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단잠을 잤다. 며칠째 겨울비가 을씨년스럽게 내렸다. 답답한 마음으로 전전반측했던 차였다. 아침에 연구실에 나와서 컴퓨터를 켜고 잠시 멍했다. 비상계엄이라니... 벌써 국회에서 계엄해제를 의결한 상황이었다. 지난 밤에 많은 일이 있었구나... 놀라움에 이어 노여움이 솟는다. 부창부수 개그였나? 이제 헛웃음이 나온다. 개념없이 막나가던 “김여사” 정권이 기어이 사고를 쳤다. 이렇게도 고마울 수가 있을까...
"김여사"의 자살같은 자살골
윤석열은 3일 밤 10시 20분경 긴급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한마디로 국민을 약탈하는 범죄자·종북·반국가 세력의 소굴인 국회를 소탕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합참의장이 아니라) 밤 11시 30분경 다음과 같은 비상계엄포고령을 내렸다.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23:00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합니다.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분위기로 치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절로 되돌아갔다. 케케묵은 멸공반공에 신물나는 빨갱이칠이다. 내용은 엉망진창이다. 왜 거기서 예산이 나오고 전공의가 나온단 말인가. 계엄 요건과 무관하다. 왜 국회 활동을 금지하는가. 계엄 한계를 넘었다. 표현으로 치면 천박하다. 포고령 위반자는 처단處斷한다니 대체 이 무슨 망발인가? 처단의 뜻은 알고나 있는지... 코흘리개 이승복의 낙서장인가? 단순·무식·과격한 “김여사” 본색이다.
민주당은 곧바로 국회 본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자정 넘어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했고 유리창을 깨고 본청으로 들어왔다.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본회의장에 집결했고 4일 1시경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켰다. 계엄군이 바로 철수했고, 시간을 끌며 머뭇거리던 윤석열은 4시 30분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를 통해 비상계엄 해제를 발표했다.
깨어있는 시민이 멈춰세운 반란
6시간에 걸친 친위반란(self coup d’État)은 이렇게 진압되었다. 21세기에 계엄령이라니 다들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적과 교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행정과 사법이 불가능한 상황도 아닌데 비상계엄이라니 뜬금없다. 가깝게 지내는 미국인도 대만인도 놀랍다며 관심을 보였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군사정변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것이다. 눈떠보니 후진국이 된 느낌이랄까?
하지만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두시간 반만에 국회에서 계엄해제를 의결해서 상황을 종료시킨 사실이 더 놀랍다. 대만인 교수는 시민들이 한걸음에 국회로 달려가 중무장한 계엄군을 맨몸으로 맞서는 장면에 감동했다. 자정이 넘은 새벽에 그 짧은 시간 내에 수천 명의 시민이 몰려왔다는 사실에 미국인 교수는 경악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촉즉발 위기에서 실랑이를 벌였지만 단 1명의 사상자도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야간투시경까지 장착한 계엄군의 총구를 잡고 “부끄럽지 않냐”며 호통친 여성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단군이 하늘을 연 이래로 백성이 지켜온 나라의 실체다. 왕이 도망가고, 관료들이 숨고, 관군이 사라져도 피땀을 뿌려 나라를 지킨 것은 언제나 백성이었다. 거란과의 전쟁 때도, 임진왜란 때도, 병자호란 때도, 을사늑약 때도 그랬다.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라는 것은 교과서에 적혀있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삶에 숨쉬고 있는 진리다. 비상계엄 소식을 듣고 여의도로 달려온 남녀노소, 땅바닥에 엎드리고 국회의원을 끌고 밀고 한 이름없는 시민들, 본회의장을 사수하기 위해 대열을 지킨 보좌진들, 놀란 마음을 쓸며 밤을 지새운 시민들 모두 이 나라의 주인이다. 그 마음이 아름답고 고맙고 자랑스럽다. 권력과 총구만 믿고 설쳤던 “김여사” 정권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대목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김여사"
윤석열 일당이 비상계엄을 밀어붙인 이유와 과정을 두고 벌써부터 설왕설래다. 홍장원 국정원 1차장은 우원식, 이재명, 한동훈, 박찬대, 김민석, 정청래, 조국, 김어준이 제거대상이었다고 자백했다. 계엄 주체와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공익도 국익도 없는 사리사욕의 분풀이다. 이성도 상식도 없는 제멋대로의 발광發狂이다.
그들이 비상계엄을 얼마나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얼마나 광범위하게 계획했는지는 앞으로 밝혀질 것이다. 분명한 것은 계엄군이 그들의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완전무장으로 투입되었지만 명령을 회피하거나 지연시켰다. 전두환의 5.18과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계급장이 깡패”이고 “까라면 까”라는 쌍팔년도에 머물러 있다. 명령을 내리면 하급자는 무조건 따라야 하고 실제로 명령이 집행된다는 정신줄이다. 착각이다. 권위과 명령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상급자의 명령은 자동으로 집행되지 않는다. 하급자가 의심없이 받아들일 때 권위있는 명령으로 수용되고 실행된다. 상급자가 평소 법규를 준수하고 모범을 보여 하급자에게 신뢰를 얻어야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김여사 정권은 통수권자라는 지위만 믿고 권위를 살피지 못했다. 느닷없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긴다면서 국방부를 내쫓았다. 충직하고 유능한 장관과 지휘관을 쓰지 않았다. 충암파를 요직에 앉혀 분란을 자초했다. 해병대원 사망사건을 뭉갰다. 현역은 물론 예비역까지 모욕감을 주고 분노케 했다. 영令이 서지 않는 군대를 만들어 놓았다. 군기강이 무너진 것이다.
하물며 전시도 아닌데 야당이 맘에 안든다고 비상계엄을 한다니 21세기 장병들에게 먹힐 까닭이 없다. 이해할 수도 없고, 군대의 목적과 불일치하고, 자신의 이해관계와 부합하지 않는 명령이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무력을 행사하여 국회를 마비시키는 짓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임을 5.18과 6월 항쟁에서 배운 세대다. 이미 국민이 등돌린 식물 통수권자를 위해 지옥같은 고통과 낙인을 평생 떠안을 얼간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이없는 시대착오다.
"김여사" 정권의 자폭이 고맙다
그렇찮아도 제정신이 아닌 “김여사” 정권이 어찌 무너지나 궁금했다. 그냥 물러날 자들이 아니니 기어코 일을 내고야 말리라 짐작은 했다. 불감청不敢請이나 고소원固所願이라면 너무 박한가? 결국은 분을 이기지 못한 광자狂者의 허무한 자폭이었다. 20년 가까이 철권을 휘두른 박정희가 심복의 총에 맞고 나자빠진 그 허탈함일까?
참으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조상님의 은덕이다. 김여사의 패악질로 누가 이 나라를 갉아먹어온 존재인지 이제 명징明徵해졌다. 과연 구국의 결단이다. 박근혜와 더불어 21세기 대한민국 민주화의 정화精華로 우뚝 섰다. 김여사 정권의 생뚱맞은 반란을 격하게 환영한다.
인용: 박헌명. 2024. 김여사 정권의 친위 반란을 환영한다. <최소주의행정학> 9(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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