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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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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이 지난19일 밤 광화문에 모인 60만 시민들을 울렸다. “평화 시위”를 염원한 그는 <상록수>에서 “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라고 토해냈다. 그의 입에서 느린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애국가>는 그의 말투처럼 어눌한듯 담담하나 비장한듯 장엄했다. 곧바로 이어진 <행진>과 어우러져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야수가 울부짖는 듯한 그의 <애국가·행진>은 시민들의 “떼창”으로 퍼져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며 두 팔을 벌릴거야. 에—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행진— 
하느님이 보우하사 하는 거야 우리들은
... 
우리나라 만세 하는 거야. 

OhmyStar의 김윤정(cascade)은 전인권이 허를 찔렀다며 애국가가 이렇게 비장할 줄 몰랐다고 적었다. 웬지 짠한 마음에 지난 해 어렵사리 구한 들국화 1집을 틀어본다.

전인권의 <애국가·행진>

전인권의 노래를 말하려는 것도 그의 높고 거친 쇠소리를 칭찬하려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의 노래와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눌하게 툭툭 던지듯 했던 말을 곱씹어보고 싶다. 전인권은 <걱정말아요 그대>에서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라고 노래한 뒤 <애국가>를 시작하기 직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싸우지 마세요, 절대로. 혹시 박사모가 한 대 때리면 그냥 맞으세요. 우리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 맞으신 분들 무지 많으세요. 그냥 박사모가 뭐라 그러면 네네 그러고 가세요. 세계에서 가장 폼나는 촛불시위가 되게 합시다. 에— 에— 에—” 

얼핏 들으면 우스개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말 속에 소정 선생님의 비폭력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것보다 더 쉽고 강렬하게 비폭력과 최소주의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정농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엽기獵奇에 가까운 박근혜 최순실 사건에 분노하여 길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이 따라야 할 원칙과 윤리를 말하고 있다. 박근혜씨의 거듭되는 패착敗着으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직전에 이른 상황에서 절실해진 필승전략이자 지혜을 담고 있다.   

“싸우지 마세요, 절대로”

먼저 “싸우지 마세요, 절대로”는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먹질 하지 말고 발길질 하지 말라는 얘기다. 쇠파이프를 들지 말고 화염병 던지지 말라는 얘기다. 이문영(1986)은 “일단 어떠한 경우에도—그러니까 돌을 던지도록 유도된 상황하에서도—학생들이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291쪽) “돌만 던지지 말라. 그리고 안할 것은 세상없이 무서워도 안해라”(294쪽)고 강조했다. 경찰이 확성기로 비아냥거리거나 물대포를 쏘면서 도발을 해온다 해도 벽돌을 깨거나 경찰차를 넘어뜨리지 말라는 얘기다. 비폭력으로 시민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구호를 외치라는 뜻이다.   

“때리면 그냥 맞으세요”

이 말을 듣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그냥 맞으세요”는 한마디로 비폭력으로 대응하라는 주문이다. 비폭력이란 “저쪽에서 때리더라도 이쪽에서는 말로만 대응하는 것”(이문영 2001: 246)이며 “통치자에게 폭력을 당하더라도 약자는 폭력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이문영 2008: 68-69). “폭력에 대신하는 것이 어차피 폭력일 수는 없다”(이문영 1986: 290). 그래서 “폭력의 반대어는 말을 계속하는 일이다”(이문영 1986: 290, 2001: 105, 246).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록 정부가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이에 말려들지 말고 비폭력의 길을 가야 한다”는 점이다(이문영 1986: 289). 약자가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강자인 통치자를 섣불리 건드려 강경책을 강화하게 하는 미숙하고 불완전한 대응책”이다(이문영 2008: 59). 이러한 어설픈 약자의 폭력이 난동이다. “난동이란 승리에의 접근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의 강경화에 구실을 주는 단순하고 감정발산적인 폭력행위를 말한다. 난동은 따라서 참여의 폭이 좁든가 승리를 향한 전략 전술면에서의 계산이 부족한 행동이다”(이문영 1986: 297). “벌거벗은 힘의 행사를 민이 하는 것도 역겨움을 준다. 비폭력인 강경이 폭력인 강경에 쫓기는 민중운동은 성공하기 어렵다”(이문영 1986: 81-82).

누가 때리면 그냥 맞으라니 얼마나 허무한 개그인가? 한술 더 떠서 “맞[은]분들 무지 많[아]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심하게 농담던지듯 내뱉는 전인권씨의 이런 말투에 오히려 더 강한 호소력이 있다. 얼핏 무기력하게만 들리는 이 말은 같은 날 서울역에서 박사모 무리들이 쏟아낸 섬뜩한 저주(빨갱이, 종북, 좌파 총살 등)보다 몇 백배 몇 만배 더 강하게 들린다. 무심한 듯 툭툭 던진 조용한 몇 마디가 분기 탱천撐天하여 질러대는 박사모의 돼지 멱따는 소리를 뒤덮고 있으니 말이다. “이 모든 절제가 무기력이 아니라 기다리는 힘이며 성장하는 힘이며 폭력보다 강한 힘이다”(이문영 1991: 19). 그래서 이문영(2001)은 “비폭력은 약자의 품격을 높이는 행위”라고 말했나 보다(149쪽). 

행진이라는 “시위“

행진이라는 “시위”는 맞으면서도 옳은 말을 계속하는 것이다. “비폭력이란 아무일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 따라서 비폭력은 비폭력 투쟁을 뜻한다”(이문영 1986: 294). “때리는 것인 폭력의 반대는 매를 맞으면서 말을 하는 것이지 맞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이문영 1991: 118). 주권자로서 대리인인 통치자에게 합당한 요구를 하는 일이다. “순수한 민주화운동이란 쿠데타 정부의 이성이 감히 거절하지 못하는 민주화 요구를 하여, 그 대가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이문영 2008: 615-616). 이 “민주화 요구”가 옳은 말이며 합당한 진리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통치자가 정부조직과 공식절차를 무시한 것은 법을 따지기 전에 그저 황당할 일이다. 말하자면 “창조정권”의 “창조통치”다. 의도야 어쨋든 그 결과가 공익이 아닌 오직 통치자 측근의 사리사욕을 채웠다. 박근혜씨가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음에도 검찰의 수사를 회피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통령 노릇을 재개하였다. 주권자의 역린을 제대로 거스른 것이다. 두 주 연속으로(12일과 19일) 백만명이 촛불을 들었고, 한국 Gallup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씨의 지지율이 3주 연속 5푼(5%)에 머물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박근혜씨는 정치로든 법으로든 용서받을 수 없음이 확실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과 여야가 박근혜씨의 퇴진을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 주권자로서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행동이다. “통치자도 가지고 있는 이성(理性)이 감히 거절하지 못하며 이 이성을 환기하는 말”이다(이문영 2008: 66, 80). 역대 최저치인 지지율 5푼임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외면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며 대통령 노릇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부질없는 짓이다. 박사모 무리들의 집착은 사이비 신도를 연상케 한다. 노무현탄핵소추안을 날치기할 때 노무현씨의 지지율을 빗대서 온갖 저주를 퍼부었던 자들이 이제와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니 기가 찰 노릇이다. 기회주의자들의 진면목이 이런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촛불과 장승 

촛불시위는 화염병과 돌과 쇠파이프로 상징되는 폭력시위와 대조된다. 우리나라에서 촛불시위는 2002년 미국 장갑차에 깔려 죽은 “미선 효순이 사건” 이후에 보편화된 것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전화나 LED 촛불도 사용되고 있다. 방송과 사진으로 보는 촛불시위는 말 그대로 장관이다. 수많은 별들이 빛나듯 조용히 반짝거리다가 어느 순간 바람이 보리밭을 쓸고 가듯 요동치는 모습이라니... 촛불이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은 폭력과는 거리가 먼 추모, 염원, 명상, 평화 등이다. 그래서 촛불은 비폭력을 상징한다.  

이문영(1980)은 “명치유신 때까지도 무인통치를 해 왔던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장승은 비폭력문화의 상징”(383쪽)이라고 적었다. 장승은 (1) 솟대처럼 경계를 정하며, (2) 남녀가 같이 있어 평화스럽고, (3)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을 세워 인간화된 군대와 신장된 여권을 시사하며, (4) 장군인데도 전혀 무기를 들고 있지 않고, (5) 갑옷이 아니라 혼례복을 입고 있고, (6) 나무(쇠와 금이 아니라)로 만들어져 집 밖에서 눈비바람을 맞고 서 있다(제도화 부작용이 없다) (이문영 1980: 383-384). 이런 장승은 참는 것이 특징인데, “참는다는 것은 포악함에 시달리는 사람이 갖출 덕목의 모두이며 비폭력문화의 정상”이다(384쪽). “나무와 같이 쉽게 소멸해 버리는 육체를 지닌 인간이 참을 때에 그 참음이 덕으로 정신화”한다 (384쪽). 그래서 참는 것은 비폭력과 같은 말이다(이문영 1986: 336). 결국 장승=평화=인내=비폭력이다. 촛불은 설령 화가 나더라도 마음을 다스려 질서와 평정을 되찾자는 것이다. 참고 견디자는 약속이다. 평화를 갈구하는 몸짓이다. 

“가장 폼나는 촛불시위” 

전인권은 “세계에서 가장 폼나는 촛불시위”를 만들자고 했다. 이문영은 평소 한국의 반체제 운동이 다른 나라의 운동과 다른 특징은 비폭력에 있다고 했다(1986: 318, 344). 수많은 민주화운동가들이 “상대방[통치자]의 뺨 한번을 때려보지 못하고 자기희생”을 했다고 강조했다(1980: 386). 전인권은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 맞[은]분들”이라고 했다. 장기 집권한 포악한 정권이 무너진 것은 “총을 쥔 정권을 향하여 ‘말함’이라는 비폭력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승리였다”(이문영 2001: 88). 이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전인권의 “폼나는 촛불시위”와 똑같은 맥락이다. 가장 무섭고 어려울 때에 “정의에 입각한 말함”(88쪽)을 고집하다 군부독재정권에게 매맞은 선생님의 마음일 터이다. 이런 까닭으로 나는 가수 전인권을 다시 보게 되었다. 

시대정신과 과거 현재 미래의 감정

이문영(1991: 162-165, 2001:79-84)은 시대정신을 설명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영원(통합 시간)이라는 시간이 있고, 각각의 시간에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고 했다. 과거는 행동의 준칙과 대안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흠모와 그리움을 갖는다(이문영 1991: 163). 현재는 과거지향 운동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통치자의 압제에 저항해야 하기 때문에 한숨을 짓는다. 미래에는 체제 밖의 사람들도 꿈을 꾸면서 역사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사람은 과거를 그리워하며, 현재에서 이 그리운 과거와 현재를 견주어 한숨짓고, ... 미래에는 그리움과 한숨이 없기를 바라며 꿈을 꾼다”(이문영 2001: 83). 영원이란 시간은 그리움, 한숨, 꿈을 단번에 느끼는 황홀경(감동)을 경험한다. 

전인권의 <행진>에서도 과거, 현재, 미래가 있고 그리움, 한숨, 꿈이 보인다. 과거가 어둡고 힘들었지만 과거를 사랑하고 추억한다. 미래는 항상 밝을 수도 없고 힘도 들겠지만 (꿈이 있어서) 기꺼이 비를 맞고 눈을 맞는다. 그래서 매일 아침까지 그대(동지)와 노래하는 것이다. 下野할 때까지 매일 시위하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
나의 미래는 항상 밝을 수는 없겠지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거야
...
난 노래할거야 매일 그대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조동진의 <제비꽃>도 마찬가지 시간과 감정을 보여준다. 처음 만났을 때는 머리에 제비꽃을 꽂고 새처럼 날고 싶은 작은 소녀였고, 다시 만났을 때는 이마에 땀방울을 달고 작은 일에도 눈물을 흘리는 야윈 너였고,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는 한밤중에도 깨어있어 창 너머로 그윽한 눈길을 보내고 싶은 평화로운 너였다는 이야기였다. 소정 선생님의 시대정신과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장필순이 부른 <제비꽃>을 떠올리곤 한다. 

끝까지 비폭력이어야 한다


지금 정국이 순간순간 요동치고 있다. 벌써 몇 주째 시민들은 당혹과 실망과 분노로 아파하고 있다. 하지만 폭력이 유혹해도 절대 넘어가면 안된다. 절대 지쳐서도 안된다. 망중한에 좋은 노래와 말씀을 음미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기운을 모았으면 한다.  



원문: 박헌명. 2016. 전인권의 <행진>과 비폭력 촛불시위. <최소주의 행정학> 1(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