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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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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달 21일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을 위한 입법청문회를 열었다. 출석한 이종섭(국방장관), 임기훈(국방비서관), 김계환(해병대 사령관), 임성근(1사단장)씨의 증언을 들으면서 탄식했다. 현역 장교라면 당당하게 증인선서를 하고 간결·명료하게 답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별을 두 개, 세 개나 단 자들이 선서를 거부하고 구차한 변명과 딴소리로 얼버무리는 모습이라니... 이런 비루한 자들이 지휘관이랍시고 거들먹대는 군대라니...

관료제를 비웃는 똥별들의 궁상

대통령실과 장성들은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권이 없으며, 장관이 수사결과보고서를 결재한 후 이첩보류를 지시했는데 수사단장이 이첩을 강행했다는 주장이다. 판결문도 아닌 보고서가 뭐길래 수백 건의 통화로 난리를 피웠단 말인가. 임사단장은 장병들에게 수중수색을 지시하지 않았고, 해당사실을 사후에 알았다고 했다. 부하들이 자신의 명령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이 사달이 났댄다. 작전통제권이 없으면서 부하들을 다그친 것은 작전지시가 아니라 작전지도라고 했다. 지휘관으로서, 장교로서, 해병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낙제다. 이등병보다도 못한 똥별의 궁상이다.

사건에 연루된 실력자(대통령실), 참모, 장관, 장군급 지휘관 모두 관료제의 원리를 대놓고 무시하였다. 합리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뽑아 일을 시키고, 규정에 따라 문서로 일을 처리하고, 분업화에 따른 갈등을 계서제(hierarchy)로 조정하는 베버의 이념형을 비웃고 있다. 관료제의 이념형에 가까운 조직인 군대를 허물고 있다.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어도 기강이 무너진 군대는 이길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적을 이롭게 한 무지와 어리석음이다.

먼저 해병대 수사단의 전문성이 부정되었다. 군인 사망사건에 관한 군사법원법의 취지에 따라 수사단이 작성한 결과보고서를 느닷없이 장관이 걸고 넘어졌다. 장관은 물론 통수권자도 구체적 사건에 대해 수사단을 지휘·감독할 수 없다. 지휘책임자를 빼라는 것도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것도 법을 거스르는 짓이다. 수사단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한마디로 계급이 깡패니 까라면 까라는 소리다. 별을 달면 어느날 갑자기 오만가지를 다 꿰는 만물박사라도 되는가? 법은 사망사건에서 판단의 주체가 지휘관이 아니라 전문성을 가진 군검사나 경찰관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상급자가 함부로 계급장으로 찍어눌러 장난질치지 말라는 취지다. 일(전문성)보다 계급을 앞세우지 말라는 소리다. 상하간의 질서(계서제)는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데 필요한 장치일 뿐이다. 별이 수백 개가 되어도 법을 넘을 수 없다.

법과 절차를 묻어버린 내부의 적들

해병대 수사단장은 순서대로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에게 수사결과를 대면보고하고 결재를 받았다. 군법원법 228조 3항에 의거한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 7조 1항에 따르면 “군검사 또는 군사법경찰관은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범죄에 대한 고소·고발·진정·신고 등을 접수하거나 해당 범죄가 발생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을 발견하는 등 범죄를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대검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또는 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수사단장은 사망사고에서 범죄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례와는 달리 지체없이 사건을 이첩하지 않았다. 대면보고와 결재를 받는 “지체”를 초래하여 외부의 개입을 불러들였다. 수사단장의 죄가 있다면 항명이 아니라 과실이나 직무유기다.

더 큰 문제는 사령관, 참모총장, 장관이 결재한 문서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취소하지도 않고 문서에 적힌 대로 이행한 박대령을 항명수괴로 몬 것이다. 문서에 의한 일처리 원칙을 비웃는 처사다. 장관이 결재한 문서는 아직도 유효하다. 자신이 결재했다 해도 장관이 멋대로 취소할 수 없다. 생사가 달린 전장에서 지휘관이 장병들에게 말로 명령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장관은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은 직후 참모총장을 건너뛰고 사령관에게 이첩보류를 지시했다. 이어 공직기강비서관, 국방비서관, 법무관리관, 국방차관 등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해병대를 압박했다. 이제 와서는 언제 누구와 통화했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를 반복하고 있다. 국방이 망가지든 말든 책임이나 모면하겠다는 얄팍한 수다. 관료제가 아니라 양아치패거리다.

해병대의 기강을 무너뜨린 용산의 불장난

상관은 자신이 내린 명령에 모든 책임을 지고, 부하를 끝까지 아끼고 보호해준다는 해병대의 기본 약속과 신뢰가 깨졌다. 이제 상관이 언제 어떻게 말을 바꿔 자신은 빠져나가고 부하를 곤경에 빠뜨릴지 모른다. 필요할 때 죽어줘야 하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상관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나? 법과 상식에 따라 일을 수행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장교들은 수개월 째 수사와 재판에 시달리고, 사망사고와 이첩사건에 연루된 똥별들은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군인복무규율이 무색한 상황이다.

이제 지휘관은 반드시 명령서를 작성하거나 직접 부하에게 명령해야 한다. 대대장과 중대장들은 정말 사단장이 지시했는지, 명령인지 지도인지, 어떤 명령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단장에게 직접 전장에 나오거나 공증된 명령서를 제시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명령 계통과 하달을 따지고 발령자의 책임을 살펴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지시는 거부할 것이다. 동영상, 녹취, 명령서 등을 변호인에게 전달할 것이다. 당장 눈앞에 적이 몰려온다 해도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 전투에서 패하여 적에게 죽나 상관에게 뒤통수를 맞고 죽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패할 전투인데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여차하면 별값도 못하는 지휘관의 모가지를 따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한다. 이제 국가도 충성도 명예도 없는 해병대가 되었다. 개념없는 용산의 전화 한통으로 시작된 불장난에 군대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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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4. 누가 해병대의 기강을 망가뜨렸나?. <최소주의행정학> 9(7): 1.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일본 니이가타新潟현 사도佐渡시를 방문하였다. 니이가타항에서 북쪽으로 70km를 달려 료츠兩津항에 도착했다. 해무 속에 드러난 사도섬은 조용하고 평화롭게만 보였다. 한반도를 위아래로 누른 듯한 모양이고 제주도의 절반이 못되는 크기다.

인간의 탐욕과 따오기의 죽음

사도는 희귀새 따오기(“토키”)의 도래지로 유명하다. 섬 어디를 가도 따오기를 주제로 한 물건과 형상을 볼 수 있다. 동경에서 니이가타로 가는 신칸센 열차의 이름도 토키다. 때마침 눈썰미 좋은 버스운전기사의 배려로 논가에서 먹이를 구하는 따오기 내외를 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마지막 따오기가 2003년 죽은 후 중국에서 기증받아 인공으로 부화시킨 것이다. 인간의 탐욕은 산업화로 질주했고 따오기를 멸종위기로 내몰았다. 창녕의 우포늪과 마찬가지로 사도시는 사라진 따오기를 복원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사도금광의 흑역사

사도는 또한 일본 최대의 금광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폐광이 되었지만 거의 900년 동안 금과 은을 캐냈다. 특히 아이카와相川 금광은 에도 막부(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무너뜨린 도쿠가와 정권)부터 400년(1596-1989)을 이어왔는데, 지금까지 금 80톤과 은 2,500톤을 생산했다고 한다. 100여년 전에는 아이카와에만 5만명(현재 사도섬 전체 인구)이 몰렸다고 한다. 한 가운데만 농지인 섬에 쌀, 물, 집이 부족해졌고 따오기가 밀려났다. 사금을 채취하는 다른 광산과는 달리 아이카와광산에서는 굴을 파고 광석(ore)을 캐냈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금맥을 파들어가는 채굴방식이다. 여기에서 생산된 금화로 네덜란드 등 서구와 교역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으니 일본에서 보면 자랑스러운 산업유산이다.

에도 막부(1603-1868)와 메이지 정부(1868-1912)에 이어 1896년 미쓰비시三菱가 아이카와 광산을 넘겨받아 충실하게 일본제국에 부역했다. 일제는 사도광산에서 캐낸 금과 은으로 전쟁을 벌였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중일전쟁을 벌이면서 1938년 4월부터 점령지에서 무자비하게 인력과 물자를 총동원하였다. 미쓰비시의 활약이 두드러진 시기다. 사람들을 끌어와서 광산에 집어넣고 채석을 강요했다. 임금을 주기는 커녕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면서 노동을 착취했다. 최소한의 음식과 옷가지와 잠자리를 제공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오도 가도 못하게 했다. 석탄을 캐낸 군함도에서 벌인 미쓰비시의 만행과 닮은 꼴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제, 그 전쟁에 부역한 전범기업 미쓰비시, 그리고 악랄한 강제동원은 사도금광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갉아먹었다.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무일푼으로 돌아오신 당숙

어릴 적 집안 어른들이 일본으로 돈벌러 간 얘기를 종종 하셨다. 종조부께서는 일본에 가셔서 돈을 벌어오셨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운좋게도 품삵을 제대로 쳐준 관리자를 만난 모양이다. 당숙은 금광에서 일하셨다 했다. 1,500여명의 조선인이 사도금광에서 일했다는 자료도 있고, 1940년 논산에서 100여명을 집단모집으로 강제동원했다는 증언도 있다. 고향이 논산에서 멀지 않았으니 그 무리에 포함되었던 것은 아닐까?

당숙은 거의 매일 몽둥이로 맞으면서 일만 하셨다고 했다. 우직하셨던 당숙이니 꾀를 내서 매를 피할 줄도 모르셨을 터. 가장 힘들고 위험한 채석일을 하고도 당숙은 결국 거의 무일푼으로 돌아오셨다. 사람들은 살아서 돌아온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종종 당숙은 약주를 하시고 동네 어귀부터 악다구니를 쓰셨다. 작은 체구지만 장사같은 힘을 가졌던 당숙이었다. 하지만 한창 나이에 허무하게 돌아가셨다. 화병이나 진폐증같은 후유증이었을까? 그때 나는 잔치인 줄만 알고 화덕에 걸린 가마솥을 맴돌며 7남매를 건사해야 했던 당숙모의 하얀 치마자락을 끌고 있었다.

에도시대와 무관한 미쓰비시의 전범유산이다

사도금광관광은 주로 (1) 금광코스 체험, (2) 근대금광산업유산 견학, (3) 금광정보센터와 전시자료관 방문이다. 일본은 에도시대에 한정하여 세계유산등록을 신청했다. 한마디로 꼼수다. 거품을 일으켜 금을 농축한 浮遊選鑛場(1935), 시멘트가 보급되기 전에 돌로 세워진 浮選鑛所, 광석저장소(1938), 광석을 깨뜨린 착광장搗鑛場, 부족한 물을 재활용하기 위한 thickener(1940), 금주조공장 등 관광상품 대부분이 에도시대와 무관하다. 모두 사도광산을 불하받은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작품이다. 심지어 광산의 명물인 도유노와리토道遊の割戶 역시 19세기 말 발파에 의해 꼭대기가 V자로 갈라진 것이다. 에도시대의 유산에 에도시절은 없다. 주조공장은 수영장으로, 부유선광장 아래는 골프장으로 쓰였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공장 비탈 위에 있던 소학교를 다녔던 센터장의 설명이다. 반면 조선인들이 사용하던 숙소와 식당 자리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반성없는 아베정권의 역사 부정과 왜곡이다.

산비탈에 조성된 거대한 부선광소와 부유선광장은 현재 역사 유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낮에는 담쟁이가 삭은 철근 콘크리트를 뒤덮고 있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발이 과거를 수놓고 있다. 어둠 속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로마의 콜로세움을 보듯 웅장하다. 순간 미쓰비시가 저지른 범죄와 소리없이 죽어간 원혼은 사라진다. 인쇄물, 동영상, 강의 어디에도 관련 사실을 찾아볼 수가 없다. 반짝이는 금과 산업시설만 미화되었다. 따오기와 공생을 말하지만 근대화 시절의 과오에는 입을 닫는 식이다. 아직까지 소유권을 가진 미쓰비시는 침묵하는 가운데 정부가 전범행적를 분칠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설치고 있다. 어떤 미사여구를 늘어놓는다 한들 경우가 아니다. 그저 미쓰비시 전범유산일 뿐이다.

사도섬은 조선인이 끌려가서 매맞은 슬픈 섬이다. 춥고 배고파서 서럽고 떠나지 못해 목이 멘 섬이다. 진실이 묻혀가는 원통한 섬이다. 눈감지 못하고 죽은 조선 따오기들이 떠도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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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4.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미쯔비시 전범유산. <최소주의행정학> 9(6): 1.

갈수록 가관인 "김여사" 정권이다. 갈팡질팡 행보가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왜 의대정원을 2천명이나 늘려야 하는지, 왜 배우자를 수사하던 중앙지검 검사들을 다른 데로 보내는지 납득할 수 없다. 노동시간을 왜 주 69시간으로 늘려야 하는지, 광화문으로 간다더니 느닷없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겨야 했는지 답이 없다. "바이든 날리면"이라고 우기듯이 일을 뭉개버린다. 어제의 말과 오늘의 말이 극과 극인데도 설명이 없다. 무엇 하나라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건더기도 없다. 이성도 합리성도 없다.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대화도 타협도 없다. 작두탄 무당이 흘리는 주문呪文이 있을 뿐이다. "김여사"에게 비판은 소귀에 경읽기고 비난은 입만 더럽힐 뿐이다.

무식하고 용맹스런 "김여사"의 운전법

"김여사"는 이기심에만 집착하여 민폐를 끼치는 족속이다.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게 몰상식을 감행한다.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다. 남녀 문제가 아니다. 공공의 적이다.

먼저 이들은 운전규칙(정치)이나 자동차(관료제)의 기본을 알지 못한다. 또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듣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힘있는 자신의 욕망이 있을 뿐이다. 주차금지든 일방통행이든 신경쓰지 않는다. 말하자면, "난 모른다, 뭐 어쩔건데?" 둘째, 좌고우면을 못하고 직진에 몰두한다. 차선바꾸는 일을 어려워한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신이 옳고 또 옳아야만 한다. 이유도 설명도 필요없다. 맞든 틀리든 무조건 우기고 본다. 안면몰수하고 구차한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는다. 세째, 후진과 주차를 두려워한다. 형식과 규칙에 구애받지 않고 제멋대로 차를 세워둔다. 황당하든 흉하든 개의치 않는다. 상식으로부터 탈출한 자유인에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금물이다.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으니 반성이 없고 성의가 없다. "부대열중쉬어"는 능력이 아니라 정성이다. 명품을 두른다 한들 태가 나지 않는다. 속이 구린데 향수만 퍼부은 고상함이다. 끝으로 항상 맥락을 놓치니 행동이 굼뜨다. 좌회전을 한 뒤에 우측 깜빡이를 넣는다. 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운전에 집중하지 못한다. 자기 생각에 몰입되어 딴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일하는 순서, 강약, 장단, 단속斷續이 뒤죽박죽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막고 피를 보고야 만다.

공자는 사사로운 뜻이 없으며, 기필코 하겠다는 마음이 없으며,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며, 이기심이 없다고 했다(子絶四毋意毋必毋固毋我). "김여사"는 일을 모르면서 순전히 私意로 추진하고, 기필코 일을 해내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들이대고, 일이 잘못되었어도 반성하지 않고 끝끝내 고집을 피우고, 사리사욕만 생각하다 끝내 일을 망치곤 한다(1996: 391).

"김여사"에게 자유란 "내 맘대로"이고 협치란 "내 뜻대로"다. 그의 "자유민주주의"다. 자유의 반대는 감히 내 앞에서 입을 터는 짓이고, 협치의 반대는 감히 내 말에 토다는 짓이다. 69시간이라 했으면 100시간이나 200시간이 아닌 것을 감읍感泣해야 한다. 2,000명 증원이라 했으면 2만명이 아닌 성은聖恩에 머리를 찧고 절규해야 마땅하다. 왈가왈부하는 일은 불경이요, 반역이다.

무소불위니 무소능위일 수밖에

"김여사" 정권은 한마디로 거칠 것이 없다. 권력기관은 물론이려니와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언론을 틀어쥐고 있다. 합의제인 방통위는 아직도 야당추천 자리를 비워놓고 단독 드리블 중이다. "김여사"를 건드리는 어떤 보도도 무사하기 힘든 판이다. 구석구석에 심어진 검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수구기득권 세력은 언제나 포악한 권력자에게 납짝 엎드린다. 부담없이 재의요구권을 날려주면 알아서들 총알받이가 되어준다. 특검법이 부결되자 총선에서 압승이나 한 듯 감격에 마지않는 국회의원이라니... 국민이 도륙당하고 나라가 망해도 초점없는 눈으로 마약을 쑤셔넣듯 무작정 찍어줄 3할이 건재한 이상 탄핵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여차하면 검사들을 풀고 군화발로 짓밟으면 그만이다. 차마 할 수 없는, 해서는 안되는 일을 가리지 않는 무소불위無所不爲 정권이다.

지난해 7월 해병대원이 악천후에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해병대 수사단에서 이 사건을 조사했고 장관의 결재까지 받아 법이 정한 대로 경찰에 이첩했다. 이종섭 장관은 박정훈 수사단장이 보류지시를 어겼다며 보직을 해임하고 조사보고서를 가져갔다. 박대령은 하루 아침에 항명수괴로 몰렸고 대대장 이하 지휘관들은 사단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생때같은 병사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파렴치범이 되었다. 대통령 격노설이 파다한 가운데, 윤석열씨가 장관에서 물러난 이씨를 호주대사로 임명하면서 파장은 커졌다. 박대령 보직해임 전후로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호떡집에 불이 난 듯 움직였고, 윤씨가 이씨와 세 차례나 통화했다.

군생활을 해본 사람이면 뻔히 보이는 그림이다. 해병대 사령관, 참모총장, 장관이 흔쾌히 결재한 사항을 하루아침에 뒤집었다면 통수권자의 사심이다. 모지리 참모들은 일을 거들었을 뿐이다. 위험천만인 강물에 병사를 들어가게 했다면 대대장의 결심이 아니다. 스스로 떳떳하지 않은 자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사령관을 거스르지 못한다. 사고친 똥별을 구하려는 주군의 사투가 눈물겹다. 

박정훈 대령이 쏘아올린 작은 공

조사단에게 전방위 압력을 가하고, 출국금지된 피의자를 해외로 빼돌리고, 비화기가 아닌 자신의 전화로 통화하고, 관련 특검법을 거부하는 자신감은 무소불위의 힘이다. 뻔한 거짓말로 백성을 속이고 좀비처럼 몰려가 “김여사”를 방탄케 하는 힘이다. 하지만 완전범죄를 꿈꾸면서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하는 업보다. 각자도생이 본격화된 지금 누가 등에 칼을 꽂고 모가지를 딸지, 언제 계란말이가 멍석말이가 될 지 모른다. 세게 쥘수록 배신의 유혹은 달콤하다. 백성의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고 민생이 보일 리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무소능위無所能爲에 빠진다. 박대령이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사필귀정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의 자기희생이 "김여사"를 멈춰세우고 평화를 가져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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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4. "김여사" 정권의 무소불위와 무소능위. <최소주의행정학> 9(5): 1.

 
 

 

 

조국이 나타났다. 제 22대 총선거를 앞두고 기어이 살아서 돌아왔다. 풍비박산된 집안을 뒤로 하고 눈빛을 번득이며 주먹을 불끈 쥐고 나왔다. 검찰 독재 정권을 심판하는 저승사자가 되어 나타났다. 정치인 조국의 등장이다. 지난 3월 21일 그의 고향인 부산에서 피를 토하듯 포효했다. “이제 고마 치아라마...” 시대정신을 꿰뚫는 그의 사자후에 사람들은 비명같은 탄성을 질렀다. 이 울부짖음이 천둥번개가 되어 잠든 세상을 깨웠다. 화나고 답답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봄날 철쭉이 검붉게 불타오르듯 조국이 전국을 돌며 사람들의 가슴팍에 불을 지르고 있다. 그 불길이 번져나가 선거 자체를 삼키고 있다.

살아 돌아온 조국의 사자후

조국은 2019년 8월 9일 법무장관으로 지명되었다. 진저리치는 고난의 시작이었다. 기어코 수사권을 사수하려는 검찰이 발악하였다. 이른바 검찰 쿠데타였다. 수십명의 검사들이 달려들어 그와 그의 식구들을 넉 달 넘게 물어 뜯었다. 압수수색만 100여 차례 이루어졌고, 자녀의 일기장까지 쓸어갔다. 검찰은 세밑(12.31)에 사모펀드, 웅동학원, 대학입시 등 12개 혐의로 조씨를 기소하였고, 이듬해 1월 17일 감찰무마 혐의를 추가하였다. 하지만 권력형 비리라고 난리법석을 피웠던 “조국펀드”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인턴쉽, 체험활동, 장학금만 남았다. 딸이 수령한 600만원 장학금이 청탁금지법 위반이면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조씨는 취임 35일 만에(10.14) 장관직을 내려놓았고, 2023년(6.13)에는 서울대로부터 교수직 파면을 당했다. 1심(2023.2.3)과 2심(2024.2.8)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배우자 정씨는 소환조사도 없이 청문회 중인 9월 6일 기습 기소되었다. 자본시장법 위반, 사문서위조, 증거위조 등 14개나 되는 혐의였다. 왕조시대로 치면 대역죄 수준이지만 검찰은 증거물인 표장장도 없이 위조했네 안했네, 인턴을 했네 안했네를 따지는 수준이었다. 동양대는 2021년(8.31) 정씨를 면직시켰고,대법원은 2022년 1월 27일 징역 4년을 확정했다. 2023년 고대(2월)와 부산대(4월)는 조민씨의 입학을 취소했고, 보건복지부는 7월 조씨의 의사면허를 취소했다. 조씨는 하루아침에 10년을 잃고 고졸이 되었다. 검찰은 질질 끌다가 조씨를 7월 소환조사했고 시효만료 직전인 8월10일 기소하였다. 조국은 말 그대로 패가망신을 당했다.

의미있는 고난을 참고 견뎌온 힘

유시민씨는 이 사건을 검찰의 가족인질극으로 비유했다. 정의와 인권을 수호해야 하는 검찰이 균형을 잃었다. 조씨에게만 가혹하게 칼을 휘둘렀고, 비열하게 검찰권을 행사했다. 식구들 모두에게 현미경 잣대를 들이대고 혐의를 쪼개서 기소했다. 배우자는 파렴치범으로 손가락질받고 옥살이를 했고, 자식들은 흥정거리가 되어 검찰에 불려다녔다. 검찰은 처자식을 볼모로 야비하게 조국을 짓눌렀다. 맘을 찢어 발기고 몸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기득권 언론은 검찰을 거들어 조국 일가를 짓밟았다. 재판도 하기 전에 일가족을 여론의 늪에 담갔다. 조씨는 부처, 공자, 예수도 피하지 못할 망나니의 칼날에 난도질을 당했다. 법과 양심이 아닌 “밥과 앙심”에 따른 학살에 가까왔다. 겁대가리없이 검찰에 도전한 자가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라는 정치검사들의 협박질이었다.

하지만 조국은 검찰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무서움에 떨며 정신줄을 놓지도 않았고 좌절하지도 않았다.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지 않았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추스려 비폭력으로 대응했다. 검찰과 언론의 매도罵倒에 따박따박 말로 대꾸했다. 끊임없이 본인이 해야 할 말을 멈추지 않았다. 수구언론은 그를 부관참시 하듯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넘어졌지만 그는 끝까지 이성과 상식에 맞는 얘기만 했다. 끈질기게, 그리고 꾸준하게 그 힘든 시간을 참고 견뎌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그가 고마운 까닭이다.

폭풍으로 몰아친 조국의 비폭력 투쟁

소정은 <전쟁과 평화>가 주는 교훈을 “권력의 남용 하에서 의미있는 고난을 겪은 사람만이 평화를 만든다”(1980: 365) 혹은 “전쟁 속에서 유의미한 고난을 통해 대안을 창출하는 자가 생겼을 때에만 평화가 온다”(1991: 333)로 정리했다. 포악한 정권의 패악질을 참고 견뎌온 조국이 “쇄빙선”으로 돌아왔다. 고난을 겪으면서 찾아낸 대안이다. 더 잃을 것도 없는 그는 돌아갈 곳이 없다고 했다. 대법원의 판단이 나오면 법대로 감옥에 가겠다고 했다. 최소를 가질지 말지 하는 한계상황을 경험한 자가 그 최소마저도 상실된 상태에서의 존재를 음미하는 여유라고나 할까(1986: 96).

살아 돌아온 조국은 예전의 조국이 아니었다. 멋진 야성으로 무장한 용맹스런 선봉장이 되어 있었다. 말끔한 정장에 흰머리를 날리는 사노맹의 전사로 거듭났다. 평생 법을 연구한 지식인이자 원숙한 중년이지만 젊은 날의 뜨거운 심장은 그대로인 투사였다. 조국은 끝까지 똑같은 결기로 똑같은 마음으로 행동하겠다고 했다. 가장 단호하게 가장 강력하게 싸우겠다고 했다. 정제되고 명쾌한 말이 꿈툴거리며 강약이 조율된 가락으로 흘러 사람들의 마음을 후벼팠다.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닌 이성과 상식에 따른 냉철한 비폭력 투쟁이어서 순시간에 돌풍이 되고 폭풍이 되었다.

조국은 외모 뿐만 아니라 몸짓, 표정, 태도, 품격, 학력, 언변 등 모든 면에서 김명신, 윤석열, 한동훈과 대조된다. 훤칠한 키와 얼굴은 까치발과 폴짝 뛰기와 극과 극이다. 말끔한 옷맵시와 앞뒤를 뒤바꾸어 입은 바지를 상상해 보라. 정중하고 정성을 다하는 말과 저렴하고 성의없는 말장난이라니... 조국의 연설은 “김윤한”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의 말이고, 사람의 대화였다. 사람들이 “김윤한”에게 듣고 싶어한 말이었고, 사람들이 “김윤한”에게 하고 싶어한 말이었다. 오랜 갈증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청량한 사이다였다. 내용은 물론 발음, 호흡, 강도, 속도, 시선, 손짓 모두 탁월했다. 눈이 호강하고, 귀가 호강하고, 가슴이 호강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과 결기가 느껴졌다. 조국의 비폭력 투쟁으로 사악한 정권의 패악질이 멈추고 희망과 평화가 찾아오길 바란다.

 

인용: 박헌명. 2024. 고난을 딪고 돌아온 조국의 비폭력 투쟁. <최소주의행정학> 9(4): 1.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천이 21대 당선자 전체의 45%, 지역구 의원의 39%(163명 중 64명) 교체로 끝났다. 공천을 둘러싼 잡음은 여느 선거때와 다를 바 없었지만 여당 뿐만 아니라 공천을 받지 못한 자들은 “친명횡재 반명횡사”라는 주문을 외고 있다. 매일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측근공천, 특혜공천, 방탄공천, 멸문공천이라고 헐뜯고 있다. 그러면서 현역 다수와 용산파가 자리를 꿰찬 여당은 매끄러운 공천으로 찬양하기 바쁘다.

흙수저 이재명이어서 할 수 있는 공천

수년 째 이어지고 있는 이재명에 대한 수사로 측근 대부분이 구속되어 있는 마당에 무슨 측근공천이고 특혜공천이란 말인가? 이씨가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영입한 후보나 경선에서 이긴 후보는 당연히 “친명”이고 탈당이나 경선에서 패배한 후보는 “반명”이어야 한다는 어거지다. 평생 비주류로 살아온 이씨에게 밀려난 무능한 주류의 비루함이다. 비명, 친문, 주류가 학살되었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고민정 윤건영 이인영은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선출직 평가 하위 10%나 20% 성적표를 받은 자들의 심정은 이해하나 당원과 당직자, 지역주민, 동료 의원이 평가한 결과를 당대표가 어떻게 마음대로 조작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공천의 핵심은 현역 물갈이였다. 정치 신인과 여성에게 가산점을 주고, 현역 의원에게 당원 50%가 포함된 경선을 요구했다. 평가 하위 20%까지 최대 30%까지 감산하고, 중도사퇴, 탈당, 징계 등에도 25%까지 감산하였다. 한마디로 당원의 기대치에 맞게 처신하고, 말하고, 행동한 후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규칙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당대표 문재인, 위원장 김상곤, 위원 조국)에서 제안하여 정착된 것이다. 당원, 동료 의원, 일반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공천하겠다는 의지다. 다선이든 현역이든, 수박이든 호박인든 공정한 평가에 따라 정당의 추천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유권자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머슴을 퇴출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상식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과 상식을 실제 현실에서 적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관행을 깨뜨리는 일이기에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민주당은 정치라는 이름으로 원칙과 상식을 적당히 뭉개고 유권자들을 좌절시켰다. 김종인(2016), 추미애(2016-2018), 이해찬(2018-2020), 이낙연(2020-2021) 모두 공천 규칙을 온전히 적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재명이 일을 냈다. 우직하게 참고 견디며 원칙과 상식을 지켜냈다. 흔들림없이 공천 규칙과 절차를 밀어붙였다. 어쩌면 그가 금수저가 아니어서 가능했는지 모른다. 꽃이 아닌 들풀이어서 학연 지연 혈연에 빚을 지지 않은 그였다. 맨몸으로, 피땀으로 갈고 닦은 재능과 겸허함과 부지런함으로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느덧 김대중과 노무현이 되었다. 사실 당내외 수구 기득권 세력들이 이씨에게 온갖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다. 언론 대들보에 이씨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몽둥이질을 해댔다. 이씨는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다. 무차별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버텨냈다. 이씨가 멋대로 만든 공천 제도가 아니었지만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았다. 아프다는 외마디없이 그저 묵묵히 할 일을 했다. 처절하게 피눈물을 흘려 본 흙수저의 집념이다. 기득권을 누려온 자들은 절대 납득할 수 없는 원칙과 상식의 무서움이다.

정치효능감을 각성시킨 민주당 공천

이번 민주당 공천에서 혼선도 있고 미흡한 점도 있었지만 어정쩡한 타협도 없이 규칙과 절차에 충실한 공천이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당원들의 기대에 반하는 언행을 보였던 자들이 당원들의 표로 응징당했다는 점이다. 당원과 지역 주민들이 공천 제도에서 정치 효능감(political efficacy)을 체감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긴가 민가하다가 철옹성같던 현역들이 경선에서 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유권자들이 각성한 것이다. 다선 현역인 박용진이 지역구 경선에서 두 번이나 패한 것은 상징적이다. 이재명이 박씨를 싫어하든 말든 깨어난 유권자들이 몰려가 가감산없이 박용진을 끌어내렸다. 후보들에게는 등골이 오싹한 일이다. 친명이나 반명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유권자들의 뜻에 부응했느냐를 물을 뿐이다. 이것이 제도에 의한 공천이다. 가히 공천 혁명이라 할만 하다.

이제 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당원과 시민들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여의도 짬밥이나 당대표와의 친분은 차라리 흠결이다. 당원과 민심이 가리키는 대로 “측근공천”이나 “방탄국회”가 아니라 “용산공천”과 “방탄대통령”으로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사법리스크”가 아니라 “검찰쿠데타”에 맞서야 한다. 의정활동 뿐만 아니라 지역구 관리도 게을리할 수 없다. 막말, 음주운전, 부동산 투기 등으로 유권자들을 화나게 해서는 안된다. 성골이든 진골이든 두품頭品이든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뭐가 문제인가

이대표는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민주당을 사당화했다고 비난하는 자들이 시비거는 말이다. 그러면 바이든 행정부(Biden Administration)는 뭐란 말인가? 바이든이 대통령으로서 이끄는 행정부가 무슨 문제란 말인가? 이재명이 당대표로서 규정과 절차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한심한 소리다. 자신이 당대표를 하면 민주주의고, 남이 하면 “친문패거리”와 “친명독재”인가? 문재인이, 이재명이 물러나면 선거에서 승리하나? 그 다음은 누구인가? 적이 만만하게 생각하는 자들만 남아서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꽃길만을 걸어온 정통 주류들은 천출 비주류인 이씨에게 허무하게 밀려난 현실을 부정하고 저주를 질투처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왜 8할의 당원들이 이씨에게 지지를 몰아줬는지를 곱씹어봐야 했다. 싸움에서 졌으면 깨끗하게 승복할 일이었다. 월등한 실력 차이를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소인배들은 당원들의 뜻을 외면하고, 돌아서서 딴소리를 하고, 동지의 뒷통수를 갈겼다. 찌질이 패배자의 지지리 궁상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모습이다.

참고문헌

박헌명. 2024. 친명횡재도 비명횡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주의행정학> 9(2): 1.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4. 흙수저 이재명의 공천이 무서운 이유. <최소주의행정학> 9(3): 1.

 

민주당 김종민, 이원욱, 조응천이 지난 1월 10일 탈당을 결행했다. 윤영찬과 함께 이른바 “원칙과 상식”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당지도부를 흔들어왔다. 탈당의 변으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해야 하는데, 사당화된 이재명 체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양심상 비정상 정치에 더이상 끌려다닐 수 없다고 했다. 제 3지대 세력을 모아 비장한 뜻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이튿날 이낙연도 “마음의 집”이었던 민주당이 방탄정당이 되었다며 떠났다.

그들의 행보가 모든 것을 말한다

수구세력은 민주당 공천을 두고 이른바 친명횡재(橫財) 반명횡사(橫死)라는 낙인을 찍었다. 공천을 받지 못한 자들도 적의 언어로 분풀이를 하고 있다. 실망하고 분노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나친 언사다. 이재명을 연산군이나 나찌에 빗대어 비난하기도 했다. 설훈은 선거보다는 어떻게 하면 교도소에 가지 않을까만을 궁리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남탓은 핑계는 많지만 근거도 논리도 없다. 그들의 행보는 그들의 본심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먼저 당의 입장이나 의원평가나 경선결과에 승복하는 경우다. 대다수가 여기에 포함된다. 우상호는 이미 불출마를 선언했고, 인재근(2월 14일)은 당의 결정을 받아들여 마음을 접었다. 하위 20%에 속한 박광온은 3월 6일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하기로 했다.

한편 당을 떠나지는 않지만 분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고민정은 단수공천을 받았으나 공천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최고위원직을 내던졌다. 정계은퇴를 번복한 임종석은 규정에 따라 전략공천지역이 된 중·성동에 출마한다고 고집을 피우다 3월 4일 무력시위를 접었다. 노웅래(마포)는 2월 22일 경선에서 배제된 뒤 당대표실에서 며칠 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윤영찬(3월 6일)과 박용진(3월 11일)은 하위 10% 불이익을 감수하고 경선에 참여했다가 패했다. 박씨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고 재심을 신청했다. 이들의 행보가 대체 당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선당후사와 거리가 멀다.

이수진(2월 22일), 전병헌(1월 25일), 홍영표(2월 29일)는 경선에서 배제되어 탈당했다. 4선 설훈은 2월 28일 하위 10% 성적을 받고 분개하여 탈당했다. 4선 김영주 역시 2월 19일 하위 20% 점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장관까지 역임한 현직 국회부의장 아닌가. 김씨는 3월 1일 기어코 탈당하고 4일 여당에 입당하여 5일 같은 곳(영등포)에 공천을 받았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어질어질하고 구역질이 난다. 지난 해 12월 3일 탈당하고 2월 17일 여당에서 같은 지역구(유성)에 공천을 따낸 이상민보다 더 극적이다. 전혜숙(광진)은 3월 11일 경선에서 패배하고 탈당하였다. 당의 후광으로 누릴 것은 다 누린 자들이... “수박”이라는 비아냥은 차라리 호사스럽다.

친명횡재도 비명횡사도 아니다

민주당 안팎에서 친명과 반명을 가르고, 싸움을 부추기고, 치고 박고 하는 꼴을 즐기는 자들이 있다. 매일매일 생중계를 하고 있는 신문과 방송을 보노라면 이재명은 제멋대로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폭군이 되어 있다. 어리석은 당원들을 포섭하여 공당을 사유화한 파렴치한이고, 선거는 포기하고 당권강화와 방탄막이에 몰두하는 무책임한이다. 하지만 굴러들어온 돌이 당원 8할의 지지를 홀려내 박힌 돌을 빼냈다면 탁월한 재능아닌가? 지리멸렬한 정적을 없애고 선거를 망쳐서 독재자가 얻는 이득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선거에서 패하면 감옥도 안가고 재판에서 무죄받나?

“패권,” “팬덤,” “방탄,” “사천...” 수구세력의 교묘한 말공작이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다수의 지지를 받아 당대표가 되었고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무슨 패권인가? 이대표가 법이나 규정을 위반하거나 심각한 비위를 저지른 적이 있는가? 비회기중에 영장을 청구하면 될 일을 검찰이 구태여 회기중에 체포동의안을 제출한 것인데 무슨 방탄인가? 검찰이 2년 넘게 탈탈 털었어도 1원 한푼이라도 찾아냈는가? 또 친노·친문하면서 왜 친이가 아닌 친명인가? 없이 자랐고 험하게 살아온 자에겐 성씨도 아까운가? 성골·진골이 아닌 천출이어서 무슨 짓을 해도 재수없다는 것 아닌가.

친명횡재나 비명횡사는 말장난일 뿐이다. 비루한 핑계질이다. 이씨와 당사자도 모르는 친명이나 비명이라니... “이재명의 입”이라던 김의겸은 반명이라 경선에서 횡사했나? 윤건영과 박범계는 친명이라 횡재했나? 횡橫이란 정상이 아닌 뜻밖에 벌어졌다는 뜻인데, 무슨 횡재며 무슨 횡사란 말인가? 다 뿌린 대로 거두고 있을 뿐이다. 모두 “게임의 규칙”을 잘 아는 상황(체포동의안 표결후 평가가 예정되어 있다는)에서 벌인 일이니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당원과 주민들의 여망을 외면하고 당의 방침을 거스르고 자신의 잇속을 챙겼으면서 높은 점수를 기대했다면 경우없는 짓이다. 아직도 점수와 무관하게 “현역 프리미엄”을 누리면서 당총재를 구워삶거나 윽박지르면 그만인 시절을 살고 있는가?

인과응보요 자업자득이다

경선에서 배제당하고, 낮은 평가를 받고, 경선에서 패하고 반발하는 이들은 이재명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 “친명”이 아니라서, 당대표를 비판해서, 체포동의안에 찬성해서 보복을 당했다는 얘기다. 어느 정도 개연성은 있다. 하지만 당대표가 15%를 결정하는 여당과 달리 의정·기여·공약·지역으로 나누어 동료의원, 보좌관, 당직자, 당원, 지역 주민이 평가한 결과를 어떻게 이재명이 주물렀다는 것인지... 확실한 것은 김상곤 시절에 정한 평가기준과 절차를 예외없이 적용한 결과라는 점이다. 현역이든 아니든 평가 주체들이 원하는 언행을 했는가를 따졌을 뿐이다. 원칙이고 상식이다.

공천과정에서 난동을 피운 자들을 되새겨 본다. 아깝다거나 억울하겠다는 자를 떠올릴 수 없으니 잘된 공천이다. 당의 절차와 결정을 무시하고 떼쓰기를 시연한 임종석의 철딱서니라니... 부디 억울해 하지 말라. 유권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받은 냉혹한 성적표일 뿐이다. 다선이든 현역이든 문희상 아들이든 마찬가지다. 특혜도 횡재도 횡사도 아니다. 인과응보요 자업자득이다.

 

인용: 박헌명. 2024. 친명횡재도 비명횡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주의행정학> 9(2): 1.

해병대 제1사단장 임성근씨가 진술서에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 장병들이 물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작전을 수행한 대대장들이 자신의 지시를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녕 별을 둘 씩이나 단 자의 언행이란 말인가. 현재 권력을 틀어쥔 자들의 정신줄과 행동방식을 고스란이 드러내고 있다.

수색이 아니라 죽든지 말든지

지난 7월 19일 예천 내성천에서 수해로 실종된 주민을 수색하던 해병대 포병대대 채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폭우와 영주댐 방류로 거세진 유속 때문에 장갑차 투입도 포기한 상황이었다. 붉은 티셔츠를 갖춰입은 장병들이 줄지어 손을 잡고 허리높이까지 강물을 훑고 있었다. 물속 움직임을 방해하는 멜빵장화를 신기면서 구명조끼도 입히지 않았으니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차라리 죽으라는 소리다.

어이없는 인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병대는 1주간 자체수사를 마치고 사건을 덮었다. 자식을 잃은 가족은 절규하고 전우를 잃은 장병들은 고통에 신음하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악몽에 시달리는 동료 병사의 어머니는 9월 13일 임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그 병사는 전역 당일(10월 24일) 임씨를 같은 혐의로 고발했다. 사단장의 지시를 왜곡하여 전달했다고 지목된 대대장은 반발하며 지난 12월 9일 상관인 임씨를 공수처에 고발했다. 콩가루 집안이 되었다.

해병대 수사단은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결과를 7월 30일 이종섭 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이씨는 31일 해병대 사령관을 통해 조사보고서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날 이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에게 다섯 차례 전화를 걸어 혐의사실과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외압을 느낀 박대령은 법의 취지대로 8월 2일 조사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고, 국방부 검찰단은 당일 저녁 이첩 자료를 가져갔고 해병대는 박대령의 보직을 해임했다. 21일 국방부 조사본부는 기존 8명이 아닌 사단장 등을 제외한 대대장 2인을 과실치사 혐의자로 적시해 경찰에 다시 이첩했다. 군검찰은 8월 8일 박대령을 집단항명수괴 혐의로 입건했고 30일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군사법원은 9월 1일 기각했다. 박대령은 엄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와 군사법원법에 따라 사단장 등 8인의 업무상 과실을 확인하고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장관에게 대면보고한 후 경찰에 이첩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무슨 변명을 해도 지휘관 책임이다

임씨의 강변은 그 자체로 황당하다. 사단장이 절대로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수차례 지시를 내렸다는데 무슨 해석이(그것도 정반대로) 필요하단 말인가? 극단적 관료제인 군대에서 자신들의 안전을 포기하면서까지 집단으로 항명을 할 까닭이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씨가 박대령만 콕 집어 군법을 들이 댄 까닭은 무엇인가? 모든 부하들이 장군의 말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엉터리 부대라는 말 아닌가? 그래도 지휘관이랍시고 염치도 없이 “난 하지 말라고 했떠여. 재들이 말을 안들었떠여. 때찌해주세여”하고 자빠졌으니... 어느 장병이 이런 똥별의 말을 따를 것인가.

사고부터 사건처리까지 의문 투성이다. 빠르게 흐르는 흙탕물에 들어가라면서 왜 구명복을 입히지 않았을까? 물 속에 장화라니 웬말인가? 한 해병대 전역자는 복장으로 보면 물에 들어가지 않는 작전이고, 물에 들어간다면 당연히 고무보트와 구명줄(로프)을 챙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병대 상식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 했다. 애초에 잘 준비된 계획이 아니라 급하게 변경된 비정상 작전이라는 뜻이다. 자식같은 부하들을 무방비로 사지로 내모는 짓이었으니 대대장이나 중대장(포대장) 선에서 결정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장병들의 안전보다 대민 지원과 선전에 몰입한 지휘관의 과욕이 사달을 낸 셈이다. 임씨가 강물에 들어가 수색하는 장병들의 사진을 보고 훌륭한 공보활동이라고 칭찬했다지 않은가.

임씨는 초기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사단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7월 31일 오전 윤씨의 “격노” 이후 말을 바꾸었다. 김사령관 역시 조사관에게 진실되게 조사했으니 잘못된 것이 없다던 말을 뒤집었다. 박대령의 소신을 항명으로 옭아매고 애초에 요구받은 대로 실무자만 때려잡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대통령도, 국가안보실도, 국방장관도, 차관도, 사령관도, 사단장도 속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만 난무하다. “귀신잡는 해병대”가 아니라 “귀신에 홀린 해병대”가 되었다. 해병대의 기강과 명예는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망치는 “김여사” 운전법

국가기관에서 벌어진 중요한 일인데 명령과 그 정당성을 뒷받침할 문서도 없고 설명도 없다. 군 사망사건에서 범죄혐의를 인지하면 지체없이 사건을 경찰에 이첩해야 하는데, 국가안보실에서 수사자료를 요구하고, 국방차관과 법무관리관이 전화질을 하는 것이 정상인가? 해병대가 경찰에 이첩한 서류를 국방부가 가져갔는데, 이것은 회수인가, 탈취인가? 박대령의 죄는 항명이 아니라 지체없이 이첩하지 않은 업무상 과실이지 않은가. 법이든 관행이든 납득할 방법이 없다. 합리성에 기초한 멀쩡한 관료제가 아니다.

이성과 상식에 초연한 “김여사”의 운전법이다. 제멋대로 편을 가르고 자기 편에게만 특혜를 주는 자들이다. 다른 편은 없는 죄를 만들어서라도 괴롭히지만 가족과 측근에게는 무한한 자비를 베푼다. 맘대로 권력을 휘두르지만 결코 책임은 지지 않는다. 국무위원들이 국회의원을 다그치고 탄핵소추를 당한 이상민씨가 당당한 것은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임성근씨는 이명박 청와대에서 김태효씨와 이종섭씨와 같이 근무했다. 2022년에는 힌남노 피해자 구조작전으로 당시 위기에 몰렸던 윤씨를 구해냈다. 내 사람에 대한 눈물겨운 보은이었을까? 개념없이 괴팍한 아집에 빠진 “김여사”가 민주주의와 관료제와 군대를 허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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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4. 해병대를 망가뜨린 "김여사" 운전법. <최소주의행정학> 9(1): 1.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고초를 겪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6년에서야 시작된 1차 소송에서 배춘희 할머니 등은 2021년 승소하였다. 2차 소송은 이용수 할머니 등 16명이 참여하였는데, 2021년 4월 1심 재판부는 이른바 “국가면제”라며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지난 달 23일 열린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2억원씩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일본군 성노예(wartime sexual slavery of Japanese military)가 아니라 가해자의 시각을 담은 위안부慰安婦(comfort women)라는 표현이 탐탁찮다.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의 소송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아니 피고인 일본의 편을 드는 윤석열 정권과 수구세력의 태도가 못마땅하고 속을 불편하게 한다.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매춘부?

지난 달 26일 부산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통해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박진 외교장관은 2015년 한일합의를 존중한다면서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양국이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재판부가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한국 정부가 시정조치를 하라는 일본 외무상의 요구에 대꾸도 못했다.

성노예 피해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본정부의 반성과 사과인데, 도대체 어찌 돈으로 명예와 존엄을 회복한다는 것인가. 일본 정부가 전시에 패악질을 저질렀는데, 왜 한국 기업이 돈을 내고 한국 정부가 사법부 판단을 시정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마당에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가 가당키나 한가?

범죄는 일본이, 수습은 한국이 알아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수구세력의 입장도 다를 바 없다. 2018년 대법원은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이 여운택 할아버지와 양금덕·김성주 할머니에게 피해를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했고, 법원은 두 회사의 한국 내 자산 일부를 압류한 뒤 강제매각하도록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지난 3월 6일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박씨는 한국 정부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만들어 한국 기업이 출연한 재원으로 일본 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대신 변제하겠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을 비난한 한덕수 총리는 “가장 큰 돌덩이를 치웠다”라고 평했다. 법원에 배상금을 공탁하여 강제집행이라도 하겠단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요구한 일본의 사과는 쏙 빠졌다. 포악한 조선총독부의 모습이다.

윤씨는 2022년 8월 17일 취임 100일을 기념한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용에 관한 확정판결이 나왔으니 채권자들이 법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중이라고 밝혔다. 윤씨의 눈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돈푼이나 뜯어내려는 거렁뱅이고,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빚쟁이의 채권을 실현하는 보상일 뿐이다. 잘못을 따져 밝히고,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고, 수십년 곪아온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는 관심조차 없다. 성노예든 강제 징용이든 성가시게 굴지 말고 그냥 좋게 좋게 일본이 원하는 대로 끝내자는 뜻이다. 친일본색을 증명하려는 듯 더 가혹하게 국민을 개돼지로 짓밟는 수구세력들이다. 국민의 뜻을 거스른 1965년 협정과 2015년 합의 모두 종미종일從美從日파들의 충성맹세다.

피해자가 돈뜯으려는 거렁뱅이인가?

지난 3월 27일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박범계 의원은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이 대법원의 판결을 정면으로 위반한다고 했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대법원 판결은 당연히 존중돼야 되는 문제”라고 답했다.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인듯 딴청을 부렸다.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따라야 한다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 표창장이나 인턴 문제로 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추상秋霜같은 기개라면 제3자 변제안을 지시하고 준비하고 결정하고 집행한 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능지처참하고 부관참시해야 할 것 아닌가? 이 나라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부정하고 국민을 배신한 반역도들 아닌가?

한씨는 2020년 2월 13일 인터뷰에서 추미애 법무장관을 겨냥하여 “일개 장관이 헌법상 국민의 알 권리를 포샵질을 하고 앉아 있”다고 했다. 일개 검사장이었던 한씨가 검찰총장도 아닌 법무장관과 맞장뜨는 호기는 가상해 보인다. 하지만 2022년 8월 23일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한씨는 최강욱 의원이 날카롭게 비판하자, “저도 지금 국무위원으로서, 일국의 장관인데...”라며 대꾸했다. 너는 일개一介 장관이고 나는 일국一國의 장관이라는 것 아닌가. 나는 언제나 옳고 너는 언제나 틀리다, 나는 뭘 해도 괜찮고 너는 뭘 해도 안된다는 정신줄이다. 완장차고 설치는 자들의 정신승리다.

一國의 장관, 日國의 장관?

박씨든 윤씨든 한씨든 이들의 황당한 언행을 납득할 길이 없다. 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내뱉는 소리다. 누가 적어준 대로 읽다가 막히면 딴소리를 하는 영혼없는 말장난에 가깝다. 작년 10.29 참사때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경찰청장 등 주요 책임자들의 궤변이 그러하다. 부산액스포 유치를 위해 지구 495바퀴를 돌면 무슨 소용인가? 진심도 성의도 없는 눈빛을 어찌 감출 수 있을까? 문재인씨와 윤씨의 거리가 이리 먼 것이다.

어쩌면 일국이 一國이 아니라 日國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日國의 대통령, 日國의 총리, 日國의 조선총독, 日國의 외교장관, 日國의 법무장관, 日國의 국방장관... 부복하고 日國의 왕과 정부를 섬기는 일을 본분으로 하는... 그러면서 자신의 권력과 잇속을 알뜰하게 뒷주머니로 챙기는... 멀쩡한 一國의 대통령이고 총리고 장관이었으면 감히 그리 입을 놀리지 못했을 것이다.

소정 선생님은 이렇게 한탄했다. “내 나라를 빼앗[았]던 나라의 악을 용서할 능력이 없는 정권이 용서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 일본이 전과를 뉘우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용서할 자격이 있는 세력이 용서하고, 악을 저지른 자가 전과를 뉘우쳐야 한다는 이 두가지 요건이 ... 충족되지 않고 있다”(2008: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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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3. 일국의 대통령, 일국의 총리, 일국의 장관 <최소주의행정학> 8(12): 1.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효자종목이라는 태권도와 양궁 뿐만 아니라 수영에서도 김우빈 선수가 놀라운 기량을 펼쳤다. 축구와 야구 모두 대회 연속으로 우승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에 무심했던 나의 주목을 끈 것은 탁구 혼합복식에서 동메달을 따낸 장우진·전지희와 임종훈·신유빈이었다. 국내외로 어수선하고 우울한 일들이 벌어지는 와중에 내린 청량한 단비랄까?

동메달들의 발칙한 행각이 사랑스럽다

우연히 지난 9월 30일에 열린 이들의 시상식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나는 탁구를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이들을 보고도 누군지 알지 못했다. 단지 언론 보도로 신유빈이란 이름 석자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들의 발칙한 행각에 처음엔 얼떨떨 하더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고였다.

먼저 장우진·전지희 짝이 시상대에 올랐다. 메달과 꽃다발을 차례로 받은 후 키가 큰 장우진이 무심코 전지희 목 뒤의 메달 끈을 정리해 주었다. 누가 보는 줄도 모르고 사랑에 겨워 자연스레 연인의 매무시를 다듬어주는 모습이다. 꿀물같은 달콤함이다. 이 장면이 본 관중은 환호했고, 어리둥절했던 당사자들은 엉겁결에 중계화면을 확인하고 쑥스러워 했다. 새색시같은 전지희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고, 장우진은 민망한지 슬며시 고개를 떨구었다.

이어서 임종훈·신유빈은 시상대에 오르자마자 환하게 웃으면서 볼하트를 만들었다. 장난꾸러기 여동생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같이 발칙한 짓을 저지른 오래비의 어색함이랄까? 스스로도 멋적은지 손으로 눈을 가리며 웃는 임종훈에게 신유빈은 복사꽃같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엄지척을 해준다. 연인같은 남매의 모습이다. 꽃다발을 받은 후 임종훈은 장우진을 따라하듯 신유빈의 메달 끈을 다듬는 시늉을 했다. 영혼까지 털린 능청스러움에 폭소가 터져나왔다. 즐거운듯 수줍어하는 “삐약이”의 얼굴이 해맑고 곱기도 하다.

이들의 풋풋하고 발랄한 모습을 중계진도 놀란듯 흥미롭게 해설해 주었다. 어색하든 민망하든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어떻게 수습해야 한단 말인가. 싱그러운 네 짝꿍은 어여쁜 꽃으로 활짝 피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무장해제시켰다. 따뜻하게 마음을 감싸고, 괜스레 설레게 하고, 생기가 돌게 했다. 이렇게 예쁘고 흥겨운 시상식을 본 적이 있었던가?

반면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낸 중국 선수들은 목석처럼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한국 선수들의 공연같은 “애정행각”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다가 이내 엄숙함으로 돌아왔다. 10여년 전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했다는 전지희가 시종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과 대조된다. 스스럼없이 동료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국 아낙네다. 만일 그녀가 중국선수로서 금메달을 땄다면 과연 저런 웃음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더이상 “죄송합니다”는 없다

지금까지 우리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중압감에 짓눌린 모습이었다. 권위주의 정권의 폭압에 시달리고 있는 백성들의 찌들린 모습이다. 금메달을 따면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고, 아니면 반역죄를 뒤집어 쓰는 분위기였다. 시상식에서 중국선수들이 경직되어 있었던 이유다. 나는 이런 “올림픽패러다임”이 너무 싫었다.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를 즐기고, 그런 모습을 보고 즐기는 상상을 하곤 했다. 덜컥 이런 발칙한 행각을 발견한 것은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다. 동메달이어도 저렇게 발랄하고 해맑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마치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딴 것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정치판에서도 삐약이의 발칙함을 보고 싶다

소정 선생님은 “당원들이 단결하지 않으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데, 단결은 구성원간의 합의가 모색되었다는 뜻이다”라고 했다(2001: 365). 동지는 없고 내 편, 내 계파만 있다면 구성원 간의 합의도, 단결도 없고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규칙에 따라 상하 간의 신임을 얻고, 공은 동지에게 돌리고 불리한 것은 자신에게 돌리고, 스스로 많이 자책하고 타인을 적게 책망함으로써 각자가 지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화합을 이뤄야 한다(1996: 428-429). 상하간의 기강이 무너지고, 불리한 것은 동지에 돌리고, 나보다 타인을 책망하면 합의와 단결을 이룰 수 없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지 못했다. 구태여 회기중에 체포동의안을 밀어넣은 검찰은 민주당을 포함한 야당 전체를 시험에 들게 한 것이다. 2년 동안 피의사실을 흘려 언론을 도배하고, 정적들을 법사슬에 묶어 끌고 간 자들이다. 요설과 압박으로 단결하지 못하도록 장기의 말을 둔 것이다. 간사한 자들은 은혜입은 것을 잊었고, 박쥐처럼 기회만 엿보았고, 거짓말로 지지자를 속였고, 잇속으로 서로 싸우다, 막상 동지가 어려울 때 돕지 않고 도망간 것이다(2001: 163). “참는다는 것은 포악함에 시달리는 사람이 갖출 덕목의 모두”라 했는데(1980: 384), 끝내 참지 못했다. 유혹과 겁박을 이기지 못하고 동지를 절벽위에 세웠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오직 일등만이 살아남는 살벌한 정치판이 되었다. 어찌하여 8할에 까운 지지로 당선된 당대표를 흔드는가? 이대표의 사법리스크라고 말하지만 정적이 쳐둔 덫을 밟는 어리석음이다. 조국씨를 담근 것처럼 눈앞에 거슬리는 자는 누구든지 풍비박산 내주겠다는 식이니, 이대표를 내어주면 그 다음은 누구를 벼랑 아래로 밀 것인가? 행여 자신이 당권을 쥐고 공천을 받는다 해도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이들은 폭정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올 대안을 결코 내지 못한다. 그저 비루하게 정적이 던져주는 고깃덩이나 핥을 뿐이다. 시민들은 이미 사법리스크를 넘어 탄핵리스크로 향하고 있는데 말이다.

끝없이 편을 갈라 치고 박는 어리석음은 멈춰야 한다. 얼굴빛부터 바르게 하고, 예법에 따라 군자다운 다툼으로 경쟁해야 한다. 패배했기에 더 단결해야 한다. 탄압받는 동지의 매무시를 수습해주고, 함께 볼하트를 날리는 삐약이의 발칙함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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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3. 탁구혼합복식 동메달들의 발칙한 행각 <최소주의행정학> 8(11): 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사회생起死回生 했다. 지난 달 21일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어 구속위기에 몰렸으나, 27일 법원이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현재 민주당 의원이 168명이고 여당이 111명인데, 다수당 대표를 체포하는 일에 149명이나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이 놀랍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대표를 사지로 몰았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에게 눈초리를 쏘아붙이고 있다. 배신자를 발본색원하여 응징하겠댄다. 여당에서는 법원이 “개딸”(한 정치인을 맹종하는 극렬 지지층)에게 굴복했다며 게거품을 물고 있다. 이 모두가 막말이고 말폭력이다.

왜 그들은 찬성표를 던졌을까?

민주당 의원들이 당대표의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까닭은 무엇일까? 검찰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수사했다고 믿었을까? 이대표의 결백이 못미더웠을까? 한동훈씨가 주절주절 읊은 “혐의별곡”에 감동해서였을까?

몇가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대표가 주요 혐의를 인정한다면 당장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혐의를 부정하고 결백을 주장한다면 검찰과 법원의 태도를 따져봐야 한다. 검찰과 법원 모두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일을 처리한다면(경우 1) 이씨는 당당하게 검찰조사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임하면 된다. 최종 유죄가 나온다 해도 억울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이씨의 정치생명은 끝난다. 검찰은 공정한데 법원이 “밥”과 “앙심”으로 판단한다면(경우 2) 이씨는 불체포특권을 활용해야 한다. 반대로 검찰이 불공정하고 법원이 정상이라면(경우 3) 특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영장이 기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과 법원 모두 공정하지 않다면(경우 4) 작정하고 정적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니 특권으로 방어를 해야 한다. 법원이 복불복이라면 경우 1과 3을 각각 2와 4로 보고 대응하는 것이 위험관리상 안전하다.

검찰은 이대표를 2년동안 조사하여 하나씩 쪼개서 기소하고 있다. 특수부 검사 60여명이 압수수색만 4백건 가까이 했다는 소식이다. 먼지는 물론이고 분자, 원자까지 탈탈 털고 있다. 잡혀간 증인의 말은 오락가락이고 극과 극으로 바뀐다. 차고 넘친다는 증거는 없고 언론에 흘러나온 피의사실만 넘처난다. 뇌물이든 배임이든 수백억 수천억을 들먹였지만 검찰은 물증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대표가 수천억을 흔적도 없이 먹을 만큼 재주가 탁월한 것인가? 이쯤되면 이대표의 결백이나 완전범죄로 결론을 내는 것이 상식이다. 탈탈 털어도 먼지나지 않은 놈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이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죄의 유무와 별개로 사법살인에 가깝다. 측근을 인질삼아 정적을 함정으로 몰아가는 사냥이다. 피의자를 매달아 놓고 온갖 기술을 화려하게 펼치는 마구잡이 검찰권의 향연이다. 누군가는 죽어야 끝나는 잔치다. 참형을 피할 수 없는 범죄자라 해도 인간의 최소한은 지켜줘야 하는 법이거늘.

그냥 이재명이 싫은 것이다

찬성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이 모를 리 없다. 이대표를 중범죄자로 비난해온 여당도 맹탕인 수사결과에 실망했을 것이다. 이대표가 10원 한장 탐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검찰이 1원짜리 뇌물이라도 코 앞에 들이밀었어야 했다며 탄식했을 것이다.

비명계라는 사람들은 “이재명당” “사법리스크” “방탄정당” “팬덤정치” 등으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강변한다. 김종민씨는 당을 하나로 모으고 통합해서 개혁을 이뤄야만 중도층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영장기각으로 구속리스크를 덜고 방탄정당이라는 오명을 벗는 계기가 되었으니 오히려 체포동의안 통과에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얄팍한 궤변이다. 영장이 발부되었어도 똑같은 얘길 하면서 이대표에게 사퇴를 종용했을 것이다. 이대표가 물러나고 몇년 뒤에 무죄를 받는다 해도 나몰라라 할 자들이다.

참기 어려운 대목은 적의 언어를 빌어 동지의 등에 칼을 꽂는 짓이다. 팬덤정치라 했지만 이대표의 말을 안듣는 민주당 팬이다. 노무현·문재인씨 때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3김시절이란 말인가? 물론 극성스러운 과격과 난동은 자제해야 하지만 팬없는 정당이 존재할 수 있는가? 사법리스크라지만 정권(검찰)이 뒤집어 씌운 굴레이고 민주당을 옥죄는 덫이다. 굳이 회기중에 영장을 청구한 것을 보면 “방탄정당”은 그들의 작품이다. 이대표가 일을 안한 것이 아니라 검찰이 손발을 묶은 것이다. 이대표를 흔드는 자들은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들의 정략에 놀아나 장단을 맞춘 셈이다.

김대중이 빨갱이라고 했으니 그를 잡아다가 안기부에 바쳐야 했었나? 문재인이 공산주의자라고 했으니 양산으로 우르르 몰려가 돌팔매질이라도 할텐가? 적이 두려워하는 동지를 하나 둘 내주면 그 다음은 누구 차례인가? 비명계는 검찰에서 시비걸지 않을테니 행복하신가? 왜 당당하게 아니라고,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자신의 용기없음을 속이려 이대표를 손가락질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어리숙해보여도 속내를 다 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결국은 이재명이 싫은 것이다. 78%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대표가 된 사람을 검찰이 기소했다는 이유만으로 내치면 통합이 되고 개혁이 되는가? 누가 되든 비상대책위원회나 비명계에서 당을 이끌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8할에 가까운 민심과 당심을 어찌 하려는가? 윤씨가 “확정적 중범죄자”라고 낙인찍었으니 이대표가 넙죽 엎드려 부형청죄負荊請罪해야 하나? 왜 이씨는 법에 나와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활용하면 안되는가?

"난놈" 이재명이 두려운 것이다

이씨가 천출賤出이기 때문이다. 검정고시와 비명문대 출신인 업보다. 성골·진골이 아님에도 사고와 능력이 출중한 죄다. 천출이 난놈이어서 당하는 곤욕困辱이다. 이대표가 물러난다면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주겠다는 말은 노대통령이 사과하면 탄핵소추를 하지 않겠다와 마찬가지다. 야바위꾼의 달콤한 속임수다. 노씨처럼 이대표도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상식을 택했다. 바보처럼 고난의 길을 자청해서 꾼들이 화가 난 것이다. 내년 선거에서 민의를 받들어 상향 공천을 할까봐 덜컥 겁이 난 것이다. 홧김에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질렀다. 어리석은 속물의 참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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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3. 왜 그들은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나? <최소주의행정학> 8(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