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경부선 옛길을 달렸다. 무궁화 열차를 타고 서대전, 신탄진, 부강, 조치원... 30년 가까이 잊고 지냈던 길이다. 하필 18일. 삼월에 난데없이 눈발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길가의 풍경은 필경 옛모습인데 어렴풋한 기억은 눈안개에 아른거릴 뿐이다. 꿈을 꾸듯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미래를 거꾸로 달리고 있는 기분이다. 뜬금없는 비상계엄이 깨어있는 민심 앞에 꺼지는가 싶더니 잔불로 살아나 나라를 흔들고 있다. 지치고 고단한 백성의 마음에 불을 지르고 있다. 내란 잔당들의 광풍을 타고 경상도를 태우는 모양새다.
소정 선생님의 공무원 행동강령
비상계엄을 빙자한 친위반란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 나랏일을 수행하는 고위공직자들의 자질과 자세다. 소정 선생님께서 제시한 공무원의 행동강령은 i) 공무원은 전문지식(능률과 민주주의 이념 포함)을 매일매일 닦아서 조직 내에서는 상사를 존중하며 조직 밖에서는 국민에게 봉사한다, ii) 공무원은 민주·복지국가와 정의를 추구하여 국민 개개인의 일상을 개선시키는 일을 한다, iii) 인간으로서 공무원은 전문지식 앞에 서는 존귀한 존재이다(2001: 277, 465). 공무원은 법조문이나 돌돌 외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근본을 깨달아야 하고, 시험에 합격했어도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이와 정반대에 서 있는 공직자들은 스스로 전문성을 포기하고 상사에게 굴종하며 국민들에게는 교만하다. 공익이 아니라 상사에게 상납하는 대가로 利를 추구하고, 맹종을 강요하는 상사와 조직 앞에 세워지는 하찮은 존재이다. 관료제의 기강을 갉아먹는 좀비다.
김여사 정권의 공무원 행동강령
망상에 가까운 친위반란은 김여사 정권의 공무원 행동강령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김명신·윤석열의 행보는 조선을 수탈하는 조선총독의 길이다. 이들이 섬겨야 할 주인은 조선의 국민이 아니다. 힘있는 자에게 굴종하는 대가로 그 자리를 보전하고 백성 위에 군림한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한없이 포악하다. 힘센 자에게 빌붙어 먹는 기회주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종족이다. 완장을 하사받고 날뛰는 천둥벌거숭이들(“무식한 삼류 바보들”)을 데려다가 관료제를 망가뜨리고, 법치를 갈아엎고, 경제를 말아먹고, 사회를 흔들고, 상식을 뒤집었다. 극우가 득세한 미·일은 화색이 돌았고 국민들은 골병이 들었다.
한덕수(국무총리), 이상민(행정안전부), 추경호·최상목(기획재정부), 김용현·신원식·김태효(국가안보실), 한동훈·박성재(법무부), 박진·조태열(외교부), 원희룡·박상우(국토교통부), 권영세·김영호(통일부), 박보균·유인촌(문화체육관광부), 이종호·유상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정식·김문수(고용노동부), 김현숙(여성가족부), 조규홍(보건복지부), 박민식·강정애(보훈부), 이원석·심우정·이창수(검찰청), 김용현·여인형·문상호(국방부)... 과연 이들은 주인을 섬기는 공복으로서 국민 앞에 언행을 삼가는 존재들인가?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이들에게 완장을 채워준 인사권자의 자질과 품격 문제다. 유유상종이라 했다. 멀쩡한 지도자는 역사와 주인을 배신하는 언행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이들이 청문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에서 내놓은 발언을 듣자면 내용을 떠나 짜증난다. 김용현은 “군복 입었다고 할 얘기 못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더 병신”이라고 했고, “그러니까 [니가] 대통령이 안되시는 겁니다” “말조심하세요”라고 야당의원을 윽박질렀다. 여인형(방첩사령관)은 김민석 의원의 질의에 “굳이 대답할 필요는 못 느낀다”고 대꾸했다. 문상호는(정보사령관)은 야당의원의 질의에 “넌 또 뭐야, 어디 할 말 있음 해봐”라는 표정이다. 머슴이 아니라 주인 머리꼭대기에 앉아서 훈계질하는 상전이다. 어쩌면 이미 비상계엄을 염두念頭에 두고 그리 시건방을 떨었는지 모른다. 당장에라도 되먹지 못한 머슴놈들의 불알을 잡아 비틀고 멍석에 말아 패서라도 고약한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고 싶다.
이들은 최고 전문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다. 윤씨 내외부터 김용현과 노상원까지 A급이 아니다. 일을 잘하는 방법(능률)은 커녕 민주주의도 감당하기 어려운 자들이다.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니 사실과 다른 얘기로,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으로 어거지를 쓴다. (판사도 아니면서) 확정적 중범죄 후보와 토론하기는 어렵다, 일제시대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이었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다... 어설픈 핑계로 답을 거부하거나, 가부를 분명히 밝히지 않거나, 동문서답으로 뭉갠다. 여의치 않으면 공연한 시비를 걸어 난장판으로 만든다. 추임새처럼 종북좌파와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를 반복한다. 질문을 듣고 이해하고 나름의 견해를 조리있게 밝히는 능력이 없다. 사리분별이 없으니 부산엑스포든 대왕고래든 의대정원이든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
이들에게는 개인의 잇속만 있을 뿐이다. 이념도 나라도 국민도 양심도 다 가식일 뿐이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과 꼭 해야 할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과 윤리 따위는 아랫것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언제나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자유민주주의)는 염불로 득도한 자들이다. 이들은 권리와 권한을 누릴 뿐 의무와 책임은 개의치 않는다. 시시비비, 논리성, 일관성은 금기다.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모호하게 뭉개고, 변화무쌍하게 줄을 타는 기회주의 처신은 신공神功이다. 무슨 짓을 하든 뒷배인 상사에게 맹종하고 그 대가를 누리면 그만이다. 장차관급 고위직 그 누구도 김여사 정권의 비상계엄을 거부하거나 막지 않았고, 위헌이라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법조항을 몰라서가 아니라, 여의도로 몰려간 시민들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인간성이 퇴화된 수구기득권이기 때문이다.
법기술자의 반란을 진압하는 주권자의 힘
김여사 정권에서 주요 공직은 가까운 검사, 판사, 동창(서울법대, 육사, 충암파), 지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판검사(출신)들은 금융위원회(김주현), 금융감독원(이복현), 방송통신위위원회(김홍일·김태규), 국가인권위원회(안창호·김용원), 국가권익위원회(유철환)까지 꿰찼다. 법기술자가 판치는 나라가 되었다. 그 잘났다는 판검사들이 설쳐댔지만 법치와 공정은 무너지고 구라와 막말만 남았다. 여야합의가 없다며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자들, 위헌이라는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한 달이 지나도록 대놓고 임명을 거부하는 자들, 법을 거슬러 날짜를 시간으로 셈하여 내란수괴를 풀어주는 판사, 정신나간 판결에 항소하지 않는 검찰총장, 조국 딸에게 그토록 매몰차더니 총장 딸에겐 한없이 자애로운 검사... 법기술자들이 벌이는 막장 드라마의 향연이다.
소정 선생님은 “공직자는 인간을 아는 사람이어야지 한낱 기술자여서는 안된다”(2008: 452)고 하셨다. 고시高試에서 법률을 공부한 자를 뽑는 현재와는 달리 과거科擧를 통하여 시문학詩文學하는 사람을 고위공직자로 선발한 조선시대가 낫다고 했다. 지금 법기술자들(고시기술자)들이 벌이고 있는 무법천지 난동을 예견하셨을까?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군대를 동원하여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계엄에 저항하기는 커녕 동조하고 방관하는 자들 아닌가? 자칫 수천 수만의 사상자가 났을 뻔한 사태에 반성하기는 커녕 저 혼자 살 궁리나 하고 자빠졌으니... 이 무지막지한 자들을 어찌 인간이라 할 것인가. 을사오적이 어디 따로 있다던가.
내란 수괴는 감옥에서 나와 활보하고 있고, 탄핵소추안 재판은 석 달이 넘도록 깜깜무소식이다. 대법원도 헌법재판소도 법미꾸라지들의 정치질에 흔들리고 있다. 법과 양심을 걷어차고 “밥”과 “앙심”에 집착하는 판검사들의 반란이다. 정치 중립을 비웃는 법카르텔의 난동이다. 주권자를 속여 표를 얻어 놓고 신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렸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춰세우려는 법기술자들의 무모한 과대망상이다. 어찌하여 전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본 내란을 내란이라 결론내지 못하는가? 김학의 사건처럼 눈깔이 없고 귀때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없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시시각각으로 민생은 피폐해지고 사회는 갈등과 혼란으로 무너지고 있다. 주권자들은 내란성 질환이 생길만큼 참을 만큼 참았다. 뼈마디마다 사리가 생길만큼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국민의 뜻(동의와 협의)을 무시하고 끝내 자기 일만을 고집하면, 국민은 이런 무도한 정부를 개폐改廢할 수 있다(2001: 284). 나라의 주인으로서 국민이 갖고 있는 고유한 권리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어찌 나든 길은 하나 밖에 없다. 혹독한 국민의 심판이다. 같잖은 법기술자의 패악질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자각이다. 재판관 몇몇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지 않고 주권자가 직접 고위공직자를 파면하겠다는 의지다. 이참에 민주공화국의 헌정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다짐이다. 그리하여 주권자의 뜻을 거스르는 머슴이 어떻게 처단되는지, 어째서 이 나라의 주인이 국민인지를 똑똑히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제 각자 필요한 “연장”을 챙기고 마음의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

인용: 박헌명. 2025. 김여사 정권의 공무원 행동강령. <최소주의행정학> 1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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