촛불집회와 배부른 자의 투정 본문

비폭력과 최소주의

고대생의 촛불집회와 배부른 자의 투정

못골 2020. 9. 27. 12:26

조국 전 정무수석이 지난 달 9일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었다. 수구 야당의 파상공세 속에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지금까지 관련기사가 무려 120여만 건에 이른다고 한다. 황당한 수치다. 청문회를 앞두고 조후보자의 식구들과 관련된 압수수색이 전격적으로 단행되고 있다. 시시각각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고 입과 입을 거치면서 자가발전하고 있다. 애초에 제기된 조후보자 여식女息의 포르쉐나 특례입학이나 성적 문제는 벌써 갑오경장 시절 얘기가 되었다. 청문회 정국이 요동치고 점입가경이다.

고대생의 촛불집회가 불편하다

조후보자의 도덕성 논란은 자신이 아닌 여식의 입학과 장학금 문제에 집중되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과 “강남좌파”라는 조후보자의 언행이 다르다는 배신감이다. 특히 20대의 지지율이 흔들리면서 여당도 우려하고 있다. 지난 달 23일에는 서울대와 고대 학생들이 촛불집회를 열어 항의했다. 부산대 학생들도 거들고 나섰다. 조후보자의 여식이 고대 생명공학부에 입학하고, 서울대 환경대학원과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장학금을 받은 것이 입시부정이나 특혜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나는 촛불을 들고 고대 본관 앞을 도는 학생들의 행렬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학생들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그 행동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미 3차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과연 꼭 필요한 행동이었을까? 70-80년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선배들을 잇는 행동인가? 폭정에 시달리던 32년 전 고대 교수들이 목숨을 걸고 시국성명서를 낭독했던 그 자리 아닌가. 그 간절한 말이 사람들을 울려서 끝내는 6월 민주화운동으로 타오르게 했던 역사의 현장 아닌가.

소정의 최소주의에서 벗어난 촛불집회

소정 선생님의 비폭력은 최소주의로 구현된다. “일단 그 날이 오면 다칠 것을 알면서도 몸을 던지는 행동”으로 “긴요한 최소행동”이다(1991: 25-26). 첫째, 정국이 극도로 무서울 때에 행동한다. 행동을 하면 힘센 자에게 불이익을 당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대부분 몸을 사리는 상황이다. 둘째, 그래서 신중하게 행동방법을 결정한다. 참여자 간의 철저한 합의와 일반 시민과의 연대를 모색한다. 세째, 필연적으로 비폭력 방법을 취한다. 주먹이 아닌 말로 대응하되 지극히 옳은 말만 한다. 상대방의 이성조차 감히 거절하지 못할 만한 진리를 말해야 한다(2008: 66). 네째, 이말 저말을 함부로 쏟아내지 않고 꼭 필요한 요구만 한다. 실존적 발언을 최소한으로 한다(1996: 56). 무섭지 않을 때는 아무나 나와서 인기를 끌 만한 발언을 난사하기 때문에 전투력이 분산된다. 마지막으로 행동을 통해 개인의 잇속을 차리지 않는다. 기분나빠서 나서는 것이 아니라 다칠 줄을 알면서도 대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뿐이다.

하지만 고대생의 촛불집회는 최소주의와 거리가 멀다. 첫째, 다칠까봐 몸을 움츠리는 무서운 때가 아니다. 집회에 참석한다고 해서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거나 경찰에 잡혀갈 일이 없다. 오히려 사회분위기에 편승해 주목받고 박수를 받을 일이다. 지난 달 29일 TBS <뉴스공장>에 출연한 유시민씨는 “근데 의사표현을 못하게 막고 있나요, 아니면 권력으로 이 문제제기를 틀어막고 있나요? 여론은 압도적으로 조국에게 불리하고, 언론은 대통령에게 비판적이고, 언론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건의 기사들을 쏟아내서 조국을 공격하고 있는 이 마당에... 우리가 진실을 말해야 될 때, 이것을 비판하면 불이익이 우려될 때, 익명으로 신분을 감추고 투쟁을 하거나 마스크를 쓰거나 그러는 거지. 지금 조국 욕한다고 해서, 대통령을 비난한다고 해서 누가 불이익을 줘요?”라고 말했다.

둘째, 아무리 온라인 광장에서 논의되었다지만 신중한 행동이 아니다. 집회발의자, 합의과정, 대표성 모두 흠결이 있다. 사실확인도 되지 않았는데, 숨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의혹과 비난 광풍에 휩쓸린 느낌이다. 더구나 민감한 고대 교우의 일을 어찌 그리 성급하게 말하는가. 의혹이 사실이 아니면 그 생채기를 다 어찌 하려는가? 학내 문제라며 외부인 개입을 배제했지만, 국민 다수에게 공감을 얻기 어려운 속내임을 암시할 뿐이다. 세째, 촛불시위라는 비폭력을 동원한 것은 맞지만 지극히 옳은 발언을 한 것은 아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의혹이나 예단이지 직선제 개헌과 같은 시대정신이 아니다. 네째, 긴요한 최소한의 발언이 아니다. 학교당국이 살펴보겠다고 했고 검찰이 조사하고 있는 마당에 지레 평등·공정·정의가 사망했다고 단정하고, 자료공개, 진실규명, 입학취소, 지명철회 등을 요구하는 것은 과하다. 홀로 선 조국을 난타질하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숱가락을 얹는 인기영합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촛불집회로 얻으려는 대의가 보이지 않는다. 정의를 말하고 공정을 말했지만, 속내는 직접적인 자신의 잇속이다. 자신은 힘들게 공부해서 입학했는데, 부정하게 입학했다면 부당하다. 감히 고대에서... 한마디로 기분나쁘다는 것이다. 유시민씨는 “자격이 의심스러운 자가 기득권을 누리거나,.. 우리들의 자부심에 손상을 주는 사람이 있다고 느낄 때, 그것에 대해 비판하는 감정을 가질 수 있는데, 그것을 굳이 집단적으로 표출시킬 이유가 있나 싶어요?”라고 일갈했다. 학생들이 자문해야 할 대목이다. 어쩌면 SKY의 관점이 아닌 일반 청년의 시각에서 대학입시 제도에 대한 성찰과 개선을 말했다면 차라리 덜 부끄러웠을 것이다.

배부른 자의 밥투정이나 힘자랑

기득권의 부도덕과 특혜라고 비난했지만 고대생의 촛불집회는 또다른 기득권을 상징한다. 토익과 AP 만점자도 자질을 의심받는 범접할 수 없는 학교라는 것 아닌가. SKY의 힘자랑이다. 배불러 터진 자들의 밥투정이자 난동이다. 그냥 속상한 자들이 술집에 모여서 육두문자를 안주삼아 주사부릴 얘기 아닌가. 간절함이 없으니 감동도 없고 호응도 없다. 신중치 못한 행동이 의도찮게 수구세력의 필사항전을 편들고 대의를 호도하는 것은 아닌지...

 

인용하기: 박헌명. 2019. 고대생의 촛불집회와 배부른 자의 투정. <최소주의행정학> 4(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