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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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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지난 7월과 8월 제 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을 개최했는데, 카툰부문에서 <윤석열차>가 금상(경기도지사상)을 차지하였다. 그런데 이 대회를 후원했던 문화체육관광부는 정치를 주제로 한 작품을 선정했다며 돌연 진흥원을 문책했다. 100억원 후원금이 달린 후원명칭 승인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카툰 자체가 주로 정치를 풍자하는 그림인데 대체 뭔 소리란 말인가.

문학과 예술과 담을 쌓은 수구세력

국정감사에서 야당은 정부가 표현할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따졌다. 최순실·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를 떠올린다고 했다. 여당은 영국 만평가의 작품을 표절했다며 <윤석열차>를 깎아내렸다. 전직 검사였던 어느 의원은 “한눈에 봐도 표절”이라고 단언했다. 나는 작품을 보기도 전에 탄식했다. 첫째, <윤석열차>가 불순한 의도를 가졌다고 시비를 건 자들이 학생 작가를 노리개 삼아 자신들을 위한 정치질을 하고 있다. 설령 작품에 부족한 점이 있다 해도 나잇값 못하는 자들의 난동이다. 둘째, 문체부가 후원금을 미끼삼아 문화예술에 대해 시시콜콜 걸고 넘어지는 것이 수상하다. 최순실 사태를 겪고서도 이런 짓을 저지를 관료가 있을까? 철딱서니없는 어른들의 일탈로 어린 작가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을 두려움과 무게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보수와는 달리 수구세력은 문학과 예술과 담을 쌓은 듯하다. 어쩌면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주체할 수 없는 권력과 돈으로 무엇이든 마음껏 누린 업보다. 배고픈 고통을 모르고, 배우고 싶은 갈망도 갖지 못하고, 핍박받는 설움도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간절함과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속박이 있을 때에만 자유가 빛나는 법이다. 피눈물을 떨구는 좌절과 희열과 감동이 없으니 그들에게 문학과 예술은 기껏해야 마약과 같은 허무일 뿐이다. 작가가 담아낸 뜻과 감성을 읽어낼 능력이 없다. 아름다움과 추함을 느낄 수 없는 불감증 환자들이다. 분별력이 없다. 노무현씨를 막말로 뭉개버린 <환생경제>가 딱 그들의 수준이다. 맥락없는 욕지거리를 남발하면서 서로 희희락락했던 그들이다. 정적을 비난한답시고 그린 것들은 대부분 보기에도 섬뜩하다. 괴수, 늑대, 총구, 서슬퍼런 칼날, 잘려나간 목, 시뻘건 피... 유치하다. <달의 몰락>을 문재인씨의 하야로 믿고 목이 터져라 불러대는 늙어빠진 천둥벌거숭이들이다.

<윤석열차>는 좋은 창작품이다

하도 말들이 많아서 <윤석열차>을 보았다. 작가의 의도는 폭주하는 기차에 명료하게 드러났다. 훌륭한 비유다. 토마스와 전혀 다른 열차의 얼굴(무슨 짓을 해도 미운 윤씨), 김명신씨를 닮은 여성(수많은 의혹에도 해맑게 나대는 김씨), 칼을 든 검사병정(검찰공화국), 열차가 무너뜨린 건물(여가부도 경제도 외교도 국방도 망하는), 그리고 열차의 폭주에 놀라 달아나는 식구들(하루하루 삶이 망가지는 국민). 만일 열차 앞에 이재명, 김정은, 시진핑, 푸틴을 그려넣었다면 수구세력들은 눈물나게 감동했을 것이다. 이 만평은 권력자를 실랄하게 비판하지만 추접하거나 흉측하지 않다. 그 나이 또래의 깨어있는 눈으로 본 것이다. 정상인이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만평이다.

영국 작가의 그림은 전혀 다른 동기와 의도를 보여준다. 열차를 둘러싼 인물들과 열차가 가는 방향은 Brexit와 선거를 둘러싼 구역질나는 정치질을 말한다. 반면 <윤석열차>는 검찰공화국의 폭주로 망가지는 민생과 권력자의 역겨운 안하무인을 고발하고 있다. “윤석열차” 문구 옆에 널부러진 구두 한 짝은 작가의 동기를 추측케 한다. <윤석열차>를 보고 화를 낸다면 나만 존귀한 존재라면서 남을 업신여기는 자다. 자신은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나머지는 받들어 모실 의무만 있다는 식이다. 표절을 운운한다면 어떡하든 권력자를 위무하려는 자다. 잇속에 눈이 멀어 양심을 외면한 자다. 그림이든 노래든 연극이든 예술의 아름다움과는 무관하다. 해당 작가가 밝혔듯이 <윤석열차>는 표절도 아니고 저작권 침해도 아니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창작물이다.

왜 표현할 자유를 말하는가?

John Stuart Mill은 표현할 자유(freedom of speech)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세가지로 요약했다(Levmore & Nussbaum, 2010). 첫째는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인간은 틀릴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생각과 우열을 견줌으로써 완전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윤석열차>는 이에 부합한다. 왜 정권에 대한 비판을 그리 고깝게 생각하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저주하는 만평은 괜찮고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을 비난하면 안되는가? 반성하지 않고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수구세력의 본성이다. 문체부가 무리수를 감행한 까닭이다. 둘째, 개인의 자율성(automony)을 존중하는 것이다. 각자 자유인으로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윤석열차>를 그린 고등학생도 인간 고유의 자율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공익의 해치는 것도 음흉한 푸닥거리도 아닌 한 윤김씨가 싫어하든 화를 내든 상관없다. 세째, 민주주의에 필요한 공개 토론을 보장하는 것이다(democratic deliberation). 수구세력이 쌍심지를 켜고 <윤석열차>를 시비걸자 많은 시민들이 그 만평을 보고 갑론을박하게 되었다. 숨은그림찾기하듯 자세하게 살펴보았으니 작가의 뜻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수구세력의 난동으로 화룡점정畫龍點睛이 된 셈이다. 허탈한 역설이다.

이쯤되면 윤씨가 툭하면 내뱉는 자유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나는 자유라 읽고 너는 속박이라 쓴다. 나는 누려야 할 권리고 너는 피할 수 없는 의무다. 나는 힘을 가졌고 너는 갖지 못했다. 나는 이겼고 너는 졌기 때문이다. 고로 나는 언제나 옳고 너는 틀렸다. 나는 진리·정의·공정 그 자체이다. 윤씨의 자유는 그의 만능키다. 

참고문헌

  • Levmore, S.X., & Nussbaum, M.C. (Eds.). (2010). The Offensive Internet.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2. <윤석열차>의 역설과 표현할 자유. <최소주의행정학> 7(11): 1.

지난 달 21일 뉴욕에서 열린 제 7차 Global Fund Replenishment Conference에 초대받은 윤석열씨가 어이없는 실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거의 모든 언론사가 해당 영상을 보도했고 그 파장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야당은 동맹국인 미국 대통령과 의회를 욕보였다고 비난했다. 연이은 외교참사라 했고,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사적 발언, 날리면, 말리믄, 동맹훼손?

대통령실은 보도가 나가고 서너시간 뒤에 “사적 발언”이라며, 지나가면서 한 말을 누가 어떻게 녹음했냐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자막 내용에는 토달지 않았다. 보도 후 15시간이 지나서야 나타난 홍보수석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며,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들어봐 달라고 호소했다. 배현진씨는 한술 더 떠 음성분석 결과라며 “날리면”이 아니라 “말리믄”이라고 했다. 윤씨는 뒤늦게 기자들에게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했다. 왜곡 보도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윤씨가 “이 xx”라는 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하자, 여당 의원들은 비속어도 욕설도 없었다며 MBC에 떼거리로 몰려갔다. 언론인 출신들이 더 설쳐댔다. 민주당과 MBC가 짜고 자막을 조작하여 가짜뉴스를 퍼뜨렸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대통령실은 MBC에 협박편지같은 것을 공문이랍시고 보내 거칠게 보도 경위를 따져물었다.

"바이든"도 "이 새끼"도 "쪽팔려"도 들린다

과연 이렇게까지 세상을 시끄럽게 할 일이었을까? 녹음된 음성이 분명하게 들리지는 않아도 앞뒤 영상을 보면 누구나 자초지종을 알 만하다.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깨끗하게 사죄하면 될 일이었다. 경기침체에 먹고 사는 일도 바쁜 국민들이 무슨 듣기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이따위 허접한 소리를 몇번씩 들어야 한단 말인가? 하도 말이 많아서 동영상 몇가지를 들어보니 분명해졌다.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안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떻하나”

이렇게 들리는데 어쩌란 말인가? 윤씨가 아니라고 하면 다르게 들려야 하나? 허구헌날 자유를 들먹이던데 바이든으로 들리는 내 귀의 자유는 없는가? 위 문장에서 바이든을 “날리면”이나 "말리믄”으로 바꾸면 말이 되나? 민의를 대변한다는 입법부를 “이 xx”로 말하면 괜찮은가? 조작이고 왜곡이라면 원래 발언한 것을 제시하고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발화자인 윤씨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직까지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

쪽팔린 건 윤석열씨 자신이다

나는 위와 같이 들었지만, 인간적으로는 윤씨를 이해해줄 수 있다. 영상을 보면 그럴 만한 정황을 알 수 있다. 그토록 한미혈맹을 강조했던 윤씨였지만 정작 바이든은 기계적으로 악수만 하고 지나쳤다. 박진씨를 앞세워 다시 바이든을 졸졸 따라다니다가 겨우 48초 눈도장을 찍고 내려왔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허탈하고 머쓱한 표정에 다 씌어 있다. 차마 분풀이는 못하겠고 일행들 앞에서 허세부리며 체면치레를 한다는 것이 좀 과했던 것이다.

“일을 뭐 이따위로 하냐, 이 새꺄. 이게 어떤 자리인데, 감히 니들이 날 물먹여? 겁대가리도 없이. 하여튼 기본이 안됐어, 기본이. 가오가 있지, 아우 쪽팔려”

아마도 윤씨는 위와 같이 분을 삭이고 싶었을 것이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존심이 무참히 무너진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모멸감이다. 쪽팔린 것은 바이든이 아니라 바로 자신임을 윤씨는 알고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모냥빠지는 것은 참지 못하는 낭만자객아닌가. 철석같이 믿었던 큰형님께 푸대접을 받고 나온 두목이 아무것도 모르는 부하들 앞에서 “이런 빌어먹을” “등신같은 새끼” 등을 토해내는 영화속 장면이다. 그러니 단어 하나하나를 따져본들 무슨 소용인가. 외신에서 “이 xx”를 idiots이나 bastards나 f***ers로 썼지만 윤씨에게 차이가 없다. 어차피 입에 달고 살았을테니 의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국회라 했든 의회라 했든 윤씨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굳이 바이든을 욕보일 이유도 의도도 없다. 그저 자신에게 실망하고 좌절하고 자책할 뿐이다. 그 누구에게도 미안하지도 않고 사과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이런 대통령의 참담한 마음을 몰라주고 눈치없이 일을 키운 MBC가 미울 뿐이다.

윤씨의 자기기만과 하수인들의 바보짓

하지만 공직자로서 윤씨는 최악의 상황을 자초했다. (1) 깜냥이 되지 못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선에서 이겼으니 자질과 품위도 정상급이라는 논리일까? 현실부적응이다. 이런 것은 누구나 본능으로 안다. 하물며 외교로 잔뼈가 굵은 바이든임에랴. 문재인씨와 윤씨의 근본적인 차이다. (2)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부인하고 화살을 다른 데로 돌렸다. 열등감인지 자기기만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영상을 확인했으면 바로 사과했어야 했다. 외교문제 아닌가. (3) 초짜가 열심히 배우고 연습하지 않았다. 아직도 검사질에 훈계질이다. 평생 자유에 한이 맺혔는지 매사에 성의가 없고 제멋대로다. (4) 사람을 볼 줄도 쓸 줄도 모른다. 식구들이 온갖 의혹으로 시끄럽다. “공항장애”로 “컨펌”하는 최선생을 떠올린다. 실력이 아닌 연줄로 사람을 대충 데려오다 보니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멀쩡한 참모를 썼으면 대통령 멱살을 잡아서라도 대국민 사과를 시켰을 것이고, 거수경례라도 똑바로 하도록 수천 번을 연습시켰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일본 총리를 만나면 안된다며 막아섰을 것이다. 윤씨나 하수인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윤씨의 말 한마디에 “바이든”도 없고 “이 xx”도 없다며 게거품을 문 바보들이다. “바이든”으로 들린다는 자들은 MBC에 속아 한미동맹을 깨고 나라를 팔아먹는 반미매국노가 될 판이다. 검찰은 이심전심인지 MBC를 찔러보고 이재명씨를 만지작거린다. 감사원이 움직인다.

악한 정권의 자기비대화 증상이다. 무능하고 게으르고 천박하다. 잘못을 반성하고 수정할 용기도 없다. 세평은 품격이고 뭐고 꼴보기도 싫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외가 대통령 놀이를 원없이 한 셈이다. 자신을 삼키고 나라를 삼키기 전에 그만두기를 바란다.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2. 윤석열의 쪽팔림과 하수인의 바보짓. <최소주의행정학> 7(10): 1.

 

수구세력들의 아귀다툼이 점입가경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승리한 자들의 모습이 아니다. 대선 전부터 불거졌던 윤석열씨와 이준석씨의 갈등은 결국 배은망덕과 토사구팽으로 치닫고 있다.

윤씨 측에서 이씨가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당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급기야 검찰에 고발했다. 위원회는 지난 8월 이씨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 처분을 내렸고,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이 전국위원회의 추인을 얻어 주호영씨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에 이씨는 법원에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기어코 주위원장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윤씨 측은 보란듯이 추가징계를 추진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정진석씨를 새로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어떡하든 이씨를 제거하려는 윤심(명심)의 집요함은 멈출 줄을 모른다. 벼랑끝에 몰린 이씨는 또박또박 가처분신청을 날리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러한 이전투구는 정치인들의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다. 정당한 선거를 거쳐 권력을 잡은 집단아닌가. 초짜 대통령을 등에 업고 설치는 노회老獪 정치꾼들과 30대 여당 대표의 진흙탕 싸움이라니... 참으로 낯설고 씁쓸한 광경이다.

본질은 구세력의 자기비대화다

문득 소정小丁이 종종 언급한 자기확대 혹은 자기비대화(self-aggrandizement)가 생각난다(1991: 119).1) 이는 포악한 통치자 스스로 권력을 한없이 취하는 것을 말하는데(1996: 401), 부끄러워하는 마음(義)을 전제로 한 자기희생의 반대개념이다(405쪽). 그 자리에 부여된 권력으로는 안심하지 못하고 불안감과 열등감으로 더 많은 힘을 탐한다. 타는 갈증에 바닷물을 마시는 격으로 더 많은 힘을 손에 쥘수록 더 많은 불신과 불만이 쌓인다. 수치심이 없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아랫사람을 쥐어 짜고 끝임없이 의심하면서 모든 권력을 빨아들인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몸집이 불고 뼈가 휘고 살이 썩어 문드러져도 멈추지 못한다. 자기비대화는 국정를 말아먹고 충복마저 잡아먹고 급기야 스스로를 집어삼켜야만 끝이 난다.

악한 정부에서 볼 수 있는 “과다한 체제 경직화”도 마찬가지다(1996: 383-390). 포악한 통지자는 우선 자기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못하게 하고, 정치 경쟁자를 죽이고, 국민 일반이 옳게 살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케 하고, 정치정당성 확보(전시효과)를 노리고 “큰 일”만 내세우고, 급기야 외국에게 내정간섭을 당하게 된다.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타국이 죄없고 선한 백성을 구하기 위해 악한 정권을 정벌하거나 악한 통치자가 효율성이 낮은 구질서(과도한 통치비용, 정경유착, 부패 등)의 경직성을 높인다(383쪽). 구세력(친일파, 군사독재자, 이에 빌붙어 기생하는 기회주의자)에게 구질서는 생명줄이어서 나라를 망치는 줄 알면서도 마약처럼 어찌할 수 없다. 개혁은 공허한 메아리다. 효율은 떨어지고 비용은 상승하여 국제경쟁력은 곤두박질친다.

악한 정부의 과도한 체제경직화

소정은 <論語> 子罕편을 인용하여 과도한 체제경직화를 설명했다. 子絶四 毋意毋必毋固毋我(공자는 네 가지를 완전히 끊어버렸는데, 사사로운 뜻이 없고, 기필코 하겠다는 마음이 없고, 집착하지 않았고, 이기심이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구세력들은 일을 사사로운 뜻(私意)으로 하고, 순리를 따지지 않아 친일·쿠데타·독재를 가리지 않고 기필코 일을 해야 한다며 달려들고, 그 일이 잘못되었어도 반성이나 개선없이 계속 고집하고, 드디어는 사사로운 자기들의 잇속(私利)을 챙긴다(1996: 391). 체면이고 뭐고 없이 인간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해관계에만 몰입되어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다(1991: 120-121). 公이 아닌 私, 義가 아닌 利에 함몰된 나머지 거리낌없이 남의 몫까지 빼앗아 게걸스럽게 삼키는 자다.

기득권을 틀어쥔 구세력은 과도하게 체제를 경직시킨다. 자신의 뿌리가 된 체제를 관리할 능력도 없고, 개혁할 용기도 의지도 없다. 이들의 생리는 다음과 같다(1996: 392-398). (1) 경험이 많고 덕이 있는 이를 소홀히 여기고 아부하는 하수인만 데리고 일한다. 소신있고 전문성이 높은 자가 아닌 연줄이 닿은 자들을 중용한다. 소위 “윤핵관” 뿐만 아니라 형님·동생으로 지낸 검사들과 허접한 “유지”들이 완장차고 설쳐댄다. (2) 잘못을 고치라는 완곡한 말을 듣기는 좋아해도 실제 고치지 않는다. 국민을 바라보겠다고 했지만 거울만 들여다 보는지 반성도 없고 오류를 바로잡지도 않는다. (3) 자기네끼리 잘못을 숨겨주는 집단이기주의를 갖는다. 하수인들은 일상이 된 통치자의 허물을 덮느라 사실과 진실을 외면한다. 윤씨와 “유지”만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4) 웃사람은 아랫사람을 못살게 굴고 자기들끼리도 재산 분배를 공정히 하지 않는다. 이해관계가 틀어져 대통령, 당대표, 원로, 당원이 서로 머리끄댕이를 잡고 흔든다. (5) 한번 관직을 떠난 후에도 끈질기게 이익이 되는 자리를 차지한다. 총리실이든 장관실이든 찢어진 낙하산을 타서라도 용하게 자리를 꿰찬다. 10년 전 장관이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구세력끼리는 이심전심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6) 이러니 수구 기득권을 해체시키는 데 백 년이 걸린다.2) 소정이 자기비대화와 과도한 체제경직화를 불치병이라 부른 까닭이다(390쪽).

권력자의 자질이 문제다

깜냥이 안되는 자가 뜻밖에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를 범해 벌어진 사달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안되니 시도 때도 없이 자유타령이고 사주점괘질이다. 품격은 커녕 막말과 삿대질을 남발한다. 스스로 부족한 줄도 비판을 감내할 줄도 모른다. 정직하지도 반성하지도 고치지도 않는다. 부창부수夫唱婦隨에 유유상종類類相從이니 답이 없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안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열심이다. 벌써 권력비대화와 체제경직화 막바지다. 

끝주

1) 자기확대는 self-enlargement 혹은 enlargement of self로 직역할 수 있지만 소정의 취지와 거리가 있다. Bertrand Russell에 따르면 이런 표현은 자신의 지식한계를 뛰어 넘어 다른 차원에 이르는 자기초월(intellectual self-transgression)이다.

2) <論語> 子路편은 如有王者 必世而後仁(천명을 받은 성군이 있다 해도 반드시 30년이 지난 후에 인정仁政이 이루어진다)라고 적고 있다.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2. 수구세력의 자기비대화와 체제경직화. <최소주의행정학> 7(9): 1.

"막말 바이러스"와 과격한 발언

2022. 8. 26. 12:33 | Posted by 못골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15일 현재 인구 백만 명당 확진자수가 1만 6천 명이 넘었다.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로 우뚝섰다. 윤석열씨가 집권 100일만에 이뤄낸 “과학방역”의 위엄이다. 직무수행평가 24%라는 그 어렵다는 경지를 밟았다.

윤씨의 문자질과 "막말 바이러스"

코로나 못지 않게 “막말 바이러스”도 창궐하고 있다. 막말의 순도와 강도가 높아가는 모습은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웬만한 비판은 이젠 식상할 뿐이다. 지난 달 말 윤석열씨가 여당 원내대표에게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며 보낸 문자질이 발각되었다. 자신의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준 여당 대표를 짓밟는 말이었다. 배은망덕이나 양두구육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윤씨는 음주운전과 논문표절 등의 의혹을 받고 있던 박순애씨를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라 치켜세웠지만, 박씨는 5세입학사태로 맥없이 주저앉았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뜬금없이 독립운동을 자유운동이라고 규정했다. 생뚱맞은 자유타령이다. “자유”에 한을 품고 죽은 처녀귀신이라도 씌인 것일까?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라던 김구를 비웃는 말이다. 최소임금 이하로도 일하고 싶은 자유에는 게거품을 물면서도 반지하에라도 살고 싶어하는 자유에는 침묵한다. 폭우로 침수피해가 난 것을 보고도 퇴근한 윤씨나 대통령이 있는 곳이 상황실이라고 둘러대는 비서실이나 오십보백보다. 김기춘씨는 대통령이 있는 곳이 집무실이라고 했던가. 한덕수씨는 윤씨의 아파트가 지하벙커 수준의 시설을 갖췄다며 한 술 더 떴다. 아무 말이나 나오는 대로 배설한다. 가관이다. 그럴 양이면 뭐하러 난리법석을 피우며 집무실을 옮기고 아파트 쇼핑하듯 공관을 들쑤시고 다녔단 말인가.

윤씨의 제멋대로 상식과 정의와 공정이 작두를 타고 춤추자 “막말 바이러스”가 널뛰고 있다. 사실상 폭력이다. 너 죽고 나 살자가 결국은 다 죽자로 끝난다. 당사자는 물론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화나게 한다. 상처를 헤집고 갈등을 부추기고 증오를 불지른다. 반드시 끝장을 봐야만 멈추는 보복의 악순환이다. 이런 막말 잔치에는 시시비비를 따져볼만한 터럭조차 없다. 그저 구역질나는 일이다.

박지현·박용진의 과격한 발언

대통령선거에서 간발의 차로 패한 민주당이 새 지도부를 선출하고 있다. “어대명”이니 “확대명”이니 친명이니 비명이니 반명이니 호사가들의 말잔치가 무성하다. 이재명씨가 7할이 넘는 지지를 골고루 받으며 당권을 거머쥐게 된 형국이다. 그런데 지난 5월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지현씨는 당내 “내로남불”과 “팬덤정치”를 비판하면서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586 정치인의 용퇴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필 적들의 언어로 스스로를 자학하는 어리석음이라니... 성폭력이든 뭐든 잘못한 일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밝혀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일이다. 대체 586은 무슨 죄를 지었으며, 국민 신뢰와 586 용퇴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586을 전부 땅에 묻으면 신뢰를 얻고 선거에서 이긴단 말인가? 아마도 수구세력이 만세삼창을 부르며 반길 일이다. 정치인은 나이가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진퇴가 정해질 뿐이다. 양김씨의 청년정치를 말하지만 분수도 모른 채 스스로 김대중이 될 노력은 하지 않고 감나무 밑에서 입만 쩍 벌리고 있으니...

박씨는 한걸음 더 나가 이재명씨의 불출마를 주장하였다. 여당이 보복을 해올 것이기 때문에 민생이 실종되지 않을까 우려한댄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격미달인데도 비상대책위원장을 했으니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바득바득 우기고 나섰다. 경우에 맞지 않은 소리다. 설령 대선 패배가 이씨의 잘못이라 해도 출마여부는 이씨가 정하는 것이다. 박씨의 우려는 한심한 상상이다. 그럼 여당이 보복할 가치조차 없는 후보를 내세워야 하는가? 2할대 지지율로 힘겨운 경주를 하고 있는 박용진씨도 마찬가지다. 이씨의 사법리스크를 운운하며 말을 바꿨다느니 선민의식이 있다느니 말꼬투리를 잡기에 급급하다. 군부가 김대중씨를 싫어하니 자신이 단일후보가 되어야 한다던 김영삼씨의 궤변과 무엇이 다른가? 이낙연씨가 실패한 까닭이다. 과거의 군부와 현재의 검찰이 그렇게도 공정하고 신뢰할 만한가? 그들이 싫어하면 지지율 7할 후보도 사지로 내몰고 동지도 뭐고 다 먹잇감으로 내놓을 참인가?

박지현씨도 박용진씨도 과격하다. 사람들이(적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로 경쟁자를 흔들어 자신의 잇속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박용진씨는 “한 계파가 꿩먹고 알먹고 국물까지 먹고 있다”며 이씨의 사당화를 우려했지만, 무기력과 질투심을 돌려서 말한 것이다. 노무현씨처럼 계파없이 당에 들어와 대선후보가 되고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씨에게 계파라니... 사당화는 저주에 가까운 상상이다. 두 박씨는 왜 자신이 김대중·노무현·이재명에 미치지 못하는지 냉철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그들은 누구 덕을 보지 않았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모으는 뜻을 품었고, 치열하게 깨지면서도 버티고 지켰던 사람이다. 유권자는 잠깐 정신줄을 놓을 수는 있으나 결코 어리석지 않다. 귀신같이 깜냥을 알아본다.

최소한의 발언은 경우에 맞는 말이다

소정 선생님은 비폭력을 말씀하시면서 꼭 필요한 말을 최소한으로 하라고 했다. 무서울 때에 용기를 내서 하는 말이기에 사실이고 진실이어야 한다. 본능으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연한 논리로 진심을 담아 풀어내야 한다. 애증에 휘둘리지 말고 곁가지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반면 기회주의자들은 무서울 때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상황이 호전되면 기어 나와 대중이 좋아할 만한 말을 쏟아내고 다닌다. 인기를 노린 과격한 발언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진실이든 아니든 대중을 호릴 수 있는 말이면 된다. 앞뒤가 맞든 안맞든, 아군에게 불리하든 말든 그들은 가리지 않는다. 말에 논리가 있을지언정 진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잇속이 있을 뿐 동지에 대한 배려는 없다. 쓸데없이 말이 많다. 긴가민가 혼란스럽다. 이재명씨가 간절함을 담아 꼭 필요한 말만 담담하게 해주길 바란다.

 

인용: 박헌명. 2022. "막말 바이러스"와 과격한 발언. <최소주의행정학> 7(8): 1.

정치꾼들이 내뱉는 말이 종종 세상을 어지럽힌다. 모호함으로 자신을 방어하면서 힘으로 정적을 찍어누른다. 참과 거짓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피아를 갈라서 이득을 보겠다는 셈법이다. 대선을 전후한 윤석열씨의 “자유민주주의”와 안철수씨의 “과학방역”이 그러하다.

Liberal vs Illiberal Democracy

“자유민주주의”는 영어로 liberal democracy라고 한다. 자유주의(liberalism)가 개인의 권리와 정부(왕의 부당한 간섭)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이념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형태를 말하는 민주주의와의 궁합은 어색하다.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주의(progressivism)와 안정을 지향하는 보수주의(conservatism)의 연속선에서도 벗어나 있다. 사실 윤씨의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와 별 상관이 없다. 자신의 잇속을 차리려는 기회주의자들의 속임수다. 그들의 이념은 정치지향이 아니라 사람을 홀리는 주문呪文이다.

그냥 “민주주의”면 그만이다. 일반 대중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시하고 그 결과(법이든 약속이든)에 따라 정치를 구현하는 제도다. 그 이름이 어찌 되었든 간에 민주주의 원리가 현실에서 구현되는가를 따져야 한다. 영국은 불문법으로도 민주주의를 뿌리내린 왕국이다. 미국은 민주주의 기수라지만 정작 헌법에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가 적혀있지 않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라오스는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라 하지만 선거를 치른다고 다 민주주의인가?

윤씨나 수구세력이 굳이 “자유”를 붙이는 까닭은 북한의 “인민”과 차별화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강박감이다. 자유와 인민의 뜻과는 상관이 없다. “자유”를 들먹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근혜, 윤석열을 보라. 뿔달린 공산당을 때려잡는다며 멸공을 부르짖는 “이승복”들 아닌가. 그들의 “자유”가 저질렀던 것은 내 편이 아닌 자들은 골라내어, 사실과 관계없이 법의 이름으로 좌익종북으로 몰고, 기득권자의 약육강식을 공고화한 것이다. 이렇게 공민권이 박탈된 “빨갱이”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적敵이다. 천민으로 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수구세력이 말하는 자유요, 법치요, 정의요, 공정이다. 이름과는 정반대로 “자유가 문드러진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다. 대중을 현혹하여 권력을 취한 뒤 내 편만 핧아주는 “유지誘舐 민주주의”다.

윤씨는 구체적인 사실이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보다는(사고가 나니까), 원칙과 일반론을 말한다. 헌법과 법률을 들먹인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야 하고 불법 파업은 엄단해야 한댄다. 누가 토를 달겠는가? 그 자체로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는 지도자의 말이 아니다. 범법자를 때려잡는 검사의 말이다. 지도자는 본인의 결단이 어떻게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는지 설명하고 책임져야 한다. 윤씨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비판을 틀어막고 벌거벗은 힘으로 자기 맘대로 해먹겠다는 소리다. 문재인 정권은 모든 것이 반헌법이고 그들은 무슨 짓을 해도 친헌법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왜냐고? 그렇게 마음을 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심(윤심이 아니라)을 거스르는 검찰·경찰·감사원·국회·법원은 그 자체로 위헌이고 국기문란이고 쿠데타다. “유지민주주의” 헌법질서와 상식이 이런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껍데기를 방패삼아 마음껏 독재를 하겠다는 소리다. “자유시장경제”는 “계획경제”와 차별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그저 “시장”이 있을 뿐이다. 경제 주체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시장은 이미 시장이 아니다. 반대로 어떠한 제한도 없는 100%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도 아니다. 윤씨의 행보는 “자유시장경제”가 가진 자들만 맘껏 누리고 나머지는 노예처럼 살라는 뜻임을 암시한다.

“과학방역” 자체가 나쁜 정치다

한편 안철수씨는 문재인 정권을 “정치방역”이라고 공격하고 “과학방역”을 강조했다. 하지만 무엇이 정치방역이고 과학방역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모호함을 최대로 활용한 선동이다. 방역 자체가 과학인데 정치방역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방역은 미신이나 마녀사냥이다. 안씨는 26일 과학방역은 방역정책을 관료나 정치인이 아닌 전문가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질병관리청장에게 방역정책에 관한 전권을 줘야 “과학방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의학을 공부하고 오랫동안 방역에 헌신한 정은경씨는 관료이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현재 질병관리청장으로 임명된, 안씨의 후배이자 집사람의 동기인 백경란씨는 전문가인가? 같은 대학의 의학박사인데도 문씨가 임명하면 돌팔이고 본인(윤씨)이 밀어넣으면 전문가인가? 문대통령은 항상 정씨가 이끄는 질병관리청의 전문성과 헌신을 존중했다. 2021년 초에는 그녀에게 백신에 관한 전권을 쥐고 전 부처를 지휘하라고 지시했고, 부처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또 <Time>이 정씨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으로 선정하도록 추천했다. 정씨의 입이 사실상 대통령의 입이었다. 대체 안씨는 어느 별에서 살다 왔길래 아직까지도 코흘리개 잠꼬대인가?

관료제와 정책과정에 대한 안씨의 이해수준은 처참하다. 방역과 같은 국가 중대사를 공직자(관료)가 아닌 민간인 전문가가 최종 결정하는 나라가 있는가? 그럼 반도체정책은 삼성전자 직원이 결정하고 부동산 정책은 유명한 공인중개사가 해야 하나? 그들이 정책을 책임지는가? 정부관료제가 무슨 비서실이나 매품팔이인가? 전문가라 해도 서로 의견이 엇갈리기 마련인데, 왜 관료인 백씨가 전권을 행사해야 하나? 전문가의 의견이 모아졌다 해도 지도자는 당연히 다른 영역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해서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자리에 따라 보는 시야와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책임은 정치인과 관료들의 몫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정치과정이자 정책과정이다. 권한위임이 아니라 지도자의 자질과 관료제의 합리성에 관한 문제다. 문정권의 “정치방역”은 순리이자 과학이지만 안씨의 “과학방역”은 방역이 아니라 나쁜 정치이다. 결과는 뻔하다. 근본없는 윤·안씨의 말장난에 쓴웃음을 짓는 까닭이다.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2. "자유민주주의"와 "유지민주주의". <최소주의행정학> 7(7): 1.

얼마 전 가깝게 지내는 분에게 안부를 물었다. 자연스레 코로나 얘기로 흘렀다. 그 분은 기다렸다는 듯이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정책을 비난했다. 부도덕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했다며 분개했다. 방역은 물론 부동산, 경제, 외교까지 최악이라고 했다. 윤석열씨가 잘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어떤 나쁜 짓을 저지른다 해도 문씨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했다. 빨갱이에 대한 증오를 초월하는 저주다. 놀란 나는 그 적개심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과격한 백성이 홧김에 벌인 난동

최고 학위까지 받은 분이 사실관계에 무감각한 것은 충격이었다.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이 미국에서 백만명이 넘고, 작년 말 한국은 인구 만명당 사망자 수에서 OECD 최저치였고, 일본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사망자 2.4만명)이 일본(3.1만명)은 물론 다른 나라보다 사망자가 더 많다고 강변했다. 애초부터 중국유입을 차단했어야 했고, 통계치가 왜곡되었고, 백신을 제때 확보하지 못했다는 등 수구세력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김정숙씨가 전용기를 타고 외국을 제멋대로 드나들었다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무슨 재주로 그 나라의 출입국 기록을 삭제했다는 것인지... 김씨의 의상이나 장신구에 관한 의혹도 마찬가지다. 이미 반증된 사실이 있고 사비로 샀다는데도 막무가내다. 사실이 어찌되었든 간에 문정권은 나빴고 또 나빠야만 한다는 것이 그들의 자존심이고 교리인 것같다. 종편과 수구 유투버들의 우민화가 승리한 것인가.

이른바 친문과 친이라는 자들도 사실과 이성과 상식과 담쌓은 극단주의자들이라는 면에서 수구세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과연 문재인씨는 “친문”의 언행에 동의할까? 이재명씨는 “친이”의 난동을 응원할까? 그 우매한 난사질을 즐기는 자들은 따로 있을터. 이재명 지지자라는 어느 지인은 문정권에 대해 극한 혐오를 보였다. 한 달새 코로나로 부모를 모두 잃은 그는 무지한 방역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비분강개했다. “대깨문” 때문에 망했고 그들과는 이성적인 대화가 안된댄다. 너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이다. 그 “반문”은 문정부의 사실을 말하던 나를 “대깨문”으로 몰아붙였다. 부모를 잃은 황망함은 이해할 수 있으나 나랏일과 뒤섞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외국에서 배울만큼 배운 사람 아닌가. 누가 적인지 망각한 채 서로 물어뜯고 치고 박다가 홧김에 일을 그르친 것이다. 죽쒀서 개준 셈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짐작이 간다. 코로나 사태가 길었던 탓일까? 피로해졌고 예민해졌고 날카로와졌다. 과격한 말전쟁에 신물이 났다. 필요한 것은 시시비비가 아니라 짜증을 해소해 줄 희생양이었다. 정신줄을 놓은 것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패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적들이 써준 주문 그대로를 염불처럼 외고 있다. 친문반문, 586책임, 반미종북, 내로남불, 오기정치, 팬덤정치... 586 전부를 생매장하고 “폭망”을 인정하고 석고대죄를 한다고 해서 수구세력이 주술을 멈추겠는가? 그들이 노무현과 김대중을 칭송하는 까닭은 죽어서 더이상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노무현을 잃은 전철을 반복하고 있다. 나혼자 살겠다며 문재인이든 이재명이든 동지들의 목을 하나하나 먹이로 내어줄 태세다.

과격한 정치꾼이 벌이는 난정

정치권의 과격함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선거기간 내내 말실수와 말폭력으로 일관했던 윤씨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디로 튈 지 본인 스스로도 모르는 언행은 과격 그 자체다. 집무실을 옮긴답시고 느닷없이 국방부를 내쫓았고, 정부부처는 연쇄반응으로 몇달째 술렁이고 애꿎은 시민들은 교통혼란을 겪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과 방사포는 계속되는데, 공언했던 선제타격·원점타격은 깜깜 무소식이다. 다주택소유자 중과세는 징벌이고, 자택 시위는 “법에 따른 국민의 권리”라 했고, 배우자의 기행에 대해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고 답했다. 이 공직자의 직함이 딱할 지경이다.

어쩌다 법무장관이 된 자 역시 과격하다. 보복수사는 물론 그 재판까지 다 해먹겠다는 자신감이다. 거침없는 배우자의 행보는 줄리와 유지 딱 그 수준이다. “내가 말을 뒤집든 뭘 하든, 니덜이 어쩔건데?” 이들에게 못할 일은 없다. 철딱서니없는 왕을 쥐락펴락하는 좌의정과 대왕대비의 품격이다. “윤핵관”들의 입도 거칠어졌다. 연이은 선거 패배로 자중지란에 빠진 야당도 과격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수구언론은 이런 말전쟁을 부추기고 정치혐오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들이 원한 판이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소정 선생님은 “과격한 정부는 민의를 수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패하고 분열하는 국민이... 한덩어리가 되어 그 과격함이 극에 달하게 된다”라고 적었다(2008: 578). 곰곰히 생각해 보라. 누가 방송과 신문에서 날선 칼을 휘두르고 있는지. 여야를 막론하고 그들이 바로 이 때다 싶어 날뛰는 기회주의자들이다. 과격한 정치꾼과 과격한 백성이 어우러져 나라를 난장판을 만들고 있다. 무자비한 폭정暴政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난정亂政이다. 기준이 오락가락하고 고무줄 잣대로 들이대니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작두에 올라탄 무당의 칼춤에 사실과 이성과 상식이 쓰러지고 있다.

절박한 반부패·반분열·반과격 저항

하지만 참혹했던 일제를 버텨내고, 야만스런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를 무너뜨린 우리다. 충분히 좌절하고, 충분히 반성하고, 충분히 절박해져야 한다. 함석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부패하지 말고, 분열하지 말고, 과격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가 궤변과 막말을 쏟아내도 과격한 발언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 폭력의 대안이 폭력일 수 없기 때문이다(1986: 290). 매를 맞으면서도 담담하게 사실과 진실을 말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 (1991: 118). 적의 양심이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말을 해야 한다(2008: 80). 끝까지 참고 감정이 아닌 이성과 상식에 매달려야 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심정으로 동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동지의 허물이 아닌 자신의 미숙함을 고백해야 한다. “대깨문”이나 “수박”을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말을 아껴야 한다. 비폭력 저항의 시작이다.

 

인용: 박헌명. 2022. 과격한 백성과 과격한 정치꾼의 난장판. <최소주의행정학> 7(6): 1.

정책변수(decision variable)는 의사결정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제할 수 있는 것이고 환경변수(environment variable)는 문제해결에서 고려해야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의사결정자의 지위와 힘(자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헷갈린다. 예컨대, 예산은 행정부에게 환경변수이지만(국회에게는 정책변수) 관료들은 종종 정책변수인 것처럼 말한다. 문제해결의 첫단추를 잘못 꿰는 일이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이 분별력이 없으면 나라는 질서를 잃고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

헌법준수는 정책변수가 아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통령의 첫번째 임무는 이 헌법을 제대로 준수하고 이 헌법의 가치를 잘 실현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겉으로 보면 상식에 가까운 발언으로 보이지만 그동안 윤씨와 그 측근들이 보여준 언행을 반추反芻해 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 살배기의 걸음마처럼 위태롭다.

첫번째, 헌법준수는 지도자의 정책변수가 아니라 환경변수다. 임무가 아니라 의무이자 제약조건이다. 헌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쫓겨난다. 대통령 취임선서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라고 시작한다. 헌법이란 테두리 안에서만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윤씨 측은 환경변수를 정책변수로 착각하고 있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면 추상적이지만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국민과 국토를 지켜서 일상을 보존하는 일이다. 쿠데타, 양민학살(제주 4.3, 보도연맹학살, 거창산청함양 양민학살, 광주 5.18 등), 1997년 외환위기, 세월호 참사,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사례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뭄, 홍수, 지진 등)와는 달리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지도자의 탐욕과 무지가 불러온 인재人災이자 환란患亂이다. 국민의 일상과 상식을 망가뜨렸다.

두번째, 그냥 헌법이라 하지 않고 “이 헌법”이라고 한 대목이 위험하다. 윤씨가 해석한 헌법대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 공정이 “이 헌법”의 핵심어다. 문재인 정권을 헌법파괴, 종북從北, 사회주의, 한미동맹 파괴, 불공정으로 규정했으니 그 반대로 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는 나를 지지하는 자들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고(반대하는 자들은 공민권이 없다), 시장경제는 기업인들만 마음대로 한다는 뜻이고, 한미동맹이란 무조건 종미從美해야 한다는 뜻이고, 공정은 판검사들은 무슨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 특권(법이란 것은 힘없고 못배운 주제에 고개쳐들고 대드는 개돼지를 엮는 오랏줄일 뿐이다)을 말한다. 반공과 빨갱이칠로 정적을 쓸어버리고 돈과 힘을 가진 자들만의 세상을 공고히 하겠다는 뜻이다. 국민통합이란 기득권과 그들에게 빌붙어 사는 자들만 하나로 묶는다는 뜻이다. 평범한 백성의 자리는 없다. “이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다.

세째, 윤씨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할 수 있는 것인지, 할 수 없는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구미가 당기는 대로, 그때 그때 분위기에 따라, 아무런 구애拘礙를 받지 않고 결정을 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생각이 없으니 바람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윤핵관이든, 쥴리든, 건진이든 서로 다투어 입으로 흘러나오니 어제 말이 다르고 오늘 말이 다르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겼으니 법이든 윤리든 예산이든 누구든 그의 말에 감히 토를 달아서는 안된다.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제왕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곧 헌법이고 정의이고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줄을 가진 지도자와 고위공직자를 볼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좌절했던가...말로는 국민을 팔고 나라를 위한다지만 결국은 배때기가 터져라 사리사욕만 채우는 자들 아닌가.

무소불위와 무소능위는 매한가지

윤씨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공약과 무관하게 좌충우돌하면서 돌진하고 있다. 당선자가 아닌 점령군 사령관의 폭주다. 환경변수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정책변수인 것이다. 취임도 하기 전에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긴다며 예산타령을 하더니, 느닷없이 용산으로 옮긴댄다. 하루 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국방부는 야반도주하듯 줄줄이 보따리를 싸야 했다. 관저로 낙점했던 참모총장 공관도 외교부장관 공관으로 바꾸었다. 낡고 비가 샌다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아줌마 쇼핑에는 애초부터 계획도 논리도 없는 법이다. 식민지에 부임한 총독에게는 내 것과 남의 것의 구분이 없다.

한마디로 대책도 없이 멋대로 일을 저지르고 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부처는 물론 공관까지 밀고 들어간 것은 경우없는 짓이다. 권력남용이다. 패잔병마냥 쫓겨나는 국방부와 외교부 공직자와 장병들은 대체 뭐가 되는가. 선제타격, 사드와 전술핵, 원전육성, 종합부동산세, 검찰수사권 등도 집무실 이전과 같은 궤적을 보일 것이다. 정책과제가 복잡하고 국내외 현실이 엄중함을 망각한 말잔치다. 제도와 절차와 관행을 가볍게 본 대가를 치를 것이다. 벽에 부딫혀 용두사미가 되든지, 변명도 설명도 없이 전혀 엉뚱한 결말로 끝날 것이다. 윤씨는 과연 취임후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선제타격을 할 수 있을까? 그 기백은 가상하나 꿈꾸어서는 안될 악몽이다. 못하는 것이 없는 무소불위無所不爲니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무소능위無所能爲와 마찬가지다. 인간의 일이 아니다.

포악한 통치악으로 돌아간다

소정 선생님은 가라지와 곡식을 비유하여 참여정부가 기회주의자를 단속하지 못한 우를 범했다고 했다(2008: 574-575). 밭에 돌(가라지)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흙(곡식)이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민주화 이후의 악은 식민지, 반공정권, 군사정권의 통치악과는 구별된다(589쪽). 코로나에 지쳐 방심한 순간 얼떨결에 이전의 포악한 통치악으로 돌아가고 있다. 가장 아픈 대목은 헌법과 정의와 상식이 뒤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이제는 촛불(비폭력)로는 부족하다. 오랜 시간 깨지고 터져서 피와 땀(자기희생)을 적셔야 한다. 그리하여 끝까지 인내하고 언행을 삼가면서 이치를 따랐던 지도자가 있어 행복했음을, 감사했음을, 또 미안했음을 눈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인용: 박헌명. 2022. 무소불위無所不爲와 무소능위無所能爲. <최소주의행정학> 7(5): 1.

민주당이 대선에서 간발의 차이로 패했다. “아무리 그래도...”라며 기대를 걸었지만 격앙된 민심을 이기지 못했다. 현실과 거리를 둔 이상의 한계일까? 상처가 아무는 고비의 고통을 참아내지 못한 백성의 어리석음일까? 원한과 저주를 양분삼아 집요하게 물어뜯은 수구세력의 힘일까? 이렇게 촛불시민이 퇴화하는가?

광화문이든 용산이든 국민이 결정한다

청와대를 해체하고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던 윤석열 당선인이 드닷없이 그 공약은 재앙이라며 용산 시대를 선언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국방부는 급하게 이사할 곳을 찾아야 했다. 선거 후 1주일 안에 국민의당과 통합하겠다는 약속은 이미 물건너 갔다. 아마도 윤씨는 집권을 하더라도 똑같은 행태를 반복할 것이다. 공약과는 무관하게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내키는 대로 토론이나 설명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 법무부 폐지, 공수처 폐지 등을 통보할 것이다.

나는 의아했다.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것이 그리 중대한 일인가? 정치, 경제, 사회, 국방, 보건 등 나라 안팎으로 근심거리가 넘쳐나고 북한이 미사일까지 쏘는 마당에... 또 집무실을 당선자가 마음대로 옮길 수 있단 말인가? 청와대가 개인 소유인가?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것이 그저 보따리 몇 개 싸들고 전세방 얻어 이사하는 일이던가? 충분한 논의와 동의를 거쳐 결정할 일을 시한을 못박고 밀어붙이다니... 윤씨가 용산을 점찍은 것처럼 다음 당선자가 지방분권을 한다며 대전으로 간다면 어찌 하려는가? 환경과 관광을 생각해서 설악산으로, 바다를 사랑하여 흑산도로 집무실을 옮긴다면 어떠한가? 그 비용이 천억이든 1조원이든 그리 쓰는 것이 합당한가? 만일 새로운 도지사, 시장, 구청장이 들어설 때마다 취향에 따라 집무실과 청사를 새로 옮기고 짓는다면 어떠한가? 윤씨가 하면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하면 안되는 일인가? 공사구분을 못하는 정신줄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제왕적 당선인제?

윤씨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기 위해 청와대를 해체하겠다고 했다. 사실 광화문이든 용산이든 세종이든 뜻을 모아 잘 준비해서 옮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제왕적 대통령제”라니, 도대체 그 근거가 무엇인가? 헌법이나 법령에 못박혀 있단 말인가? 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왕정시절에 머물러 있는 백성들과 정치인들이 문제가 아닌가? 더구나 잘못된 관행이 사람이 아닌 청와대라는 장소 때문이라는 발상은 황당하다. 이런 속설이 있다 해도 어찌 점괘같은 인과설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과학인가? 미신인가? 아니면 취중객기인가? 청와대로 가는 순간 제왕적 대통령으로 찌들린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삐뚤어졌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든 깨진 바가지는 물이 샐 뿐이다. 만일 바이든 대통령이 미제국주의를 청산한다며 백악관을 해체하고 두 달 안에 하와이 군부대로 집무실을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명분이나 비용과는 별개로 방법과 과정이 전혀 터무니없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시키겠다는 윤씨의 언행 자체가 제왕적이다. 기세로 보면 영락없이 황제나 상제上帝다. 언제 국민이 윤씨에게 용산으로 낙점할 권한을 주었단 말인가? 경우없는 짓이다. 개념없는 “제왕적 당선인제”의 폐해가 너무도 크다.

무인정권의 중방정치나 도방정치다

이런 어이없는 소동을 보면서 나는 문득 고려시대 무인정권을 떠올렸다. 고려왕조는 당대 최강국인 몽고를 비롯하여 여진족(금나라)과 거란족(요나라)의 부침 앞에 풍전등화였다. COVID-19,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미사일 발사 등을 둘러싼 4대강국의 이해관계에 직면한 오늘과 비슷하다. 승패에 매달려 창칼을 휘두르는 무인과 죽기살기로 막말을 쏟아내는 정치꾼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무신의 위세에 짓눌려 허수아비가 되었던 고려황제는 정치꾼의 요설에 휘둘리는 정치(제도로서 정치체제)와 닮았다. 소위 합하閤下에게 등용된 문신관료와 수구세력에게 눈이 맞취진 언론은 묘하게 겹친다. 무자비한 살상과 말폭력을 자제하고 명분과 민생을 살피는 무신과 정치인이 살아남기 어려운 판이다.

의종을 폐하고 명종을 세운 이의방과 정중부는 정부관료제를 무시하고 무신 지휘관 모임인 중방重房에서 국사를 좌지우지했다. 무신과 거리를 두었던 경대승은 신변경호를 위한 사병조직인 도방都房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중방은 정규군이지만 도방은 사병이다. 경대승이 죽자 이의민은 다시 중방에서 권력을 휘둘렀다. 최충헌은 도방을 부활하고 최고정치기관인 교정도감을 설치하여 자손에게 물려주었다. 그의 아들 최우는 30년 동안이나 정방政房에서 인사권을 쥐고 흔들었다. 중방, 도방, 정방 모두 정규관료제(예컨대, 중서문하성,상서성, 중추원, 도당) 위에 군림한 최고의결기관이었다. 합하와 무신들은 황제의 뜻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고려왕조는 100년 동안 내우외환에 허덕이다 서서히 무너져 갔다.

주목해야 할 점은 윤씨와 수구세력이 문재인 정부를 대하는 태도다. 노무현을 주저앉힌 방식 그대로 원한과 저주를 만들고 부풀려 공격한다는 점이다. 노씨와 문씨는 이미 악마가 되었다. 울분에 찬 무신들이 문신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은 것처럼... 합리성이 아닌 증오와 광기다. 국방부를 흔들어 군기를 잡는다 해도 윤씨의 의심과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또다시 푸닥거리를 할 것이다. 믿는 것은 칼잡이 부하들이니 “중방”을 버리고 서초동에 가서 “도방”을 설치하고 “정방”을 운영할 것이다. 정부관료제는 도방에서 보낸 검사들에게 장악되어 공무원들은 부역자 신세가 될 것이다. 윤씨 내외의 심기를 위무慰撫하는 자들이 완장차고 설칠 것이다. 어쩌면 마법같은 불력佛力으로 난관을 극복한다며 법사들을 불러다 “건만대장경”을 새길는지도 모른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이 소중한 줄을 알아야 한다. 창칼과 주먹이 아닌 말과 눈빛으로 대화하고 설득할 수 있는 문신이다. 흠이 있더라도 그들의 인내와 땀과 꿈을 기억하고 지켜줘야 한다. 폭력과 무명과 주술에서 이성과 상식을 회복하는 길이다.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2. 제왕적 당선인의 중방정치와 도방정치. <최소주의행정학> 7(4): 1.

어떤 의사결정을 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결과(possibility)와 각각의 확률(probability)을 알 수 있는 상황을 위험(risk)이라고 한다. 가능한 결과는 알 수 있으나 그 확률을 모른다면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고 한다. 정책과정은 불확실성이 지배하고 있다.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지 못한다. March와 Olsen (1976)은 복잡성(complexity)과 모호성(ambiguity)으로 묘사하고 있다. 행위자들의 일관된 의도와 선호를 기대하기 어렵고, 인과관계에 관한 지식, 기술,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과거(history)는 계속 해석되고 재구성되며, 정책에 대한 구성원들의 관심은 바뀌기 마련이다(12쪽). 불확실성과 모호성에 직면한 인간은 겸허해야 한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 합리성을 추구하되 잘잘못을 따져 문제가 생기면 계속 오차를 수정해나가야 한다(Wildavsky 1987).

불확실성을 정책실패로 치환한 수구세력

대통령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야당 후보인 윤석열씨의 언사가 나날이 거칠어지고 있다. 독재, 부패정권, 국민약탈, 경제폭망, 방역실패에 이어 무능하고 오만한 친중·친북 정권이라고 저주을 퍼붓고 있다. 파시스트, 주사파, 무식한 3류 바보, 확정적 중범죄자, 미친 사람들, 같잖다, 돼먹지 못한 머슴, 버르장머리, 썩은 패거리까지 나온 판이다. 무조건 정권교체에만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레 현정권과 이재명 후보를 깎아내릴 수밖에 없는 사정일 터이다. 지역감정이든 남녀대립이든 세대갈등이든 이리 찢고 저리 째고 들쑤신다. 신들린 듯 널뛰는 “말길질”에 시시비비란 부질없다.

다만 수구세력이 어떻게 불확실성을 활용하는지 따져보고 싶다. 어쩌면 이들은 불확실성으로 인한 인간의 무기력과 불안감을 부추겨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데 쓰는 것같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불확실성에서 자유로운 존재인 것처럼 행동한다. 신접神接한 무당처럼 요란스레 굿판을 벌이면서 사람들을 홀린다. 신의 계시인양 밑도 끝도 없이 저주와 혐오질이다. 수구언론이 맞장구를 친다. 주술呪術이다. 무아지경에서 작두를 타며 외는 주사呪辭인가, 술먹고 횡설수설하는 주사酒邪인가. 어차피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주절거림이라는 면에서 차이가 없다.

수구세력은 COVID-19가 기승을 부릴 때 중국발 입국을 금지하고, 나아가 국경을 폐쇄하라며 문정부를 압박했다. 국제보건기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한바이러스”라고 우기는 자들이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출입국을 막으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또 문을 걸어 잠근다고 COVID-19 유입을 완전히 막을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의 행동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또 이들은 코로나 백신을 빨리 들여오지 않는다고 난리를 치다가 정작 접종을 시작하니 백신이 위험하다며 거품을 물었다. 혹자는 100% 안전한 백신을 달랜다. 그러면서 합리적인 정책오차수정을 말바꾸기나 오락가락으로 비난한다. 자기들은 COVID-19가 무엇이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데, 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해서 방역에 실패했다는 식이다. 예측할 수 없이 변화하는 COVID-19라는 불확실성을 K-방역실패로 등치시킨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수구세력의 비난은 가혹하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각종 규제로 집값을 잡겠다는 것이 오만이라고 했다. 윤석열씨는 정책을 28번이나 바꾸었지만 가격이 폭등했다며, 바보천치가 아니고선 이럴 수 없다고 했다. 서민이 집을 갖으면 보수화가 되기 때문에 일부러 집값을 올렸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아파트값을 올리고 내릴 수 있다면, 이것이 욕인가, 칭찬인가? 어찌하여 이들에게는 부동산정책이 이리도 쉽단 말인가? 가격과 수요와 공급이 서로 조화되지 못하여 시장이 실패한 상황인데,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인가? 시장논리라지만 사실상 공급자를 편들고 실수요자는 무시한 땅장사·집장사의 논리아닌가. 그리 쉬운 일이었으면 왜 이명박근혜 정권에서는 아파트값을 잡지 못했을까? 그들은 수많은 변수가 서로 얽히고 섥힌 부동산의 불확실성을 정책실패로 치환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격했던 것은?

이른바 K-방역이 해외에서 후한 평가를 받았지만 실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COVID-19 이후 주요국의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해도 한국의 상황이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불확실성 속에서 정부가 나름대로 상황 변화에 따라 정책을 수정해 온 노력을 폄하해서는 안된다. 큰 줄기로 보면 부동산정책의 방향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다주택자, 임대사업자, 대출규제, 종부세(공시가격) 등은 신중한 자세로 시행착오를 계속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불확실성을 가볍게 본 것이 있다면, 집권초 고위공직배제 5대 원칙을 천명하고 병역회피, 부동산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표절에 연루된 사람을 임명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 기준 자체는 상식에 부합했지만 제한된 후보자군과 제한된 검증능력이라는 현실을 간과했다. 성급하게 선명성을 강조하려다 보니 자승자박이 되어 수구세력의 반격을 자초하였다. 꼭 필요한 기준부터 시작해서 현실에 맞춰나갔어야 했다. 또한 2019년 11월 19일 열린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가격을 잡을 수 있다고 장담한 것은 문대통령답지 않은 과격한 발언이었다.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을 이용하지 않고 투기수요를 억제하려는 문정부의 노력은 평가해줘야 하지만, 누구도 정답을 모르는 일을 자신있다고 말한 것은 허언에 가깝다. 지금 이재명 후보가 부동산 가격폭등으로 격앙된 민심에 고전하는 이유다. 복잡한 정책문제의 모호성과 불확실성 앞에서 겸손했어야 했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참고문헌

  • March, James G., and John P. Olsen. 1976. Ambiguity and Choice in Organizations. Universitetsforlaget, Oslo.
  • Wildavsky, Aaron. 1987. Speaking Truth to Power: The Art and Craft of Policy Analysis. New Brunswick, NJ: Transaction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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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2. 불확실성을 활용하는 수구세력의 주술. <최소주의행정학> 7(3): 1.

Nothing-to-Hide와 윤석열의 요설

2022. 2. 14. 12:51 | Posted by 못골

대선에 출마한 윤석열씨가 지난 9일 보도된 수구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전 정권의 적폐청산수사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동안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냐면서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문대통령은 현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로 몬 것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시하고 윤씨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아무리 선거라지만 서로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씨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면 불쾌할 일이 없지 않겠나”라고 대꾸했다. “현 정부에서 수사한 건 헌법·원칙에 따라 한 거고, 다음 정부가 자기들 비리·불법에 대해 수사하면 보복인가”라고 반문했다.

잘못한 것이 없다면 순순히 조사받으라고?

민주당은 정치보복을 선언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혹자는 계산된 선거전략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나는 탄식했다. 문정권을 수사하겠다는 대목에서가 아니다. 문제될 것이 없으면 수사를 한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대목에서다. 도둑이 제발저린다거나 발끈하는 것을 보니 켕기는 것이라도 있냐는 비아냥이다. 이른바 Nothing-to-hide의 음흉함이다. 잘못한 것이 없다면 감출 까닭이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엉터리 논리다. 반대로 말하면 무엇을 감추고 두려워하면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소리다. 그러니 묻는 대로 순순히 다 불라는 얘기다. 경찰, 검찰, 안기부 같은 권력기관이 애용하는 궤변이다. 잘못을 했든 안했든 하고 싶지 않는 말을 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드러난 혐의도 없는 현직 대통령에게 적폐수사를 운운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짐이 곧 국가이자 헌법이자 정의라는 정신줄이 아니고서야...

기억컨대, 수년 전 법무부장관이던 황교안씨가 국회에 나와서 야당 국회의원을 사찰했다는 비난과 추궁에 대해 같은 말을 했다. 궤변인 줄을 모르고 그리 답하는 것인지 알면서도 법기술자의 허세를 부리는 것인지... 아직도 일제시대 순사질과 검사질을 하고 있는가? 아무나 불러다가 몸을 더듬고 반항하면 일단 줘패고 보는 재미가 솔솔한가?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불러다 조사권과 기소권으로 찍어누르는 손맛이 짜릿한가? “생사여탈권”을 제멋대로 흔드는 쾌감이랄까? 어쩌다 죄가 드러나면 감옥에 쳐넣고, 안나오면 없는 먼지라도 탈탈 털어서 면피하면 그만 아닌가. 잘못이 없으면 적폐수사를 해도 불괘할 일이 없다니... 명색이 법무장관씩이나 된 자가, 또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전직 검찰총장이란 자가 어찌 그따위 망발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도대체 어느 법에 나와 있단 말인가? 어느 열혈 검사가 다짜고짜 윤씨를 반란죄로 체포한다 해도 고분고분 쇠오라(수갑)를 받을 것인가? 잘못한 것이 없으니 떳떳한 마음으로 고문을 달갑게 받을 것인가?

시스템이라고? 경우없는 사람이 문제다

일이 커지자 윤석열씨는 누가 누구를 보복하냐며 자신의 사전에 정치보복은 없다며 살짝 발을 뺐다. 대통령이 수사에 개입하지 않고 시스템에 따라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는 사법부의 견제와 통제를 받으면서 법절차에 따라 진행된다고 했다. 법전에 정치보복을 하라거나 인권을 유린하라거나 법조인은 서로 봐주라고 적혀있을 리가 없다. 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도 정치보복을 한다고 설치고 다니지 않았다. 폭력을 포장한 법치와 정의를 내세워 정적을 짓밟았다. 그러니 대통령 후보가 현 정권의 적폐가 있다고 단정하고, 당연히 수사를 해야 한다고 공언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현 정권에서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4년을 호의호식해놓고, 이제와서 정권이 검찰을 앞세워 범죄를 저질렀다니... 결국 검찰총장 시절 본인이 행동대장이 되어 적폐를 쌓았단 말인가? 자신이 기여한 적폐를 자신이 수사하겠다는 것 아닌가? 아님 정권이 수많은 범죄를 사주하고 적폐를 쌓는 것을 보고도 못본 척 했다는 것인가? 동업자여서? 무서워서? 아니면 능력이 없어서였나? 그럼 본인의 깡패질이나 직무유기부터 참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동안 할짓 못할 짓 다 해놓고 나서 이게 무슨 경우境遇란 말인가.

윤씨가 말한 현재의 사법시스템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검경수사권을 조정했지만 아직도 검찰은 수사권을 쥐고 있다. 김학의씨와 같이 불법을 저지른 검사들을 끝까지 감싸준 검찰이다. 사법농단을 저지른 판사들에게 하염없는 인자함으로 무죄를 선고해 준 사법부다. 한번 법조인이면 영원한 특권층이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총칼을 들이대는 독재자에게 굴종하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집권자는 물어뜯는 제도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다는 정치중립의 본 모습이다. 검찰총장이 대놓고 사람을 때려잡는다고 말하는 호시절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시스템이다.

제도가 좀 미진하다 해도 운영을 하는 사람이 멀쩡하면 된다. 윤씨는 문정권을 부패하고 무능하고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민을 약탈하는 독재라고 했다. 하지만 문정권에서 한국은 5년 만에 완전한 민주주의(23위)를 회복했고, 60년 만에 선진국으로 분류되었다. 언론자유지수는 70위(2016)에서 41위(2019)로 아시아 1위다. 경제는 망했고 K-방역은 실패했다며 윤씨는 비난했지만, 한국의 수출은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고, 경제성장은 선두권을 달리고 있고, 문화산업은 꽃피우고 있고, K-방역은 해외에서 호평받고 있다.

청문회에서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에 동의했던 윤씨는 이제 공수처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검찰왕조를 복원하려는 것인가? 또 한동훈씨가 독립운동하듯 했댄다. 그럼 문대통령은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나? 현 정부의 적폐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윤씨는 “자연스럽게 전 정부 일이 1, 2, 3년 지나며 적발”될 것이라고 답했다. 어차피 적폐는 있는 것이니 조사하면 다 나온다. 조국 장관처럼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를 인질삼아 압박하면 없는 증거도 나온다. 좀 세게 추궁하면 피의자가 초조해져서 자살한다. 뭐 이런 얘기 아닌가? 불신받는 사법시스템에서 이런 정신줄을 가진 낭만 자객이 못할 일이 과연 무엇인가? 이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범죄 수괴" 문재인을 기소하고 “확정적 중범죄자” 이재명을 때려잡을 기세다. 이미 사주팔자로 판결까지 마친 듯한 윤씨의 “관심법”이 섬뜩하다.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2. Nothing-to-Hide와 윤석열의 요설. <최소주의행정학> 7(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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