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9 09:16
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무소불위無所不爲와 무소능위無所能爲 본문

반민주주의 증상

무소불위無所不爲와 무소능위無所能爲

못골 2022. 5. 10. 02:46

정책변수(decision variable)는 의사결정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제할 수 있는 것이고 환경변수(environment variable)는 문제해결에서 고려해야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의사결정자의 지위와 힘(자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헷갈린다. 예컨대, 예산은 행정부에게 환경변수이지만(국회에게는 정책변수) 관료들은 종종 정책변수인 것처럼 말한다. 문제해결의 첫단추를 잘못 꿰는 일이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이 분별력이 없으면 나라는 질서를 잃고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

헌법준수는 정책변수가 아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통령의 첫번째 임무는 이 헌법을 제대로 준수하고 이 헌법의 가치를 잘 실현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겉으로 보면 상식에 가까운 발언으로 보이지만 그동안 윤씨와 그 측근들이 보여준 언행을 반추反芻해 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 살배기의 걸음마처럼 위태롭다.

첫번째, 헌법준수는 지도자의 정책변수가 아니라 환경변수다. 임무가 아니라 의무이자 제약조건이다. 헌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쫓겨난다. 대통령 취임선서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라고 시작한다. 헌법이란 테두리 안에서만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윤씨 측은 환경변수를 정책변수로 착각하고 있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면 추상적이지만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국민과 국토를 지켜서 일상을 보존하는 일이다. 쿠데타, 양민학살(제주 4.3, 보도연맹학살, 거창산청함양 양민학살, 광주 5.18 등), 1997년 외환위기, 세월호 참사,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사례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뭄, 홍수, 지진 등)와는 달리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지도자의 탐욕과 무지가 불러온 인재人災이자 환란患亂이다. 국민의 일상과 상식을 망가뜨렸다.

두번째, 그냥 헌법이라 하지 않고 “이 헌법”이라고 한 대목이 위험하다. 윤씨가 해석한 헌법대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 공정이 “이 헌법”의 핵심어다. 문재인 정권을 헌법파괴, 종북從北, 사회주의, 한미동맹 파괴, 불공정으로 규정했으니 그 반대로 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는 나를 지지하는 자들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고(반대하는 자들은 공민권이 없다), 시장경제는 기업인들만 마음대로 한다는 뜻이고, 한미동맹이란 무조건 종미從美해야 한다는 뜻이고, 공정은 판검사들은 무슨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 특권(법이란 것은 힘없고 못배운 주제에 고개쳐들고 대드는 개돼지를 엮는 오랏줄일 뿐이다)을 말한다. 반공과 빨갱이칠로 정적을 쓸어버리고 돈과 힘을 가진 자들만의 세상을 공고히 하겠다는 뜻이다. 국민통합이란 기득권과 그들에게 빌붙어 사는 자들만 하나로 묶는다는 뜻이다. 평범한 백성의 자리는 없다. “이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다.

세째, 윤씨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할 수 있는 것인지, 할 수 없는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구미가 당기는 대로, 그때 그때 분위기에 따라, 아무런 구애拘礙를 받지 않고 결정을 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생각이 없으니 바람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윤핵관이든, 쥴리든, 건진이든 서로 다투어 입으로 흘러나오니 어제 말이 다르고 오늘 말이 다르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겼으니 법이든 윤리든 예산이든 누구든 그의 말에 감히 토를 달아서는 안된다.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제왕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곧 헌법이고 정의이고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줄을 가진 지도자와 고위공직자를 볼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좌절했던가...말로는 국민을 팔고 나라를 위한다지만 결국은 배때기가 터져라 사리사욕만 채우는 자들 아닌가.

무소불위와 무소능위는 매한가지

윤씨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공약과 무관하게 좌충우돌하면서 돌진하고 있다. 당선자가 아닌 점령군 사령관의 폭주다. 환경변수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정책변수인 것이다. 취임도 하기 전에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긴다며 예산타령을 하더니, 느닷없이 용산으로 옮긴댄다. 하루 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국방부는 야반도주하듯 줄줄이 보따리를 싸야 했다. 관저로 낙점했던 참모총장 공관도 외교부장관 공관으로 바꾸었다. 낡고 비가 샌다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아줌마 쇼핑에는 애초부터 계획도 논리도 없는 법이다. 식민지에 부임한 총독에게는 내 것과 남의 것의 구분이 없다.

한마디로 대책도 없이 멋대로 일을 저지르고 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부처는 물론 공관까지 밀고 들어간 것은 경우없는 짓이다. 권력남용이다. 패잔병마냥 쫓겨나는 국방부와 외교부 공직자와 장병들은 대체 뭐가 되는가. 선제타격, 사드와 전술핵, 원전육성, 종합부동산세, 검찰수사권 등도 집무실 이전과 같은 궤적을 보일 것이다. 정책과제가 복잡하고 국내외 현실이 엄중함을 망각한 말잔치다. 제도와 절차와 관행을 가볍게 본 대가를 치를 것이다. 벽에 부딫혀 용두사미가 되든지, 변명도 설명도 없이 전혀 엉뚱한 결말로 끝날 것이다. 윤씨는 과연 취임후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선제타격을 할 수 있을까? 그 기백은 가상하나 꿈꾸어서는 안될 악몽이다. 못하는 것이 없는 무소불위無所不爲니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무소능위無所能爲와 마찬가지다. 인간의 일이 아니다.

포악한 통치악으로 돌아간다

소정 선생님은 가라지와 곡식을 비유하여 참여정부가 기회주의자를 단속하지 못한 우를 범했다고 했다(2008: 574-575). 밭에 돌(가라지)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흙(곡식)이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민주화 이후의 악은 식민지, 반공정권, 군사정권의 통치악과는 구별된다(589쪽). 코로나에 지쳐 방심한 순간 얼떨결에 이전의 포악한 통치악으로 돌아가고 있다. 가장 아픈 대목은 헌법과 정의와 상식이 뒤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이제는 촛불(비폭력)로는 부족하다. 오랜 시간 깨지고 터져서 피와 땀(자기희생)을 적셔야 한다. 그리하여 끝까지 인내하고 언행을 삼가면서 이치를 따랐던 지도자가 있어 행복했음을, 감사했음을, 또 미안했음을 눈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인용: 박헌명. 2022. 무소불위無所不爲와 무소능위無所能爲. <최소주의행정학> 7(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