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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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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 전부터 한 이름이 언론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명태균씨를 김명신와 윤석열에게 연결했줬다는 함 아무개 얘기다. 그는 오래 전부터 논문표절이니 알선수재 등으로 비난받다 직장에서 쫓겨났다. 그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국정농단 한 가운데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놀랐다가 어이가 없다가 “또...” 라며 탄식했다. 국내외 유명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그가 지나온 길이 고작 거간꾼이나 비선인가 싶어 자괴감이 든다.

B급 이론과 수구기득권의 운명

지난해 매불쇼에 출연한 유시민씨가 B급 이론을 소개했다. A급인 상급자는 하급자로 A급을 쓰지 B급을 안쓴다. B급인 상급자는 절대로 A급을 데려다 쓰지 않는다. 자신이 B급인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B급이나 C급을 데리고 논다. C급은 다시 C급이나 D급을 상대한다. 결국 조직은 점차로 F급으로 퇴화된다. 일이 잘될 턱이 없다. 게으르면서도 분수를 모르는 낙오자와 패배자들끼리 놀다가 망한다. 어쩔 수 없는 B급의 운명이다.

공자는 사사로운 뜻이 없고, 기필코 하겠다는 마음이 없고, 집착하는 마음이 없고, 이기심이 없었다(子絶四毋意毋必毋固毋我). 이에 반해 수구기득권은 사사로운 뜻으로 일을 하고, 기필코 일을 해내야 한다며 친일·쿠데타·독재를 가리지 않고,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계속 고집을 부리고, 결국은 자기들의 私利를 취한다(1996: 391). 이들은 잘못을 고치라는 소리는 듣지만 실제 고치지는 않는다(392쪽). 말잘듣는 하수인을 데리고 일하고, 나이많고 덕있는 이를 만홀히 여긴다(396쪽). 품격이 있고, 지식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을 거느리지 못한다. 재주를 깎아내리거나 충심을 “꼰대”의 잔소리로 후려치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들끼리도 돈을 공평하게 분배하지 않고, 하수인까지 못살게 굴어 잇속을 채운다(397쪽). 자리의 높고 낮음이 사람의 귀천이라 착각하는 자들이다. 상하간 존중이 없다. 정권의 민낯이다.

사실 능력의 급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윗사람이 사리분별이 멀쩡한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자신의 재주를 알고 분수를 지키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있을 뿐이다. 경우가 바른 자들은 A급이면 A급으로 살고 B급이면 B급에 머문다. 그러면서 꾸준하게 배우고 익혀 일신우일신하는 자들이다. 경우가 바른 상급자는 재주가 출중한 사람들을 기꺼이 삼고초려한다.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義와 합리성으로 기강을 세운다. 자신의 재주가 B급이어도 멀쩡한 A급을 데려다 쓴다. 물론 멀쩡한 C급이나 D급도 역량에 맞게 일을 준다. 경우없는 하급자라면 A급이든 B급이든 버텨내기 힘들다.

하지만 A급이면서 A+를 노리고, B급이나 C급이면서 A급 행세를 하면 경우없는 짓이다. 지식이나 재물 여부와 관계없이 분수를 모르는 천한 자들이다. 술수와 거짓으로 부당한 기회를 노리는 비루한 자들이다. 하물며 F급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A급 자리를 차지한다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염치를 모르는 자들이 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사람을 상하게 하고 사회를 망가뜨린다. 이들의 난동은 관료제의 물을 흐리고 기강을 무너뜨린다. 품격과 지향이 미치지 못하면 아무리 재주가 출중한들 무슨 소용인가.

경우없는 분자들의 궁상

멀쩡한 자들은 쉽게 나서지 않지만 경우없는 자들은 분수를 모르고 나대는 것이 세상 이치다. 잇속으로 서로 뭉치고 흩어지는 자들이다. 특히 요령이 있는 자들은 자리를 꿰차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몸무림을 친다. 입닥치고 한번 떠보려는 자들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과격분자, 이들 옆에 빌붙어먹는 분열분자(배신자), 돈이나 챙기고 사는 부패분자들이다(2008: 588-589). 대놓고 친일본색을 드러내는 자, 임시정부와 광복과 강제징용을 말하지 못하는 자, 공복이 되어 서슴없이 국민을 비하하는 자, 양심을 속이고 자리를 지키려 횡설수설하는 자... 음흉한 공작과 달콤한 거짓말은 밤하늘의 폭죽처럼 현란하다. 기회주의 수구기득권을 해체시키는 것이 이리도 힘들다.

드문드문 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보면서 종종 속이 불편해진다. 한덕수(국무총리), 추경호·최상목(경제부총리), 박순애·이주호(교육부), 이종섭·신범철·임기훈·여인형·임성근(국방부), 원희룡·박상우(국토교통부), 김문수(노동부), 박보균·유인촌(문화체육관광부), 한동훈·박성재(법무부), 박민식(국가보훈부), 조규홍·박민수(보건복지부), 김현숙·김행(여성가족부), 박진·조태열·김의환·박철희(외교부), 김영호(통일부), 이상민(행정안전부), 한화진(환경부), 최재해·유병호·최달영(감사원), 이원석·심우정(검찰청), 윤희근·김찬수(경찰청), 백경란·지영미(질병관리청), 정진석·윤재순·이시원(대통령실), 김용현·김태호·신원식(국가안보실), 이배용(국가교육위원회), 김홍일·유철환·정승윤(국민권익위원회), 안창호·김용원·이충상(국가인권위원회), 김채환(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김효재·이동관·김홍일·이진숙·김태규·조성은(방송통신위원회), 류희림·이현주·김흥수(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백선기·한정석(선거방송심의위원회), 김형석(독립기념관), 김낙년(한국학중앙연구원), 박지향(동북아역사재단), 김광동·황인수(진실화해위원회), 박민·박장범·강규형(KBS), 정기석(국민건강보험공단), 민영삼(방송광고진흥공사), 최철호(시청자미디어재단)... 답이 없다.

아, "하암..."

맨처음 건진이나 천공이 언급될 때에는 그렇고 그런 계집과 속없는 사내를 생각했다. 명씨가 등장하여 경우없는 자들의 속살을 까발리자 헛웃음이 나왔다. 함씨가 그를 미륵보살로 불렀다는 대목에선 고개를 떨궜다. 아, 그 부류였구나. 이런 자들을 스승이니 선생이니 박사라며 매달리는 허접들이라니... 끼리끼리 유유상종이라고 했다. F급이어도 한번 떠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자들이다. 관상을 살피고 사주를 보고 점괘를 풀고 해몽을 하고 연줄을 찾는다. 신분을 숨기고 표절하고 위조하고 조작하고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막사는 인생들의 궁상이다. 

 

인용: 박헌명. 2024. B급 이론으로 풀어 본 수구기득권의 운명. <최소주의행정학> 9(12): 1.

오늘 아침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했다. 박빙이라는 예측이 무색한 완승이었다. 연임에 실패한 뒤 성추행 입막음, 기밀문서 유출, 의회난입 등으로 벼랑 끝에 몰렸던 그가 천신만고로 기사회생한 것이다.

트럼프의 선동질과 과격한 미국 유권자

트럼프가 배설하듯 쏟아낸 거짓, 막말, 혐오, 저주가 삶에 지친 미국인들을 흔든 것일까? 불법 이민이든 낙태든 러우전쟁이든 뭐든 간에 유권자들은 “닥치고 미국우선주의”를 선택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녹록치 않았던 탓일까? 고난을 참지 못하고, 속임수에 넘어가 정신줄을 놔버리고, 과격하게 난동을 부린 것일까? 명백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자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도덕, 금욕, 근면으로 미국을 세웠던 청교도는 스러지고 있는가? 아님 그만큼이나 바이든-해리스 행정부가 잘못한 것일까?

적반하장인 “장님무사”의 민낯

오전 10시에는 윤석열씨가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고 했다. 국민께 진심어린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얼버무리면서 어찌 되었든 사과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 3년차의 자신감일까? 할테면 해보라는 자세로 기자, 야당, 국민에게 훈계질을 했댔다. 습관성 반말에 “미쳤냐” “무식한” “까지고” “인마” 등을 거침없이 내뱉았다. 어눌하지만 기껏 우리말로 질문한 외신기자를 못알아듣겠다며 생깠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 건달의 걸쭉함이다. 말이든 손짓이든 태도든 그냥 추접하고 상스럽다.

정말 5분을 참고 듣기가 어려웠다. 알맹이없는 횡설수설이었다. 야당이 박수를 안쳐서 시정연설을 안갔다느니, 검사 때 쓰던 전화로 많은 사람들과 자유롭게 통화했다느니, 국어사전을 새로 써야 한다느니, 집사람이 제대로 사과하라고 해서 나왔다느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밴댕이 소갈딱지이고, 법과 무관하게 막살아온 제멋대로이고, 마누라에게 쩔쩔매는 등신이라는 것 아닌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모른다. 사실과 거짓, 공과 사, 공식과 비공식을 구분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 그때그때 아무렇게나 둘러댈 뿐이다. 건들건들 성의도 없다. 세상이 자기 주위로 돈다는 다섯살배기의 아집과 유치함이다.

기껏 사과해 놓고 뭐가 잘못인지 알려달라니 황당하다. 초상집에 가서 밤새도록 구슬프게 곡을 해놓고 아침에 누가 죽었나고 묻는 겪이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모지리의 뚝심이자 용맹이다. 얼치기 “앉은뱅이 주술사”에게 바보취급을 당하면서도 찍소리 못하는 “장님무사”가 감히 부부싸움을 하겠다니... 순진한 집사람의 전화기를 보자고 할 배짱도 없는 사랑꾼이 꼴에 사내랍시고 앙탈을 부리는가? 술취한 공처가의 주사인가? 반항인가? 철딱서니없는 “낭만자객”의 기개가 가상하다.

민심을 속인 나무꾼의 도끼질

소정 선생님(2001)은 이솝우화를 인용하여 악한 통치자는 백성에게 아첨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급하면 구걸이라도 해서 권력을 취한 뒤, 그 권력을 도구삼아 백성을 해친다고 했다.

"하루는 한 사람이 손에 도끼를 들고 숲에 와서 하는 말이, 뭘 하나 만들고자 하니 나무들에게 작은 가지를 달라고 말한다. 나무들은 마음이 좋아서 그에게 나뭇가지를 준다. 그 준 나뭇가지를 갖고서 이 사람이 뭘 만들었는지 아는가? 나뭇가지로 도끼의 손잡이를 만들었고, 이 사람은 이 도끼로 나무들을 차례로 잘나냈다. 투표할 때마다 유권자의 의식수준이 논의되는 것도 다 교묘한 말에 속아 도끼자루 할 것을 나무꾼에게 내주지 말라는 이야기다"(2001: 139).

윤씨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지친 시민들을 선동했다. 문재인 정부가 무식한 삼류 바보들을 데려다가 나라를 망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를 장악한 운동권이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자신이 정의를 세워야 했던 검찰총장이었음을 알고는 있는지... 확정적 중범죄자인 야당 후보와 토론하는 것이 어이없다고 했다. 말폭력에 가까운 과격한 발언으로 민심의 분노를 자신의 물꼬로 끌어들였다. 수많은 질문에 엉뚱한 동문서답이나 버럭으로 대꾸했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도 않고 그냥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명박의 “부자되세요”나 박근혜의 “국민행복시대”와 같이 뜬구름잡는 소리였다.

하지만 윤씨가 쏟아낸 막말은 자신에게 저주가 되어 돌아왔다. 삐뚤어진 이념에 사로잡혀 미국과 일본의 바짓가랑이에만 매달렸다. 몰빵 외교는 실속은 커녕 호구가 되어 비웃음만 샀다. 홍범도 장군 폄훼, 일제징용 배상금 변제, 역사교과서, 사도광산 문제 등에서 친일 본색를 드러냈다. 주요 공직을 전리품처럼 종일·종미, 검사, 선후배, 이웃주민, 첨꾼 등으로 채웠다. 법사·보살이 설치니 일이 잘될 리가 없다. 문정권에서 잘 나가던 수출은 고꾸라졌다. 무역적자가 불어났다. 서민들은 고물가와 고금리로 아우성인데 기업과 부자들의 세금은 깎아주었다. 병사월급으로 장난치다 장교와 부사관을 흔들었다. 남북긴장을 조성하더니 대북전단을 오물풍선으로 돌려받았다. 게엄령, 친위쿠데타, 살상무기지원, 우크라이나 파병까지 의혹 투성이다. 무리한 의대생 증원으로 교육과 의료가 난장판이 되었다. 국민을 갈라쳐 네 편을 공산·반국가세력으로 몰아 때려잡을 테세다. 그들만의 공정과 상식와 통합이었다.

깨어나고 단결하여 끌어내려야 한다

이태원에서 벌어진 10.29 참사, 해병대 채상병 사망,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김씨의 명품백 수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대통령 관저 이전... 사건이 사건을 덮고 윤씨가 몽니를 부리고 있다. 김대남씨와 명태균씨는 김씨와 윤씨가 살아가는 법을 증언하고 있다. 장님무사가 밤낮을 헤매는 동안 주위에서 알뜰하게 해먹고 있다는 소리다. 이제 잇속이 틀어지니 서로 물고 뜯고 하는 것이다. 지지율이 1할 대로 내려앉았지만 끝까지 버틸 각오다. 이명박과 박근혜처럼 그 천한 자질과 됨됨이를 알고서도 국민 스스로 도끼자루를 쥐어줬다.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포악한 나무꾼의 도끼질에 속절없이 잘려나갈 것인가. 자, 이제 어찌할 것인가. 

 

인용: 박헌명. 2024. 트럼프의 기사회생과 장님무사의 도끼질. <최소주의행정학> 9(11): 1.

얼마 전 아파트 두레기(승강기)에 시뻘건 글씨가 적힌 인쇄물이 붙었다. 두서도 없이 1, 2, 3... 으로 적고 밑에다 손글씨로 이름 석자를 갈겨썼다. 주소도 연락처도 없다. 떼면 재물손괴로 처벌받을 수 있다면서 으름장이다. 맥락도 없고, 문장도 형편없다. 배배꼬인 심술만 덕지덕지 붙어있다. 한마디로 “나 승질나써, 재 시러”였다. 사실여부는 따지기도 싫다. 짖궂은 낙서가 아니라 막돼먹은 악당이 사람들이 오가는 담장에 똥칠을 해놓고 튄 것이다.

토착왜구들의 아무말과 어거지

이런 악당은 차라리 귀엽다. 주변국의 지도자들을 보라. 트럼프, 푸틴, 시진핑, 아베... 제왕(대통령) 놀이에 푹 빠져있는 김명신, 숙취인듯 반국가세력을 운운하는 윤석열, 그들이 임명한 장차관들... 국회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은 공직자들. 국가안보와 수사를 들먹이며 자료제출과 답변을 거부하는 공복들.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자들. 국회의원을 윽박지르고 뒤에서 낄낄대는 자들. 차마 친일을 부정하지 못하고 멍한 눈으로 동문서답하는 자들. 임사단장은 똥별이 되었고 방통위는 빵통위가 되었다.

이들의 주장은 양지만 쫓는 기회주의자의 고백이다. 신념을 팔아먹은 자들의 과시용 간증이다. 일제 강점기에 모두가 일본국적이었다(사람취급도 못받았다), 일제의 곡물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었다(원하지 않았다), 일제 식민지 덕에 근대화를 이루었다(일제를 위한 일이었다), 광복이 아니라 건국이다(개천절이 건국절이다). 천황폐하의 항복을 의미하는 광복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안중근과 김구는 황은皇恩을 배신한 반역도이자 테러리스트이다. 오매불망 끗발있는 일본인이 되고 싶었고, 황민皇民으로서 당연히 곡물과 군수물자를 바친 것이고, 황군皇軍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남의 자식들을 징용으로 성노예로 보냈을 뿐이다...

또 상해임시정부는 국민, 영토, 주권 어느 것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니 정부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감히 대일본제국에 맞선 불경스런 집단아닌가. 이런 식이면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쓸어버리지 못했고, 헌법에 나와 있는 한반도를 영토로 확보하지 못했고, 북한 인권을 들먹이면서도 주석궁을 압수수색조차 못하고, 작전통제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지금의 대한민국은 대체 뭐란 말인가. 자존自存과 자존自尊으로 살아가는 국민, 온전한 영토, 멀쩡한 주권을 갖추지 못했으니 국가라 할 수 있는가? 입에서 나왔다고 다 말이 아니다. 도대체 누가 어디서 이런 기라성같은 토착왜구들을 발굴했는지... 뼛속까지 왜놈 본색인 기회주의자들을...

교양있는 대화와 논쟁으로 대적하라

지난 8월 21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 오프라 윈프리(Oprah G. Winfrey)가 등장하였다.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대화쇼(talkshow) 달인으로 성공한 흑인여성이다. 나는 윈프리의 지지연설을 듣고 무릎을 쳤다. “We know all the old tricks and tropes that are designed to distract us from what actually matters, but ... and they require adult conversation. ... because civilized debate is vital to democracy...” 철지난 속임수와 말공작이 우리들을 문제의 핵심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한다. 필요한 것은 성숙한 어른다운 대화다. (야만스런 말싸움이 아닌) 교양있는 논쟁은 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토착왜구들의 배설에 가까운 궤변과 막말이 “old tricks and trops”이다. 종북, 주사파, 공산주의, 반국가세력 등 끝간데없는 빨갱이칠이다. “흘러간 주문呪文”도 신물이 날 지경인데, 한물 간 자들이 돌아와 철지난 사술邪術을 부리고 있다. 일제 강점기 선조들의 국적이 일본인 것을 몰랐냐고 당당하게 훈계하는 변절자,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는 국가안보 책임자. 어떻게든 천황의 황민으로 승천하려는 왜구의 발악질이다.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법제사법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벌어진 딴죽걸기를 보라. 쟁점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건다.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도록 난장판을 만든다. 성숙한 대화와 논쟁을 저지하는 육탄방어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따져보려는 의욕마저 무참하게 꺾는다. 청중들은 악다구니같은 횡설수설에 어질어질하다가 분별력이 흐려진다. 듣기도 쳐다보기도 싫다. 그 놈이 그 놈이라며 자포자기한다. 감언이설에 통달한 기회주의자들에게 유리한 판이 된다. 공작이 성공하는 순간이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자가 장관이 되고, 환경을 보호할 의지가 없는 자가 환경부를 지휘하고, 방송통신에 문외한인 검사가 방통위를 맡고, 임시정부와 광복이 탐탁찮은 자가 독립기념관장이 된다. 조직은 방향감각을 잃고 유인체계가 뒤집힌다. 지향이 다르니 하는 일마다 엉뚱하고 황당하다. 일을 모르니 무엇을 해도 되는 일이 없다. 소신있게 일하는 자는 좌천이고 말만 잘듣는 자는 영전이다. 근본없는 낙하산이나 앞잡이가 완장을 차고 설친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된다. 하지만 책임지는 자는 없다. 관료제가 급속도로 와해된다. 토착왜구의 숙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적들의 난동에 맞서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윈프리는 또 힘주어 말했다. “[T]he work is not done, the work will never be done because freedom isn’t free... It requires commitment. ... every now and then it requires standing up to life’s bullies.”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따라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여정은 끝나지 않았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언제나 인생 최대의 악당들과 당당히 맞서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영원히 완성될 수 없다. 시민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찾아내서 수정해야 하는 과정과 절차일 뿐이다. 민주주의 적들은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고 있다. 이들의 난동에 맞서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적들의 요설에 흥분하면 안된다. 말폭력으로 맞대응하면 말려드는 것이다. 정신줄을 잡고 참아야 한다. 차분하게 사실과 논리로 말하고, 성숙한 토론으로 적들을 제압해야 한다. 아무말과 어거지가 난무하는 판에 강유정, 김영환, 이소영, 이해민, 임광현, 임미애, 최기상의 이성과 상식이 대안이 되길 바란다.

 

인용: 박헌명. 2024. 토착왜구들의 난동과 교양있는 논쟁. <최소주의행정학> 9(10): 1.

지난 5월 세네갈의 수도 Dakar에 출장을 다녀왔다. 지도를 보면 서아프리카 가장 끝에 튀어나온 곳이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 기반시설은 부족하고 민생은 힘겨워 보인다. 오랜 시간 고난을 겪어온 시민들의 얼굴이 외려 밝고 온화하다. 죄지은 것이 없으니 발을 쭉 뻗고 자는 선량들일까?

고레섬의 노예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카는 식민지 쟁탈전 시절 미국으로 가는 최단 항로를 제공했다. Westernmost Point of Afro-Eurasia에 가면 남쪽과 북쪽의 파도가 부딪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런 요지에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차례로 들이쳤다. 다카에서 남동쪽으로 3km 떨어진 고레(Goree)섬을 방문했다. 가로 300미터 세로 900미터의 화산섬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2천만명에 이르는 아프리카인들이 영문도 모르게 잡혀와서 이곳에서 유럽, 미국, 남미로 팔려갔다. 서구 열강의 반인간적인 노예무역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고레섬은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럽 각국의 식민지 확장은 노동력 수요를 폭발시켰고 노예무역에 불을 지폈다. 노예를 사냥하고 거래하는 자들이 서아프리카로 모여들었다. 무능하고 탐욕에 눈이 먼 아프리카 정부(왕)는 짐승처럼 사냥당하고 노예로 끌려가는 국민을 방관하거나 팔아버렸다. 서구에서는 노예제로 번영을 누렸으나 정부는 노예의 인권 문제를 방임했다.

1776년 네덜란드 상인들이 지었다는 노예의 집(House of Slaves)을 방문했다. 여기서 상인들은 노예의 키와 몸무게를 재고, 젖가슴과 성기를 관찰하고, 입을 벌려 치아를 살폈다. 성체와 새끼로 분류하고 수컷과 암컷과 처녀를 나누었다. 노예들을 벌거숭이로 좁은 토굴방에 밀어넣었다. 목과 손발을 묶고 쇠덩어리를 매달아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상품이 상하지 않을 만큼 먹였고, 저체중이면 콩을 강제로 먹였다. 반항하는 자들은 벽에 묶어 매질을 하고 좁은 감옥에 가두었다. 병들거나 성가신 자들은 바다에 던졌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처럼 생긴 짐승일 뿐이었다. 노예장사꾼들은 맘에 드는 암컷을 골라 2층 객실에서 마음껏 욕심을 채웠다. 노예들을 한 명씩 마당에 세워두고 값을 매겼다. 힘좋은 짐승과 때깔좋은 곡물을 고르는 경매 시장과 다름이 없었다. 흥정과 셈이 끝난 노예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문(Door of No Return)”을 지나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했다.

노예는 고레섬만의 일이 아니다. 이름과 개념이 다를지언정 동서고금의 현상이다. 로마는 전쟁에서 잡아온 노예로 치부했고, 아랍인들은 동아프리카인을 군인이나 성노예로 끌고 갔다. 조선의 노비제는 1894년 철폐되었지만 인신매매와 갑질 등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노예무역은 200년 전 유럽에서 금지되었지만, 1948년에서야 유엔총회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노예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이다. 힘세고 우월한 인간이 동족인 인간을 짐승처럼 부리고 잡아먹는 야만이다. 그러면서 인권과 인간 존엄을 말하는 고상함이라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민낯이다.

자유는 인간의 최소가 만인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노예의 집 구석에는 넬슨 만델라(Nelson R. Mandela)의 문구가 적혀 있다. “To be free is not merely to cast off one’s chains, but to live in a way that respects and enhances the freedom of others.” 자유라는 것은 단지 자신에게 씌워진 쇠사슬을 벗어던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고 증진하려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노예에게 자유는 마음까지 옥죄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속박이 있기에 자유가 의미를 갖는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이에게는 속박이 없으니 자유도 (의미)없다. 하지만 목과 손발을 감고 있는 쇠사슬을 풀었다고 해서 인간의 자유라고 말할 수 없다.

소정 선생님(1986: 96)은 “최소의 것이 침범받았을 때에 본연의 인간이란 무엇일까를 더욱 생각하게 된다” “최소를 가질지 말지 하는 한계상황에 사는 사람만이 그 최소마저도 상실된 상태에서의 존재를 음미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최소한은 부끄러움과 추위를 면할 수 있는 옷이며, 갈증을 달랠 한 모금의 물과 허기를 채워줄 음식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밀어를 속삭이며 살고 싶은 곳에서 식구들과 머무는 것이다. 한계상황을 경험한 사람만이 인간의 최소(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 수 있다.

소정 선생님(1986: 96)은 또 “최소의 것을 빼앗긴 자가 갖는 행복을 하나 더 찾는다면 빼앗은 자를 미움으로만으로 대하지 못하는 인간의 품위를 갖게 되는 행복이다” “최소에의 흠모를 존중시하는 이는 최소의 것을 빼앗은 이에 대하여도 최소의 것이 부여되기를 바라는 인간 본연에 대한 흠모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최소를 빼앗기고 고통을 당해본 사람은 다른 사람(심지어 자신의 최소를 박탈한 자까지도) 역시 최소한이 보장되어야 함을 믿는다.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소정 선생님의 최소가 만델라의 자유다.

윤씨 패거리의 자유는 기회주의자의 제멋대로다

윤석열씨는 걸핏하면 자유를 들먹인다. 그가 읽은 원고에 자유가 몇 번 나오는지가 기사거리가 된다. 도대체 그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그의 언행과 측근들의 면면을 보면 윤씨의 “자유”는 인간의 최소한이나 공감능력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 인간의 최소한를 박탈당한 한계상황을 의미있게 경험한 이가 드문 까닭이다.

양심을 버리고 양지만 쫓은 자들에게 자유는 승자의 전리품이다. 간도 쓸개도 없이 잇속만 차리는 기회주의자들의 패악질이다. 패자를 노예로 삼고 아무런 제한없이 제멋대로 능욕할 수 있는 권리다. 승자만이 인간이고 패자에게 인간의 최소한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승자의 언행은 모든 법과 윤리에 우선한다. 모든 책임은 패자에게 있다. 이것이 윤씨 패거리들이 말하는 자유다. 노예사냥꾼이나 인신매매범의 정신줄이다. 윤씨의 “자유 민주주의”가 조국·이재명씨에게 그토록 박하고 모질었던 까닭이다. 마음대로 소환하고 압수수색하고 영장치고 기소하고 흘렸다. 하지만 제동장치 없는 자유나 최소한이 없는 민주주의는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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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4. Goree섬에서 인간과 자유를 생각하다. <최소주의행정학> 9(9): 1.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 6월 21일 열린 입법청무회에서 임성근(전 해병대 제1사단장)씨에게 일갈한다. “김성근 야신의 리더쉽은 게임에서 지면 감독에게 책임이 있다. 선수에게는 책임이 없다. ... 게임에서 져서 책임을 져야 한다면 감독이 물러나야 한다. 선수기용, 경기력 등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므로. ... 설령 부하들이 잘못을 했다 할지라도 다 내가 교육을 잘못하거나 지시를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부하들을 탓하지 마라. 징계하지 마라. 내가 책임지고 사표를 쓰겠다. 이것이 진정한 리더쉽 아닌가요?” 절대로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부하들이 멋대로 수중수색을 했다고 횡설수설하는 임씨에 대한 훈계다.

리더쉽이란 대장다움이다

과연 리더쉽(leadership)이란 무엇인가?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말하는 리더쉽인데, 막상 리더쉽을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장이든 관리자든, 직위가 높든 낮든 실제 집단을 이끄는 자가 대장(우두머리)이다. 흔히 리더쉽은 조직에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리더쉽은 우두머리가 마땅히 보여줘야 하는 태도와 언행을 말한다. 대장의 처신, 대장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장을 비난하는 이유다. 혹자는 리더쉽을 각 분야의 우두머리가 해야 하는 기능(functions)이나 역할(leadership roles)로 보기도 하고, 리더의 행태(leadership behavior)나 리더쉽 유형(leadership style)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대장의 힘은 권위에서 나오고 대장의 재량행사로 발현된다. 대장은 자리(직위)에서 나오는 권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leadership)에서 나오는 권위를 적절하게 관리해야 한다. 늘 수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발휘하든 도덕성이나 인간성을 내세우든 자신의 명령을 조직구성원들이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영역(zone of acceptance)을 넓혀놓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권위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장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며, 특권이 아니라 조직을 이끄는데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다(박헌명 2016). 대장은 주어진 상황에서 가용한 자원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그럴듯한 어느 하나를 결정하는 재량행위다. 그 결과는 다시 대장의 권위(수용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당장 어떤 탈법적인 명령을 밀어붙여 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대신 대장의 권위는 줄어든다. 누차례 대장다운 처신을 하지 못하면 권위가 바닥나(수용영역이 쪼그라들어 어떠한 명령도 받아들여지 않는다) 결국 대장노릇을 못하게 된다.

스스로 지휘관임을 포기한 임사단장

정위원장이 말한 리더쉽은 문제해결능력이 아니라 “대장다움”이다. 계서제(hierarchy)의 극단을 보이는 군대에서 상관의 책임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어떤 명령이 그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1) 아랫사람이 그 명령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2) 조직의 목적과 불일치하지 않아야 하고, (3) 자신의 이해관계와 부합해야 하고, (4)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따를 수 있어야 한다(Barnard 1968: 165). 안전대책도 없이 악천후로 유량이 늘고 유속이 빠른 강물에 들어가 수색하라는 것은 차라리 죽으라는 소리다. 임씨의 부하들이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고, 조직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은 명령이었고, 부하들의 이해관계와 부합하지 않은 명령이었고, 따를 수 없는 명령이었다. 수용영역에 들어있지 않은 명령이었다.

임사단장은 별을 두 개나 단 지휘관이었지만, 전혀 “대장다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사실상 부하들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던 지휘관이면 마땅히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지휘관은 정당한 명령을 명료하게 내려야 하고, 부하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하는지를 감독해야 한다. 어찌하여 그 많은 장병들이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사단장의 지시를 정반대로 알아들었다는 것인가? 이제와서 지시가 아닌 지도를 했을 뿐이라는 똥별의 비루함이여... 장교들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설령 임씨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나는 멀쩡한 지휘관이 아니었다는 자백일 뿐이다. 한마디로 “나는 잘못이 없다. 나를 탓하지 마라. 제멋대로 수중수색을 벌인 부하들을 징계하라” 아닌가? 작전통제권도 없는 자가 위험천만이라는 부하들의 건의를 묵살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밀고 자빠졌으니... 이등병만도 못한 처신이다. 통수권자부터 상관과 부하의 신뢰와 존중이 무너졌으니 군대의 기강이 무너진 것이다. 이런 오합지졸인 군대가 어찌 싸워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고통받는 박정훈과 이용민의 대장다움

반면에 해병대 박정훈 대령(전 조사단장)은 해병순직사건을 법에 따라 수사하고 경찰에 이첩하였다. 장관의 부당한 명령을 받고 망설이는 사령관에게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수사단과 해병대를 고려한 판단이었다. 대통령실과 장관실이 폭주하는 상황에서 소신있고 당당한 처신을 보여줬다. 박대령의 “대장다움”은 불이익을 감수한 자기희생으로 승화되었다. 또한 수중수색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상관의 지시를 이행했던 이용민 중령(전 7 포병대대장)은 지휘관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난폭하게 휩쓰는 강물에 부하를 떠밀어야만 했던 대대장의 참담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한 임씨와는 달리 박대령과 이중령은 아랫사람에게 충실하였다. 부하를 탓하지 않고 자신에게 책임을 물었다. 자기희생은 “독재자에 의하여 피해를 본 사람을 보살피는 태도”다(1980: 363). 지금은 항명수괴와 과실치사라는 굴레를 쓰고 있지만 이들의 “대장다움”은 어떤 별보다 빛나고 있다.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고 “희생자가 지켰던 규칙이 악한 세상을 구출하는 원칙으로 만인에게 인식”될 것이다(1996: 437-438). 

참고문헌

  • 박헌명. 2016. 권위란 무엇인가? Barnard 다시 읽기. <최소주의 행정학> 1(4): 1-3.
  • Barnard, Chester, I. 1968. The Functions of Executiv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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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4. 박정훈 대령과 이용민 중령의 대장다움. <최소주의행정학> 9(8): 1.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달 21일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을 위한 입법청문회를 열었다. 출석한 이종섭(국방장관), 임기훈(국방비서관), 김계환(해병대 사령관), 임성근(1사단장)씨의 증언을 들으면서 탄식했다. 현역 장교라면 당당하게 증인선서를 하고 간결·명료하게 답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별을 두 개, 세 개나 단 자들이 선서를 거부하고 구차한 변명과 딴소리로 얼버무리는 모습이라니... 이런 비루한 자들이 지휘관이랍시고 거들먹대는 군대라니...

관료제를 비웃는 똥별들의 궁상

대통령실과 장성들은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권이 없으며, 장관이 수사결과보고서를 결재한 후 이첩보류를 지시했는데 수사단장이 이첩을 강행했다는 주장이다. 판결문도 아닌 보고서가 뭐길래 수백 건의 통화로 난리를 피웠단 말인가. 임사단장은 장병들에게 수중수색을 지시하지 않았고, 해당사실을 사후에 알았다고 했다. 부하들이 자신의 명령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이 사달이 났댄다. 작전통제권이 없으면서 부하들을 다그친 것은 작전지시가 아니라 작전지도라고 했다. 지휘관으로서, 장교로서, 해병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낙제다. 이등병보다도 못한 똥별의 궁상이다.

사건에 연루된 실력자(대통령실), 참모, 장관, 장군급 지휘관 모두 관료제의 원리를 대놓고 무시하였다. 합리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뽑아 일을 시키고, 규정에 따라 문서로 일을 처리하고, 분업화에 따른 갈등을 계서제(hierarchy)로 조정하는 베버의 이념형을 비웃고 있다. 관료제의 이념형에 가까운 조직인 군대를 허물고 있다.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어도 기강이 무너진 군대는 이길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적을 이롭게 한 무지와 어리석음이다.

먼저 해병대 수사단의 전문성이 부정되었다. 군인 사망사건에 관한 군사법원법의 취지에 따라 수사단이 작성한 결과보고서를 느닷없이 장관이 걸고 넘어졌다. 장관은 물론 통수권자도 구체적 사건에 대해 수사단을 지휘·감독할 수 없다. 지휘책임자를 빼라는 것도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것도 법을 거스르는 짓이다. 수사단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한마디로 계급이 깡패니 까라면 까라는 소리다. 별을 달면 어느날 갑자기 오만가지를 다 꿰는 만물박사라도 되는가? 법은 사망사건에서 판단의 주체가 지휘관이 아니라 전문성을 가진 군검사나 경찰관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상급자가 함부로 계급장으로 찍어눌러 장난질치지 말라는 취지다. 일(전문성)보다 계급을 앞세우지 말라는 소리다. 상하간의 질서(계서제)는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데 필요한 장치일 뿐이다. 별이 수백 개가 되어도 법을 넘을 수 없다.

법과 절차를 묻어버린 내부의 적들

해병대 수사단장은 순서대로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에게 수사결과를 대면보고하고 결재를 받았다. 군법원법 228조 3항에 의거한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 7조 1항에 따르면 “군검사 또는 군사법경찰관은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범죄에 대한 고소·고발·진정·신고 등을 접수하거나 해당 범죄가 발생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을 발견하는 등 범죄를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대검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또는 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수사단장은 사망사고에서 범죄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례와는 달리 지체없이 사건을 이첩하지 않았다. 대면보고와 결재를 받는 “지체”를 초래하여 외부의 개입을 불러들였다. 수사단장의 죄가 있다면 항명이 아니라 과실이나 직무유기다.

더 큰 문제는 사령관, 참모총장, 장관이 결재한 문서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취소하지도 않고 문서에 적힌 대로 이행한 박대령을 항명수괴로 몬 것이다. 문서에 의한 일처리 원칙을 비웃는 처사다. 장관이 결재한 문서는 아직도 유효하다. 자신이 결재했다 해도 장관이 멋대로 취소할 수 없다. 생사가 달린 전장에서 지휘관이 장병들에게 말로 명령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장관은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은 직후 참모총장을 건너뛰고 사령관에게 이첩보류를 지시했다. 이어 공직기강비서관, 국방비서관, 법무관리관, 국방차관 등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해병대를 압박했다. 이제 와서는 언제 누구와 통화했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를 반복하고 있다. 국방이 망가지든 말든 책임이나 모면하겠다는 얄팍한 수다. 관료제가 아니라 양아치패거리다.

해병대의 기강을 무너뜨린 용산의 불장난

상관은 자신이 내린 명령에 모든 책임을 지고, 부하를 끝까지 아끼고 보호해준다는 해병대의 기본 약속과 신뢰가 깨졌다. 이제 상관이 언제 어떻게 말을 바꿔 자신은 빠져나가고 부하를 곤경에 빠뜨릴지 모른다. 필요할 때 죽어줘야 하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상관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나? 법과 상식에 따라 일을 수행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장교들은 수개월 째 수사와 재판에 시달리고, 사망사고와 이첩사건에 연루된 똥별들은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군인복무규율이 무색한 상황이다.

이제 지휘관은 반드시 명령서를 작성하거나 직접 부하에게 명령해야 한다. 대대장과 중대장들은 정말 사단장이 지시했는지, 명령인지 지도인지, 어떤 명령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단장에게 직접 전장에 나오거나 공증된 명령서를 제시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명령 계통과 하달을 따지고 발령자의 책임을 살펴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지시는 거부할 것이다. 동영상, 녹취, 명령서 등을 변호인에게 전달할 것이다. 당장 눈앞에 적이 몰려온다 해도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 전투에서 패하여 적에게 죽나 상관에게 뒤통수를 맞고 죽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패할 전투인데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여차하면 별값도 못하는 지휘관의 모가지를 따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한다. 이제 국가도 충성도 명예도 없는 해병대가 되었다. 개념없는 용산의 전화 한통으로 시작된 불장난에 군대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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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4. 누가 해병대의 기강을 망가뜨렸나?. <최소주의행정학> 9(7): 1.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일본 니이가타新潟현 사도佐渡시를 방문하였다. 니이가타항에서 북쪽으로 70km를 달려 료츠兩津항에 도착했다. 해무 속에 드러난 사도섬은 조용하고 평화롭게만 보였다. 한반도를 위아래로 누른 듯한 모양이고 제주도의 절반이 못되는 크기다.

인간의 탐욕과 따오기의 죽음

사도는 희귀새 따오기(“토키”)의 도래지로 유명하다. 섬 어디를 가도 따오기를 주제로 한 물건과 형상을 볼 수 있다. 동경에서 니이가타로 가는 신칸센 열차의 이름도 토키다. 때마침 눈썰미 좋은 버스운전기사의 배려로 논가에서 먹이를 구하는 따오기 내외를 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마지막 따오기가 2003년 죽은 후 중국에서 기증받아 인공으로 부화시킨 것이다. 인간의 탐욕은 산업화로 질주했고 따오기를 멸종위기로 내몰았다. 창녕의 우포늪과 마찬가지로 사도시는 사라진 따오기를 복원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사도금광의 흑역사

사도는 또한 일본 최대의 금광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폐광이 되었지만 거의 900년 동안 금과 은을 캐냈다. 특히 아이카와相川 금광은 에도 막부(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무너뜨린 도쿠가와 정권)부터 400년(1596-1989)을 이어왔는데, 지금까지 금 80톤과 은 2,500톤을 생산했다고 한다. 100여년 전에는 아이카와에만 5만명(현재 사도섬 전체 인구)이 몰렸다고 한다. 한 가운데만 농지인 섬에 쌀, 물, 집이 부족해졌고 따오기가 밀려났다. 사금을 채취하는 다른 광산과는 달리 아이카와광산에서는 굴을 파고 광석(ore)을 캐냈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금맥을 파들어가는 채굴방식이다. 여기에서 생산된 금화로 네덜란드 등 서구와 교역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으니 일본에서 보면 자랑스러운 산업유산이다.

에도 막부(1603-1868)와 메이지 정부(1868-1912)에 이어 1896년 미쓰비시三菱가 아이카와 광산을 넘겨받아 충실하게 일본제국에 부역했다. 일제는 사도광산에서 캐낸 금과 은으로 전쟁을 벌였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중일전쟁을 벌이면서 1938년 4월부터 점령지에서 무자비하게 인력과 물자를 총동원하였다. 미쓰비시의 활약이 두드러진 시기다. 사람들을 끌어와서 광산에 집어넣고 채석을 강요했다. 임금을 주기는 커녕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면서 노동을 착취했다. 최소한의 음식과 옷가지와 잠자리를 제공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오도 가도 못하게 했다. 석탄을 캐낸 군함도에서 벌인 미쓰비시의 만행과 닮은 꼴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제, 그 전쟁에 부역한 전범기업 미쓰비시, 그리고 악랄한 강제동원은 사도금광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갉아먹었다.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무일푼으로 돌아오신 당숙

어릴 적 집안 어른들이 일본으로 돈벌러 간 얘기를 종종 하셨다. 종조부께서는 일본에 가셔서 돈을 벌어오셨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운좋게도 품삵을 제대로 쳐준 관리자를 만난 모양이다. 당숙은 금광에서 일하셨다 했다. 1,500여명의 조선인이 사도금광에서 일했다는 자료도 있고, 1940년 논산에서 100여명을 집단모집으로 강제동원했다는 증언도 있다. 고향이 논산에서 멀지 않았으니 그 무리에 포함되었던 것은 아닐까?

당숙은 거의 매일 몽둥이로 맞으면서 일만 하셨다고 했다. 우직하셨던 당숙이니 꾀를 내서 매를 피할 줄도 모르셨을 터. 가장 힘들고 위험한 채석일을 하고도 당숙은 결국 거의 무일푼으로 돌아오셨다. 사람들은 살아서 돌아온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종종 당숙은 약주를 하시고 동네 어귀부터 악다구니를 쓰셨다. 작은 체구지만 장사같은 힘을 가졌던 당숙이었다. 하지만 한창 나이에 허무하게 돌아가셨다. 화병이나 진폐증같은 후유증이었을까? 그때 나는 잔치인 줄만 알고 화덕에 걸린 가마솥을 맴돌며 7남매를 건사해야 했던 당숙모의 하얀 치마자락을 끌고 있었다.

에도시대와 무관한 미쓰비시의 전범유산이다

사도금광관광은 주로 (1) 금광코스 체험, (2) 근대금광산업유산 견학, (3) 금광정보센터와 전시자료관 방문이다. 일본은 에도시대에 한정하여 세계유산등록을 신청했다. 한마디로 꼼수다. 거품을 일으켜 금을 농축한 浮遊選鑛場(1935), 시멘트가 보급되기 전에 돌로 세워진 浮選鑛所, 광석저장소(1938), 광석을 깨뜨린 착광장搗鑛場, 부족한 물을 재활용하기 위한 thickener(1940), 금주조공장 등 관광상품 대부분이 에도시대와 무관하다. 모두 사도광산을 불하받은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작품이다. 심지어 광산의 명물인 도유노와리토道遊の割戶 역시 19세기 말 발파에 의해 꼭대기가 V자로 갈라진 것이다. 에도시대의 유산에 에도시절은 없다. 주조공장은 수영장으로, 부유선광장 아래는 골프장으로 쓰였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공장 비탈 위에 있던 소학교를 다녔던 센터장의 설명이다. 반면 조선인들이 사용하던 숙소와 식당 자리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반성없는 아베정권의 역사 부정과 왜곡이다.

산비탈에 조성된 거대한 부선광소와 부유선광장은 현재 역사 유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낮에는 담쟁이가 삭은 철근 콘크리트를 뒤덮고 있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발이 과거를 수놓고 있다. 어둠 속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로마의 콜로세움을 보듯 웅장하다. 순간 미쓰비시가 저지른 범죄와 소리없이 죽어간 원혼은 사라진다. 인쇄물, 동영상, 강의 어디에도 관련 사실을 찾아볼 수가 없다. 반짝이는 금과 산업시설만 미화되었다. 따오기와 공생을 말하지만 근대화 시절의 과오에는 입을 닫는 식이다. 아직까지 소유권을 가진 미쓰비시는 침묵하는 가운데 정부가 전범행적를 분칠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설치고 있다. 어떤 미사여구를 늘어놓는다 한들 경우가 아니다. 그저 미쓰비시 전범유산일 뿐이다.

사도섬은 조선인이 끌려가서 매맞은 슬픈 섬이다. 춥고 배고파서 서럽고 떠나지 못해 목이 멘 섬이다. 진실이 묻혀가는 원통한 섬이다. 눈감지 못하고 죽은 조선 따오기들이 떠도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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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4.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미쯔비시 전범유산. <최소주의행정학> 9(6): 1.

갈수록 가관인 "김여사" 정권이다. 갈팡질팡 행보가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왜 의대정원을 2천명이나 늘려야 하는지, 왜 배우자를 수사하던 중앙지검 검사들을 다른 데로 보내는지 납득할 수 없다. 노동시간을 왜 주 69시간으로 늘려야 하는지, 광화문으로 간다더니 느닷없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겨야 했는지 답이 없다. "바이든 날리면"이라고 우기듯이 일을 뭉개버린다. 어제의 말과 오늘의 말이 극과 극인데도 설명이 없다. 무엇 하나라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건더기도 없다. 이성도 합리성도 없다.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대화도 타협도 없다. 작두탄 무당이 흘리는 주문呪文이 있을 뿐이다. "김여사"에게 비판은 소귀에 경읽기고 비난은 입만 더럽힐 뿐이다.

무식하고 용맹스런 "김여사"의 운전법

"김여사"는 이기심에만 집착하여 민폐를 끼치는 족속이다.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게 몰상식을 감행한다.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다. 남녀 문제가 아니다. 공공의 적이다.

먼저 이들은 운전규칙(정치)이나 자동차(관료제)의 기본을 알지 못한다. 또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듣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힘있는 자신의 욕망이 있을 뿐이다. 주차금지든 일방통행이든 신경쓰지 않는다. 말하자면, "난 모른다, 뭐 어쩔건데?" 둘째, 좌고우면을 못하고 직진에 몰두한다. 차선바꾸는 일을 어려워한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신이 옳고 또 옳아야만 한다. 이유도 설명도 필요없다. 맞든 틀리든 무조건 우기고 본다. 안면몰수하고 구차한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는다. 세째, 후진과 주차를 두려워한다. 형식과 규칙에 구애받지 않고 제멋대로 차를 세워둔다. 황당하든 흉하든 개의치 않는다. 상식으로부터 탈출한 자유인에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금물이다.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으니 반성이 없고 성의가 없다. "부대열중쉬어"는 능력이 아니라 정성이다. 명품을 두른다 한들 태가 나지 않는다. 속이 구린데 향수만 퍼부은 고상함이다. 끝으로 항상 맥락을 놓치니 행동이 굼뜨다. 좌회전을 한 뒤에 우측 깜빡이를 넣는다. 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운전에 집중하지 못한다. 자기 생각에 몰입되어 딴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일하는 순서, 강약, 장단, 단속斷續이 뒤죽박죽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막고 피를 보고야 만다.

공자는 사사로운 뜻이 없으며, 기필코 하겠다는 마음이 없으며,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며, 이기심이 없다고 했다(子絶四毋意毋必毋固毋我). "김여사"는 일을 모르면서 순전히 私意로 추진하고, 기필코 일을 해내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들이대고, 일이 잘못되었어도 반성하지 않고 끝끝내 고집을 피우고, 사리사욕만 생각하다 끝내 일을 망치곤 한다(1996: 391).

"김여사"에게 자유란 "내 맘대로"이고 협치란 "내 뜻대로"다. 그의 "자유민주주의"다. 자유의 반대는 감히 내 앞에서 입을 터는 짓이고, 협치의 반대는 감히 내 말에 토다는 짓이다. 69시간이라 했으면 100시간이나 200시간이 아닌 것을 감읍感泣해야 한다. 2,000명 증원이라 했으면 2만명이 아닌 성은聖恩에 머리를 찧고 절규해야 마땅하다. 왈가왈부하는 일은 불경이요, 반역이다.

무소불위니 무소능위일 수밖에

"김여사" 정권은 한마디로 거칠 것이 없다. 권력기관은 물론이려니와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언론을 틀어쥐고 있다. 합의제인 방통위는 아직도 야당추천 자리를 비워놓고 단독 드리블 중이다. "김여사"를 건드리는 어떤 보도도 무사하기 힘든 판이다. 구석구석에 심어진 검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수구기득권 세력은 언제나 포악한 권력자에게 납짝 엎드린다. 부담없이 재의요구권을 날려주면 알아서들 총알받이가 되어준다. 특검법이 부결되자 총선에서 압승이나 한 듯 감격에 마지않는 국회의원이라니... 국민이 도륙당하고 나라가 망해도 초점없는 눈으로 마약을 쑤셔넣듯 무작정 찍어줄 3할이 건재한 이상 탄핵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여차하면 검사들을 풀고 군화발로 짓밟으면 그만이다. 차마 할 수 없는, 해서는 안되는 일을 가리지 않는 무소불위無所不爲 정권이다.

지난해 7월 해병대원이 악천후에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해병대 수사단에서 이 사건을 조사했고 장관의 결재까지 받아 법이 정한 대로 경찰에 이첩했다. 이종섭 장관은 박정훈 수사단장이 보류지시를 어겼다며 보직을 해임하고 조사보고서를 가져갔다. 박대령은 하루 아침에 항명수괴로 몰렸고 대대장 이하 지휘관들은 사단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생때같은 병사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파렴치범이 되었다. 대통령 격노설이 파다한 가운데, 윤석열씨가 장관에서 물러난 이씨를 호주대사로 임명하면서 파장은 커졌다. 박대령 보직해임 전후로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호떡집에 불이 난 듯 움직였고, 윤씨가 이씨와 세 차례나 통화했다.

군생활을 해본 사람이면 뻔히 보이는 그림이다. 해병대 사령관, 참모총장, 장관이 흔쾌히 결재한 사항을 하루아침에 뒤집었다면 통수권자의 사심이다. 모지리 참모들은 일을 거들었을 뿐이다. 위험천만인 강물에 병사를 들어가게 했다면 대대장의 결심이 아니다. 스스로 떳떳하지 않은 자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사령관을 거스르지 못한다. 사고친 똥별을 구하려는 주군의 사투가 눈물겹다. 

박정훈 대령이 쏘아올린 작은 공

조사단에게 전방위 압력을 가하고, 출국금지된 피의자를 해외로 빼돌리고, 비화기가 아닌 자신의 전화로 통화하고, 관련 특검법을 거부하는 자신감은 무소불위의 힘이다. 뻔한 거짓말로 백성을 속이고 좀비처럼 몰려가 “김여사”를 방탄케 하는 힘이다. 하지만 완전범죄를 꿈꾸면서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하는 업보다. 각자도생이 본격화된 지금 누가 등에 칼을 꽂고 모가지를 딸지, 언제 계란말이가 멍석말이가 될 지 모른다. 세게 쥘수록 배신의 유혹은 달콤하다. 백성의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고 민생이 보일 리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무소능위無所能爲에 빠진다. 박대령이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사필귀정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의 자기희생이 "김여사"를 멈춰세우고 평화를 가져오길 바란다.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4. "김여사" 정권의 무소불위와 무소능위. <최소주의행정학> 9(5): 1.

 
 

 

 

조국이 나타났다. 제 22대 총선거를 앞두고 기어이 살아서 돌아왔다. 풍비박산된 집안을 뒤로 하고 눈빛을 번득이며 주먹을 불끈 쥐고 나왔다. 검찰 독재 정권을 심판하는 저승사자가 되어 나타났다. 정치인 조국의 등장이다. 지난 3월 21일 그의 고향인 부산에서 피를 토하듯 포효했다. “이제 고마 치아라마...” 시대정신을 꿰뚫는 그의 사자후에 사람들은 비명같은 탄성을 질렀다. 이 울부짖음이 천둥번개가 되어 잠든 세상을 깨웠다. 화나고 답답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봄날 철쭉이 검붉게 불타오르듯 조국이 전국을 돌며 사람들의 가슴팍에 불을 지르고 있다. 그 불길이 번져나가 선거 자체를 삼키고 있다.

살아 돌아온 조국의 사자후

조국은 2019년 8월 9일 법무장관으로 지명되었다. 진저리치는 고난의 시작이었다. 기어코 수사권을 사수하려는 검찰이 발악하였다. 이른바 검찰 쿠데타였다. 수십명의 검사들이 달려들어 그와 그의 식구들을 넉 달 넘게 물어 뜯었다. 압수수색만 100여 차례 이루어졌고, 자녀의 일기장까지 쓸어갔다. 검찰은 세밑(12.31)에 사모펀드, 웅동학원, 대학입시 등 12개 혐의로 조씨를 기소하였고, 이듬해 1월 17일 감찰무마 혐의를 추가하였다. 하지만 권력형 비리라고 난리법석을 피웠던 “조국펀드”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인턴쉽, 체험활동, 장학금만 남았다. 딸이 수령한 600만원 장학금이 청탁금지법 위반이면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조씨는 취임 35일 만에(10.14) 장관직을 내려놓았고, 2023년(6.13)에는 서울대로부터 교수직 파면을 당했다. 1심(2023.2.3)과 2심(2024.2.8)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배우자 정씨는 소환조사도 없이 청문회 중인 9월 6일 기습 기소되었다. 자본시장법 위반, 사문서위조, 증거위조 등 14개나 되는 혐의였다. 왕조시대로 치면 대역죄 수준이지만 검찰은 증거물인 표장장도 없이 위조했네 안했네, 인턴을 했네 안했네를 따지는 수준이었다. 동양대는 2021년(8.31) 정씨를 면직시켰고,대법원은 2022년 1월 27일 징역 4년을 확정했다. 2023년 고대(2월)와 부산대(4월)는 조민씨의 입학을 취소했고, 보건복지부는 7월 조씨의 의사면허를 취소했다. 조씨는 하루아침에 10년을 잃고 고졸이 되었다. 검찰은 질질 끌다가 조씨를 7월 소환조사했고 시효만료 직전인 8월10일 기소하였다. 조국은 말 그대로 패가망신을 당했다.

의미있는 고난을 참고 견뎌온 힘

유시민씨는 이 사건을 검찰의 가족인질극으로 비유했다. 정의와 인권을 수호해야 하는 검찰이 균형을 잃었다. 조씨에게만 가혹하게 칼을 휘둘렀고, 비열하게 검찰권을 행사했다. 식구들 모두에게 현미경 잣대를 들이대고 혐의를 쪼개서 기소했다. 배우자는 파렴치범으로 손가락질받고 옥살이를 했고, 자식들은 흥정거리가 되어 검찰에 불려다녔다. 검찰은 처자식을 볼모로 야비하게 조국을 짓눌렀다. 맘을 찢어 발기고 몸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기득권 언론은 검찰을 거들어 조국 일가를 짓밟았다. 재판도 하기 전에 일가족을 여론의 늪에 담갔다. 조씨는 부처, 공자, 예수도 피하지 못할 망나니의 칼날에 난도질을 당했다. 법과 양심이 아닌 “밥과 앙심”에 따른 학살에 가까왔다. 겁대가리없이 검찰에 도전한 자가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라는 정치검사들의 협박질이었다.

하지만 조국은 검찰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무서움에 떨며 정신줄을 놓지도 않았고 좌절하지도 않았다.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지 않았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추스려 비폭력으로 대응했다. 검찰과 언론의 매도罵倒에 따박따박 말로 대꾸했다. 끊임없이 본인이 해야 할 말을 멈추지 않았다. 수구언론은 그를 부관참시 하듯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넘어졌지만 그는 끝까지 이성과 상식에 맞는 얘기만 했다. 끈질기게, 그리고 꾸준하게 그 힘든 시간을 참고 견뎌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그가 고마운 까닭이다.

폭풍으로 몰아친 조국의 비폭력 투쟁

소정은 <전쟁과 평화>가 주는 교훈을 “권력의 남용 하에서 의미있는 고난을 겪은 사람만이 평화를 만든다”(1980: 365) 혹은 “전쟁 속에서 유의미한 고난을 통해 대안을 창출하는 자가 생겼을 때에만 평화가 온다”(1991: 333)로 정리했다. 포악한 정권의 패악질을 참고 견뎌온 조국이 “쇄빙선”으로 돌아왔다. 고난을 겪으면서 찾아낸 대안이다. 더 잃을 것도 없는 그는 돌아갈 곳이 없다고 했다. 대법원의 판단이 나오면 법대로 감옥에 가겠다고 했다. 최소를 가질지 말지 하는 한계상황을 경험한 자가 그 최소마저도 상실된 상태에서의 존재를 음미하는 여유라고나 할까(1986: 96).

살아 돌아온 조국은 예전의 조국이 아니었다. 멋진 야성으로 무장한 용맹스런 선봉장이 되어 있었다. 말끔한 정장에 흰머리를 날리는 사노맹의 전사로 거듭났다. 평생 법을 연구한 지식인이자 원숙한 중년이지만 젊은 날의 뜨거운 심장은 그대로인 투사였다. 조국은 끝까지 똑같은 결기로 똑같은 마음으로 행동하겠다고 했다. 가장 단호하게 가장 강력하게 싸우겠다고 했다. 정제되고 명쾌한 말이 꿈툴거리며 강약이 조율된 가락으로 흘러 사람들의 마음을 후벼팠다.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닌 이성과 상식에 따른 냉철한 비폭력 투쟁이어서 순시간에 돌풍이 되고 폭풍이 되었다.

조국은 외모 뿐만 아니라 몸짓, 표정, 태도, 품격, 학력, 언변 등 모든 면에서 김명신, 윤석열, 한동훈과 대조된다. 훤칠한 키와 얼굴은 까치발과 폴짝 뛰기와 극과 극이다. 말끔한 옷맵시와 앞뒤를 뒤바꾸어 입은 바지를 상상해 보라. 정중하고 정성을 다하는 말과 저렴하고 성의없는 말장난이라니... 조국의 연설은 “김윤한”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의 말이고, 사람의 대화였다. 사람들이 “김윤한”에게 듣고 싶어한 말이었고, 사람들이 “김윤한”에게 하고 싶어한 말이었다. 오랜 갈증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청량한 사이다였다. 내용은 물론 발음, 호흡, 강도, 속도, 시선, 손짓 모두 탁월했다. 눈이 호강하고, 귀가 호강하고, 가슴이 호강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과 결기가 느껴졌다. 조국의 비폭력 투쟁으로 사악한 정권의 패악질이 멈추고 희망과 평화가 찾아오길 바란다.

 

인용: 박헌명. 2024. 고난을 딪고 돌아온 조국의 비폭력 투쟁. <최소주의행정학> 9(4): 1.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천이 21대 당선자 전체의 45%, 지역구 의원의 39%(163명 중 64명) 교체로 끝났다. 공천을 둘러싼 잡음은 여느 선거때와 다를 바 없었지만 여당 뿐만 아니라 공천을 받지 못한 자들은 “친명횡재 반명횡사”라는 주문을 외고 있다. 매일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측근공천, 특혜공천, 방탄공천, 멸문공천이라고 헐뜯고 있다. 그러면서 현역 다수와 용산파가 자리를 꿰찬 여당은 매끄러운 공천으로 찬양하기 바쁘다.

흙수저 이재명이어서 할 수 있는 공천

수년 째 이어지고 있는 이재명에 대한 수사로 측근 대부분이 구속되어 있는 마당에 무슨 측근공천이고 특혜공천이란 말인가? 이씨가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영입한 후보나 경선에서 이긴 후보는 당연히 “친명”이고 탈당이나 경선에서 패배한 후보는 “반명”이어야 한다는 어거지다. 평생 비주류로 살아온 이씨에게 밀려난 무능한 주류의 비루함이다. 비명, 친문, 주류가 학살되었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고민정 윤건영 이인영은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선출직 평가 하위 10%나 20% 성적표를 받은 자들의 심정은 이해하나 당원과 당직자, 지역주민, 동료 의원이 평가한 결과를 당대표가 어떻게 마음대로 조작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공천의 핵심은 현역 물갈이였다. 정치 신인과 여성에게 가산점을 주고, 현역 의원에게 당원 50%가 포함된 경선을 요구했다. 평가 하위 20%까지 최대 30%까지 감산하고, 중도사퇴, 탈당, 징계 등에도 25%까지 감산하였다. 한마디로 당원의 기대치에 맞게 처신하고, 말하고, 행동한 후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규칙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당대표 문재인, 위원장 김상곤, 위원 조국)에서 제안하여 정착된 것이다. 당원, 동료 의원, 일반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공천하겠다는 의지다. 다선이든 현역이든, 수박이든 호박인든 공정한 평가에 따라 정당의 추천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유권자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머슴을 퇴출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상식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과 상식을 실제 현실에서 적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관행을 깨뜨리는 일이기에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민주당은 정치라는 이름으로 원칙과 상식을 적당히 뭉개고 유권자들을 좌절시켰다. 김종인(2016), 추미애(2016-2018), 이해찬(2018-2020), 이낙연(2020-2021) 모두 공천 규칙을 온전히 적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재명이 일을 냈다. 우직하게 참고 견디며 원칙과 상식을 지켜냈다. 흔들림없이 공천 규칙과 절차를 밀어붙였다. 어쩌면 그가 금수저가 아니어서 가능했는지 모른다. 꽃이 아닌 들풀이어서 학연 지연 혈연에 빚을 지지 않은 그였다. 맨몸으로, 피땀으로 갈고 닦은 재능과 겸허함과 부지런함으로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느덧 김대중과 노무현이 되었다. 사실 당내외 수구 기득권 세력들이 이씨에게 온갖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다. 언론 대들보에 이씨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몽둥이질을 해댔다. 이씨는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다. 무차별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버텨냈다. 이씨가 멋대로 만든 공천 제도가 아니었지만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았다. 아프다는 외마디없이 그저 묵묵히 할 일을 했다. 처절하게 피눈물을 흘려 본 흙수저의 집념이다. 기득권을 누려온 자들은 절대 납득할 수 없는 원칙과 상식의 무서움이다.

정치효능감을 각성시킨 민주당 공천

이번 민주당 공천에서 혼선도 있고 미흡한 점도 있었지만 어정쩡한 타협도 없이 규칙과 절차에 충실한 공천이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당원들의 기대에 반하는 언행을 보였던 자들이 당원들의 표로 응징당했다는 점이다. 당원과 지역 주민들이 공천 제도에서 정치 효능감(political efficacy)을 체감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긴가 민가하다가 철옹성같던 현역들이 경선에서 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유권자들이 각성한 것이다. 다선 현역인 박용진이 지역구 경선에서 두 번이나 패한 것은 상징적이다. 이재명이 박씨를 싫어하든 말든 깨어난 유권자들이 몰려가 가감산없이 박용진을 끌어내렸다. 후보들에게는 등골이 오싹한 일이다. 친명이나 반명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유권자들의 뜻에 부응했느냐를 물을 뿐이다. 이것이 제도에 의한 공천이다. 가히 공천 혁명이라 할만 하다.

이제 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당원과 시민들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여의도 짬밥이나 당대표와의 친분은 차라리 흠결이다. 당원과 민심이 가리키는 대로 “측근공천”이나 “방탄국회”가 아니라 “용산공천”과 “방탄대통령”으로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사법리스크”가 아니라 “검찰쿠데타”에 맞서야 한다. 의정활동 뿐만 아니라 지역구 관리도 게을리할 수 없다. 막말, 음주운전, 부동산 투기 등으로 유권자들을 화나게 해서는 안된다. 성골이든 진골이든 두품頭品이든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뭐가 문제인가

이대표는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민주당을 사당화했다고 비난하는 자들이 시비거는 말이다. 그러면 바이든 행정부(Biden Administration)는 뭐란 말인가? 바이든이 대통령으로서 이끄는 행정부가 무슨 문제란 말인가? 이재명이 당대표로서 규정과 절차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한심한 소리다. 자신이 당대표를 하면 민주주의고, 남이 하면 “친문패거리”와 “친명독재”인가? 문재인이, 이재명이 물러나면 선거에서 승리하나? 그 다음은 누구인가? 적이 만만하게 생각하는 자들만 남아서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꽃길만을 걸어온 정통 주류들은 천출 비주류인 이씨에게 허무하게 밀려난 현실을 부정하고 저주를 질투처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왜 8할의 당원들이 이씨에게 지지를 몰아줬는지를 곱씹어봐야 했다. 싸움에서 졌으면 깨끗하게 승복할 일이었다. 월등한 실력 차이를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소인배들은 당원들의 뜻을 외면하고, 돌아서서 딴소리를 하고, 동지의 뒷통수를 갈겼다. 찌질이 패배자의 지지리 궁상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모습이다.

참고문헌

박헌명. 2024. 친명횡재도 비명횡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주의행정학> 9(2): 1.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4. 흙수저 이재명의 공천이 무서운 이유. <최소주의행정학> 9(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