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못골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2026/01/22'에 해당되는 글 1

  1. 2026.01.22 이진관 판사의 판결에 환호하고 울먹이다 1

피고인을 징역 23년에 처한다... 21일 한덕수의 내란중요임무종사혐의 등에 대하여 이진관 판사가 내린 판결이다. 호사가들은 특별검사가 구형한 15년보다는 적게 나올 것이다, 절반인 7-8년이 될 것이라고들 했다. 지난 16일 백대현 판사는 특수공무집행방해혐의 등으로 징역 15년이 구형된 윤석열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내란 초범이라 감경한다는 대목에서는 다들 뒷목을 잡았다. 12·3내란 이후 어처구니없는 검사와 판사들의 행태에 좌절하고 분노했던 터에 그리 자조섞인 예측을 했을 것이다.

징역 23년에 환호하고 울먹인 까닭은?

대부분 이진관 판사의 선고에 환호했다. 벌떡 일어서서 박수를 치기도 했고 감정이 북받쳐 울먹이기도 했다. 구형보다 높은 형량에 놀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이심전심이라 했다. 이것이 민심이고 상식이다. 백판사는 판결문까지는 잘 끌고 갔지만 형량을 셈하는 대목에서 민심에 부응하지 못했다. 반면 지귀연 판사는 처음부터 낙제점이었다. 판검사들의 제멋대로에 질려버렸던 마당에 법상식에 부합한 판결을 내렸으니 이판사가 탁월하게 보이는 것이다. 만백성이 원하는 법관의 전형이다.

“12 ·3 내란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내란 행위 자체는 몇 시간 만에 종료되긴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무엇보다도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에 의한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이러한 국민의 저항을 바탕으로 신속히 국회에 진입하여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한 일부 정치인들의 노력, 대한민국 역사에 있었던 내란의 암울한 기억을 상기하면서 위법한 지시와 명령에 저항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더라도 소극적으로 참여한 일부 군인과 경찰 공무원의 행동에 의한 것입니다. 결코 12·3 내란 가담자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이판사는 내란을 멈춘 것은 용기있는 시민, 정치인, 군인, 경찰의 공이었음을 적시했다. 무책임하고 품위없는 내란종사자들의 궤변을 단호하게 내쳤다. 대국민 호소용 계몽령이라느니, 두 시간짜리 계엄이 어디있냐느니, 아무 일(피해)도 없었다느니, 서부지법 난동이 국민 저항권이라니... 그만 그 입 다물라! 사실과 상식에 기반한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다.

또한 한덕수에 대해서 “피고인은 간접적으로나마 민주적 정당성과 그에 대한 책임을 부여받은 국무총리로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 그럼에도 피고인은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러한 의무와 책임을 끝내 외면하고 오히려 그 일원으로 가담하기를 선택하였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교언영색으로 양지만을 쫓아온 기회주의 기름장어의 본색을 꿰뚫는 말이다. 내란에 관여했으면서도 모른척 시치미를 떼고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고서도 스스로 대통령선거에 나선 몰염치의 어질어질한 행보라니... 인간이 아니다. 사람들이 말하고 싶었던 말을, 주권자들이 듣고 싶었던 말을 법관이 법 언어로 정갈하게 말해준 것이다. 그동안 천지분간을 못하는 판검사들 때문에 부아가 치밀었던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이다. 국민의 아픈 곳을 치유해주는 판결이다. 그래서 감동이 있고 울림이 있다.

1987년 그 날에도 환호하고 울먹였다

이러한 종류의 감동이 처음은 아니다. 1987년 4월 22일. 싱그러운 녹음이 퍼지고 햇살이 따스한 봄날이었다. 교수님들이 시국성명서를 발표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대 본관으로 달려갔다. 서관 앞 의자 뒤에서 본관 앞 잔디밭을 내려다 보았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본관 앞 계단에 교수님들이 계셨고 그 앞에 학생과 시민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뒤에 많은 기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인촌동상 근처에도 사람들이 오갔다.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끓어오르더니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주인인 국민이 만들어내는 감동, 이를 거절할 수 없는 국민의 合理性的 抵抗, 祝祭분위기의 편재가 국민의 종인 통치자를 변하게 만든다. 나는 이런 점에서 6·29가 생겨난 것을 1986년 3월 28일 고대교수들 28명이 성명서를 냈을 때에 고대캠퍼스를 휩쓴 축제분위기에서 찾는다” (1991: 30).

1986년 촉발된 개헌운동은 1987년 전두환의 4.13호헌조치에 된서리를 맞았다. 공포분위기를 만들어 민중의 요구를 찍어누르려는 술수였다. 무섭고 험악한 상황에서 고대교수들이 당당하게 “잔말말고 개헌하라”고 일갈한 것이다. 이 감동과 울림이 바로 전국을 흔들었다. 대학과 시민사회에서 시국선언이 빗발치게 되었다. 국민들이 듣고 싶었던, 하고 싶었던 말을 학자의 언어로 풀어냈고, 이 말이 국민을 위로하고 뭉치게 했다. 나는 이 의미를, 그 중심에 소정 선생님께서 계셨음을 나중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박정훈·조성현 대령도 세상을 울렸다

정권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박정훈 대령도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에게 가슴먹먹한 울림을 주었다. 박대령은 2023년 7월 민간인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해병대 채일병 사건을 조사했다. 해병대수사단장으로서 수사 결과를 해병대사령관과 국방장관에게 보고했지만, 죄명·혐의자·혐의내용을 빼라는 등의 압박을 받았다. 미운털이 밖힐 줄을 알면서도 법규정에 따라 수사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하고 20개월 넘게 고초를 당했다. 법과 상식에 부합한 그의 언행은 해병대 장병들과 시민들이 하고 싶고 듣고 싶었던 말이었고 보고 싶었던 행동이었다. 안되는 것은 절대 안된다는 상식이다. 무도함과 무능함으로 폭주하던 “윤건희”의 주술정권이 무너지기 시작한 순간이다.

제1경비단장 조성현 대령은 국회를 통제하라, 의원을 끌어내라는 수방사령관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고 후속부대에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고 지시했다. 국민의 군대로서 정당하지 않고 합법적이지 않은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했다. 똥별보다 낫다. 여차하면 군용차를 돌려 용산에 들이닥칠 수도 있음은 “윤건희”에겐 절망이었다. 박대령과 조대령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지만 무서울 때에 법과 상식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처절한 불이익을 당할 줄을 알면서도 국민을 끌내 배신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울렸다. 이들의 충칙함이 만인의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 

 

인용: 박헌명. 2026. 이진관 판사의 판결에 환호하고 울먹이다. <최소주의행정학> 11(2): 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