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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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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己未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꼭 백 년이 된다. 백 년 전 오늘 전국에서 각계각층의 남녀노소가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을사늑약乙巳勒約(1905)과 경술국치庚戌國恥(1910)를 거치면서 조선 민중을 옥죄던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하고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무장봉기가 아닌 철저한 비폭력 평화운동에 일제는 잔혹한 무력진압으로 맞섰다. 공식 집계만 해도 백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각지에서 참여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거나 다치거나 무자비하게 끌려갔다. 3.1만세운동을 계기로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일제는 무단통치방식을 포기하였다. 헌법 전문에 나와 있듯이 3.1운동은 대한민국이란 물줄기의 발원지였다.


하지만 해방 후 조선총독부 앞에 휘날리던 일장기를 끌어내린 자들은 독립군이 아니라 미군이었고, 그들이 게양한 깃발은 태극기가 아니라 성조기였다. 통일정부를 세우려던 염원이 무산되면서 남과 북에서 그들만의 권력을 틀어쥐려는 무리들이 또다시 이 땅을 갈라내고 동족상잔의 만행을 저질렀다. 제주4.3학살, 여순항쟁, 한국전쟁, 보도연맹학살은 그들만의 제단에 뿌려진 무고한 피였다. 이승만 일당들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좌절시겼고, 단두대에 세워진 친일파를 풀어주는 대신에 그 자리에 정적을 끌어다 놓고 마구잡이로 “빨갱이칠”을 해댔다. 혹독했던 일제의 쇠사슬에서 벗어나는가 싶더니 또다시 미군을 등에 업은 반민족·친일·기회주의자들의 폭정에 시달려야 했다. 3.1운동을 이은 4·19, 5·18, 6·29, 촛불혁명은 배신과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백성들의 처절한 피와 땀과 눈물이었다. 하지만 끝끝내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무리들이 끊임없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도도하게 흘러왔던 민주화 운동을 폄하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3.1운동은 아직도 진행중일는지 모른다.


기미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


백 년이 지났어도 이 나라 백성들은 여전히 강자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고,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자에게 맞서고 있다. 투쟁대상이 일본 제국주의와 동족의 피를 빨아먹은 친일파에서 “빨갱이칠”로 기득권을 이어온 수구·냉전·반공세력으로 바뀌었을 뿐 갈등 구조는 그대로다. 애초부터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아니라 이성과 상식과 양심이 기득권을 위해 배반과 변신을 거듭해온 수구기회주의 세력에 힘겹게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義를 내팽개치고 利만을 쫓아온 강자의 폭력에 약자는 어떤 자세로 맞서야 하는가? 소정 선생님께서는 “吾等은 玆에 我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로 시작하는 <기미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公約三章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一. 今日 吾人의 此擧는 正義人道生存尊榮을 爲하는 民族的 要求니 오즉 自由的 精神을 發揮할 것이오 決코 排他的 感情으로 逸走하지 말라 (하나, 오늘 우리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위한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 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一. 最後의 一人까지 最後의 一刻까지 民族의 正當한 意思를 快히 發表하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민족의 올바른 의사를 시원스럽게 발표하라).


一. 一切의 行動은 가장 秩序를 尊重하야 吾人의 主張과 態度로 하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하게 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가 어디까지나 공명정대하게 하라).


첫번째 공약은 “일”에 관한 언급인데, 일본제국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제국에 의하여 핍박받고 있는 동포의 고유 권리를 찾는 거사라는 점을 말한다(1991: 329). 두번째는 육체의 종식으로 사람의 운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넘어서서 존재하는 “사람”의 책임과 운명을 말한다(1980: 358; 1991: 319, 329). 마지막은 질서를 존중하고 공명정대하게 행동하라는 “방법”을 말한다. 한마디로 비폭력 평화 투쟁을 천명한 것이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먼저 질서를 존중하며,” “어디까지나 공명정대하게 하라” 등은 철저한 비폭력 의지를 말한다(1996: 407).


소정의 초월윤리와 촛불집회


이문영(1991)은 사람·일·방법이란 범주와 비폭력-개인윤리-사회윤리-자기희생으로 발전하는 초월윤리를 연결시켰다(48-49쪽). 공약삼장에서 보면 일(此擧)은 긍휼감으로 민족의 최소한을 요구하는 사회윤리이며, 사람(一人)은 마지막 육체의 존재를 넘어서는 인간의 자기희생을 표현하며, 마지막으로 방법(行動)은 비폭력과 개인윤리라 할 수 있다(1991: 318-319).


출처: 이문영(1991: 162-170; 1996: 403-407)에서 재구성함.
방법사람
비폭력개인윤리사회윤리자기희생
신信예지禮智인仁의義
그리움한숨감동


공무원으로 치면 비폭력은 권력남용을 자제하는 일이고, 개인윤리는 법령을 준수하는 일이고, 사회윤리는 소외된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일이며, 자기희생은 손해보면서까지 시민참여(예컨대, 공무원 노조)를 허용하는 일이다.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도리와 사단四端으로 치면 각각 信(光名之心), 禮(辭讓之心)와 智(是非之心), 仁(惻隱之心), 義(羞惡之心)와 대응된다(1996: 403-407). 신信은 예지禮智에 앞서서 자신의 몸을 함부로 하지 않는 덕목으로 비폭력이라 할 수 있으며, 개인윤리는 폭력이 멈춰진 뒤 합의를 모색하고 지혜를 획득하는 것이다(1996: 404). 또한 불쌍한 자를 긍휼하는 마음이 있어야 사회윤리를 기대할 수 있으며, 사람으로서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정권의 부당한 지시를 거절하고 기꺼이 불이익을 당하는 자기희생이 가능하다(1996: 405, 437).


공약삼장은 지난 2016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계속되었던 박근혜정권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서도 그대로 관찰된다. 개인적으로 박근혜씨가 미워서 화풀이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로서 “이게 나라냐”는 기본 질문을 한 것이다(일, 사회윤리). 민심을 억압했던 이명박근혜 정권이었지만 남녀노소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많게는 하루에 이백만 명이 넘게 모였고, 당당하게 주권자의 의사를 시원스레 밝혔다(사람, 자기희생). 수백만 명의 함성과 발구름과 소등 시위는 구중궁궐에 포위되어 있는 박씨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겠지만, 백성들에게는 스스로 주권자임을 자각하는 축전祝典이었다. 각계각층의 남녀노소가 참여한 개인발언은 민심 그대로였다. 방법으로 치자면 한없이 평화스러웠고, 끝까지 질서가 유지되었으며, 폭력이 추방된 비폭력 운동이었다(방법, 비폭력과 개인윤리). 경찰이 벽을 치고 긴장을 조성한 면도 있었으나 시민들 스스로 폭력을 자제하고 질서를 외쳤으며 집회가 끝난 뒤 쓰레기를 거두어 가는 모범을 보였다. 총 23차에 걸친 집회에서 총 천 오백만 명이 참여했지만 폭력으로 체포된 사람이 없었다. “따뜻한 계절”을 그리워하고, 이명박근혜라는 현실에 한숨짓고, 꿈꾸는 너와 나의 미래를 확인하며 감동했던 혁명이었다.


『맹자』의 설궁장과 최소주의


이문영(1980)은 난동을 불사하는 民의 무책임한 힘과 권력남용으로 대표되는 官의 벌거벗은 힘이 부딪치는 원색적인 대결을 피하고 싶었다(vii쪽). 이런 대결에서 이익을 보는 자들은 양 극단이지 일반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치자들의 폭정(권력남용)도 극복해야 하지만 백성들의 난동 역시 자제되어야 한다. 꼭 필요할 때에 다칠 것을 알면서도 몸을 던지는 최소행동이 필요한 까닭이다.『孔孟』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의 설궁雪宮장은 이러한 소정의 최소주의에 맞닿아 있다.


“齊宣王見孟子於雪宮。王曰 賢者亦有此樂乎? 孟子對曰 有。人不得則非其上矣。不得而非其上者非也, 爲民上而不與民同樂者亦非也。제선왕이 맹자를 설궁에서 만났다. 왕이 말하기를, 현자에게도 이러한 즐거움이 있습니까? 맹자가 답하기를, 있습니다. 사람들이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그 윗사람을 비난합니다. [즐거움을] 못얻었다고 해서 그 위사람을 비난하는 자(백성)도 잘못이며, 백성의 위사람이 되어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같이 하지 않는 자도 잘못입니다” (『孔孟』 「梁惠王章句 下」4).


여기서 즐거움을 무엇을 말하는가? 이 장에 앞서 맹자는 왕이 백성과 더불어 음악, 사냥, 동산을 즐긴다면 왕노릇을 할 수 있다(與百姓同樂則王矣)고 했다. 현자(백성)도 왕과 마찬가지로 멋진 별장을 노니는 즐거움이 있다. 왕이 백성들과 더불어 음악과 사냥을 즐기고, 백성들과 같이 동산을 이용하면 백성들은 왕의 즐거움을 같이 느낀다. 소정의 초월윤리로 치면 윗사람은 비폭력과 개인윤리는 물론 사회윤리와 자기희생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백성이 그런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는 뜻은 무엇인가? 왕의 동산에 들어왔다고 무조건 때려죽이거나 법에도 없는 일(예컨대, 벌금이나 형벌)을 강요하는 일은 없지만, 사회의 약자를 배려하거나 (그들에게 예외를 허용하거나) 동산을 백성에게 개방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경우다. 최소한 비폭력과 개인윤리를 보여주지만 사회윤리와 자기희생에는 이르지 못한 경우다. 이 때 백성들이 왕의 동산이나 별장을 누리지 못해서 화가 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에게 손가락질하고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 꼭 필요한 말을 하는 최소한의 발언이 아니다. 지나친 행동이며 과격이다.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난동이다. 그들이 자신의 분수를 편안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성백효 2014: 110). 윗사람이 되어 권력남용을 안하고 법령에 나와있는 일만 하는 것은 물론 잘하는 짓은 아니지만 백성들에게 비난받고 매맞고 쫓겨날 정도는 아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 백성이 왕을 비난할 수 있을까? 왕의 동산에 들어오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동산에서 사슴을 죽인 자를 살인죄로 다스리는 경우이다(성백효 2014: 101). 예컨대, 법에서 정한 살인죄도 모자라 7족에게도 죄를 묻는 패악질을 하는 경우다. 사회윤리와 자기희생은 커녕 개인윤리나 비폭력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포악한 왕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어리석은 독재자들은 무력만 믿고 끝간데 없이 폭정을 휘두르다가 스스로 무너진다(1986: 289, 297). 서로 더 해먹으려다 이해관계가 틀어지고 서로 치고 박다가 끝내는 자기들이 만든 법조차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비폭력은 물론 개인윤리조차 무너진 상황에서 백성의 원성과 죽창은 피할 길이 없다.


소정의 최소주의로 나아가라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초창기에 8할이 넘었던 대통령 지지율은 현재 절반에 머물고 있다. 개헌, 선거법개정, 적폐청산, 사법농단수사 등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불만이다. 공정한 시장질서를 구현하려는 시도는 사회주의로 치부되고, 최저임금인상을 포함한 소득주소성장정책이 오히려 민생경제를 망치는 주범으로 몰린다. 북한에 속아 GP를 철수하고 한미훈련을 중단하고 안보를 포기했댄다. 비정규직 노동자, 사립유치원, 미세먼지 등의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다고 아우성이다. 호시탐탐 민심을 호리는 날조뉴스들이 넘쳐난다. 야당 대표는 총체적 난국에 처한 좌파정권의 폭정을 막겠다며 기염氣焰을 토한다.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현정권이 정치를 망치고 경제를 망치고 안보를 망치고 통일을 망쳤으면 하는 주술과 희망사항을 저주로 퍼붓고 있다. 작정을 하고 노무현 정권을 난도질하던 수구 야당과 언론의 모습 그대로다. 경제파탄과 불통과 퍼주기라고 또다시 헌나발을 불지만 “경포대”보다도 처참했던 이명박근혜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북미관계가 틀어져 장거리미사일이 하늘을 날던 시절만을 오매불망하고 있다.

과연 문재인 정권은 이런 비난과 저주를 받아 마땅한가? 유시민씨의 말대로 모든 구악이 그대로인 채 대통령만 갑자기 바뀐 것 아닌가. 야당에서 “침대축구”를 하면 개헌이든 뭐든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수구세력들이 사사건건 적폐청산을 가로막아왔다.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법령을 준수하는 민주정권의 “약점”을 최대로 악용해왔다. 시민사회도 그동안 짓눌렸던 욕망과 불만을 드러내고 자기 몫을 요구하고 있다. 그저 대통령이 알아서 뚝딱 만들어내라는 심산이다. 이 조급함과 이기심을 수구세력이 파고들고 있다.


오래도록 쌓여온 못된 관행과 인식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각자가 변화하는 고통과 손해와 혼란을 감내해야 한다. 의사에게 병을 당장 고쳐내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병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참지 못하고 몸을 함부로 놀리면 화타가 명약을 줘도 병을 고칠 수 없다. 당장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 하여 윗사람을 비난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감동은 아니어도 폭력을 휘두르고 법규를 무시하는 포악한 정권은 아니지 않은가.


시민사회는 조급하게 굴지 말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 과욕과 무책임한 난동은 음흉한 수구세력의 장단에 놀아나는 짓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신중하게 생각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절박했던 3.1운동을 돌아보자. 광장에 모인 천만 촛불의 간절함을 상기하자. 利가 아닌 大義를 위한 실존의 몸부림아니었던가. 절실한 최소한의 요구를 경우에 맞게 해야 한다.


참고문헌

  • 성백효. 2014. 현토신역 부안설 맹자집주: 天. 경기도: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인용하기: 박헌명. 2019. 기미독립선언서 공약삼장과 최소주의. <최소주의행정학> 4(2): 1-2.




지난 23일 노회찬이 스스로 몸을 던졌다. 인터넷 게시물의 조회수를 조작한 “드루킹” 김동원 일당이 건넨 돈이 화근이 되었다. 그는 사건이 불거진 후 줄곧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유서에서 4천만 원을 대가없이 받았다고 인정했다. 예기치 못한 비보에 많은 시민들이 지역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빈소를 찾았다. 여야는 물론이려니와 수구냉전 세력까지도 이심전심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폭염에도 조문객이 7만 명에 이르렀다니... 하물며 진보가 빨갱이로 낙인찍힌 나라에서. 

유시민씨의 말대로 노회찬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다정하고 정의롭고 품격있는 논객이었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 손을 잡아준 운동가였다. 척박한 토양에서 진보정치를 대중화시킨 정치가였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잃었다. 어이없는 일이었고, 허무한 일이었고, 안타까운 일이었고, 부끄러운 일이었고, 한없이 서글픈 일이었다. 며칠 동안 비몽사몽으로 헤매다가 깨어난 느낌이다. 


품격있는 화객

사람들은 노회찬을 비유의 달인이라고 했다. 촌철살인의 대가라고도 불렀다. 상황에 꼭 맞는 표현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지난 50년 동안 삼겹살을 궈먹은 불판을 갈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그가 일갈했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다. 일반 시민들의 시각과 정서를 담은 말이었다. 기존의 논객이나 정치인들에게서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노회찬은 사람들이 평소 말하고 싶었던 얘기와 강자에게 따지고 싶었던 얘기를 조리있게 다듬어 쉽고 간결하게 풀어냈다. 고갱이를 가려내어 짜임새있게 엮어낸 뒤 잘 발효시킨 말이었다. 구성지게 뽑아낸 가락이었다. 논리가 있고 해학이 있었다. 설득력이 있었고 감동이 있었다. 시원하고 통괘했다. 수구세력의 억지와 궤변과 대비되었다. 그래서 그가 출현했던 <뉴스공장>의 꼭지 이름은 “노르가즘”이 되었다. 김어준씨의 말대로 노회찬은 “대체 불가”였다. 그는 인간이 말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 준 품격있고 멋진 화객話客이었다.

노회찬의 말은 현장의 경험과 목소리를 오롯이 담아냈다. 그래서 경우에 맞는 말이었고 힘이 있는 말이었다. 이런 생생한 사실과 진리를 비유를 통해 완곡하게 표현했고 재치있는 입담으로 전달했다. 그는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하려고 애썼지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인간의 품격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주제에 집중했지 사람(상대방을 비난하는 데)에 매달리지 않았다. 상대방의 이성이 도저히 거절하지 못할 말이었다(2008: 66). 이러한 노회찬의 말법은 상대방의 논지나 주장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의 반격과 보복을 무력화시켰다. 이성과 상식에 꼭맞는 말이어서 상대방이 차마 어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폭력이며 최소주의다. 진중권씨의 말이 살인검이라면 노회찬의 말은 활인검이라 할 수 있다.  


도덕 결벽증? 자기희생?

노회찬은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라는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돈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어리석게 처리한 일을 자책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어쩌면 노회찬의 선택은 진보세력의 과도한 도덕 결벽潔癖이나 강박일는지 모른다. 수구냉전 세력은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사면증(면죄부)을 지닌 자처럼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다니지만 소위 진보세력은 사소한 실수라도 해도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마냥 고개를 쳐박고 다닌다. 폭력을 완비한 강자의 자신만만과 강자에게 당한 악몽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약자의 피해의식이랄까?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라듯 강자가 약자의 도덕성을 따지고 든다. 국정원과 국방부의 댓글조작사건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가 민간인 드루킹의 댓글조작사건에는 민주주의 파괴라며 입에 거품을 문다. 약자의 도덕 결벽증을 노리는 수구세력의 음흉한 논법이다.  

노회찬은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진보세력이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진보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진보에 부족한 것은 도덕이 아니라 현실성, 현실적 힘이다”라고 말했다. 또 “진보세력의 도덕적 결함에는 우리 사회가 훨씬 더 엄격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억울하다고 하면 안 된다. 그것도 하나의 현실이니까 인정해야 한다. 부정이나 비리의 경우 진보세력에는 훨씬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 억울해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높은 것을 요구하니까 그에 맞춰서 더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도덕을 과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도덕 결벽증을 경계한 말이다.

노회찬은 원망하지도 않았고 억울해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대로 현실의 엄격한 요구를 아프게 받아들였다. 혹자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다고 힐난했지만 그 반대였다. 오히려 자신의 책임을 과하게 물은 것이다. 실정법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해도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잘못은 아니었다. 그의 선택이 안타깝다. 국회의원 세비도 당에 주고 당에서 최소 월급을 타왔던 사람이었다. 현직에게 특혜를 주고 도전자의 손발을 묶고 있는 정치 현실에서 그가 받은 돈은 올바르게 처리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노회찬도 지키지 못할 정치자금법이라 꼬집은 까닭이다.

그는 자신의 실책으로 인해 당이 어려워지는 것을 더 우려했다.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당이나 진보세력 전체의 문제임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개혁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것이다. 이제 특별활동비가 혁파될 것이며, 정치자금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의제로 떠오를 것이다. 그의 희생이 아프고 슬프다. 

참고문헌

구영식. 노회찬이 뻔뻔할 수 없는 이유. <한겨레21> 1223호.  2018.7.31.



원문: 박헌명. 2018. 화객 노회찬의 비폭력과 자기희생. <최소주의행정학> 3(7): 1.


소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비폭력은 주먹을 내려놓고 말로 하자는 것이다(1986: 318). 이문영(2008)은 “무서웠을 때 내가 한 말은 적의 이성이 거절하지 못하는 최소의 말”(491쪽)이라 했고, “정부도 거절하지 못하는 말을 하되 말만 한다”라고 적었다(497쪽). 하지만 비폭력의 참뜻을 이해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물리력을 사용하지 말고 거친 말을 내뱉지 말라는 뜻일까? 어떤 상황에서든 화내지 말고 성내지 말라는 소린가? 노무현씨처럼 최루탄이 터져도 도망가지 않고 길바닥에 앉아 연좌시위를 계속해야 하는가? 전투경찰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들거나 군인들이 총을 난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만히 앉아서 품격있게 군자왈 맹자왈 하다가 맞아죽는 것이 비폭력인가? 이런 상황에서 약자는 어떻게 비폭력을 실천하고 최소의 말을 해야 하는가? 지난 호(2권 11호)에 소개한 빈센트 오스트롬 선생님의 성내기는 폭력인가, 비폭력인가?

소정 선생님의 성내기 

소정 선생님은 인자하고 인간미가 있는 분이다. 하지만 비폭력을 강조하시는 선생님도 화를 내실 때가 있었다. 선생님의 대학원 수업에서 나는 기말과제로「자전적 행정학」(1991)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비폭력, 개인윤리, 사회윤리, 자기희생이라는 초월윤리를 조직, 정책, 인사, 재무에 적용하는데 무리가 따르는 대목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선생님께서 일부러 내가 공부하는 방으로 찾아오셔서 역정을 내셨다. 오래 전부터 갈고 다듬어 온 초월윤리라는 분석틀을 논거없이 비판했다며 불편한 속내를 말씀하셨다. 당시 선생님의 초월윤리를 깊이 있게 이해했다고 할 수 없었기에 그 노여움을 달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평소 모습이 아니어서 당혹스러웠다.

자서전인「겁많은 자의 용기」(2008)에는 선생님의 성내기 몇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일기로 적은 1983년 8월 31일 사건은 다음과 같다. 

“곧 택시로 대학교로 해 기독교빌딩 앞에 차를 세운다. 마침 현아 엄마와 안박사 부인이 현관에 나오면서 지금 기동대가 농성 중인 네 분을 다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오후 세 시 경에 200명이 들이닥쳐서. 그러니 피하라는 것인데 연동교회 쪽으로 한 20미터도 걷기 전에 뒤에서 사복 경찰들이 와 나를 잡는다. 내 차로 간다니까 자기네 차로 집으로 모신다는 것이다. 북부서 강 형사가가 나를 잡는다. 북부서 정보과에 현아 엄마가 같이 간다. 계장실 하나에 함 선생님이 깊이 있고 생각하시는 표정으로 앉아 계신다. 문 목사님이 독이 나서 과 사무실에 앉아 계신다. 나는 과장실로 안내된다. 조금 있다가 형사가 와서 과장보고 ‘문 목사가 반공계로 자리를 옮기자 하니, 나를 짐짝같이 끌고 왔으니 끌고 가라고 안 움직여요’한다. 과장이 ‘뭐? 죄인이 무슨 큰소리야?’라고 악을 쓰며 나간다. 나는 길길이 악을 쓴다. ‘이 깡패 놈아 네가 죄인이지 누가 죄인이냐? 죄를 졌으면 영장을 가지고 와야지, 집에 데려다 준다고 해놓고 경찰서에 끌고 온 놈이 깡패이고, 너 과장이란 것은 깡패 두목 아니냐!’ 마침 박용길, 박영숙, 김석중이 밖에 있어 야단들이다. 밥을 안먹고 수사에 안응한다”(2008: 400-401).

또한 수감중인 교도소에서 더운 물을 달라며 플라스틱 베개를 두드린 사건은 이러하다. 교도관과의 대화에 주목해보자. 

“나는 습관대로 추운 겨울날 어느 저녁에 심호흡과 요가를 했다. 몸에 땀이 흠뻑 났다. 나는 냉수마찰을 하고 나서 자리를 깔고 취침을 했다. 밤중에 잠이 깨더니 갈증이 났다. 그래서 저녁에 받아둔 물을 마셨다. 몸이 갑자기 떨리기 시작하더니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았다. 나는 복도로 난 문을 똑똑 두드렸다. 교도관이 왔다.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달라고 말했다. 그는 더운물이 없다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나는 또 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가 왔다.‘만일 댁에서 지금 물을 마시고 싶다면 어떻게 하세요?’‘저 난로에서 끓여 마시지요.’‘그러면 저에게도 난로에서 끓여 주세요.’‘안됩니다.’그와 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내가 더운물을 못 얻어마시는 것은 인도주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며 갈리리 교회에서 성찬을 함께 한 동료들도 나처럼 찬물을 마시고 덜덜 떨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더운물 한 모금은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라고 생각했다. 생각한 후에는 행동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나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교도관이 안왔다. 그러자 나는 플라스틱 베개로 쇠문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교도관이 달려왔다. 다시 더운물을 달라고 말했다. 물을 안주겠단다. 그러면 더운물을 달라는 청원을 교도소장에게 하겠으니 교도소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말했다. …” (2008: 302-303).

「자전적 행정학」(1991)에 나오는 “박정희 노래” 사건은 강의시간에도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 “박정희씨의 노래”라고 하면 되겠느냐며 놀리는 선생님의  반문이 들리는 것같다.  

“서울구치소에서 순천교도소로 이감가기 직전 어느날 새벽에 느닷없이 스피커에서 새마을 노래가 흘러나오는 異變이 생긴다. 이런 노래는 안부르기로 18개 조항에 약속이 된 것인데 버젓이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되 그것도 흘러나오는 노래 중 제일 먼저 흘러나오지 않는가? 약속위반이다. 이렇게 약속은 강자가 어긴다. 정부가 지켜야 법의 지배가 가능해진다. 나는 이 때에 내 애용의 무기 플라스틱 목침을 또 사용하면서‘박정희 노래 집어치워라!’를 외친다. 더운 물 달랠 때같은 소동이 난다. 보안과장과 내가 다음과 같은 말을 나눈다. 과장: 약속을 어겼다고 박정희 대통령이라고도 않고 박정희 노래가 뭡니까? 나: 아니, 과장님은 슈벨트의 노래를 슈벨트의 노래라고 하지 슈벨트씨의 노래라고 합니까? 과장: … ”(1991: 352-353).

비폭력은 무서울 때에(나서면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상황) 꼭 해야 할 말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1) 자신의 분석틀을 비판한 보고서를 보고 화를 내셨고, (2) 부당하게 시민을 연행하고 죄인취급을 한 경찰의 행동에 악다구니를 부리셨고, (3) 겨울에 뜨거운 물을 주지 않는다며 플라스틱 베개로 쇠문을 사정없이 두드리셨고, (4) 교도소에서 틀어 놓은 “박정희 노래”를 집어치우라고 외치셨다. 베개로 쇠문을 두드린 것은 물리력을 동원한 경우이고 나머지는 거친 언어를 사용한 경우다. 사람을 때린 것은 아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폭력이라면 폭력인 셈이다. 오스트롬 선생님의 성내기는 고객으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항의를 한 것으로 (2)번 경우에 해당된다. 그러면 어느 경우가 초월윤리의 비폭력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위급한 상황은 피하고 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달리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을 때에는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현실적 이상주의”는 (특히 약자의) 철저하고 엄격한 현실이해를 필요로 한다(1986: 138, 298). 모든 생물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이솝우화」에 따르면 약자가 포악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한 동물을 피해서 살거나, 지혜를 갖거나, 약한 동물끼리 단결을 해야 한다(1980: 366). 당장 눈앞으로 쏟아지는 총칼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는 일은 비장할지는 몰라도 비폭력과는 관련이 없다.


저항권 행사는 폭력이 아니다 

비폭력은 평화라는 말뜻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평화스럽다는 쿠데타나 국민의 난동이 없는 것을 말하는데, 난동은 “승리에의 접근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의 강경화에 구실을 주는 단순하고 감정발산적인 폭력행위”이다(1986: 297). 따라서 “4·19와 같은 저항권의 행사라든가 만주에서의 독립군 활동과 같은 정쟁(政爭)”은 난동이 아니다. 또한 때리지 말고 말로 하는 사회가 민주 사회인데, (1) 폭력 정치에 대하여 저항하여 말할 수 있는 자유, (2) 피치자가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자유, (3) 치자와 피치자가 서로를 구속하는 약속(계약이나 법)을 만들어내는 자유가 필요하다(1991: 317). 

결국 주권자로서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은 난동이라 할 수 없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무력으로 저항한 독립군과 적군의 수뇌부를 암살한 의병 중장 안중근를 난동꾼으로 볼 수 없다. 맥락없이 물리력 행사만 강조하여 물타기하려는 친일 매국노들의  음흉한 논리다. 영장없이 거짓말로 시민을 경찰서로 연행하고 범죄자 취급을 한 경찰의 위법행위에 저항한 소정 선생님의 성내기는 폭력이라 할 수 없다. 
  
가져야 할 최소를 요구한다

따뜻한 물 한모금이라는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를 누리지 못하거나 고객으로서 최소한의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본이나 최소를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라 할 수 없다. 그 최소는 꼭 필요한 것이어서 양보할 수 없다. 교도관이든 수감자든 인간인 이상 따뜻한 물 한모금은 최소라 할 수 있고, 바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기에 쇠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문 목사가 경찰에게 죄인으로 낙인찍혀 해코지를 당하게 된 마당에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정희 노래”를 틀지 말라는 것은 재소자들이 요구한 최소인데, 이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겼기 때문에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최소한 약속은 지키라고 플라스틱 베개를 두드린 것을 폭력이라 말하기 어렵다. 한편 누차례 지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물건을 성의없이 바구니에 던지는 점원을 꾸짖고 관리자에게 항의한 오스트롬 선생님의 성내기 역시 폭력이라 할 수 없다. 누가 봐도 이러한 요구는 거부될 수 없는 보편성과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선생님의 초월윤리를 비판한 보고서를 보고 발끈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네 단계로 이루어진 초월윤리는 선생님께서 평생을 두고 갈고 다듬은 생각틀인데, 타당한 근거가 없이 비판을 받았다고 느끼셨을 터이다. 다른 것이었다면 몰라도 지키고 싶은 분석틀 자체에 대한 비판이었기에 그토록 민감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소한의 행동이어야 한다 

성내는 이유와는 별개로 최소한의 행동이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이문영(1986)은 “안할 것은 세상없이 무서워도 안해라”고 학생들에게 권고하였다. 또 그 상황에 맞는 최선의 선택이어야 한다. 비폭력은 말의 형식을 빌린 폭력의 행사가 아니라고 했지만(2001: 246), 긴급피난이나 정당방위 등과 같은 상황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거친 언사도 약자를 방어하는 약이 될 수 있다.   

선생님은 보고서 내용에 대해 화를 내셨지만 사실 항의에 가까운 반론이었다. 손찌검을 포함한 일체의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문 목사가 죄인처럼 끌려갈 수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경찰의 부당함을 강하게 지적하고 법에 따라 시민을 대우하라고 요구하였다. 그 상황에서 점잖게 경찰관직무집행법이나 형사소송법을 언급하며 과장을 타일렀더라면 어떠했을까? 어쨋든 경찰을 때리거나 무기를 빼앗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안했다. 다만 법에 나와 있는 대로 수사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항의를 이어갔다. 

또한 더운 물이라는 긴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개로 쇠문을 두드렸을 뿐이다. 조용히 두드려서는 교도관이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히지만 벽이나 문을 부수거나 물건을 내던지거나 고함을 지르지는 않았다. “박정희 노래” 사건에서 사용된 무기는 플라스틱 베개였을 뿐이다. 요구 내용도 상식에 맞는 것이었고 대응도 철저하게 비폭력이었다. 만일 보안과장에게 “박정희xx 노래”나 “독재자의 노래”라고 대꾸를 했더라면 전혀 딴판이 되었을 것이다.

오스트롬 선생님도 지팡이로 도망가는 점원을 가리키기는 했지만 점원이나 관리자에게 휘두르지는 않았다. 분하다고 울고 불고하지 않았고, 바닥에 드러눕지 않았고, 보상을 하라며 돈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고객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에 대해 강하게 항의를 했을 뿐이다.     
     
약올림의 미학

Park (2016)은 초월윤리의 비폭력이 의도치 않은 약올림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107쪽). 강자가 자제력을 잃고 계속 폭력에 의존하가다 끝내는 스스로를 망가뜨리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약올림은 비폭력의 귀결이지만 자칫 “말의 형식을 빌린 폭력”이 되기 쉽다. 폭력과 비폭력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묘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증거와 논리를 갖추지 않고 상대방을 헐뜯는 것은 비폭력도 약올림도 아닌 그저 어리석은 짓이다. 철저하게 비폭력으로 대응하면서 상대방의 헛점을 예리하게 파고 들어야 한다. “박정희 노래”가 뭐냐는 보안과장의 말에 “슈벨트의 노래를 슈벨트의 노래라고 하지 슈벨트씨의 노래라고 합니까?”라고 답한 것은 약올림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문영(2008)은 재판을 받으면서 “검사의 화를 돋워 미치게 만들고, 나는 길게 말하고, 검사가 결재받아 오지 않은 것을 물음으로써 악한 정권의 본색이 내 질문으로 폭로가 되게” 하는 전략을 취했다(296쪽). 법대 교수이면서 왜 국민투표로 결정된 헌법을 비방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 말 잘 하셨어요. 검사는 어느 대학 법대를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민법 총칙 시간에 무효의 의사표시라는 것을 안배웠어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무효예요. ...검사님, 댁에서 말하는 국민투표 때에는 중앙청 앞에 탱크를 세워놓고 국투표를 해 국민을 협박했는데, 어찌 그 국민투표가 유효해요?”라고 답했다(297쪽). 상대방의 어설픈 공격을 바로 되치기하고 약을 올려 평정심을 잃게 만든 “아름다운 비폭력”이다. 

소정의 성내기는 비폭력이다

처음에 나는 소정 선생님이나 오스트롬 선생님께서 화를 내신 것 자체가 당혹스러웠다. 비폭력을 어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소정 선생님의 성내기는 저항권의 행사이거나 누려야 할 최소를 요구한 최소한의 행동이었다고 본다. 비폭력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약올림의 미학까지 갖추었다. 마찬가지로 오스트롬 선생님의 성내기 역시 비폭력 구도에서 행사된 정당하고 최소한의 요구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Park, Hun Myoung. 2016. Moon-Young Lee’s Transcendence Ethics in Conflict Management: Lee’s Nonviolence, Conflict Episode, and Principled Negotiation. World Environment and Island Studies6(2): 99-108.


원문: 박헌명. 2017. 소정 선생님의 성내기는 비폭력인가? <최소주의행정학> 2(12): 1-2.


촛불시위가 전국 곳곳에 타오르고 있다. 지난 달 26일 서울에만 150만명이 모였고 전국에서 190만명이 촛불을 들었다. 청와대는 물론 정치권도 놀랐을 것이다. 민심이 이렇게까지 뜨겁고 무서운 것인가 하며 탄식했을 것이다. 아마도 집회에 나선 시민들 스스로도 놀라고 또 감격했을 것이다. 주권자로서 박근혜씨에게 배신과 치욕을 당한 울분을 너도 똑같이 느꼈구나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을 것이다. 길거리로 뛰쳐나온 2백만 시민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박근혜퇴진만을 외치는 촛불시위에 세계가 주목하고 감탄하고 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남녀노소가 촛불을 들고 참가자들의 발언을 듣고 공연을 즐기는 모습은 그 자체가 평화로움이다. 대규모 비폭력 촛불시위가 감동을 주는 까닭이다.
   
그러면 왜  비폭력인가? 인간의 기본권이나 윤리로 보면 비폭력이 정답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과연 비폭력이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과연 비폭력이 폭력을 이길 수 있을까? 비폭력으로 대항하는 시민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참 나쁜 통치자”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박사모가 때리면 그냥 맞으라고 하는데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 뜬금없는 패악질을 이긴단 말인가? 과연 촛불시위가 헌법을 유린하고도 적반하장인 박근혜씨를 무릎꿇릴 수 있을까? 그러하다면 어째서 그러한가? 어떤 논리와 근거와 당위가 있을까?

비폭력 투쟁이어야 하는 까닭

폭력을 대체하는 대안은 똑같은 폭력일 수 없다(이문영 1986: 290). 어차피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를 뿐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따라서 약자의 대안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말”이며, 한마디로 비폭력이다(290,  294쪽). 통치자의 폭력에 대항하여 시민이 폭력으로 맞서면 전쟁이 일어난다(344 쪽). 시민의 민주화 운동이 비폭력 투쟁이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문영은 (1) “폭력에 기반을 둔 정권은 강한 것이 아니라 허약”하고, (2) 폭력 정권은 무리수를 거듭하다가 자신의 말조차도 어길 만큼 통제력을 잃게 되는데, (3) 이런 정권은 자기비대화를 계속 하다 끝내는 스스로 망하게 되기 때문에, (4) 시민의 철저한 비폭력 투쟁으로도 족하다고 설명하였다(297-298 쪽). 

폭력 정권은 허약하다  

먼저 폭력 정권은 정당성이 빈약하기 때문에 수많은 헛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뿌리깊은 허약함을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에 정권유지를 위해 기꺼이 값비싼 통치비용을 지불한다. 시작부터 합리성과 상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말로는 일을 할 수가 없다. 나쁜 통치자는 백성들을 주권자는 커녕 대화 상대로도 여기지 않고 그저 찍어 눌러야 하는 피지배 계급으로 간주한다. 백성들이 통치자의 명령을 군말없이 받아들이는 수용영역(zone of acceptance)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폭력으로 강제하지 않고서는 일을 추진할 수 없다. 말보다는 주먹질이고 발길질이며, 하는 일마다 무리수다. 

불만을 해소시켜주지 못하고 억누르기만 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반란이 일어날까봐 안절부절이다. 밤낮으로 정적을 감시하고 탄압하는데 몰두한다. 조그마한 일에도 과민반응이어서 애먼 사람을 잡는다. 자신을 비난하는 글이나 그림이나 노래나 희극이나 영화를 참아내지 못한다. 표현할 수 있는 자유도 관용성도 극빈한 정권이다. 유언비어라 몰아붙이고 빨갱이 종북 딱지를 붙이고, 응징하라고 뒤에서 압력을 넣는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다. 이런 통치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게 되면서 “고비용 저효율 저효과”가 지속된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회 곳곳에서 고장이 나게 된다.  
  
폭력으로 일어선 정권은 그 자체로 백성들 편에 설 수 없다. 설령 통치자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다 해도 정권을 만들고 유지하고 있는 부역자들(지지자, 재벌, 언론 등)이 용납하지 않는다. 주고 받는 셈법은 어디나 공평하다. 통치자는 어떤 식으로든 이들의 탐욕을 채워줘야 한다. 공직을 나눠주고, 부역자들을 편드는 정책을 만들고, 권력으로 협박해서 돈을 뜯는다. 통치자와 부역자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마음껏 폭력을 휘두른다. 애초부터 의로움이 아닌 잇속으로 달려들어 정권을 잡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이 걸림돌이 된다면 그 “몹쓸 법”을 뜯어고치거나 새로운 악법을 만든다(이문영 1986: 340). 예컨대, 박정희 정권이 긴급조치를 남발하여 정적을 찍어눌렀다.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위해 법규정을 멋대로 바꾸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황당한 일(세월호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개성공단 폐쇄 등)은 이제서야 겨우 실마리를 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 멀쩡하게 돌아갈 까닭이 없다. 원칙도 상식도 없는 난장판이 된다. 

폭력 정권은 겉으로 강해 보이지만 실상은 작은 충격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허약하다. 장기미전향수 한 명 때문에 나라가 흔들리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고 적화통일이 된다는 정신줄은 악한 정권의 허약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 나라가 있다면 어차피 망할 것이니 차라리 빨리 망하는 것이 훨씬 낫다.   

폭력 정권은 자신의 말조차 어긴다  

둘째, 폭력 정권은 자신이 제정한 법도 지킬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정권은 아랫 사람과 의논하여 합의를 보지 않고 그저 찍어 누르고, 자신을 위장하여 감추고, 교묘한 말로 속이고, 약속을 어겨서 일을 한다(이문영 2001: 240).  이와 같은 무리수를 거듭하다 보면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자신이 만든 악법조차도 지키지 않게 된다(이문영 1986: 289, 340).

헌법을 능멸한 통치자가 헌법대로 법대로 하자며 버티고 있다. 국정농단을 주도한 자가 이제와서 선의로 추진한 일인데 주변을 살피지 못했을 뿐이라며 남이야기 하듯 한다. 뜬금없이 총리후보자를 지명해놓고 느닷없이 국회의장실로 쳐들어가 총리를 추천하면 임명하겠다고 통보한다. 세번째 “담화문”에서 박근혜씨는 “친박”과 “비박”의 갈등을 알면서도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말한다. 교묘한 말로 위기(탄핵)를 모면해보려는 협잡挾雜이다. 검찰과 특별검사 조사를 성실하게 받겠다고 약속했지만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아직까지 검찰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는 박근혜씨다.   

깜냥이 안되면서도 완장차고 자리만 꿰찬 “끝발”들은 잇속을 차리려 눈에 불을 켜고 너도 나도 뒷골목까지 샅샅이 뒤집는다. 이런 판국에 약육강식 외에 무슨 법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악법이든 아니든 통치자가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키지 않게 된다. 무법천지가 되어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야만野蠻이 판치게 된다. 이런 패악질을 하다 보면 끝발들끼리 부딪히게 되어 있고, 자기들끼리도 주먹다짐을 하거나 칼을 섞게 된다. 나쁜 정권의 끊임없는 “자기 비대화”라 할 수 있다(이문영 1991: 119, 1996: 405). 

이문영은 가장 나쁜 통치로 진행되는 상태를 (1) 선과 악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언론(신문, 방송, 대학, 종교 등)을 망가뜨리고, (2) 정적을 제거하고, (3) 백성 일반이(어린 아이까지도) 타락하고, (4) 바벨탑같은 전시효과를 노린 정책을 밀어붙이고, (5) 인접국가조차 포기하고 방치한다고 적었다(이문영 1991: 87-103, 2001: 184-202).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저질렀던 짓을 살펴서 귀납방법으로 유추한 결론일 것이다. “언로를 막는 정부는 언론을 자체 생산하면서 이 자체 생산된 언론을 믿지 않는 사람을 폭력으로 단속한다”(이문영 1986: 316).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 유언비어로 치부되고 범죄행위로 규정된다. 김구, 여운형, 김대중 등이 암살되거나 죽을 고비를 겪었고, 정권에 밉보인 사람들이 각종 정치공작과 악법에 희생되었다. 이런 참담함이 계속되면서 상식과 도덕과 윤리가 아닌 돈과 권력이 최고 가치가 되었다.  

참여정부 이후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일어난 일을 상기해 보자. 언론신뢰도 1위를 이끌던 정연주씨가 KBS사장자리에서 쫓겨났으나, 대법원이 정사장의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퇴임 후 더 큰 사랑을 받던 노무현씨는 절벽 끝으로 밀려버렸고 “친노”들은 폐족이 되었다. “묻지마 범죄,”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갑질” 등 사회가 병든 조짐이 여기 저기서 보인다. 4대강 사업은 걸쭉한 “녹차라떼”를 확산시키면서 악취나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견인했다. 자원외교를 한답시고 엉터리 사업을 벌여 국고를 탕진하고 “글로벌 호구”를 자처했다. 대북관계는 강경으로 치닫다가 매번 여기 저기서 쥐어터지고, 대책도 없이 북한이 쏘아대는 미사일만 하나 둘 셈하고 있다.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갔던 “옛소녀”들의 손을 뿌리치고 한사코 사과를 거부하는 일본 정부의 돈을 받았다. 또 한일정보보호협정과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인 THAAD 도입을 강했하였다. 한마디로 답이 없는 상황이다. 박정희씨의 유신시대, 전두환씨의 폭압시절, “이명박근혜”씨의 엽기시대는 이런 점에서 맞닿아 있다.  

폭력 정권은 스스로 망한다  

세째, 폭력 정권은 시민의 비폭력 투쟁으로 스스로 붕괴된다(이문영 1986: 297). 악한 통치자가 위장을 하고, 교묘한 말을 하고, 약자와의 약속을 어기고, 욕심을 채우는 일을 하고, 통치자 자신을 실패케 하고 끝내는 스스로 멸망케 한다 (이문영 2001: 136-147). “남을 파괴하는 이는 본래 자신도 파괴하는 것”이다(157쪽). 못난 짓을 하는 악한 정권은 적에 의해 망하기보다 자기 스스로가 망하게 된다(이문영 2008: 346-347). 거듭되는 무리수로 무질서도(entropy)가 커지면서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무력과 통제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시민의 저항을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지만 불신과 불만과 원망이 가속화되면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잇속을 탐하면서 통치자 자신과 백성을 타락시킨다. 법과 질서가 무력화되면서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고, 더 강한 자가 덜 강한 자의 것을 빼앗는 일이 벌어진다. 나쁜 정권이 최소한의 이성을 상실하고 막무가내로 나가면 정권 내 사람들마저도 흔들리게 된다(이문영 2008: 368). 기강이 무너져 명령을 내려도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다. 나아가 자기편 끼리도 칼부림을 벌이는 상황이 된다. 사회가 멀쩡하게 돌아갈 까닭이 없으니 어디서든 시한폭탄의 시침이 째깍째깍 돌아간다. 국민방위군 사건, 사사오입개헌, 부산정치파동, 3·15부정선거 등 끝 간 데 모르고 해먹다가 하와이로 쫓겨간 이승만씨나 유신정권까지 세워 장기집권을 꿈꾸다 충복인 김재규씨에게 총맞아 죽은 박정희씨를 상기해 보라.  

철저한 비폭력 투쟁으로 족하다

마지막으로 포악한 자는 스스로 망하지만 평화는 비폭력의 실력자만이 구축한다(이문영 1986: 289). 강자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만을 비대케 하여 종국에는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없애지만, 약자는 자신을 희생하여 자신과 타인을 살려낸다(이문영 2001: 148). 약자의 자기희생은 강자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비폭력으로 투쟁하는 것이다. 통치자도 거부할 수 없는 옳은 말(주권재민 등)을 최소한의 요구로 계속 한다. 폭력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차분하게 비폭력의 길을 가면 된다(이문영 1986: 289). 끝까지 참고 견디고 기다리면서 평화롭게 비폭력 투쟁을 잔치처럼 즐기면 된다. 박근혜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시위에서 전인권이 말한 “폼나는 촛불시위”는 이래서 멋있다. 

“어차피 쿠데타 정부는 넘어지게 되어 있고, ... 다만 재야가 과격해지지 말아야 이 사람들이 파쇼화하는 구실을 안주게 된다”(이문영 2008: 391). 만일 시민들이 폭력 투쟁을 전개하면 자체 분열로 치닫던 폭력 세력들(예컨대, 독재자, 어용언론, 어용학자, 재벌가)이 서로 단결하여 폭력 투쟁을 진압할 수 있는 빌미를 주고, 폭력 정권의 정당성만을 북돋을 뿐이다(이문영 1986: 297). 만일 박근혜퇴진  촛불시위가 폭력으로 치닫는다면 기다렸다는 듯이 “친박,” 국정원, 검찰, 경찰이 무시무시한 폭력을 들이밀고 달려들 것이다. 폭력 정권이 이미 허약하여 시민의 저항에 대처하지 못하면 정권의 강경파가 득세하여 폭력 투쟁을 진압하고 더 폭력적인 정권을 수립한다(297-298쪽). 행여 운이 좋아 시민들이 폭력 투쟁으로 폭력 정권을 무너뜨린다 해도 새 질서를 관리할 대안을 내지 못한다(298쪽). 시민운동에서 義가 아닌 잇속을 노린 자들이기 때문에 기껏 해봤자 또 다른 나쁜 정권을 세워 못난 짓을 계속할 것이다.

비폭력이 폭력을 이긴다

요컨대, 폭력 정권은 말보다는 주먹으로 잇속을 챙기느라 혈안이 된다. 멈추지 않는 “자기비대화”는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철저하게 비폭력으로 대응해야 한다. 서로 격려하면서 지치지 말고 끝까지 버텨내야 한다. 참고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 비폭력이다(박헌명 2006). 주권을 가진 나라의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정당한 요구를 계속할 따름이다. 이래서 비폭력이 폭력을 이긴다.

참고문헌


박헌명. 2016. 비폭력은 참고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다.『 최소주의 행정학』1(9): 1-3. 
이문영. 1986.『겁많은 자의 용기』, 2판. 서울: 중원문화.
이문영. 1991.『자전적 행정학』서울: 실천문학. 
이문영. 1996.『논어맹자와 행정학』서울: 나남출판.
이문영. 2001.『인간 종교 국가』서울: 나남출판.
이문영. 2008.『겁많은 자의 용기: 지켜야 할 최소에 관한 이야기』서울: 삼인.



원문: 박헌명. 2016. 어째서 비폭력이 폭력을 이기는가? <최소주의행정학> 1(12): 1-2.



전인권이 지난19일 밤 광화문에 모인 60만 시민들을 울렸다. “평화 시위”를 염원한 그는 <상록수>에서 “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라고 토해냈다. 그의 입에서 느린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애국가>는 그의 말투처럼 어눌한듯 담담하나 비장한듯 장엄했다. 곧바로 이어진 <행진>과 어우러져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야수가 울부짖는 듯한 그의 <애국가·행진>은 시민들의 “떼창”으로 퍼져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며 두 팔을 벌릴거야. 에—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행진— 
하느님이 보우하사 하는 거야 우리들은
... 
우리나라 만세 하는 거야. 

OhmyStar의 김윤정(cascade)은 전인권이 허를 찔렀다며 애국가가 이렇게 비장할 줄 몰랐다고 적었다. 웬지 짠한 마음에 지난 해 어렵사리 구한 들국화 1집을 틀어본다.

전인권의 <애국가·행진>

전인권의 노래를 말하려는 것도 그의 높고 거친 쇠소리를 칭찬하려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의 노래와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눌하게 툭툭 던지듯 했던 말을 곱씹어보고 싶다. 전인권은 <걱정말아요 그대>에서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라고 노래한 뒤 <애국가>를 시작하기 직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싸우지 마세요, 절대로. 혹시 박사모가 한 대 때리면 그냥 맞으세요. 우리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 맞으신 분들 무지 많으세요. 그냥 박사모가 뭐라 그러면 네네 그러고 가세요. 세계에서 가장 폼나는 촛불시위가 되게 합시다. 에— 에— 에—” 

얼핏 들으면 우스개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말 속에 소정 선생님의 비폭력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것보다 더 쉽고 강렬하게 비폭력과 최소주의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정농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엽기獵奇에 가까운 박근혜 최순실 사건에 분노하여 길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이 따라야 할 원칙과 윤리를 말하고 있다. 박근혜씨의 거듭되는 패착敗着으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직전에 이른 상황에서 절실해진 필승전략이자 지혜을 담고 있다.   

“싸우지 마세요, 절대로”

먼저 “싸우지 마세요, 절대로”는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먹질 하지 말고 발길질 하지 말라는 얘기다. 쇠파이프를 들지 말고 화염병 던지지 말라는 얘기다. 이문영(1986)은 “일단 어떠한 경우에도—그러니까 돌을 던지도록 유도된 상황하에서도—학생들이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291쪽) “돌만 던지지 말라. 그리고 안할 것은 세상없이 무서워도 안해라”(294쪽)고 강조했다. 경찰이 확성기로 비아냥거리거나 물대포를 쏘면서 도발을 해온다 해도 벽돌을 깨거나 경찰차를 넘어뜨리지 말라는 얘기다. 비폭력으로 시민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구호를 외치라는 뜻이다.   

“때리면 그냥 맞으세요”

이 말을 듣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그냥 맞으세요”는 한마디로 비폭력으로 대응하라는 주문이다. 비폭력이란 “저쪽에서 때리더라도 이쪽에서는 말로만 대응하는 것”(이문영 2001: 246)이며 “통치자에게 폭력을 당하더라도 약자는 폭력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이문영 2008: 68-69). “폭력에 대신하는 것이 어차피 폭력일 수는 없다”(이문영 1986: 290). 그래서 “폭력의 반대어는 말을 계속하는 일이다”(이문영 1986: 290, 2001: 105, 246).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록 정부가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이에 말려들지 말고 비폭력의 길을 가야 한다”는 점이다(이문영 1986: 289). 약자가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강자인 통치자를 섣불리 건드려 강경책을 강화하게 하는 미숙하고 불완전한 대응책”이다(이문영 2008: 59). 이러한 어설픈 약자의 폭력이 난동이다. “난동이란 승리에의 접근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의 강경화에 구실을 주는 단순하고 감정발산적인 폭력행위를 말한다. 난동은 따라서 참여의 폭이 좁든가 승리를 향한 전략 전술면에서의 계산이 부족한 행동이다”(이문영 1986: 297). “벌거벗은 힘의 행사를 민이 하는 것도 역겨움을 준다. 비폭력인 강경이 폭력인 강경에 쫓기는 민중운동은 성공하기 어렵다”(이문영 1986: 81-82).

누가 때리면 그냥 맞으라니 얼마나 허무한 개그인가? 한술 더 떠서 “맞[은]분들 무지 많[아]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심하게 농담던지듯 내뱉는 전인권씨의 이런 말투에 오히려 더 강한 호소력이 있다. 얼핏 무기력하게만 들리는 이 말은 같은 날 서울역에서 박사모 무리들이 쏟아낸 섬뜩한 저주(빨갱이, 종북, 좌파 총살 등)보다 몇 백배 몇 만배 더 강하게 들린다. 무심한 듯 툭툭 던진 조용한 몇 마디가 분기 탱천撐天하여 질러대는 박사모의 돼지 멱따는 소리를 뒤덮고 있으니 말이다. “이 모든 절제가 무기력이 아니라 기다리는 힘이며 성장하는 힘이며 폭력보다 강한 힘이다”(이문영 1991: 19). 그래서 이문영(2001)은 “비폭력은 약자의 품격을 높이는 행위”라고 말했나 보다(149쪽). 

행진이라는 “시위“

행진이라는 “시위”는 맞으면서도 옳은 말을 계속하는 것이다. “비폭력이란 아무일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 따라서 비폭력은 비폭력 투쟁을 뜻한다”(이문영 1986: 294). “때리는 것인 폭력의 반대는 매를 맞으면서 말을 하는 것이지 맞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이문영 1991: 118). 주권자로서 대리인인 통치자에게 합당한 요구를 하는 일이다. “순수한 민주화운동이란 쿠데타 정부의 이성이 감히 거절하지 못하는 민주화 요구를 하여, 그 대가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이문영 2008: 615-616). 이 “민주화 요구”가 옳은 말이며 합당한 진리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통치자가 정부조직과 공식절차를 무시한 것은 법을 따지기 전에 그저 황당할 일이다. 말하자면 “창조정권”의 “창조통치”다. 의도야 어쨋든 그 결과가 공익이 아닌 오직 통치자 측근의 사리사욕을 채웠다. 박근혜씨가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음에도 검찰의 수사를 회피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통령 노릇을 재개하였다. 주권자의 역린을 제대로 거스른 것이다. 두 주 연속으로(12일과 19일) 백만명이 촛불을 들었고, 한국 Gallup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씨의 지지율이 3주 연속 5푼(5%)에 머물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박근혜씨는 정치로든 법으로든 용서받을 수 없음이 확실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과 여야가 박근혜씨의 퇴진을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 주권자로서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행동이다. “통치자도 가지고 있는 이성(理性)이 감히 거절하지 못하며 이 이성을 환기하는 말”이다(이문영 2008: 66, 80). 역대 최저치인 지지율 5푼임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외면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며 대통령 노릇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부질없는 짓이다. 박사모 무리들의 집착은 사이비 신도를 연상케 한다. 노무현탄핵소추안을 날치기할 때 노무현씨의 지지율을 빗대서 온갖 저주를 퍼부었던 자들이 이제와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니 기가 찰 노릇이다. 기회주의자들의 진면목이 이런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촛불과 장승 

촛불시위는 화염병과 돌과 쇠파이프로 상징되는 폭력시위와 대조된다. 우리나라에서 촛불시위는 2002년 미국 장갑차에 깔려 죽은 “미선 효순이 사건” 이후에 보편화된 것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전화나 LED 촛불도 사용되고 있다. 방송과 사진으로 보는 촛불시위는 말 그대로 장관이다. 수많은 별들이 빛나듯 조용히 반짝거리다가 어느 순간 바람이 보리밭을 쓸고 가듯 요동치는 모습이라니... 촛불이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은 폭력과는 거리가 먼 추모, 염원, 명상, 평화 등이다. 그래서 촛불은 비폭력을 상징한다.  

이문영(1980)은 “명치유신 때까지도 무인통치를 해 왔던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장승은 비폭력문화의 상징”(383쪽)이라고 적었다. 장승은 (1) 솟대처럼 경계를 정하며, (2) 남녀가 같이 있어 평화스럽고, (3)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을 세워 인간화된 군대와 신장된 여권을 시사하며, (4) 장군인데도 전혀 무기를 들고 있지 않고, (5) 갑옷이 아니라 혼례복을 입고 있고, (6) 나무(쇠와 금이 아니라)로 만들어져 집 밖에서 눈비바람을 맞고 서 있다(제도화 부작용이 없다) (이문영 1980: 383-384). 이런 장승은 참는 것이 특징인데, “참는다는 것은 포악함에 시달리는 사람이 갖출 덕목의 모두이며 비폭력문화의 정상”이다(384쪽). “나무와 같이 쉽게 소멸해 버리는 육체를 지닌 인간이 참을 때에 그 참음이 덕으로 정신화”한다 (384쪽). 그래서 참는 것은 비폭력과 같은 말이다(이문영 1986: 336). 결국 장승=평화=인내=비폭력이다. 촛불은 설령 화가 나더라도 마음을 다스려 질서와 평정을 되찾자는 것이다. 참고 견디자는 약속이다. 평화를 갈구하는 몸짓이다. 

“가장 폼나는 촛불시위” 

전인권은 “세계에서 가장 폼나는 촛불시위”를 만들자고 했다. 이문영은 평소 한국의 반체제 운동이 다른 나라의 운동과 다른 특징은 비폭력에 있다고 했다(1986: 318, 344). 수많은 민주화운동가들이 “상대방[통치자]의 뺨 한번을 때려보지 못하고 자기희생”을 했다고 강조했다(1980: 386). 전인권은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 맞[은]분들”이라고 했다. 장기 집권한 포악한 정권이 무너진 것은 “총을 쥔 정권을 향하여 ‘말함’이라는 비폭력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승리였다”(이문영 2001: 88). 이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전인권의 “폼나는 촛불시위”와 똑같은 맥락이다. 가장 무섭고 어려울 때에 “정의에 입각한 말함”(88쪽)을 고집하다 군부독재정권에게 매맞은 선생님의 마음일 터이다. 이런 까닭으로 나는 가수 전인권을 다시 보게 되었다. 

시대정신과 과거 현재 미래의 감정

이문영(1991: 162-165, 2001:79-84)은 시대정신을 설명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영원(통합 시간)이라는 시간이 있고, 각각의 시간에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고 했다. 과거는 행동의 준칙과 대안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흠모와 그리움을 갖는다(이문영 1991: 163). 현재는 과거지향 운동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통치자의 압제에 저항해야 하기 때문에 한숨을 짓는다. 미래에는 체제 밖의 사람들도 꿈을 꾸면서 역사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사람은 과거를 그리워하며, 현재에서 이 그리운 과거와 현재를 견주어 한숨짓고, ... 미래에는 그리움과 한숨이 없기를 바라며 꿈을 꾼다”(이문영 2001: 83). 영원이란 시간은 그리움, 한숨, 꿈을 단번에 느끼는 황홀경(감동)을 경험한다. 

전인권의 <행진>에서도 과거, 현재, 미래가 있고 그리움, 한숨, 꿈이 보인다. 과거가 어둡고 힘들었지만 과거를 사랑하고 추억한다. 미래는 항상 밝을 수도 없고 힘도 들겠지만 (꿈이 있어서) 기꺼이 비를 맞고 눈을 맞는다. 그래서 매일 아침까지 그대(동지)와 노래하는 것이다. 下野할 때까지 매일 시위하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
나의 미래는 항상 밝을 수는 없겠지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거야
...
난 노래할거야 매일 그대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조동진의 <제비꽃>도 마찬가지 시간과 감정을 보여준다. 처음 만났을 때는 머리에 제비꽃을 꽂고 새처럼 날고 싶은 작은 소녀였고, 다시 만났을 때는 이마에 땀방울을 달고 작은 일에도 눈물을 흘리는 야윈 너였고,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는 한밤중에도 깨어있어 창 너머로 그윽한 눈길을 보내고 싶은 평화로운 너였다는 이야기였다. 소정 선생님의 시대정신과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장필순이 부른 <제비꽃>을 떠올리곤 한다. 

끝까지 비폭력이어야 한다


지금 정국이 순간순간 요동치고 있다. 벌써 몇 주째 시민들은 당혹과 실망과 분노로 아파하고 있다. 하지만 폭력이 유혹해도 절대 넘어가면 안된다. 절대 지쳐서도 안된다. 망중한에 좋은 노래와 말씀을 음미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기운을 모았으면 한다.  



원문: 박헌명. 2016. 전인권의 <행진>과 비폭력 촛불시위. <최소주의 행정학> 1(11): 1-2.

정태춘은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에서 “우리는 신선한 노동의 오늘 하루 우리들 인생에 소중한 또 하루를 이 강을 건너 다시 지하로 숨어드는 전철에 흔들리며 그저 내맡긴 몸뚱아리로 또 하루를 지우며 가는가... 우리는 이 긴긴 터널 길을 실려가는 희망없는 하나의 짐짝들이여서는 안되지. 우리는 이 평행선 궤도 위를 달려가는 끝끝내 지칠 줄 모르는 열차 그 자체는 결코 아니지 아니지 우리는...”라고 노래했다. 그는 92년 장마를 받아낸 종로에서 무더위처럼 답답하고 끈적거리는 우리의 하루살이를 그렇게 느꼈던 모양이다. 

”헬조선”이란 전철에 내맡긴 몸뚱아리

이른바 “헬조선”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으로 들리는 시절이다. “갑질”로 상징되는 가진 자의 폭력이 난무하는 약육강식 속에서 힘없는 자들이 하루하루를 아등바등 살고 있다. 너나없이 벌어먹고 살기가 빡빡해졌다. 동무가 일하는 회사로 찾아가 반갑게 저녁을 먹고 술한잔 걸치는 일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컴퓨터와 손전화가 보편화되고 먹을거리가 널려있건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여유와 웃음보다는 긴장과 짜증이 묻어난다. 누구나 시간에 맞춰 기계처럼 쉴 새없이 움직이도록 서로를 얽어매고 있다. 서로가 부담을 권하고 술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선한 꾀부림”도 허락되지 않으니 생산성은 높아졌을 망정 인심은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나 살기도 바쁜데 남에게 눈길을 줄 틈이 어디 있을까. 출퇴근 시간에 사람들이 무엇에 쫓기듯, 무엇에 이끌리듯이 우르르  몰려가고 몰려오는 모습에서 나는 가지지 못한 자들이 “전철에 내맡긴 몸뚱아리”와 그들의 “희망없는 짐짝”을 본다. “긴긴 터널 길”에는 코딱지만한 여유도 없이 장마철의 무더운 열기에 헐떡이는 사람들 뿐이다. 그 헐떡임이 서로에게 열기가 되어 서로의 숨을 옥죄고 있다. 사는 것이 아니라 아귀다툼 속에서 순간 순간 숨을 참고 쉬면서 버티는 것이다. 

“묻지마” 범죄와 참지 못하는 사회

지난 수년 간 “묻지마” 혹은 “홧김에” 범죄로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채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힘센 자들이 설계하고 추진한 무한 경쟁에서 뒤쳐지고, 상처받고, 고통받고, 끝내 내쫓긴 자들의 마지막 몸부림인 것같아 안타깝다. 약육강식이라는 야만스런 본질을 교묘하게 감춘 경쟁력(국제화)이라는 허울이 아니던가. 가해자들은 숨이 차오를 때까지 차올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솟구치는 분노를 삭힐만한 기회도 여유도 없으니 더 이상 멀쩡한 정신줄로는 버텨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 뿐만 아니라 각자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조금이라도 신경을 건드리면 바로 터질 것같은 폭탄이 되어 전철에 몸을 싣고 있다.  

힘센 자들은 멀찍이서 경마를 즐기듯 약자들만의 무한 경쟁을 즐길 뿐이다. 가지지 못한 자들이 지칠대로 지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서로 비난하고 칼부림하는 광경을 흡족스레 바라볼 뿐이다.  집값을 올려놓으면 아파트 분양권을 두고 아귀다툼이고 치솟은 전세보증금을 채워넣느라 가쁜 숨을 헐떡여야 한다. 말이 가계대출이지 정권이 빚을 내라고 권하고 대부업체가 밤낮으로 광고질이다. 너도 나도 빚더미에 코를 꿰어 버둥거리고, 가진 자들은 고리대질로 잔치판을 벌인다. 모두가 즐기는 축전祝典이 되지 못하고, 한쪽은 잔치판이고 다른 쪽은 줄초상인 축제祝祭가 된다. 

이렇게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자들을 구석에 몰아놓고, 잠시도 여유를 갖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못살게 굴고, 그들끼리 옥신각신하다가 서로 반목하고 싸우게 하는 이유가 있다. 약자들이 합리성과 인내를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들이 힘센자의 “갑질”(힘센자가 바로 그들의 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참지 못하고 서로 폭력을 사용하도록 부추기기 위함이다. 그래야 강자들이 독식하는 약육강식과 “갑질”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소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참고 견디고 기다리기를 새삼스레 생각하게 된다.  

장승, 비폭력, 그리고 참는 것

선생님의 초월윤리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아마도 “공자왈 맹자왈” 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구태여 윤리와 규범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니 따분한 얘기일 것으로 지레짐작할 것이다. 또한 “초월”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냄새만으로 초월윤리와 최소주의가 실생활과 전혀 동떨어진 얘기라고 속단하기 쉽다.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비폭력과 자기희생은 참으로 어려운 규범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선생님의 행정철학과 사상에서 주요한 개념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공기와 물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좀 모호하게 저작 여기저기에 언급되어 있기는 하나 선생님의 행정이론틀을  떠바치는 너럭바위같은 존재가 있다. 바로 참는 것이고 견디는 것이고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참고 기다리는 것이 선생님의 철학과 사상을 현실적이고 생동감있게 한다고 본다(Park 2015: 293-294). 먼저 선생님께서 장승의 특징을 비폭력으로 설명하신 대목을 옮겨보자. 

“문민통치의 전통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 명치유신 때까지도 무인통치를 해 왔던 일본과는 달리 장승은 비폭력 문화의 상징이다. ... 장승의 특징은 참는데 있다. 참는다는 것은 포악함에 시달리는 사람이 갖출 덕목의 모두이며 비폭력 문화의 정상을 말한다”(이문영 1980: 383-384). 

한국의 장승은 솟대처럼 지역의 경계를 정하며, 평화스럽게 남자(天下大將軍)와 여자(地下女將軍)가 같이 서 있으며, 장군인데도 활이나 칼이나 창을 안들고 있으며, 갑옷이 아니라 혼례식 때 입는 예복을 입고 있으며, 집도 없이 밖에 서서 비바람을 맞으며, 돌이나 쇠나 금이나 은이 아닌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로 만든다(이문영 1980: 383-384). 이러한 장승의 특징은 참는 것인데, 그 재료가 쉽게 사그러지는 나무이기 때문에 장승의 참을성을 돋보인다(이문영 1980: 384). 그래서 장승이 비폭력 문화를 상징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참는 것은 강자의 폭력에 시달리는 약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의 모두라고 했고, 이것이 바로 비폭력이라고 했다(이문영 1980: 384; 이문영 1986: 336). 약자는 참아야 한다는 것이며 참지 않고서 비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만큼 참는다는 것이 초월윤리, 특히 비폭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약자의 대응방법은 참는 것

약자가 강자에게 대응하는 방법은 한마디로 인내다(이문영 2001: 348). 참는 것이며 주먹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비폭력이다. 선생님은 노동자(약자)는 죽을 때까지 참아야 한다(이문영 2001: 350)고 말씀하셨다. 약자는 강자의 폭력을 참아내야 할 뿐 아니라 강자의 폭력을 견제하여 약자를 보호할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이문영 1996: 664). 비폭력에서 개인윤리, 사회윤리, 자기희생에 이르는 초월과정을 끈질기게 참아내야 한다(이문영 2001: 349). 이런 맥락에서 초월윤리는 약자의 대응전략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격이 성숙되고 인간이 완성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이문영 1991: 32). 

“부자의 죄를 극복하는 노동자의 대응방법은 한마디로 말해서 인내(忍耐)하는 것이다. 부자가 하는 짓을 노동자가 참아야 하는 것이 인내해야 할 하나요, 참된 비폭력을 시작으로 해 개인윤리, 사회윤리 그리고 자기희생의 덕목까지도 갖춰나가야 하는 긴 여정의 인내가 바로 인내해야 할 다른 하나이다”(이문영 2001: 348-349). 

위의 인용에서 “부자가 하는 짓[폭력]을 노동자가 참아야 하는 것”이 바로 비폭력이다. 아래 인용은 약자가 비폭력으로 대응하기 위해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머리”는 지식과 기술을, “마음”은 누구나 세상에 날 때부터 갖고 나온 “天賦의 마음” (이문영 1991: 44)이다. “天賦의 마음”이 있기에 폭력을 휘두르는 강자를 증오하고 저주하기보다는 공존과 평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는 통치자가 원색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상황하에서도 국민은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 아닌 비폭력으로 대응함이다. 이를 위하여 사람이 일차적으로 사용하는 자산은 머리이며 그 다음이 마음이며 그리고 그 다음은 포악한 것과 포악한 것을 고쳐나갈 것을, 심지어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이를 끈질기게 기다리는 인내이다”(이문영 1986: 335).

요컨대, 참는 것은 이문영의 초월윤리의 기본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참지 않고서는 초월윤리를 실천할 수 없다. 특히 참는 것은 비폭력과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려우며, 차라리 비폭력 그 자체에 가깝다. 그렇다면 약자는 대체 무엇을 참아야 하는 것일까? 

이문영(1996)은 관절염이 낫는 것에 비유하여 (1) 우선 당장 죽을 만큼 아픈 것을 참아야 하고, (2) 그 다음에는 병이 나아가는 것을 참아야 한다고 했다(662, 664). 아픈 것을 참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강자의 권력남용과 포악을 당하여 화가 나고, 분하고, 쓰라린 심정을 견뎌내는 것이다.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고,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내던지는 난동(본능적인 감정의 폭발)을 억누르는 일이다. 병이 나아가는 것을 참는다는 것은 아픔을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솟구치는 욕심을 자제하고 버리는 일이다. 인간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동기가 이해관계인데, 사람들은 그 욕심을 합리성이라는 거죽으로 덮어 부당한 행동을 정당화하곤 한다(이문영 1991: 120). 그러니까 자신이 아닌 타인(공익)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안해도 되는 일도 기꺼이(천부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 결국 참아야 할 것은 (1) 감정과 폭력(난동)이고, (2) 자신의 이해관계를 끈질기게 놓지 않으려는 욕심이다(표 1).  

당장 아픈 것을 참아야 한다

약자는 먼저 강자의 폭정을 견뎌내야 한다. 악한 강자는 권력을 남용하고, 불법 탈법 행위를 저지르고, 물리적 폭력을 동원하여 약자들을 못살게 군다. 힘없는 자들은 “지하로 숨어드는 전철에 흔들리며 그저 내맡긴 몸뚱아리”로 하루하루를 괴롭고 무기력하게 버텨야 한다. 이런 고통스런 사회를 견뎌내야 하는 것이 약자의 몫이다. “그냥 악한 세상이 아니라 구세력이 통치하는 가장 악한 세상”을 참아야 한다 (이문영 1996: 662). 

약자는 강자의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고 비폭력으로 대응해야 한다(이문영 1986: 335). 이문영의 비폭력은 주먹질을 하지 않고 말을 하는 것이고, 불필요하게 강자의 감정이나 심리를 자극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을 하는 것이고, 강자조차도 양심에 찔려 차마 거부하지 못할만큼 합당한 말을 하는 것이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이인 기준 (법, 절차, 상식, 합의 등)에 준거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Park 2015: 290-291). 악한 정권의 폭력 앞에 굴복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순응하거나 무참하게 매를 맞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물리력으로 대들지 말고 당당하게 계속 이치에 맞는 옳은 말만을 하는 것이다(이문영 1991: 118). 이렇게 폭력을 참고 말하는 것이 약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자 강자를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 할 수 있다.  

“포악한 정권이 쥐고 있는 것은 무기와 폭력이지만, 약한 국민이 갖고 있는 것은 악한 정권에 대하여 정의에 입각한 말함과 저항이기 때문이다. ... 오랜 기간 끌었던 포악한 정권들이 무너진 것은 총을 쥔 정권을 향하여 ‘말함’이라는 비폭력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승리였다”(이문영 2001: 88).

그렇기 때문에 약자는 참아야 한다. 악한 강자가 휘두르는 폭력으로 생채기가 나고 피가 나고 죽을 만큼 아프다 해도 그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1) 어쩌면 화가 나고 분하고 증오심이 일고 복수심으로 몸서리치는 것이 당연할는지 모른다. 억눌린 분노를 표출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악다구니를 써서 강자에게 대든다 해도 약자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 증오와 복수에 사로잡힌 난동은 감정을 쏟아낸 잠시의 시원함을 줄 뿐이다. 강자의 폭력 리듬을 맞춰주고 장단을 맞춰주는 어리석은 행위다. 어리석은 난동 뒤에는 더 고통스러운 강자의 폭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난동이란 승리에의 접근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의 강경화에 구실을 주는 단순하고 감정발산적인 폭력행위”일 뿐이다 (이문영 1986: 297).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는 강자는 약자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판사판으로 대들 것을 예상하고, 또 그것을 은근히 바란다.  

권력을 남용하여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에게 가장 잔인한 복수는 강자가 즐겨하는 폭력 리듬을 깨고 합리성에 박자를 맞추어 옳은 말만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문영의 비폭력이다. 어차피 약자는 힘이 없기 때문에 폭력으로 강자에 맞서서는 승산이 없다(이문영 2001: 148). 비폭력으로 맞서야 약자가 일단 보호가 되고, 그 다음에 약자가 성장을 할 수 있다(이문영 1991: 18-19). 사람에 대한 증오와 저주와 복수를 심중에 담고 매 순간을 사는 일은 또 다른 고통이다. 몸이 건강하다 해도 마음이 괴롭우면 하루하루가 힘겨울 수밖에 없다. 편안하고 행복하기는 커녕 천수를 누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약자는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고통을 견뎌내야 하고 분노를 참아내야 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가장 나쁜 세상의 구원을 기다리는 좀 더 밝으며 긍정적인 참음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이문영 1996: 664)고 적으셨다. 

병이 나아가는 것을 참아야 한다

당장 아픈 것을 일단 참은 뒤에는 병이 나아가는 것을 참아야 한다. 강자의 폭력을 견제할 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을 기다린다. 그래서 “가장 악한 세상에서 가장 시달림을 받을 자가 최소한 보호를 받아 나갈 구조가 생성되는 것”을 참아야 한다고 했다(이문영 1996: 664). 전자가 이문영의 “비폭력”에서 견디는 것이라면, 후자는 개인윤리, 사회윤리, 자기희생에 이르는 과정에서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비폭력은 개인윤리, 사회윤리, 자기희생의 전제가 된다(이문영 2001: 149). 악한 강자의 포악함은 짧은 시간 내에 고쳐지기 어렵다. 또 아픈 것을 참는 것과는 달리 개인의 이해관계와 욕심을 하나하나 버려나가야 한다. 약속(합의사항)을 지키고, 타인을 돌보고,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을 살리는 과정이 이해관계를 초월하고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초월윤리를 인사행정에 적용한 예를 살펴 보자(이문영 1996: 563-601; 이문영 2001: 419-431). 먼저 비폭력은 엽관주의(spoils system)를 거부하고 직업공무원제를 정착하는 일이다. 계모가 팥쥐를 편애하고, 쿠데타 정권이 자기 핏줄인 육사출신을 우대하고, 측근들을 낙하산에 태워 산하 기관장으로 내려보내는 일은 이기심과 욕심 때문이다. 개인윤리는 억울한 일이 없도록 경우에 맞게 공정하게 인사관리를 하고 화목하게 지내도록 인간 관계를 향상시키는 일이다. 사회윤리는 그 사람의 능력과 성과 외에 출신지역, 성별, 학력, 재력 등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고용평등주의이며 소외된 국민을 등용시키는 일이다. 자기희생은 공무원들이 단결하여 노동운동을 하는 일을 용납하는 것이다. 

개인윤리에서 자기희생에 이르는 길은 결국 자기 몫을 부당하게 챙기려는 이기심을 버리는 일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친 후에는 나와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천부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따돌림시키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처지를 긍휼하게 된다. 따라서 정당한 내 몫까지도 기꺼이 타인에게 내어주게 된다. 할 수 있어도 스스로 하지 않으니 (정당한 내 몫을 내어주니) 절제라 할 수 있고, 다른 목소리라 하여 내치지 않고 묵묵히 귀기울이니 인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가장 깊은 거기에 있다는 이해관계, 이기심, 욕심을 버리는 것이 참는 것이다. 이것이 병이 나아가는 것을 참는 일이다. 

마지막을 잘 참아야 한다

이러한 인내는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이어져야 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이를 끈질기게 기다리는 인내”를 가져야 한다(이문영 1986: 335). 봄날 새순이 온전히 자라기 위해서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성장을 해야 한다. 조금 날씨가 풀렸다고 해서 성급하게 고개를 내밀었다가는 여린 새순은 얼어죽기 십상이라고 선생님을 말씀하셨다.  “이 모든 절제가 무기력이 아니라 기다리는 힘이며 성장하는 힘이며 폭력보다 강한 힘이다”(이문영 1991: 19).

특히 마지막 순간에 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크게 될 사람은 (사람이 무엇을 이루려면) 끝을 잘 참아야 한다 (이문영 1991: 198; 이문영 2008: 202). 그래서 “사람은 마지막이 좋아야 한다” (이문영 2001: 219), “말년이 좋으면 청장년시대의 허물을 덮을 수 있다” (이문영 1991: 357)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친일행위를 한 仁村 김성수씨가 말년에 “부산정치파동”에 항의하여 대통령을 탄핵하고  부통령을 사직하고 민주당의 씨앗을 뿌린 것을 높이 평가하셨다(이문영 1991: 357). 또한 밥을 짓는데 마지막 1-2분을 못참으면 설익어서 못먹는다고 하셨다 (이문영 1991: 198; 이문영 2008: 202).

“참는 자는 마지막을 잘 참아야 한다. 평화를 위한 조짐이 더 많이 보일수록 철저하게 같은 길을 가야 한다” (이문영 1986: 298). 

왜 하필 마지막이 중요할까? 아마도 가장 방심하기 쉬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찰라의 방심이 오랜 시간 견디고 기다려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한 조짐”이란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처럼 당장이라도 군부독재가 끝장나고 민주주의가 시작될 것같은 분위기를 말한다. 정권이 위기에 몰려 덜 무서울 때여서 기회주의자들이 인기에 편승한 발언을 쏟아내고 대중의 요구가 과다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밥솥에서 김이 나오고 구수한 밥냄새가 풍겨올 때 마치 밥이 다 된 것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 순간 뜸들이는 것을 잊고 뚜껑을 열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이럴 때일수록 끈질기게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이 다 될 때까지 꾹 참고 있어야 한다. 피부병도 한참 나아갈 때보다 나아가는 마지막 고비가 더 힘들다. 가려움과 아픔과 성적 쾌감이 교차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 마지막 순간을 참지 못하고 상처를 건드리거나 긁으면 그동안 힘겹게 견뎌온 시간이 허사가 된다. 결국 마지막 순간의 방심을 경계해야 하며 끝까지 합리성에 근거한 초월윤리의 길을 가야 한다는 뜻이다.  

참고 견디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가?

약자가 마지막까지 참고 견디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러하다. 끈질기게 강자의 폭력을 참아내고 욕심을 버리면서 비폭력에서 자기희생에 이르는 초월윤리에 귀의한다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1) 폭력을 기반으로 한 정권은 강하게 보이지만 실은 정당성이 없어서 법을 무시하고 폭력에 의지해야 할만큼 허약하고, (2) 나중에는 악법을 새롭게 만들어 정권유지를 도모하지만 그 악법마저도 지키지 않게 되고, (3) 이런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못난 정권은 스스로 망하기 때문이다(이문영 1986: 289, 297, 340; 이문영 2008: 346-347). 시민들의 비폭력 투쟁으로 악한 정권은 스스로 붕괴된다. 그런데도 시민들이 폭력 투쟁을 하면, (1) 거의 넘어가던 정권이 정당성을 회복하는 빌미를 주게 되고 (2) 더 강경한 폭력 정권이 출현할 유인을 제공하며, (3) 설령 폭력 정권이 무너져도 새 질서를 만들지 못하게 된다(이문영 1986: 297-298). 그래서 “포악한 자는 스스로 망하지만 악한 자가 망한 후의 [사회]는 비폭력의 실력자만이 구축한다” (이문영 1986: 289).

그러나, 참고 견디고 기다리기가 쉽지 않다

악한 강자가 약자를 파괴하고 급기야는 자신까지 파괴하는 비극보다는 약자가 비폭력으로 대응하여 강자의 악한 통치를 견제하여 피아 모두를 살려내는 희극이 이루어내기가 훨씬 더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문영 2001: 203-204). “약자는 악한 통치를 그때그때 견제하기가 힘들고 시간도 오랜 세월을 끈질기게 참아야 한다” (이문영 2001: 204).

하지만 마지막까지 참고 견디고 기다리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먼저 시민들이 성숙한 인격과 의식을 가져야 하고, 강자의 폭력(보복)이라는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Park 2015: 294). 또한 강자의 폭력에 휘둘린 약자는 차분히 합리성을 생각할 여유를 갖기 어렵다. “긴긴 터널 길을 실려가는 희망없는 짐짝들”은 하루하루 가뿐 숨을 몰아쉬며 날이 서 있어서 폭발 직전이다. 강자의 갑질과 아등바등하는 일상에 지쳐서 이미 참을 만큼 참은 상황이다. “헬조선”, “묻지마”,  “홧김에” 등이 약자들의 인내가 바닥임을 말해준다. 악한 강자가 아니라 이웃을 비난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자가 가야 할 길이 끈질기게 참고 버티는 것이니 어찌하랴. 분노를 억누르고 비폭력에 의지하고, 욕심을 버리고 초월윤리로 귀의하는 수밖에. 이를 악물고 서로 격려하고 허물을 감싸주면서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나갈 수밖에... 

각주

1) 물론 약자의 생명이 위협을 받는 위급한 상황이라면 일단 그 자리를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다가오는 폭력을 회피하는 방법이다(이문영 1980: 366). 가만히 앉아서 칼맞고 총맞는 것이 비폭력이 아니다.

참고문헌

Park, Hun Myoung. 2015. Moon-Young Lee’s Transcendence Ethics for Democratic Public Administration. World Environment and Island Studies 5(4): 283-296.


원문: 박헌명. 2016. 비폭력은 참고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다. <최소주의 행정학> 1(9): 1-3.

지난 7월 15일 국무총리 황교안씨가 경북 성주군을 방문하였다. 미국의 미사일요격체계라는 THAAD기지를 그 지역에 배치하게 된 연유를 설명하다가 여섯 시간 동안 군민들에게 곤혹을 당하였다. 일부 성난 군민들은 황씨에게 고함을 지르고, 소금을 뿌리고, 물병과 달걀을 던졌다고 한다.

방송과 신문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손나발을 불어댄다. 감히 국무총리에게 패악질을 했다느니, 불법 폭력시위를 했다느니, 공무집행방해와 교통방해를 저질렀다느니, 감금죄를 물어야 한다느니, 불순한 외부세력이 개입했다느니, 종북좌파가 어쩌느니 연일 떠들어 댄다. 왜 미군기지를 성주에 설치해야 하는지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정승에게 달걀을 던진 불경스런 백성을 어떻게 단죄할 것인가를 앞다투어 따지고 있다. ‘사고’를 치고 외국으로 나간 박근혜씨를 대신해서 황씨가 총대를 메고 귀중한 ‘매값’을 벌어온 셈이다. 과연 성주군민들은 이런 돌팔매질을 당해 마땅한가?  

왕과 정승의 ‘매값’

백성들이 왕이나 정승에게 폭언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드물다. 불경죄로 볼기가 너널거리도록 곤장을 맞거나 아예 역적으로 몰려 능지처참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장돌을 던진다면 백성들이 벼랑 끝에 몰렸다는 뜻이다. 일상의 문제해결절차와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백성들은 공포와 분노와 흥분으로 몸서리치고 있다는 소리다. 몇가지 사례를 더듬어보자. 

2015년 4월 16일 전남 진도에 있는 세월호 참사대책본부를 찾은 국무총리 정홍원씨는 분노한 실종자 식구들에게 물 세례를 받았다. 이명박 정권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했던 국무총리 정운찬씨가 2009년 11월 28일 세종시(충남 연기)에서, 12월 12일 대전 KBS에서 달걀 세례를 받았다. 1999년 6월 3일에는 일본을 방문하려던 김영삼씨가 김포공항에서 박의정씨에게 빨간 페인트가 들어있는 달걀을 맞았다. 외환위기를 초래하여 나라를 망쳤다는 이유에서다. 국무총리로 지명된 정원식씨는 1991년 6월 3일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마지막 강의를 강행하다가 밀가루와 달걀을 덮어쓰고 학생들에게 발길질을 당하였다. 문교부장관 시절 전교조 교사들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굴비엮듯이 줄줄이 끌어갔고 1,500여명을 교단에서 내쫓은 업을 쌓았기 때문이다. 

달걀 세례를 가장 많이 받은 왕은 노무현씨다. 김영삼씨의 삼당합당에 반대한 후 1990년 부산역에서 열린 시민대회에서, 2001년 5월 22일 방문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서, 2002년 11월 13일 여의도에서 열린 “우리 쌀 지키기 전국농민대회”에서 봉변을 당했다.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소환된 2009년 4월 30일에는 타고 있던 버스에 달걀이 날아들었다. 이회창씨(2007년 11월 13일 대구)와 이명박씨 (2007년 12월 3일 의정부)도 달걀을 맞기도 했지만 미미한 수준이었다. 한편 한강인도교를 폭파하고 대구로 도망간 이승만씨와 왜놈들에게 쫓겨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달아난 선조 이연씨는 무슨 욕지거리를 들었을까?  

정원식씨는 학생들의 움직임을 알고서도 평소처럼 강의를 나갔다. 무방비 상태에서 난타당하는 국무총리의 처참한 모습을 내외언론에 생생하게 전했으니 ‘매값’을 두둑히 받아낸 셈이다. 대학생 20여명이 잡혀가서 실형을 받았고, 이 사건을 빌미로 노태우 정권은 공안정국을 공고화했다. 김영삼씨에게 닭알을 투척한 박씨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정홍원씨나 정운찬씨는 사태가 하도 험악해서 처벌하자는 말도 꺼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이에 반하여 노무현씨는 “정치인들이 한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좀 안 풀리겠냐. 계란을 맞고 나면 문제가 잘 풀렸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2011년 11월 필리핀에서 군사협정에 반대하는 시민들로부터 달걀을 맞은 클린턴 부인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매값’을 구걸하는 자와 주권자의 매질을 달게 받는 자가 이렇게 다르다.    

성주군민의 죄

그러면 성주군민들이 지은 죄는 무엇일까? 먼저 그들은 약자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듯 자기 동네에 미군기지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이다. 한마디 언질도 없이 덜컥 미군기지 배치를 결정한 정권은 강자다. 약자를 우습게 여기고 힘으로 찍어 누르는 우악스러운 통치자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강자다.

성주를 방문한 황교안씨에게 군민들이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내뱉고, 길을 가로막고, 물병을 던지고, 소금을 뿌리고, 달걀을 던진 것은 분명 지나쳤다.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행동임이 분명하고 물리력을 동원하여 황씨의 생명을 위협한 것은 아니지만, 성숙되지 않은 군중의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이문영은 “비폭력이란 통치자에게 폭력을 당하더라도 약자는 폭력을 쓰지 말라는 것” (2008: 68-69)이라고 밝히고, “돌만 던지지 말라. 그리고 안할 것은 세상없이 무서워도 안해라” (1986: 292) “일단 어떠한 경우에도—그러니까 돌을 던지도록 유도된 상황하에서도—학생들이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 (1986: 291)고 역설했다. 유감스럽게도 성주군민들은 권위주의 정권의 속임수(“제발 뺨이라도 갈겨줍쇼. 아님 욕이라도 해줍쇼.”)에 말려든 것이다.

“피치자만이 지키라는 법이 아니고 통치자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법이다. 법을 통치자가 지키지 않을 때 아무도 규칙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고 혼란이 생기며, 이 혼란은 제일 바람직하지 않는 사회현상이다. 피치자인 국민에게 주는 신호는 비록 정부가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이에 말려들지 말고 비폭력의 길을 가야 한다는 신호이다” (1986: 289). 

그리고 폭력은 물리력은 물론 언어, 심리, 감정 등을 동원한 폭력 모두를 의미한다. 교묘한 말을 하여 감정을 흐트리거나, 힐난을 하는 것은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폭력에 가깝다. 이문영은 다음과 같이 ‘말폭력’과 비폭력을 구분하였다. 그러니까 성주군민 일부가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내뱉은 것은 비폭력이 아니라 말폭력이다. 

“상황 1에서 예수의 비폭력 저항—비폭력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여지는 폭력이나 폭군의 웃는 얼굴과는 거리가 먼 저항—을 본다. … 비폭력이란 저쪽에서 때리더라도 이쪽에서는 말로만 대응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 말의 형식을 빌린 폭력의 행사가 아님을 상황은 보여준다. 따라서 폭력의 반대어는 말을 계속하는 일이다” (2001: 246).

성주군민들의 죄는 노여움을 미처 삭이지 못하고 잠시나마 이성이 아닌 감정에 의지한 것이다. 물론 일부 군민들이 저지른 실수이다. 고성과 욕설을 보내기보다는 항의서든 요구서든 최소한의 주장을 담은 글을 전달하거나 낭독했어야 했다. 물병을 던지고 소금을 뿌리고 달걀을 던지기보다는 입가리개를 하고 침묵시위를 했어야 했다. 설명회에서 나선 황씨를 멀리 등지고 (황씨 앞에 청중이 없도록) 조용히 연좌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성숙한 민주시민이 되지 못하고 그저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행동하는 순수한 백성들이었던 죄다. 약아빠지지 못한 순진무구純眞無垢가 죄라면 죄다. 그래서 음흉한 정권이 의도한 대로 꼬투리를 잡혀 연일 신문 방송에서 무방비로 두들겨 맞고 있다. ‘매값’을 비싸게 물어주고 있다. 하지만 성주군민들의 죄를 묻는 것은 법으로 보나 윤리로 보나 지나치다.  

합리성적 저항과 완전한 비폭력

이문영은 모든 나쁜 것은 관官에서 나오고 모든 좋은 것은 민民 에서 나왔다고 전제했다 (1991: 42). “가라지의 악이[든] 곡식의 악이[든] 악의 근원은 정부의 과격이다” (2008: 589). “民의 좋은 행동을 官이 배우며 官의 나쁜 행동을 民이 배운다. 이 말은 원래 官은 좋은 행동을 할 능력을 안 가졌다는 것이기도 하다” (1991: 29).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고 통치자와 官은 국민의 종이기 때문이다(主權在民). 주인은 이런 머슴의 버르장머리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 방법은 “合理性的 抵抗”이며 비폭력 투쟁이다 (1991: 30), 왜 그러한가? 폭력에 의지하는 통치자는 자기가 정한 법도 안지킬만큼 제멋대로여서 비폭력 투쟁으로 붕괴가 된다 (1986: 297). 그런데 백성들이 폭력 투쟁으로 대응하면 자체분열을 하던 못된 머슴들이 단결하여 폭력 정권을 공고히 하게 된다 (1986: 197). 결국 머슴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면 주인이 끝까지 수모를 참고 견디면서 비폭력 투쟁을 이어나가야 한다. 

이문영은 “(백성이) 즐거움을 못얻었다고 해서 그의 上을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며, 백성의 위에 있으면서 백성과 동락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不得而非其上者非也 爲民上而不與民同樂者亦非也)”라는『孔孟』「梁惠王」下 4장을 종종 인용했다 (1996: 74, 293, 606). 上의 폭력과 마찬가지로 下의 난동도 용납될 수 없다. “나는 이러한 안하무인의 꼴을 관(官)과 민(民)에서 각각 보기 싫다… 안하무인의 관을 정치학에서 말하길「벌거벗은 힘」이라고 한다. … 벌거벗은 힘의 행사를 민이 하는 것도 역겨움을 준다” (1986: 81)고 말했다. 이문영은 민의를 수렴하지 못하는 과격한 정부와 부패하고 분열하는 과격한 국민이 한덩어리가 되어 과격함이 극에 달하는 것을 경계했다 (2008: 578).

“…평화적이라는 말은 쿠데타라든지 국민측에서 발생하는 난동이 없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난동이란 4·19와 같은 저항권의 행사라든가 만주에서의 독립군 활동과 같은 정쟁(政爭)을 뜻하지 않는다. 난동이란 승리에의 접근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의 강경화에 구실을 주는 단순하고 감정발산적인 폭력행위를 말한다. 난동은 따라서 참여의 폭이 좁든가 승리를 향한 전략 전술면에서의 계산이 부족한 행동이다” (1986: 297).

약자가 강자에게 대응하는 방법(대안)은 한마디로 비폭력이다 (1986: 294). 약자는 어차피 폭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폭력으로 강자에게 맞서서는 승산이 없다. 비폭력은 감정이 아닌 합리성이다. 철저하게 이성에 근거한 행동으로 ‘폭력 대 폭력’ 구도에서 ‘자의성 대 합리성’ 혹은 ‘야만 대 문명’으로 국면을 바꿔야 한다. 모든 면에서 불리한 약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끈질기게 참고 기다려야 한다. 감정에서 벗어나 이성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매사를 조심해야 한다. 힘센 통치자의 이성조차 감히 거절하지 못할만큼 합당한 말만을 조심스레 해야 한다 (2008: 66, 80). 그냥 비폭력이 아니라 철저하게 합리적인, 완전한 비폭력이어야 한다.

“… 악한 통치자의 악은 피치자 …의 성숙하고 완전한 제재에 의하여 견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자인 통치자를 섣불리 건드려 강경책을 강화하게 하는 미숙하고 불완전한 대응책보다는 강자가 꼼짝없이 악을 계속 저지를 수 없게 하는 대응책을 찾는 것이 약자에게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8: 59).

일부 성주군민들이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퍼부은 것은 물리적 폭력은 아니라 해도 완전한 비폭력이라 할 수 없다. 약자의 노여움과 억울함을 분출시킨 것이다. 쓸데없는 말이고 지나친 언동이다. 완전하지 않은 어설픈 비폭력이며, 합리성과 거리가 먼 ‘말폭력’일 뿐이다. 강자에게 꼬투리를 잡혀 더 잔인한 폭력을 부를 뿐이다. 죄송하다면서도 속으로는 제발 뺨이라도 한대 갈겨달라며 꼬드기는 양아치들 아니던가. 다행히 성주군민들이 그 음흉한 계책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지금은 최소한의 행동으로 맞서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훨씬 더 나쁘다 

성주군민들이 황교안씨에게 고성을 지르고 달걀을 던진 것은 잘못한 일이다. 일부 군민들의 일탈 행위라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폭력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훨씬 더 잘못했다. 공론없이 통치자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짓을 반복하고 있다. 군민들은 절차적 합리성을 묻고 있는데, 국가안보를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사오정식 딴소리다. 이제는 뒤늦게 대화를 한답시고 군민들이 아닌 지역 정치인과 유지들을 찾고 있다. 동시에 성주군민들의 폭력행위를 처벌하는데 골몰해 있다.  

하지만 핵심은 성주군민의 난동이 아니라 권위주의 통치자의 폭력이다. 애초에 잘못을 저지른 자들은 성주군민이 아니라 외부세력이다. 혈맹이랍시고 미국을 끌어들여 조용한 마을을 시끄럽게 만든 정권의 종미주의자들이다. 군민들을 자극하여 폭력을 유도해 놓고 처벌을 한다면서 설치고 다니는 불순세력이다. 선량한 군민들을 폭도로 몰아세우고 있는 전문시위진압꾼들이다. 백성과 동락하기는 커녕 힘으로 누르고 발길질을 해대는 못난 上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들먹이며 자기 잘못을 백성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다. 도둑이 주인을 매질하고 방귀뀐 놈이 성내는 격이다. 

안타까운 것은 음흉한 정권은 약자의 행동 원리를 훤히 꿰고 있는 반면에 정작 순진무구들은 그 얼개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약자인 백성들이 나쁜 통치자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다. 강자가 폭력을 휘두르는 무서운 상황에서 약자들은 신중한 최소주의 행동을 해야 하는데, (1) 비폭력, (2) 동지들과의 합의, (3) 일반 시민의 호응과 연대 모색이 포함된다 (1991: 25-26). 

음흉한 정권은 (1) 멋대로 결정해놓고 자신감있게 폭력을 행사한다. 백성을 궁지에 내몰고 자해공갈에 가까운 방법으로 약자의  난동을 유발하여 ‘폭력 대 폭력’ 구도를 만든다. (2) 반대하는 사람들의 약점을 잡아 분열시키고 낙하산으로 장악한 신문 방송을 동원하여 여론을 몰아간다. 반대의견은 유언비어로 폄하하고 찬성의견을 부추겨 이간질한다. 뒷조사를 하고 처벌을 운운하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3) 벼랑에 내몰린 백성들을 ‘왕따’시킨다. 시민사회가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윽박지른다. 시민연대를 차단한다. 1980년 광주처럼 철저하게 고립시킨 뒤 맘놓고 ‘왕따들’를 난타질한다. 외부세력=불순세력=종북좌파=빨갱이를 들먹거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약자의 비폭력 투쟁을 분쇄하기 위함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약자들이 비폭력을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완전한 비폭력은 감정이 아닌 이성에 의지하여 오랜 세월을 끈질기게 참고 견디어야 하는 인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비폭력의 얼개와 의미를 깨달아야 하고, 감정과 유혹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긍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문: 박헌명. 성주군민의 죄와 국무총리의 '매값.' <최소주의행정학> 1(7): 1-2.

흔히 사람들은 이문영 선생님을 이상주의자라고 곡해한다. 선생님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행동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선생님께서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고집스레 추구해서 쓸데없는 분란을 만들고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뜻이다. 또한 운동권 학생들과 그 태도와 주장이 같은, 혹은 그들을 배후조종하는 “운동권 교수”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을 추구하는 맹목적인 열정이 같다는 뜻일 게다. 이러한 곡해는 선생님의 행정 철학과 사상을  이해하거나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지만, 직접 원인이 된 것은 쿠데타 정권의 낙인찍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못된 정권은 폭력을 동원하거나 언론사를 사주하여 멀쩡한 (평범한) 사람을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낙인찍곤 한다. 조기숙(2012)은 이런 것을 왕따현상이라고 불렀다.1) 선생님에 대한 낙인은 (학자가 아니라) 민주투사,  진보주의자, 이상주의자, 영웅심리로 괴팍한 짓을 골라서 하는 괴짜 등이며, 심지어는 급진 좌파와 공산주의자(빨갱이 교수)를 포함한다 (Park 2015: 285). 이러한 낙인찍기와 왕따질은 선생님을 일반인들로부터 떨어뜨려 놓아 사람들이 선생님의 진면목을 살펴 볼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허상만을 진짜인 것처럼 믿도록 했다. 많은 사람들은 선생님이 정말 진보주의자인지, 괴짜인지, 공산주의자인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는 그저 그런 것으로 인식하도록 학습되었다. 선생님께서 스스로를 자본주의자, 중도우파, 명예혁명가, 한국청교도,  최소주의자, 유물론을 배격하는 유신론자로 평한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에 해당하는 회계와 재무를 공부하고 평생 예수를 섬겨 한 교회만을 꾸준하게 다니신 분이 어찌 공산주의자가 되고 빨갱이가 된단 말인가. 정권의 상징조작에 말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원치않는 왕따질(강화자와 방관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선생님에 관한 가장 흔한 곡해는 이상주의자인 것같다. 진보주의자, 공산주의자, 빨갱이 등은 전혀 터무니없다. 선생님은 과연 무지개를 쫓아 헤매던 소년처럼 세상 물정 모르고 이상에만 몰두하였을까? 나는 선생님의 비폭력과 최소주의를 정말 고통스럽게 이해하였다. 나름대로 소화하고 그 참뜻을 깨닫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선생님의 비폭력과 최소주의는 선생님이 이상주의자가 아닌 “현실적 이상주의자”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선생님의 행정 철학과 사상의 고갱이를 보여주는 일화를 소개한다. 

학생증 검사를 참아야만 합니까?

1991년 봄학기에 나는 선생님의 <행정철학> 강의를 들었다. 고대 대학원 도서관 건물에 있는 낡은 강의실에서였다. 선생님의 <자전적 행정학> 원고를 중심으로 비폭력, 개인윤리, 사회윤리, 자기희생을 토론하고, 그 초월윤리를 조직, 인사, 정책, 재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따졌다.  

선생님의 강의가 있던 어느 날 나는 법대 후문으로 들어오면서 학생증 검사를 받아야 했다. 마침 그 날 대운동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경찰이 외부인 출입을 차단하기 위하여 고대 학생증을 요구했다. 그 당시 경찰은 집회가 있을 때마다 종종 입구에서 학생증을 검사했고, 가끔씩 외부인을 적발하여 체포하기도 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의 불심검문 조항에 근거를 두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모든 출입자를 “어떠한 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도 않고 학생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부당한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남의 집 앞을 가로막고 서서 자신이 주인인지를 확인하겠다고 하는 식이니 매우 불쾌한 일이었다.

나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비폭력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힘들어 했다. 비폭력이 주먹이 아닌 말로 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왜 비폭력이 “이래야 약자가 일단 보호”가 되고 “이제는 약자가 성장”을 하는지 (1991: 18-19) 마음으로 납득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웠다. “이 모든 절제[비폭력]가 무기력이 아니라 기다리는 힘이며 성장하는 힘이며 폭력보다 강한 힘이다” (1991: 19)라고 말씀하셨지만 뜬 구름을 잡은 것처럼 공허했다. 답답한 마음이었고,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우둔함을 탓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의 학생증 요구는 울고 싶어하는 아이의 뺨을 때리는 격이었다. 강의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나는 여느 때와는 달리 행동하기로 했다. 일이 어찌 될 것인지 알고 싶어했다. 

무장을 한 채 후문을 막아선 전투경찰이 학생증을 요구할 때 나는 당신들이 무슨 권능으로 이런 짓을 하는지 물었다. 내 학교를 들어가는데 왜 경찰의 확인을 받고 가야 하는가를 물었다. 학생증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던 그 경찰은 처음에는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질문이 이어지면서 짜증으로 바뀌었다. 심각해진다. 얼마 안있어 상급자로 보이는 (무장을 안한) 경찰이 와서 내게 한마디를 툭 던진다. 학생증을 안보여주면 연행을 해서 신분조회를 한댄다. 그 음흉한 속내가 훤히 보인다. 가관이다. 

폭력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법이 어찌 되어 있는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힘으로 찍어누르는 것이다. 오직 “쪽수”가 많고 적은지, 물리력으로 이길 수 있는가, 얼마나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가를 묻는 상황이다. 경찰은 “쪽수”와 물리력에 자신이 있었고, 서로에게 피해가 덜 되는 쪽으로 선택상황을 몰고 갔다. 학생 대부분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반항은 그 시작은 장대했으나 그 끝은 비참했다. 강의는 이미 시작이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학생증을 보여주고 뛰어와야 했다. 화가 치밀었다. 법과 전혀 상관없이 돌아가는 현실(벌거벗은 권력)에 화가 났고, 어떤 대안도 없이 속수무책인 것이 화가 났다.    

강의실에 들어서서 땀을 훔치면서도 나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미처 감정을 누그러뜨리지 못한 채 선생님께 여쭈었다. 법대 후문에서 경찰이 학생증 검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부당함을 알고도 순순히 학생증을 보여줘야 하는가를 여쭈었다. 선생님의 비폭력이 어떻게 이 상황에서 약자를 보호하고, 나아가 약자를 성장시키는지 알 수가 없다고 투정을 부렸다. 철모르는 학생은 흥분해서 질문을 했는데, 선생님은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답을 하셨다. 선생님의 답은 허망하리만치 간단하고 쉬웠다. 

선생님은 고대생이 학생증을 순순히 보여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학생증 검사가 부당하지 않느냐며 따지듯 여쭈었다. 선생님은 짧게 부당하다고 답하셨다. 그러면 말로 따진 것이 잘못이었느냐고 반문했다.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내가 말로 따졌다기보다는 흥분해서 항의를 한 것을 아셨던 것 같다. 잘잘못을 구분하시기보다는 학생증을 보여주고 오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반복하셨다. 나중에 선생님 말씀을 차분히 생각해 보니 이런 논리였다. 경찰에게 대들면 더 큰 불이익을 받을 것이다. 말로 따진다지만 그 상황에서 따지는 것은 사실상 폭력에 가깝다. 경찰도 자기들이 하는 짓이 정당하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에 항의를 하면 오히려 그들이 자극을 받아 또 다른 폭력을 동원할 것이다. 약자가 강자의 아픈 곳을 계속 찌르거나 약점을 물고 늘어지면 어찌 강자가 가만히 있겠는가. 어차피 정당성이 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으니 무슨 짓인들 못할 것인가. 하물며 교수도 아닌 학생이 감정을 노골로 실어 따지고 들 경우임에랴... 전투경찰 상급자가 연행을 한다느니 하는 것이 바로 그 폭력이요 보복인 것이다.

너무나 차분하고 간단한 답변에 나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할 말을 잃고 있는 내게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하셨다. 쓸데없이 경찰을 자극하여 긴장을 조성하는 것은 집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예컨대, 고대생이 사사건건 따지고 들면 경찰이 더 열심히 학생증을 검사할 것이고 경찰 인원도 늘렬 것이다. 그러면 외부인이 학교 안으로 진입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반대로 순순히 학생증을 보여주면 경찰은 대충대충 검사를 할 것이고 (정당하지 않은 일을 위에서 시키니깐 마지못해 그냥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외부인이 학교 안으로 들어오기가 더 쉬워질 것이라고 하셨다. 특별히 좀 바보같은 표정으로 학생증을 고분고분 보여주면 경찰이 “고대생 놈들이 생각보다 형편없군”하면서 검사를 설렁설렁 할 것이라고 빙그레 웃으며 덧붙이셨다. 

비폭력은 성숙하고 완전한 대응책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듯한 선생님의 답변에 씩씩거리며 대든 나는 마지막 주먹을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분기탱천하여 선생님께 항의를 하듯 질문을 해놓고 바로 한방에 나가떨어진 셈이다. 나는 속으로 처절한 외마디를 내질렀다. “이것이었나...” 선생님은 “악한 통치자의 악은 피치자 ...의 성숙하고 완전한 제재에 의하여 견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자인 통치자를 섣불리 건드려 강경책을 강화하게 하는 미숙하고 불완전한 대응책보다는 강자가 꼼짝없이 악을 계속 저지를 수 없게 하는 대응책을 찾는 것이 약자에게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8: 59)고 적으셨다. “철저하고 엄격한 현실이해”를 강조했고 “현실인식”이 없는 이상추구는 패배주의를 만든다고 하셨다 (1986: 298). 

감정이 실린 말로 따진 것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비폭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폭력”이었고 사실상 난동에 가까왔다. “난동이란 승리에의 접근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의 강경화에 구실을 주는 단순하고 감정발산적인 폭력행위를 말한다. 난동은 따라서 참여의 폭이 좁든가 승리를 향한 전략 전술면에서의 계산이 부족한 행동이다” (1986: 297). “비폭력이란 철저하게 비폭력이어야 함” (2001: 149)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현실에서 힘이 없는 자가 “미숙하고 불완전한 대응책”으로 강자에게 대항했다가는 더 센 폭력으로 보복을 당한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현실을 철저하고 엄격하게 이해하지 못한 풋내기 최소주의자의 난동은 이처럼 어이없고 참담한 패배를 자초했다. 한마디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몰랐던 것이다. 선생님은 내가 완전한 비폭력이 아닌 어설픈 비폭력으로 경찰의 비위를 건드려 낭패를 본 것을 오래 단련된 “감”으로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이래서 참는 것이, 그리고 철저하고 완전한 비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강자의 폭력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것임을 절절히 느꼈다.  
  
실용주의자의 현실적 이상주의

선생님의 비폭력은 이상이 아닌 현실에 근거한 실용주의였다.  일반 백성들이 겉멋이 아닌 실속을 챙기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과연 보수주의자이며, 최소주의자이며, 청교도인 선생님의 모습이다 (2008: 150, 264, 500).

선생님은 이상(이념)과 함께 현실(실현가능성)을 따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약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 대안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비폭력을 말한다. 비폭력이란 아무일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두 가지 일을 하면서 비폭력의 길을 간다. ... 하나는 실현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을 한다. 둘은 올바른 이념[이상]에 헌신을 한다” (1986: 294). 선생님은 또 “운동은 이상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며 이상이 자리잡을 현실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냥 이상주의가 아니라 현실적 이상주의 같은 것이 운동의 대정신인지도 모른다” (1986: 138) “여호와의 신은 이상주의자이라기보다는 현실적 이상주의자이어서 야곱이 최소한도로 불가피한 상황에서 회개하는 것을 뜻있게 본다” (1980: 370)라고 적었다. 선생님은 스스로 여호와처럼 현실적 이상주의를 지향하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완상의 햇볕정책을 민주화라는 원칙(이상)에 선통일 요구라는 현실을 흡수한 현실적 이상주의라고 해석했다 (2008: 438).2) 

중요한 것은 현실인식이 단순히 자신의 이익과 손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이상에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 말씀처럼 이상이 자리잡을 현실을 철저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학생이 자신의 학교를 드나드는 것은 개인의 일이라면, 대중집회를 예정대로 여는 것은 이상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개인의 일에 관한 현실이 아닌 이상에 관한 현실을 철저하게 인식했어야 했다. 

선생님은 불가능한 일을 대의와 명분만을 앞세워 추구하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치열하게 현실을 계산하고 분석하는 분이셨다. 예컨대, 정년을 하면서 얼마를 손에 쥐고 있어야 말년을 걱정없이 보내는지부터 언제 어디서 누가 성명서를 발표하는지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현실을 인식하셨다. 아직도 선생님을 이상주의자라고 폄하하는 분이 있다면 위에 적은 일화를 들려주고 싶다. 선생님은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적 이상주의에 충실한 보수주의자요 실용주의자라고 말해주고 싶다. 

끝주


1) “왕따는 단지 가해자가 피해자를 핍박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왕따가 성립하기 위해선 피해자를 중심으로 가해자, 조력자, 강화자, 방관자의 역할분담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가해자가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핍박하기 위해선 이를 격려하고 환호하는 조력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가해자는 조력자들로부터 용기를 얻고 쾌감을 느낀다. 조력자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가해자보다 한 술 더 뜨는 강화자이다. 강화자는 평소엔 피해자처럼 약자로서 설움을 받다가 자신보다 더 약자가 왕따의 타겟이 되면 가해자보다 한 술 더 떠서 피해자를 괴롭히는 사람이다. 강화자의 ‘오버’는 강자로부터 당하지 않으려는 피해의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동안 받았던 설움을 자신보다 약자인 피해자에게 화풀이하는 보상심리 때문이기도 하다. ... 하지만 이것만으로 왕따는 완성되지 않는다. 왕따의 종결자는 부당한 왕따를 외면하고 방관하는 다수의 방관자들이다. 관중 중 한 명이라도 용기 있게 가해자의 부도덕성을 지적하고 나선다면 그리고 다른 방관자들의 관심과 동조를 얻어낸다면 왕따는 발생하지 않는다” (조기숙 2012).

2) “나는 민주화가 통일에 이를 수는 있어도 통일이 곧 민주화라는 논의는 통일을 빙자한 독재 정부의 출현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나는 선통일론은 운동에서 기피해야 할 인기주의라고까지 극언을 했다” (2008: 391).

참고문헌


조기숙. 2012. 안철수 캠프, ‘노무현 왕따’ 현상 이해해야. 오마이뉴스. 2012. 9. 24.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1941 

Park, Hun Myoung. 2015. Moon-Young Lee’s Transcendence Ethics for Democratic Public Administration: Meanings and Rationales of Lee’s Nonviolence. World Environment and Island Studies 5(4): 283-296.



원문: 박헌명. 이문영의 비폭력과 현실적 이상주의. <최소주의행정학> 1(6): 1-2.

나는 이문영 선생님의 마지막 학부 지도학생이다. 1987년 봄 고대 행정학과에 입학했을 때 동기생이 65여명 되었는데, 가나다 순으로 학번을 매겼다. 절반을 나눠서 앞쪽에 있는 동기생들이 정년을 앞둔 선생님께 지도를 받도록 배정되었다. 그 앞쪽 절반의 거의 끝에 내 이름이 있었으니 마지막 지도학생이라 해도 과한 말은 아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지도교수와 “고대스러운” 사제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다. 많은 동기생들이 지도교수가 누군지도 모르거나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선생님 화갑기념 논문집 출간회에 가서 심부름을 하고, 동기생과 북한산 등산을 마치고 쌍문동 선생님 댁을 불쑥 방문하고, 현민 유진오 선생 빈소사건에 사용된 피켓을 만드는 일을 거들고, 다른 대학의 행정고시반 운영현황을 조사하여 선생님께 보고하고, <자전적 행정학> 원고를 타이핑해드린 것은 특별한 우연이자 행운이었을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감성이 풍부한 촌티나는 학생이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많으나 제대로 표현할 줄을 몰랐다. 중고등학교 시절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지냈기 때문에 생각한 것을 말로 제대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더욱 힘들어 했다. 하려는 말과 입으로 나온 말이 달라 종종 당혹스러워 했다. 생각은 많아서 터질 듯 쌓여만 가는데 마땅히 배설할 방법을 알지 못해 끙끙거렸다. 교과서에 있는 민주주의와 최루탄에 여기저기 흩어지는 현실은 너무나 멀어 보였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서로 맞지 않았다. 이러한 괴리에 화가 나고 그것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 화가 났다. 시한폭탄처럼 위태위태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지독한 혼돈과 분노와 좌절 속에서 전두환의 4.13호헌조치, 고대 교수들의 4.22 호헌 반대성명, 6.10 민주항쟁, 6.29선언이 이어졌다

나는 선생님의 <재무행정>을 수강하면서 무언가 깨닫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복식부기라는 돈셈 원리에서, 처음 30만원 목돈을 만들기가 더 어렵다는 대목에서, 처음에 들어온 30만원짜리 사람을 들볶아 대면 나중에 30원짜리도 안되는 폐인이 되어 나간다는 말씀에서(이문영 1991:198) 나는 실마리같은 것을 얻게 되었다. 물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전체가 아닌 몇몇 파편을 주워듣고 기뻐했을 뿐이다. 사실 선생님 말씀은 대개가 어려웠다. 나름의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뜬구름같은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나는 말씀하시는 것을 잘 듣고 다만 몇 마디라도 이해하려 애썼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까? 여러 번 곱씹어 생각했고, 가끔씩 늦게나마 그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똑똑한 학생이 아니었음에 틀림이 없다.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조차도 버거워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꾸준함”이 귀하다 말씀해주시고,『論語』學而篇에 나오는 “巧言令色 鮮矣仁”을 설명해주셨을 때 나는 많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었다. 정년퇴임식을 마치고 불쑥 내게 오셔서는 “박헌명의 정년은 언제지?”라고 물으셨다. 꽃다발 고맙게 받았다, 꾸준히 정진하라는 말씀을 그리 뜬금없는 질문으로 대신하셨으리라. 내가 가장 아끼는 선생님의 말씀은 <자전적 행정학>(1991: 22)에 적으신 다음 문장이다. 

“나는 나를 섭섭하게 한 이를 잊고 싶고--또 잊고도 있고--나에게 고맙게 한 이를 잊고 싶지 않다.” 

기억하건대 그 책을 쓰시기 전에도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나는 이 말씀이 마치 내가 한 말인 듯 느끼고 있다. 대학시절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체험한 것이기 때문이다.1) 아마도 내가 문장으로 적지 않았다 해도 같은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씀이 마치 내 생각이나 글처럼 그렇게 느껴졌을는지 모른다. 아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무슨 뜻인지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마침 그 비슷한 경험을 하고서 깨달음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섭섭하게 한 이를 잊고 싶다”

어쩌면 위 문장은 그냥 어떤 사람의 평범한 소망처럼 들릴 수 있다. 아무 생각없이 문자 그대로 읽는다면 그 속뜻을 알기 어렵고 별다른 감흥을 얻기도 어렵다. 선생님의 말씀이 늘 그러하듯이 그 독특한 맥락의 자락을 잡고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먼저 첫번째 문구를 살펴보자. 왜 나를 섭섭하게 한 이를 잊고 싶을까? 사소한 일을 가지고 일희일비하는 소인배가 아닌 대인배가 되기 위해서일까? 성인군자가 되어보기 위함일까? 아마도 정답은 내가 살기 위해서이다. 그 섭섭함을 마음에 담고 산다면 제명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섭섭함이 화가 되고 분노가 되어 궁극에는 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화병이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독재정권에게 참혹하게 당한 사람들이 대개는 오래 살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화병이었을 것이라고 선생님은 추측하셨다. 사람이 화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가. 그런 화를 마음에 담고 산다면 어찌 멀쩡하게 버텨낼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모진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임에랴...  

그런데 누가 섭섭하게 한 이일까? 생각컨대, 박정희나 전두환같은 독재자와 그 떨거지들이 아니다. 섭섭하게 한 자들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될 나쁜 짓을 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섭섭하게 한 이는 먹고 살려다 보니 독재자의 지시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른 평범한 공무원일 것이다. 지독한 고문과 탄압에 시달린 나머지 독재자에게 대항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억지로 협조하는 사람들이다. 더 가깝게는 민주화운동을 같이 했으면서도 기본 생각이 달라서 민주화 과실을 탐하여 일을 그르친 사람들일 것이다. 동지이기 때문에, 동지였기 때문에 섭섭하지만 그만큼 더 아픈 것이다. 

이렇게 나를 섭섭하게 한 이를 잊고 싶은 것은 아마도 그 분들의 처지를 인간적으로 긍휼하기 때문이다. “[내가 누려야 할] 최소의 것을 빼앗은 이에 대해서도 최소의 것이 부여되기를 바라는 인간 본연에 대한 흠모”가 있기 때문이다 (이문영 1986: 96). 또한 동지와의 합의를 중요시하고 동지를 비난하지 않으려는 의지이다. “동지들과 같이 일하다가 공은 동지들에게 돌리고 불리한 것은 자신이 담당”하기 때문이다(이문영 1996: 429).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최소주의일 것이다. 섭섭하게는 했지만 백번을 양보해도 그들이 나름대로 최소한을 지켰기 때문이다. 최대를 하지 않았어도 결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해야 할 것을 안하는 것보다 마땅히 안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 더 나쁘다(이문영 1996: 420). 즉, 무엇을 안하는 것이 무엇을 하는 것에 앞선다(404쪽). 조지훈 선생은 “사람은 안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다(이문영 1986: 329). 결국 나를 섭섭하게 한 이는 마땅히 안해야 할 짓은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무서울 때에도 그 최소한을 버리지는 않은 사람들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동아리에서 경험한 일을 떠올린다. 다수가 동아리의 목적에는 별 관심이 없고 어울려 노는 일(사교)에 몰두한다. 원래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외면을 당하고 비난을 받는다. 모두가 나처럼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화가 났다. 애초부터 합의한 일을 하자는 요구를 다수와 학번으로 무시하고 핍박하는 것이 문제였다. 우연히 여자 동기생이 일을 담당한 임원으로서 내 일에 관심을 가지고 걱정해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애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에 더 열심이었음이 분명하고, 그 관심이라는 것도 최소한 수준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래도 나를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최소한 동배임을 저버리지 않았다. 나는 눈꼽만치도 섭섭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 참으로 어려울 때에 그런 동배조차 없었다면 나 자신이 너무 서글퍼졌을 것이다. 섭섭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애의 최소한이 고마왔다. 은연한 애정을 느꼈다. 이 땅의 많은 “알뜰한 당신”들이 그 애처럼 지켜야 할 최소를 간직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나마 이 나라가 이 정도라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나를 섭섭하게 한 이를 잊고 그들이 보여준 최소에 감사한 것은 나를 번뇌에서 자유롭게 했고, 이성과 상식에 머물게 해서 지나친 선택(폭력)을 하지 않도록 했다. 

나는 선생님께서 적으신 “--또 잊고도 있고--”라는 표현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잊으려고 노력을 하셨나를 잘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섭섭하게 한 이를 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동지였다면 더 섭섭하고 잊는 일이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도 모두 잊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정말 그렇게 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정말 “지켜야 할 최소를 지키려 하는 최소주의자였다”(이문영 2008: 150). 아마도 김석중 사모님께서는 섭섭하게 한 이를 차마 잊지 못하셔서, 그만큼 원망이 깊어서 마음에 병을 얻으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석중은 ... 정권을 바로잡지도 못하면서 관직에 들어간 재야 동지들을 민주화 후에 강자에 붙어먹는 사람들이라고 매도해 왔다”(이문영 2008: 187).  

“나에게 고맙게 한 이를 잊고 싶지 않다”

이 문구는 앞 문구와 대조를 이룬다. 신세를 진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섭섭하게 한 이를 잊는 것보다 더 쉽다. 왜냐면 나에게 고맙게 한 이를 기억하는 것은 고통이 아닌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은혜를 베푼 것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사람의 기본 품성에 관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울 때 신세를 진 이를 잊고 살거나 오히려 배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왜 구태여 이런 상식에 가까운 말씀을 하셨을까? 

선생님에게 고맙게 한 이는 단순히 고마운 사람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시절에 利가 아닌 義로 이심전심이 된 사람들이다. 무서운 시절에 독재자의 감시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쌀을 보내주고 돈을 보태준 분들일 것이다(이문영 1991: 22). 그 도움 자체가 크지 않더라도 그 암울한 상황에서 박해를 무릅쓰고 손을 내밀어준 그 자체가 눈물나게 고마운 것이다. “사람의 진정한 값은 어려울 때 드러난다” (이문영 2008: 78). “한계상황에 사는 사람만이 그 최소마저도 상실된 상태에서의 존재를 음미할 능력이 있다”(이문영 1986: 96). 최소의 것을 빼앗겨본 자는 꼭 필요한 최소를 내어준 고마움을 차마 잊을 수 없다. 또 다시 선생님의 최소주의다.2) 가장 필요한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을 베풀어준 은혜를 최소한(갚지 못한다 해도) 잊지는 않겠다는 것 아닌가. 그만큼 선생님께서 참담하고 혹독한 세월을 치열하게 참고 견디어오셨다는 뜻이다.   

나는 동아리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일에만 몰두하는 행태를 비판했다. 회원들은 이런 나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고,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해 했다. 모여서 손가락질을 하고 비난을 쏟아냈고, 급기야 나를 쫓아내려 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지만 세상은 모두 나를 외면하고 배척하고 있었다. 이런 느낌이 얼마나 사람을 좌절하게 했던가. 공식모임에서 나는 마지막 발언을 마치고 모든 기운을 소진한 듯 자리에 앉았다. 어떤 미련도 기대도 갖지 않았다. 그때 평소에 과묵하던 선배 한 분이 걸어나와 차분한 어조로 발언을 하셨다. 그를 몰아세우기 전에 스스로 우리가 어떠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의 비판에 떳떳했는가, 성찰도 없이 대안도 없이 몰려다니며 사람 하나를 낙인찍어 쫓아내면 그만인가 그는 물었다. 냉정을 되찾아 모두가 반성할 것을 권고했고, 그는 책임을 느낀다며 상임위원 직을 스스로 사퇴했다. 이 최소한의 발언에 아무도 감히 토달지 못하였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냥 앉아만 있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비폭력과 최소주의와 자기희생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말이었음을 기억한다. 그후 나는 그 분을 나에게 고맙게 한 이로 알고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 그냥 고마운 이가 아니라 최소를 다투는 한계상황에서 어둠을 걷어내고 진리를 살려냈으니 가슴에 사무치게 고마운 분이다. 

“고-마-워...”

나는 2013년 12월 말 고대병원에 가서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힘든 고비를 넘기신 직후였다. 아무 말씀도 없이 내 얘기를 힘겹게 들으셨다. 편히 쉬게 해드리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려는데, 물끄러미 지켜만 보시던 선생님께서 내게 숨을 내쉬듯이 말씀하셨다. “고-마-워...” 나는 마지막 말씀임을 직감했다. 해드린 것이 없어서 항상 송구한 제자를 기억해주신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간절한 느낌으로 들었고, 끝까지 잊지 않으려 애쓰시던 모습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그 순간  정년퇴임식을 떠올리셨는지 모른다. 다른 선생님과는 달리 누구에게서도 꽃다발과 축하인사를 건네받지 못하셨다. 내 차례까지 올까 싶어 꽃다발을 안고 내심 초조했던 나는 얼마나 황망했던가.  

하지만 고맙게 한 이는 내가 아니라 선생님이셨다. 가장 고뇌하고 혼란스러워할 때 내게 한줄기 빛처럼 의지가 되어 주셨다. 비폭력과 최소주의라는 가르침은 군대와 외국생활에서 위기에 처했던 나를 지켜주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의미없는 숫자놀음으로 강자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해주셨다. 투석중인 상황에서도 이제 좋은 색시를 만나야 한다며 마음을 써주셨다. 돌이켜 보면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색시를 데리고 가서 인사시켜드린 것이 내가 가장 잘 한 일이었던 것같다. 근심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린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나는 물론이려니와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게 한 선생님을 나는 잊지 않으려 한다. 마지막까지 진솔하고 간절하셨던 바로 그 마음으로 말이다. 

끝주 


1) 중학교 국어선생님께서『論語』學而篇을 인용하시면서 曾子는 하루에 세 가지를 반성한다(吾日三省吾身)고 했는데, 너는 무엇을 반성하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단지 오늘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는가를 반성한다고 답했다. 어떤 연유로 그렇게 답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선생님의 비폭력과 최소주의와 맥락이 맞닿아 있음을 나중에 깨달았다. 남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해도 최소한 폐가 되지는 않겠다는...

각주 2) 선생님의 <겁많은 자의 용기> (2008)를 읽고 감동한 전라도의 한 치과의사가 선생님의 치아를 치료해 드렸다고 한다. 정신이 혼미해진 상황에서도 선생님은 그 여의사 일을 종종 말씀해 주셨다. 




원문: 박헌명. 나에게 고맙게 한 이를 잊고 싶지 않다. <최소주의행정학> 1(5): 1-2쪽

권위란 무엇인가? 20여년 전 직위가 높은 윗사람의 권위에 도전한 대가代價로 적어낸 반성문의 첫번째 문장이다. 많은 아랫사람들이 보는 데서 윗사람의 체면과 위신을 땅바닥에 패대기친 그 불경을 참회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떳떳한 마음으로 대의를 선택하기로 하고 나는 두번째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권위란 그 자리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황당한 반성문을 읽어본 어느 상급자가 혀를 끌끌 찼다. 반성문을 가장한 훈계문에 당혹해하면서도 차마 나무라지 못하는 심경을 그의 낯빛에서 읽었다. 나는 어쩌다가 이런 “불경스런 반성문”을 적었을까? 

무관심영역? 수용영역?

이문영은『인간 종교 국가』(2001: 388)에서 “바너드(Chester I. Barnard)는 1938년에 저술한 Functions of the Executive에서 하급자의 무관심영역(zone of indifference)를 말했다. ...  위사람이 마구 눌러대면 아랫사람이 무관심해지며(indifference), 윗사람의 명령을 받아들이는(acceptance) 영역이 한정된다는 말이다”라고 적었다. 이에 앞서 “윗사람이 아무리 설쳐도 아랫사람이 무관심하면 일이 안된다는 바너드의 말, ‘무관심영역’(zone of indifference)을 이어받아 ‘수용영역(zone of acceptance)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 시몬이다. 바너드는 윗사람이 명령을 내려도 그 명령을 아랫사람이 실천할 수 없는 명령이거나 그 명령의 실천이 아랫사람의 이해관계와 어긋나거나 그 명령이 조직의 목적과 어긋나면 아랫사람이 무관심해진다고 보았다”(47쪽)라고 설명했다. 

아마도 선생님은 “Indifference”를 문자그대로 무관심으로 해석해서 Barnard의 뜻을 조금 오해하신 것같다. 이 zone of indiference는 아랫사람이 무관심해지는 영역이 아니라 윗사람의 권위를 의심하지 않고 명령(의사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영역이다. 원문은 “[T]here exists a ‘zone of indifference’ in each individual within which orders are acceptable without conscious question of their authority” (Barnard 1968: 167) 로 되어 있다. 같은 맥락에서 Simon (1997)은 zone of acceptance를 설명하면서 “... whenever [a subordinate] permits his behavior to be guided by the decision of a superior, without independently examining the merits of that decision” (10쪽)과 “an area of acceptance in behavior within which the subordinate is willing to accept the decisions made for him by his superior” (185쪽) 라고 적었다. 

그러니까 수용영역은 명령의 적절성을 일일이 따질 필요가 없을만큼 합당한 것이어서 아랫사람이 군소리없이 그냥 명령을 받아들이는 영역을 말한다. 어떤 명령이 그 영역 안에 있는 한 아랫사람은 의심하지 않고 순수하게 그 명령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윗사람이 내리는 명령을 아랫사람이 받아들이는 정도를 순서에 따라 정렬하면, (1) 명백하게 받아들일 수도 없고 따를 수도 없는 명령, (2)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unquestionably acceptable)  명령, 그리고 (3) 그 중간선에 있어서 가까스로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명령이 있다(Barnard 1968: 168-169). 두번째 부류가 바로 수용할 만한 범위(range) 안에 있는 명령인데, 아랫사람은 그 명령이 무엇인지 상관하지 않는다 (윗사람의 권위를 의심하거나 정당성을 따지지 않는다)(169쪽).

그래서 Barnard의 zone of indifference (상관안하고 받아들이는 영역)은 Simon이 Administrative Behavior (1997)에서 표현한 수용영역(zone of acceptance)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1) 어차피 Barnard의 설명에도 acceptance가 핵심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인간 종교 국가』(2001)에 있는 표현은 “위사람이 마구 눌러대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명령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영역에서 벗어나게 되어 윗사람의 권위가 의심받게 된다는 말이다,” “윗사람이 아무리 설쳐도 아랫사람이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명령을 내려야 일이 된다는 바너드의 말,” “... 그 명령이 조직의 목적과 어긋나면 아랫사람의 수용영역을 벗어난 명령이기 때문에 아랫사람이 받아들이지도 따르지도 않는다” 정도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권위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권위란 무엇인가? Barnard (1968)는 권위를 “the character of a communication (order) in a formal organization by virtue of which it is accepted by a contributor to or ‘member’ of the organization as governing the action he contributes” (163쪽)로 정의했다. 사람들(아랫사람)의 동의를 얻어야 권위를 세울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명령이 그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1) 아랫사람이 그 명령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2) 조직의 목적과 불일치하지 않아야 하고, (3) 자신의 이해관계와 부합해야 하고, (4)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따를 수 있어야 한다(165쪽). 물론 권위는 개인의 주관이란 관점에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객관이라는 관점에서 조직 내에서 의사전달 체계(channels of communication)를 통하여 공식성 “acting officially”을 가지고 행사되는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163, 172쪽). 

요컨대, Barnard는 권위가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명령과 지시가 아니라 아랫사람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Golembiewski and Kuhnert 1994: 1210-1211). 권위가 자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상하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에, 단지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자동으로 명령이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이 받아들였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Fry 1989: 168). Barnard는 위사람에 방점을 둔 기존의 권위와 다르게 아랫사람의 관점을 강조했는데, 그의 견해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권위는 다듬고 가꾸는 것이다 

왜 나는 권위가 자리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적었는가? 당시 나는 Barnard (1968)과 Simon (1997)을 직접 읽지 못했다. 물론 강의시간에 zone of acceptance를 배웠음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누구보다 절실하게 그 의미를 느낀 것은 대학과 사회생활에서 얻은 경험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그 자리에 부여된 책임을 생각하기보다는 권위를 내세우는 것일까? 일을 잘하기 위해 권위를 사용하기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쓰는 것일까? 자신이 권위에 합당한 능력(지식과 기술)을 가졌는지를 따지는데 게으르고, 아랫사람을 무시하고 윽박지르는 데 부지런한 것일까? 일이 잘 되면 자기 공으로 돌리고 잘못되면 아랫사람 책임으로 돌리는 일을 어쩌면 그리도 잘하는 것일까? 결국은 명예롭지 못하게, 혹은 비참하게 자리에서 내려올 것이면서 끝까지 (자리에서 쫓겨난 뒤에도) 그 악습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조직을 망치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기면서도 반성할 줄을 모르는 것일까? 그런 사람들의 권위라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그들이 얼마나 무책임한 사람들인지를 생생하게 관찰하였다.   

Barnard (1968)는 자리에서 나오는 권위 (authority of position)와 관리자의 능력에서 나오는 권위 (authority of leadership)를 구분하고, 능력이 출중하지만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은 권위라기보다는 영향력(influence)을 가진 것이라고 했다 (173-174쪽). 비록 이론 에서 두 권위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을지라도 현실에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은 능력과 자리는 비례한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높은 자리에 앉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능력이 없는 자가 높은 자리에 갈 수 있는 확률은 낮다. 이렇게 평가와 상벌이 공정하면 조직 구성원들은 편안하게 일을 잘 할 것이고 조직의 성과는 높아질 것이다. 문제는 능력이 쳐지는 자가 분에 넘치는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거나,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그 능력에 맞는 자리에 앉지 못하는 경우이다. 멋대로 조직의 유인체계를 조작하여 편을 가르고 내 편에게 부당한 혜택을 베풀어 조직을 흔든다. 자원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한 조직은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개인의 이익을 탐하는 자들이 조직을 망친다.

권위가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은 자리에서 나오는 권위보다 능력에서 나오는 권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권위가 계서제로 운영되는 공식 조직에서 일어나는 현상인 이상 권위는 물론 자리(직위)에서 시작된다. 일을 잘 하기 위해 책임을 나누어 지는데(분업) 그것이 그 자리다. 권위를 위하여 자리를 만들고 권능 (법률상 능력) 을 주는 것이 아니다. 책임은 권위의 장식품이 아니다.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자리는 거기에 걸맞는 권능이 부여되고 권위는 높고 크다. 자리에서 시작된 권위(권능이라 하자)는 조직도표나 직무분석표에 나와있는 서류상의 권위이다. 실제 권위(자리와 능력에서 나오는 권위의 총합)는 그 자리에 오른 자가 어찌 하느냐에 따라 서류상 권위보다 낮아지기도 하고 반대로 높아지기도 한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의 지식, 기술, 도덕성, 체력, 언변, 글쓰는 능력 등을 어찌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실제 권위(의 크기)는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권위는 그 자리에서 주어진 서류상의 권능이라기보다는 그 자리에 선 사람이 다듬고 가꾸고 개발해나가야 하는 능력이다.  

권위는 능력이자 자원이다 

권위의 본질은 조직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다. 영향력이다. 또한 권위는 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돈이나 장비와 같은 소비 자원이 아니다. 쓰면 쓸수록 없어지는 그런 자원이 아니다. 잘 사용하면 늘지만 잘못 사용하면 줄어드는 그런 자원이다. 

Barnard (1968: 165, 167)가 지적한 대로 윗사람은 사려깊이 좌우를 살펴서 아랫사람의 수용영역에 들어갈 만한 명령(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단순히 서류상 적힌 권능을 행사한다면 시간이 지나도 권위는 크게 늘거나 줄지 않는다. 하지만 적절한 권능을 행사하여 사람들과 화합하고 조직의 일을 잘 해내간다면 권위는 늘어난다. 자리에서 나오는 권위든 능력에서 나오든 권위든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는 경우다. 권위 점수는 쌓여갈 것이고 “권위 계좌”의 잔고는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아랫사람의 수용영역은 넓어질 것이다. 그만큼 윗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아진다. 반대로 적절하지 않은 권능을 행사한다면 권위는 줄어든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수행할 수 없는 명령,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이해관계를 해치는 명령 등은 수용영역에서 벗어난다. 이런 정당성 없는 명령을 강제하면 당장은 어떨는지 몰라도 알게 모르게 권위는 허물어진다. 권위 점수가 깎이고 계좌 잔고가 줄어든다. 아랫사람의 수용영역도 쭈그러 든다. 윗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총알’이 없어진다.

평소에 권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윗사람은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런 윗사람이 어쩌다가 정당한 명령을 내린다 해도 아랫사람의 허용영역은 이미 좁아져서 퇴짜맞기 십상이다. 아랫사람은 그 명령이 정당한지 의심부터 할 것이고, 수행한다 해도 성의를 다하지 않을 것이다. 사용할 수 있는 잔고가 바닥난 윗사람은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던 소년 얘기처럼,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사람들이 더이상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평소에 권위 점수를 많이 쌓아두고 잔고를 넉넉히 채워넣은 윗사람은 좀 더 쉽고 여유롭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어지간 하면 아랫사람이 그 명령이 정당한지를 따지지 않고 성심성의껏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평소와는 다르게 덜 정당한 명령을 내린다 해도 수용영역이 넓고 벌어놓은 권위 잔고가 많기 때문에 아랫사람이 명령을 수행할 가능성이 크다. 윗사람이 자리와 능력에서 나온 권위를 모두 겸비한 경우 아랫사람은 수용영역 밖에 있는 명령조차도 따를 수도 있다 (Barnard 1968: 174). 물론 그만큼 윗사람의 권위 점수는 깎일 것이고 권위 잔고는 줄어들 것이다. 당연히 아랫사람의 수용영역은 좁아질 것이다. 

누가 불경죄를 말하는가? 

우리는 사극에서 왕이나 양반을 능멸한 불경죄를 묻는 장면을 종종 본다. 왕의 권위를 세우고 반상 법도를 반듯하게 해야 한다며 핏대를 세우고 아랫사람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멍석말이를 한다. 그런 장면 대부분은 윗사람이 떳떳하지 못한 경우다. 떳떳한 윗사람은 그 권위를 의심받을 만한 짓을 하지 않는다. 설령 자리에서 비롯된 권위가 부당하게 도전받았다 해도 그런 윗사람은 아량을 베풀고 꼭 필요한 경우에 정해진 절차를 온전히 따르는 방법으로 대응한다. 그러니 무거운 처벌을 내린다 해도 원망이 없고 억울함이 없다. 그 처벌조차 수용영역 안에 있기 때문에 누구도 옳으니 그르니 시비걸지 않는다. 정당하고 공정한 의사결정은 윗사람의 권위를 높일 뿐이다. 그런 윗사람은 스스로 권위니 불경죄니 하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 자체로 권위를 깎아먹는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대신 행여나 자신에게(자리가 아닌 관리자 능력과 처신에서) 부족한 것이 있었는지를 차분히 돌아보면서 반성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관찰하는 윗사람은 그 반대이기 십상이다. 어느 자리이든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모르는 철부지들이다. 한 자리를 꿰어차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이다. 팔뚝에 찬 완장이 마치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표식인 것처럼 우쭐대고 골목길을 누비는 자들이다. 그 자리가 주는 책임은 망각하고 자리에서 나온 권능이 모두인 것으로 믿고 법대로 하자고 한다.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들은 아무렇게나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아랫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바로 받들어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천진난만한 윗사람에게는 아랫사람의 수용영역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는 윗사람의 몫이지 아랫사람이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른바 “까라면 까”를 입에 달고 다니는 자들이다. 

이런 기고만장들은 평소 말과 행실이 비루한 자들이다. 권능만 내세우면서 거드름을 피우다 일이 잘못 되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다. 자리가 주는 권능이 아무리 높아도 이런 태도와 처신은 그 사람의 실제 권위를 크게 깎아먹는다. 지식과 기술과 언변이 아무리 좋아도 권위 점수를 벌거나 잔고를 불릴 수 없다. 아랫사람의 수용영역을 넓힐 수 없다.   

국회의 권위가 어쩌니 하면서 청문회에 출석한 참고인을 윽박지르는 장면은 익숙해진지 오래다. 그렇게 권위를 따지는 사람치고 멀쩡한 윗사람인 경우는 극히 희박하다. 대부분은 부적절한 언행으로 쓸데없는 언쟁을 불러일으킨 뒤 그 책임을 참고인에게 떠넘긴다. 소위 “갑질”이다. 청와대에서 걸핏하면 국회를 비난하고 국민을 탓한다. 민주공화국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거나 입법권과 사법권이 국회와 법원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행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을 통과시켜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판사가 판결을 내리기도 전에 죄를 규정한다. 자신이 진리이고 정답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모두 자기 중심으로 돌고, 또 그렇게 돌아야 한다는 정신줄이다. 한마디로 공화국에서 즐기는 “왕놀이”다.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그 어느 것도 “불경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믿는 순진무구이다. 자신이 앉아 있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비롯된 권능만 따지고 있다가, 일이 잘못되면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탓을 할 뿐이다. 지식이든 기술이든 깜냥이 안되는 자가 분에 넘치는 자리를 꿰차고 앉아 주어진 권능조차 무시하고 전지전능한 신처럼 세상을 굴림하려는 격이다.  

누가 권위를 허물었는가? 거울을 보라! 

모두 똑같은 정신줄이다. 권위가 아랫사람의 수용여부에 달려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앉아있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권위가 변화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다. 그 자리에 앉은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뼛속 깊이 깨닫는데 게으르고 권능만을 내세우는 자들이다. 그 자리가 제공한 권능만 믿고 기고만장하여 무슨 의사결정(명령)이든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아랫사람은 무조건 그 의사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확신하는 자들이다.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고 억압하고 탄압하여 아랫사람들의 신망을 잃을 자들이다. 권위 잔고는 0을 지나쳐 마이너스가 된다. 그래서 더 자신의 권위에 집착한다. 헛된 무리수를 반복하여 쉼없이 아랫사람을 못살게 들볶는 자들이다. 

과연 누가 그들의 권위를 허물었는가? 누가 그들의 권위 점수를 깎아먹고 잔고를 바닥내었는가? 그들의 명령에 다른 의견을 제시한 자들인가? 자신의 수용영역을 벗어난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은 아랫사람인가? 못난 윗사람들은 흔히 그런 아랫사람들을 잡아다가 “네 죄를 네가 알렸다!”며 호통을 친다. 하지만 그 “불경죄”는 기껏해봤자 자신의 책임을 피하려는 수작일 뿐이다. 권위를 훼손한 것은 아랫사람이 아니라 서류상 권위만 믿고 날뛴 윗사람 자신이다. 자신의 능력과 도덕성이 그 자리의 무게에 미치지 못해서 자리가 주는 권능조차 보존하지 못하고 다 까먹은 까닭이다. 백성에게 신망을 잃은 왕의 권위가 어떠한지는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 한양을 버리고 도망친 선조와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서울을 버린 이승만을 보라. 그런 못난 왕(혹은 왕노릇을 한)을 험하게 욕한다 한들 누가 백성을 탓할 것인가? 왕이든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스스로 거울을 보라. 거기에 권위를 갉아먹은 암종이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반성문에서 이런 내용을 적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비판을 하고 또 받아들이지 않아서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다면, 그런 권위는 내세울 가치조차 없는 것이라고. 만일 자신의 권위가 훼손되고 무너졌다면, 남이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런 것이라고. 다른 사람 탓이 아니라 스스로 못난 짓을 한 결과라고. 그러니 남탓을 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봐 반성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얼마나 합당하고 정당한 의사결정을 했는지,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협조를 구했는지, 얼마나 평소에 언행을 조심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이다.

수용영역과『 맹자』의「양혜왕」4장 2

아랫사람의 수용영역의 폭과 크기는 조직이 제공하는 대가가 조직구성원이 기여하는 노력과 희생보다 얼마나 큰 큰가에 달려있다 “... the degree to which the inducements exceed the burdens and sacrifices which determine the individuals’ adhesion to the organization” (Barnard 1968: 169). 또한 명령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력 “the sanctions which authority has available to enforce its commands”에 따라 결정된다 (Simon 1997: 10). 예컨대, 군대같은 조직은 강제력(처벌)이 강하기 때문에 일반 조직에 비해 수용영역이 더 넓다 (p.186).   

하지만 마피아나 야쿠자가 아니라면 일반 조직에서 권위라는 이름으로 아랫사람을 총칼로 겁박하고 주먹으로 때려서 일을 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군대에서도 군법과 규정에 따라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지 덮어놓고 아무 명령이나 내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Simon (1997: 10)은 “... the superior does not seek to convince the subordinate, but only to obtain his acquiescence”라고 적었다. 설령 부하가 상급자의 명령이 옳은지 그른지 확신할 수 없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묵인(acquiescence)이다. 상급자가 평소에 올바르게 행동하여 권위를 충분히 벌어놓았다면 전시에 폭탄을 안고 적진으로 뛰어들라는 명령도 부하들이 순응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1980년 5월 게엄령이 선포된 광주에서 공수부대 지위관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라고 지시한 것은 정당한 명령이 아니다. 어린 애들도 본능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일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명령이 아닌 장병들의 수용영역에서 한참을 벗어난 사실상 폭력이고 고문이다. 권위도 뭐도 아닌 그냥 살인마의 가혹한 강요일 뿐이다. 

어떤 자리에서 비롯된 권능과 강제력 같은 공식성 뿐만 아니라 관리자의 개인 능력에 따라서 아랫사람이 인정하는 수용영역이 달라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면서 나는 “(백성이) 즐거움을 못얻었다고 해서 그의 上을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며, 백성의 위에 있으면서 백성과 동락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不得而非其上者非也 爲民上而不與民同樂者亦非也)”라는『孔孟』「梁惠王」下 4장 2를 떠올리곤 한다. 이문영 선생님은 이 구절을『孔孟 』를 꿰뚫는 문장으로 보았다 (1996: 74, 293, 606; 2001: 70, 147). 나는 이 문장이 Barnard와 Simon의 수용영역과 맥락이 같다고 생각한다. 즐거움을 못얻었다는 것은 上이 제공하는 서비스(정치, 경제, 사회 등)가  民이 기대하는 최대치에 이르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民이 上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上이 民과 同樂하지 않는 것은 上의 최소치이고 同樂하는 것이 최대치이다. 그 최소치조차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다. 民이 上을 비난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上이 최소한 이상을 해야 할 영역이 있다. 그 영역을 벗어나 극단에 이르면 民이 난동을 부리는 것이고, 上이 패도질을 하는 것이다. 이러니 양극단을 경계하는 선생님의 최소주의를 참으로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끝주

1) 『인간 종교 국가 』(2001)에 나오는 “행태론 학자이며 경제학자인 시몬과는 달리 왈도는 정치학을 공부한 행정학자로서...”(436쪽)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Herbert A. Simon (1916-2001)은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고 정치학은 물론 경제학, 인공지능, 심리학, 컴퓨터학 등으로 학문 지평을 넓힌 분으로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Barnard, Chester, I. 1968. The Functions of Executiv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Fry, Brian R. 1989. Chester Barnard: Organizations as Systems of Exchange. In Mastering Public Administration: From Max Weber to Dwight Waldo. 156-180. Chatham, NJ: Chatham House. 

Golembiewski, Robert T., and Karl W. Kuhnert. 1994. Barnard on Authority and Zone of Indifference: Toward Perspectives on the Decline of Managerialism. International Journal of Public Administration17(6): 1195-1238. 

Simon, Herbert A. 1997. Administrative Behavior, 4th ed. Free Press.



원문: 박헌명. 2016. 권위란 무엇인가? Barnard 다시 읽기. <최소주의 행정학> 1(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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