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 전부터 한 이름이 언론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명태균씨를 김명신와 윤석열에게 연결했줬다는 함 아무개 얘기다. 그는 오래 전부터 논문표절이니 알선수재 등으로 비난받다 직장에서 쫓겨났다. 그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국정농단 한 가운데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놀랐다가 어이가 없다가 “또...” 라며 탄식했다. 국내외 유명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그가 지나온 길이 고작 거간꾼이나 비선인가 싶어 자괴감이 든다.
B급 이론과 수구기득권의 운명
지난해 매불쇼에 출연한 유시민씨가 B급 이론을 소개했다. A급인 상급자는 하급자로 A급을 쓰지 B급을 안쓴다. B급인 상급자는 절대로 A급을 데려다 쓰지 않는다. 자신이 B급인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B급이나 C급을 데리고 논다. C급은 다시 C급이나 D급을 상대한다. 결국 조직은 점차로 F급으로 퇴화된다. 일이 잘될 턱이 없다. 게으르면서도 분수를 모르는 낙오자와 패배자들끼리 놀다가 망한다. 어쩔 수 없는 B급의 운명이다.
공자는 사사로운 뜻이 없고, 기필코 하겠다는 마음이 없고, 집착하는 마음이 없고, 이기심이 없었다(子絶四毋意毋必毋固毋我). 이에 반해 수구기득권은 사사로운 뜻으로 일을 하고, 기필코 일을 해내야 한다며 친일·쿠데타·독재를 가리지 않고,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계속 고집을 부리고, 결국은 자기들의 私利를 취한다(1996: 391). 이들은 잘못을 고치라는 소리는 듣지만 실제 고치지는 않는다(392쪽). 말잘듣는 하수인을 데리고 일하고, 나이많고 덕있는 이를 만홀히 여긴다(396쪽). 품격이 있고, 지식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을 거느리지 못한다. 재주를 깎아내리거나 충심을 “꼰대”의 잔소리로 후려치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들끼리도 돈을 공평하게 분배하지 않고, 하수인까지 못살게 굴어 잇속을 채운다(397쪽). 자리의 높고 낮음이 사람의 귀천이라 착각하는 자들이다. 상하간 존중이 없다. 정권의 민낯이다.
사실 능력의 급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윗사람이 사리분별이 멀쩡한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자신의 재주를 알고 분수를 지키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있을 뿐이다. 경우가 바른 자들은 A급이면 A급으로 살고 B급이면 B급에 머문다. 그러면서 꾸준하게 배우고 익혀 일신우일신하는 자들이다. 경우가 바른 상급자는 재주가 출중한 사람들을 기꺼이 삼고초려한다.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義와 합리성으로 기강을 세운다. 자신의 재주가 B급이어도 멀쩡한 A급을 데려다 쓴다. 물론 멀쩡한 C급이나 D급도 역량에 맞게 일을 준다. 경우없는 하급자라면 A급이든 B급이든 버텨내기 힘들다.
하지만 A급이면서 A+를 노리고, B급이나 C급이면서 A급 행세를 하면 경우없는 짓이다. 지식이나 재물 여부와 관계없이 분수를 모르는 천한 자들이다. 술수와 거짓으로 부당한 기회를 노리는 비루한 자들이다. 하물며 F급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A급 자리를 차지한다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염치를 모르는 자들이 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사람을 상하게 하고 사회를 망가뜨린다. 이들의 난동은 관료제의 물을 흐리고 기강을 무너뜨린다. 품격과 지향이 미치지 못하면 아무리 재주가 출중한들 무슨 소용인가.
경우없는 분자들의 궁상
멀쩡한 자들은 쉽게 나서지 않지만 경우없는 자들은 분수를 모르고 나대는 것이 세상 이치다. 잇속으로 서로 뭉치고 흩어지는 자들이다. 특히 요령이 있는 자들은 자리를 꿰차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몸무림을 친다. 입닥치고 한번 떠보려는 자들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과격분자, 이들 옆에 빌붙어먹는 분열분자(배신자), 돈이나 챙기고 사는 부패분자들이다(2008: 588-589). 대놓고 친일본색을 드러내는 자, 임시정부와 광복과 강제징용을 말하지 못하는 자, 공복이 되어 서슴없이 국민을 비하하는 자, 양심을 속이고 자리를 지키려 횡설수설하는 자... 음흉한 공작과 달콤한 거짓말은 밤하늘의 폭죽처럼 현란하다. 기회주의 수구기득권을 해체시키는 것이 이리도 힘들다.
드문드문 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보면서 종종 속이 불편해진다. 한덕수(국무총리), 추경호·최상목(경제부총리), 박순애·이주호(교육부), 이종섭·신범철·임기훈·여인형·임성근(국방부), 원희룡·박상우(국토교통부), 김문수(노동부), 박보균·유인촌(문화체육관광부), 한동훈·박성재(법무부), 박민식(국가보훈부), 조규홍·박민수(보건복지부), 김현숙·김행(여성가족부), 박진·조태열·김의환·박철희(외교부), 김영호(통일부), 이상민(행정안전부), 한화진(환경부), 최재해·유병호·최달영(감사원), 이원석·심우정(검찰청), 윤희근·김찬수(경찰청), 백경란·지영미(질병관리청), 정진석·윤재순·이시원(대통령실), 김용현·김태호·신원식(국가안보실), 이배용(국가교육위원회), 김홍일·유철환·정승윤(국민권익위원회), 안창호·김용원·이충상(국가인권위원회), 김채환(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김효재·이동관·김홍일·이진숙·김태규·조성은(방송통신위원회), 류희림·이현주·김흥수(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백선기·한정석(선거방송심의위원회), 김형석(독립기념관), 김낙년(한국학중앙연구원), 박지향(동북아역사재단), 김광동·황인수(진실화해위원회), 박민·박장범·강규형(KBS), 정기석(국민건강보험공단), 민영삼(방송광고진흥공사), 최철호(시청자미디어재단)... 답이 없다.
아, "하암..."
맨처음 건진이나 천공이 언급될 때에는 그렇고 그런 계집과 속없는 사내를 생각했다. 명씨가 등장하여 경우없는 자들의 속살을 까발리자 헛웃음이 나왔다. 함씨가 그를 미륵보살로 불렀다는 대목에선 고개를 떨궜다. 아, 그 부류였구나. 이런 자들을 스승이니 선생이니 박사라며 매달리는 허접들이라니... 끼리끼리 유유상종이라고 했다. F급이어도 한번 떠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자들이다. 관상을 살피고 사주를 보고 점괘를 풀고 해몽을 하고 연줄을 찾는다. 신분을 숨기고 표절하고 위조하고 조작하고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막사는 인생들의 궁상이다.
인용: 박헌명. 2024. B급 이론으로 풀어 본 수구기득권의 운명. <최소주의행정학> 9(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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