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스트는 기원전 4-5세기경 아테네의 민주정치(athenian democracy)에서 논쟁술을 가르쳐 호의호식한 지식인이다. 아테네는 국가의 대소사를 민회의 토론을 거쳐 직접 결정했다. 시민(성인 남자)이면 누구나 참여하여 말솜씨를 뽐내고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자신의 유무죄 역시 배심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소피스트들은 상대방의 주장을 제압하는데 유용한 수사학, 논리학, 웅변술 등을 가르쳤다. 이들에게는 사실, 진실, 진심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대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말빨”과 순발력이 필요할 뿐이었다. 민회는 소피스트의 놀이터가 되었다. 요설과 궤변이 난무했다. 한 명제에 대한 찬반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중논변(Dissoi logoi)으로 어질어질했다. 떳다방처럼 충동적이었고 즉흥적이었다. 사실에 기반한 차분하고 합리적인 결정은 거의 불가능했다. 직접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중우정치衆愚政治가 백년 만에 허무하게 막을 내린 까닭은 분명했다.
소피스트와 대중영합주의자
소정 선생님은 과도한 참여를 비판하면서 소피스트를 대중영합주의자로 언급하셨다(2008: 518, 544, 617). 기회주의(1991: 26; 1996: 391, 394, 437) 혹은 인기주의(1986: 298; 2008: 391)라고도 표현했다. “말을 하되 운동에 적합한 말이라기보다는 운동자의 인기 위주의 말”을 하고, “말을 하는 기준이 자기 자신의 이해 관계 추구가 되어 마구 과격한 말”을 한다고 했다(1996: 673). 옳고 그름이 아니라 틈만 나면 자신의 잇속을 최대한으로 추구하는 자들이다(2008: 544).
소피스트는 (1) 사실과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2) 돈을 벌기 위해 남을 속이고 홀리는 말법을 전수한다, (3)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는다(이중논변). 기회주의자들이어서 그때 그때 유리한 대로 말을 교묘하게 꼬아 비튼다. 주목을 끌만한 과격한 발언을 쏟아낸다. 무서울 때에 최소의 말을 하고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자가 아니다(2008: 258). 반대로 추울 때(꼭 필요할 때)에는 고개를 쳐박고 숨을 죽이다가 날이 풀리면 입에 거품물고 잇속만을 챙기는 자들이다.
2,500년 전 소피스트의 무대가 되었던 민회는 지금은 사회매체(social media)로 바뀌었다. 기득권과 결탁하여 “꼰대질”을 해오던 매체와 방송이 신뢰를 잃었다. 과거 민회에서의 수업료, 환호, 표가 이제는 수퍼챗(후원금), 좋아요, 구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른바 “말빨”을 자랑하는 자들이 특히 유투비(Youtube)를 중심으로 활개를 치면서 사실과 거짓을 뒤바꾸거나 뒤섞고 있다. 담론의 장은 활짝 열렸지만 극성스러운 소피스트들이 몰려다니면서 난장판이 되고 있다.
사회매체는 고객이 원하는 논변만 골라먹을 수 있도록 해주고, 인공지능은 사람의 선호를 알아채어 고객들을 일정한 논조의 방안에 가두고(chamber effect)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를 양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상호간 이해를 넓히고 합리성으로 이견을 좁혀가는 대화가 아니라 무조건 상대방을 헐뜯는 패악질이다. 아군이 좋아하는 마약을 먹여 좀비처럼 귀를 닫고 공염불만 외게 할 뿐이다. 정치 양극화를 가속시킨다. 참여 폭이 넓어지고 참여 기술이 발달할수록 소크라테스의 토론과 비판은 숨을 쉬지 못한다.
사회매체로 무장한 21세기 소피스트들
기회주의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지만 수구기득권에 주로 똬리를 틀고 있다. 의리義理보다는 이문利文에 집착하는 자들 아닌가. 사악한 소피스트들은 평소에는 티를 내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본색을 드러낸다. 20대 대선(2022)에서 “이재명 필패”를 주장하고 22대 총선(2024)에서 “비명횡사 친명횡재”를 들먹인 자들을 보라. 정해진 절차에 따른 결과에 불복하고 동지에게 침을 뱉았다. 사실 일부와 그들의 잇속(희망사항)을 뒤섞어 적의 언어로 경쟁자에게 비수를 꽂았다. 내부총질로 전열을 흐트린 “수박”은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대의를 저버린 민주당 소피스트이다.
수구기득권은 애초부터 기회주의자와 소피스트 집단이다. 친일·쿠데타·독재세력과 부역자들은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말과 몸을 바꾸어온 자들이다. 세상에 정의와 진리가 어디 있느냐며 독립투사와 민주투사를 비웃은 자들이다. 배신은 본능이요 삶의 지혜다. 옳고 그름을 안개 속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상대방의 예봉을 흔드려는 술책이다. 강자일 때는 무법자로 군림하고 위기에 몰리면 비굴하게 법타령으로 목숨을 구걸하는 자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죽지도 않고 또 온다.
“김여사 정권”은 소피스트들의 천국이었다. 온갖 꼼수와 거짓말의 향연이었다. 값비싼 목걸이를 받은 사연이 흐느적거리며 춤을 춘다. 줄리할 시간이 없었다는 유지(Yuji) 박사.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는 우격다짐. 재난통제 책임이 없다는 대통령실. 뜬금없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는 비상계엄. 계엄이 아니라 계몽, 의원이 아니라 요원, 국회통제가 아니라 질서유지라는 자들... 서부지법에 몰려가 난동을 피워놓고 국민저항권이라니... 이제와서 나 혼자 살겠다고 말을 바꾸는 장차관과 별들. 체면몰수하고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밀며 횡설수설하는 내란수괴. 궤변을 아편처럼 나눠먹은 자들이다. 이런 깜냥들이 비상계엄이라니 언감생심이다. 내란을 내란이라 말하지 못하는 정치인, 판검사, 변호사, 경찰들... 확정판결이 나지 않았으니 내란이라고 하면 안된다? 강도가 성폭행을 해도 “강도야”라고 소리치면 안된단 말인가?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이 자유가 아니다. 인간을 부수는 폭력이다. 품격을 잃고 반칙을 통제하지 못하는 민회와 정치는 민주주의를 좀먹는 암종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야 토론과 비판이 의미를 가진다. 논객은 기술과 재주가 아니라 인간성과 합리성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보편적 규칙에 따라 사실과 진리를 추구하는 공론장이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의 문제가 아니다. 중립을 빙자한 “백날토론”을 멈춰세우고 잇속을 위해 혹세무민하는 소피스트들을 쫓아내야 한다. 거짓, 왜곡, 막말, 말장난으로 연명하는 자들이다. 멋진 변론으로 승부를 내는 “말투사”와 지적 희열로 환호하는 대중을 보았으면 한다.

같이 읽기
- 박창식. 2015. 막말에 대한 변론. 한겨레신문. 2015년 7월 7일
인용: 박헌명. 2026. 소피스트들이 민주주의를 망친다. <최소주의행정학> 1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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