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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최소주의행정학
소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비폭력은 주먹을 내려놓고 말로 하자는 것이다(1986: 318). 이문영(2008)은 “무서웠을 때 내가 한 말은 적의 이성이 거절하지 못하는 최소의 말”(491쪽)이라 했고, “정부도 거절하지 못하는 말을 하되 말만 한다”라고 적었다(497쪽). 하지만 비폭력의 참뜻을 이해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물리력을 사용하지 말고 거친 말을 내뱉지 말라는 뜻일까? 어떤 상황에서든 화내지 말고 성내지 말라는 소린가? 노무현씨처럼 최루탄이 터져도 도망가지 않고 길바닥에 앉아 연좌시위를 계속해야 하는가? 전투경찰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들거나 군인들이 총을 난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만히 앉아서 품격있게 군자왈 맹자왈 하다가 맞아죽는 것이 비폭력인가? 이런 상황에..
얼마 전에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노벨 박물관에 다녀왔다며 누군가가 내게 Elinor Ostrom (1951-2012) 사진을 선물했다.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고 3년 뒤에 세상을 떠난 인디애나대학교의 정치경제학자다. 짧은 인연을 생각하며 바라본 사진 속 린(엘리노어의 애칭)은 너무 근엄해 보였다. 정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했다. 자상하고 활기찬 모습 뒤에 엄격함과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음을 안다. 그래도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린의 동반자였던 Vincent Alfred Ostrom (1919-2012)도 비슷한 양면성을 가진 분이다. 빈센트와 소정 선생님 언젠가 안도경 교수가 빈센트와 소정 선생님(1927-2014)께서 많이 닮았다는 얘기를 했다. 수년 간 린..
소정 선생님은 구민법의 대상이 되거나 세금을 내지 않으면 숫제 선거권을 주지 않는 제한선거제도를 채택했더라면 우리나라 정치가 훨씬 나아졌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008: 219). 어느 수업시간이었는데, 당시 나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른바 보통 ·평등·직접·비밀 선거라는 원칙에서 벗어나는 말씀이셨기 때문이다. 인종, 지역, 성별, 교육, 소득 등에서 차별을 두지 않는 보편선거(universal suffrage)가 상식에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원칙은 원칙이 아니라 주입된 이념에 가깝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내가 후원금을 내는 이유 나는 몇년 전부터 참여연대를 비롯한 몇몇 사회단체에 후원금을 내고 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꾸준함을 깊이 새겨 매달 꼬박꼬박 내려고 한..
지난 5월 문재인씨가 제 19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청와대 위민관爲民館의 이름을 여민관與民館으로 되돌린다고 했다. 2004년 노무현씨가 청와대에 비서실 건물을 새로 짓고서 여민관으로 이름지었는데, 2008년 이명박씨가 청와대에 들어가서 위민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다수가 이명박씨의 “Anything But Rho”라는 구호로 추진된 “노무현 흔적 지우기”라고 생각했다. 임석규 (2017)는 여민이든 위민이든 뜻은 다 훌륭하니 문패를 갈아치우는 악순환을 피하고 그 뜻을 제대로 구현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러한 두리뭉실한 양비론이 몹시 불편하다. 과연 여민과 위민은 같은가? 에 나오는 여민 여민관의 “與民”은 에 나오는 말로 “백성과 더불어 같이 즐긴다(與民同樂)”는 표현에 있다. 반면 위민..
문재인씨가 지난 17일 대통령 취임 100일을 기념하여 내외신 기자들과 회견을 했다. 설레기도 했고, 낯설기도 했고, 또 흐뭇하기도 했다. 높은 지지율에 걸맞는 그런 회견을 해주기를 바랐다. 차라리 조바심에 가까왔다.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진솔하게 말을 주고 받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대화에 굶주리고 목말랐던 국민들의 마음이리라. 회견이 끝난 뒤 답답했던 속이 풀린 듯한 시원함과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럼 이명박근혜가 문재인보다 잘했니? 문재인씨의 기자회견을 두고 역시 여야의 평이 갈렸다. 사실보다는 자신들이 가진 이념과 처지를 언급한 수준이다. 지도자가 레드라인을 밝힌 것이 적절하지 않았다느니, 원론 수준에 머물렀다느니, 시간이 부족했다느니 등은 점잖은 편이었다. ‘이명박근혜’를 배출했던..
요즘 갑질이 화두다. 이른바 ‘갑질’은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불공정한 행위를 말한다. 힘이 센 ‘갑’이 힘이 약한 ‘을’을 강제로 몰아붙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짓이다. ‘갑’과 ‘을’ 사이의 특별한 (권력) 관계를 올가미로 삼아 강자가 약자를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놓고 쥐어짠다.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무차별로 발길질과 주먹질을 해대는 야비한 패악질이다. 일방적인 강자의 횡포이다. 악질의 적나라한 폭력 그 자체다. ‘갑질’과 ‘을’의 반란 그동안 갑질은 사회 구석구석에서 여러가지 양태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현상인 양 gapjil로 표현되기도 한다. 갑질공화국이라는 말도 생겼다. 하지만 그동안 갑질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공론장에 오르기 어려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