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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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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 전부터 한 이름이 언론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명태균씨를 김명신와 윤석열에게 연결했줬다는 함 아무개 얘기다. 그는 오래 전부터 논문표절이니 알선수재 등으로 비난받다 직장에서 쫓겨났다. 그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국정농단 한 가운데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놀랐다가 어이가 없다가 “또...” 라며 탄식했다. 국내외 유명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그가 지나온 길이 고작 거간꾼이나 비선인가 싶어 자괴감이 든다.

B급 이론과 수구기득권의 운명

지난해 매불쇼에 출연한 유시민씨가 B급 이론을 소개했다. A급인 상급자는 하급자로 A급을 쓰지 B급을 안쓴다. B급인 상급자는 절대로 A급을 데려다 쓰지 않는다. 자신이 B급인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B급이나 C급을 데리고 논다. C급은 다시 C급이나 D급을 상대한다. 결국 조직은 점차로 F급으로 퇴화된다. 일이 잘될 턱이 없다. 게으르면서도 분수를 모르는 낙오자와 패배자들끼리 놀다가 망한다. 어쩔 수 없는 B급의 운명이다.

공자는 사사로운 뜻이 없고, 기필코 하겠다는 마음이 없고, 집착하는 마음이 없고, 이기심이 없었다(子絶四毋意毋必毋固毋我). 이에 반해 수구기득권은 사사로운 뜻으로 일을 하고, 기필코 일을 해내야 한다며 친일·쿠데타·독재를 가리지 않고,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계속 고집을 부리고, 결국은 자기들의 私利를 취한다(1996: 391). 이들은 잘못을 고치라는 소리는 듣지만 실제 고치지는 않는다(392쪽). 말잘듣는 하수인을 데리고 일하고, 나이많고 덕있는 이를 만홀히 여긴다(396쪽). 품격이 있고, 지식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을 거느리지 못한다. 재주를 깎아내리거나 충심을 “꼰대”의 잔소리로 후려치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들끼리도 돈을 공평하게 분배하지 않고, 하수인까지 못살게 굴어 잇속을 채운다(397쪽). 자리의 높고 낮음이 사람의 귀천이라 착각하는 자들이다. 상하간 존중이 없다. 정권의 민낯이다.

사실 능력의 급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윗사람이 사리분별이 멀쩡한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자신의 재주를 알고 분수를 지키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있을 뿐이다. 경우가 바른 자들은 A급이면 A급으로 살고 B급이면 B급에 머문다. 그러면서 꾸준하게 배우고 익혀 일신우일신하는 자들이다. 경우가 바른 상급자는 재주가 출중한 사람들을 기꺼이 삼고초려한다.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義와 합리성으로 기강을 세운다. 자신의 재주가 B급이어도 멀쩡한 A급을 데려다 쓴다. 물론 멀쩡한 C급이나 D급도 역량에 맞게 일을 준다. 경우없는 하급자라면 A급이든 B급이든 버텨내기 힘들다.

하지만 A급이면서 A+를 노리고, B급이나 C급이면서 A급 행세를 하면 경우없는 짓이다. 지식이나 재물 여부와 관계없이 분수를 모르는 천한 자들이다. 술수와 거짓으로 부당한 기회를 노리는 비루한 자들이다. 하물며 F급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A급 자리를 차지한다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염치를 모르는 자들이 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사람을 상하게 하고 사회를 망가뜨린다. 이들의 난동은 관료제의 물을 흐리고 기강을 무너뜨린다. 품격과 지향이 미치지 못하면 아무리 재주가 출중한들 무슨 소용인가.

경우없는 분자들의 궁상

멀쩡한 자들은 쉽게 나서지 않지만 경우없는 자들은 분수를 모르고 나대는 것이 세상 이치다. 잇속으로 서로 뭉치고 흩어지는 자들이다. 특히 요령이 있는 자들은 자리를 꿰차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몸무림을 친다. 입닥치고 한번 떠보려는 자들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과격분자, 이들 옆에 빌붙어먹는 분열분자(배신자), 돈이나 챙기고 사는 부패분자들이다(2008: 588-589). 대놓고 친일본색을 드러내는 자, 임시정부와 광복과 강제징용을 말하지 못하는 자, 공복이 되어 서슴없이 국민을 비하하는 자, 양심을 속이고 자리를 지키려 횡설수설하는 자... 음흉한 공작과 달콤한 거짓말은 밤하늘의 폭죽처럼 현란하다. 기회주의 수구기득권을 해체시키는 것이 이리도 힘들다.

드문드문 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보면서 종종 속이 불편해진다. 한덕수(국무총리), 추경호·최상목(경제부총리), 박순애·이주호(교육부), 이종섭·신범철·임기훈·여인형·임성근(국방부), 원희룡·박상우(국토교통부), 김문수(노동부), 박보균·유인촌(문화체육관광부), 한동훈·박성재(법무부), 박민식(국가보훈부), 조규홍·박민수(보건복지부), 김현숙·김행(여성가족부), 박진·조태열·김의환·박철희(외교부), 김영호(통일부), 이상민(행정안전부), 한화진(환경부), 최재해·유병호·최달영(감사원), 이원석·심우정(검찰청), 윤희근·김찬수(경찰청), 백경란·지영미(질병관리청), 정진석·윤재순·이시원(대통령실), 김용현·김태호·신원식(국가안보실), 이배용(국가교육위원회), 김홍일·유철환·정승윤(국민권익위원회), 안창호·김용원·이충상(국가인권위원회), 김채환(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김효재·이동관·김홍일·이진숙·김태규·조성은(방송통신위원회), 류희림·이현주·김흥수(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백선기·한정석(선거방송심의위원회), 김형석(독립기념관), 김낙년(한국학중앙연구원), 박지향(동북아역사재단), 김광동·황인수(진실화해위원회), 박민·박장범·강규형(KBS), 정기석(국민건강보험공단), 민영삼(방송광고진흥공사), 최철호(시청자미디어재단)... 답이 없다.

아, "하암..."

맨처음 건진이나 천공이 언급될 때에는 그렇고 그런 계집과 속없는 사내를 생각했다. 명씨가 등장하여 경우없는 자들의 속살을 까발리자 헛웃음이 나왔다. 함씨가 그를 미륵보살로 불렀다는 대목에선 고개를 떨궜다. 아, 그 부류였구나. 이런 자들을 스승이니 선생이니 박사라며 매달리는 허접들이라니... 끼리끼리 유유상종이라고 했다. F급이어도 한번 떠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자들이다. 관상을 살피고 사주를 보고 점괘를 풀고 해몽을 하고 연줄을 찾는다. 신분을 숨기고 표절하고 위조하고 조작하고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막사는 인생들의 궁상이다. 

 

인용: 박헌명. 2024. B급 이론으로 풀어 본 수구기득권의 운명. <최소주의행정학> 9(12): 1.

오늘 아침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했다. 박빙이라는 예측이 무색한 완승이었다. 연임에 실패한 뒤 성추행 입막음, 기밀문서 유출, 의회난입 등으로 벼랑 끝에 몰렸던 그가 천신만고로 기사회생한 것이다.

트럼프의 선동질과 과격한 미국 유권자

트럼프가 배설하듯 쏟아낸 거짓, 막말, 혐오, 저주가 삶에 지친 미국인들을 흔든 것일까? 불법 이민이든 낙태든 러우전쟁이든 뭐든 간에 유권자들은 “닥치고 미국우선주의”를 선택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녹록치 않았던 탓일까? 고난을 참지 못하고, 속임수에 넘어가 정신줄을 놔버리고, 과격하게 난동을 부린 것일까? 명백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자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도덕, 금욕, 근면으로 미국을 세웠던 청교도는 스러지고 있는가? 아님 그만큼이나 바이든-해리스 행정부가 잘못한 것일까?

적반하장인 “장님무사”의 민낯

오전 10시에는 윤석열씨가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고 했다. 국민께 진심어린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얼버무리면서 어찌 되었든 사과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 3년차의 자신감일까? 할테면 해보라는 자세로 기자, 야당, 국민에게 훈계질을 했댔다. 습관성 반말에 “미쳤냐” “무식한” “까지고” “인마” 등을 거침없이 내뱉았다. 어눌하지만 기껏 우리말로 질문한 외신기자를 못알아듣겠다며 생깠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 건달의 걸쭉함이다. 말이든 손짓이든 태도든 그냥 추접하고 상스럽다.

정말 5분을 참고 듣기가 어려웠다. 알맹이없는 횡설수설이었다. 야당이 박수를 안쳐서 시정연설을 안갔다느니, 검사 때 쓰던 전화로 많은 사람들과 자유롭게 통화했다느니, 국어사전을 새로 써야 한다느니, 집사람이 제대로 사과하라고 해서 나왔다느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밴댕이 소갈딱지이고, 법과 무관하게 막살아온 제멋대로이고, 마누라에게 쩔쩔매는 등신이라는 것 아닌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모른다. 사실과 거짓, 공과 사, 공식과 비공식을 구분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 그때그때 아무렇게나 둘러댈 뿐이다. 건들건들 성의도 없다. 세상이 자기 주위로 돈다는 다섯살배기의 아집과 유치함이다.

기껏 사과해 놓고 뭐가 잘못인지 알려달라니 황당하다. 초상집에 가서 밤새도록 구슬프게 곡을 해놓고 아침에 누가 죽었나고 묻는 겪이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모지리의 뚝심이자 용맹이다. 얼치기 “앉은뱅이 주술사”에게 바보취급을 당하면서도 찍소리 못하는 “장님무사”가 감히 부부싸움을 하겠다니... 순진한 집사람의 전화기를 보자고 할 배짱도 없는 사랑꾼이 꼴에 사내랍시고 앙탈을 부리는가? 술취한 공처가의 주사인가? 반항인가? 철딱서니없는 “낭만자객”의 기개가 가상하다.

민심을 속인 나무꾼의 도끼질

소정 선생님(2001)은 이솝우화를 인용하여 악한 통치자는 백성에게 아첨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급하면 구걸이라도 해서 권력을 취한 뒤, 그 권력을 도구삼아 백성을 해친다고 했다.

"하루는 한 사람이 손에 도끼를 들고 숲에 와서 하는 말이, 뭘 하나 만들고자 하니 나무들에게 작은 가지를 달라고 말한다. 나무들은 마음이 좋아서 그에게 나뭇가지를 준다. 그 준 나뭇가지를 갖고서 이 사람이 뭘 만들었는지 아는가? 나뭇가지로 도끼의 손잡이를 만들었고, 이 사람은 이 도끼로 나무들을 차례로 잘나냈다. 투표할 때마다 유권자의 의식수준이 논의되는 것도 다 교묘한 말에 속아 도끼자루 할 것을 나무꾼에게 내주지 말라는 이야기다"(2001: 139).

윤씨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지친 시민들을 선동했다. 문재인 정부가 무식한 삼류 바보들을 데려다가 나라를 망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를 장악한 운동권이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자신이 정의를 세워야 했던 검찰총장이었음을 알고는 있는지... 확정적 중범죄자인 야당 후보와 토론하는 것이 어이없다고 했다. 말폭력에 가까운 과격한 발언으로 민심의 분노를 자신의 물꼬로 끌어들였다. 수많은 질문에 엉뚱한 동문서답이나 버럭으로 대꾸했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도 않고 그냥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명박의 “부자되세요”나 박근혜의 “국민행복시대”와 같이 뜬구름잡는 소리였다.

하지만 윤씨가 쏟아낸 막말은 자신에게 저주가 되어 돌아왔다. 삐뚤어진 이념에 사로잡혀 미국과 일본의 바짓가랑이에만 매달렸다. 몰빵 외교는 실속은 커녕 호구가 되어 비웃음만 샀다. 홍범도 장군 폄훼, 일제징용 배상금 변제, 역사교과서, 사도광산 문제 등에서 친일 본색를 드러냈다. 주요 공직을 전리품처럼 종일·종미, 검사, 선후배, 이웃주민, 첨꾼 등으로 채웠다. 법사·보살이 설치니 일이 잘될 리가 없다. 문정권에서 잘 나가던 수출은 고꾸라졌다. 무역적자가 불어났다. 서민들은 고물가와 고금리로 아우성인데 기업과 부자들의 세금은 깎아주었다. 병사월급으로 장난치다 장교와 부사관을 흔들었다. 남북긴장을 조성하더니 대북전단을 오물풍선으로 돌려받았다. 게엄령, 친위쿠데타, 살상무기지원, 우크라이나 파병까지 의혹 투성이다. 무리한 의대생 증원으로 교육과 의료가 난장판이 되었다. 국민을 갈라쳐 네 편을 공산·반국가세력으로 몰아 때려잡을 테세다. 그들만의 공정과 상식와 통합이었다.

깨어나고 단결하여 끌어내려야 한다

이태원에서 벌어진 10.29 참사, 해병대 채상병 사망,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김씨의 명품백 수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대통령 관저 이전... 사건이 사건을 덮고 윤씨가 몽니를 부리고 있다. 김대남씨와 명태균씨는 김씨와 윤씨가 살아가는 법을 증언하고 있다. 장님무사가 밤낮을 헤매는 동안 주위에서 알뜰하게 해먹고 있다는 소리다. 이제 잇속이 틀어지니 서로 물고 뜯고 하는 것이다. 지지율이 1할 대로 내려앉았지만 끝까지 버틸 각오다. 이명박과 박근혜처럼 그 천한 자질과 됨됨이를 알고서도 국민 스스로 도끼자루를 쥐어줬다.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포악한 나무꾼의 도끼질에 속절없이 잘려나갈 것인가. 자, 이제 어찌할 것인가. 

 

인용: 박헌명. 2024. 트럼프의 기사회생과 장님무사의 도끼질. <최소주의행정학> 9(11): 1.

지난 5월 세네갈의 수도 Dakar에 출장을 다녀왔다. 지도를 보면 서아프리카 가장 끝에 튀어나온 곳이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 기반시설은 부족하고 민생은 힘겨워 보인다. 오랜 시간 고난을 겪어온 시민들의 얼굴이 외려 밝고 온화하다. 죄지은 것이 없으니 발을 쭉 뻗고 자는 선량들일까?

고레섬의 노예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카는 식민지 쟁탈전 시절 미국으로 가는 최단 항로를 제공했다. Westernmost Point of Afro-Eurasia에 가면 남쪽과 북쪽의 파도가 부딪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런 요지에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차례로 들이쳤다. 다카에서 남동쪽으로 3km 떨어진 고레(Goree)섬을 방문했다. 가로 300미터 세로 900미터의 화산섬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2천만명에 이르는 아프리카인들이 영문도 모르게 잡혀와서 이곳에서 유럽, 미국, 남미로 팔려갔다. 서구 열강의 반인간적인 노예무역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고레섬은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럽 각국의 식민지 확장은 노동력 수요를 폭발시켰고 노예무역에 불을 지폈다. 노예를 사냥하고 거래하는 자들이 서아프리카로 모여들었다. 무능하고 탐욕에 눈이 먼 아프리카 정부(왕)는 짐승처럼 사냥당하고 노예로 끌려가는 국민을 방관하거나 팔아버렸다. 서구에서는 노예제로 번영을 누렸으나 정부는 노예의 인권 문제를 방임했다.

1776년 네덜란드 상인들이 지었다는 노예의 집(House of Slaves)을 방문했다. 여기서 상인들은 노예의 키와 몸무게를 재고, 젖가슴과 성기를 관찰하고, 입을 벌려 치아를 살폈다. 성체와 새끼로 분류하고 수컷과 암컷과 처녀를 나누었다. 노예들을 벌거숭이로 좁은 토굴방에 밀어넣었다. 목과 손발을 묶고 쇠덩어리를 매달아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상품이 상하지 않을 만큼 먹였고, 저체중이면 콩을 강제로 먹였다. 반항하는 자들은 벽에 묶어 매질을 하고 좁은 감옥에 가두었다. 병들거나 성가신 자들은 바다에 던졌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처럼 생긴 짐승일 뿐이었다. 노예장사꾼들은 맘에 드는 암컷을 골라 2층 객실에서 마음껏 욕심을 채웠다. 노예들을 한 명씩 마당에 세워두고 값을 매겼다. 힘좋은 짐승과 때깔좋은 곡물을 고르는 경매 시장과 다름이 없었다. 흥정과 셈이 끝난 노예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문(Door of No Return)”을 지나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했다.

노예는 고레섬만의 일이 아니다. 이름과 개념이 다를지언정 동서고금의 현상이다. 로마는 전쟁에서 잡아온 노예로 치부했고, 아랍인들은 동아프리카인을 군인이나 성노예로 끌고 갔다. 조선의 노비제는 1894년 철폐되었지만 인신매매와 갑질 등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노예무역은 200년 전 유럽에서 금지되었지만, 1948년에서야 유엔총회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노예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이다. 힘세고 우월한 인간이 동족인 인간을 짐승처럼 부리고 잡아먹는 야만이다. 그러면서 인권과 인간 존엄을 말하는 고상함이라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민낯이다.

자유는 인간의 최소가 만인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노예의 집 구석에는 넬슨 만델라(Nelson R. Mandela)의 문구가 적혀 있다. “To be free is not merely to cast off one’s chains, but to live in a way that respects and enhances the freedom of others.” 자유라는 것은 단지 자신에게 씌워진 쇠사슬을 벗어던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고 증진하려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노예에게 자유는 마음까지 옥죄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속박이 있기에 자유가 의미를 갖는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이에게는 속박이 없으니 자유도 (의미)없다. 하지만 목과 손발을 감고 있는 쇠사슬을 풀었다고 해서 인간의 자유라고 말할 수 없다.

소정 선생님(1986: 96)은 “최소의 것이 침범받았을 때에 본연의 인간이란 무엇일까를 더욱 생각하게 된다” “최소를 가질지 말지 하는 한계상황에 사는 사람만이 그 최소마저도 상실된 상태에서의 존재를 음미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최소한은 부끄러움과 추위를 면할 수 있는 옷이며, 갈증을 달랠 한 모금의 물과 허기를 채워줄 음식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밀어를 속삭이며 살고 싶은 곳에서 식구들과 머무는 것이다. 한계상황을 경험한 사람만이 인간의 최소(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 수 있다.

소정 선생님(1986: 96)은 또 “최소의 것을 빼앗긴 자가 갖는 행복을 하나 더 찾는다면 빼앗은 자를 미움으로만으로 대하지 못하는 인간의 품위를 갖게 되는 행복이다” “최소에의 흠모를 존중시하는 이는 최소의 것을 빼앗은 이에 대하여도 최소의 것이 부여되기를 바라는 인간 본연에 대한 흠모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최소를 빼앗기고 고통을 당해본 사람은 다른 사람(심지어 자신의 최소를 박탈한 자까지도) 역시 최소한이 보장되어야 함을 믿는다.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소정 선생님의 최소가 만델라의 자유다.

윤씨 패거리의 자유는 기회주의자의 제멋대로다

윤석열씨는 걸핏하면 자유를 들먹인다. 그가 읽은 원고에 자유가 몇 번 나오는지가 기사거리가 된다. 도대체 그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그의 언행과 측근들의 면면을 보면 윤씨의 “자유”는 인간의 최소한이나 공감능력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 인간의 최소한를 박탈당한 한계상황을 의미있게 경험한 이가 드문 까닭이다.

양심을 버리고 양지만 쫓은 자들에게 자유는 승자의 전리품이다. 간도 쓸개도 없이 잇속만 차리는 기회주의자들의 패악질이다. 패자를 노예로 삼고 아무런 제한없이 제멋대로 능욕할 수 있는 권리다. 승자만이 인간이고 패자에게 인간의 최소한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승자의 언행은 모든 법과 윤리에 우선한다. 모든 책임은 패자에게 있다. 이것이 윤씨 패거리들이 말하는 자유다. 노예사냥꾼이나 인신매매범의 정신줄이다. 윤씨의 “자유 민주주의”가 조국·이재명씨에게 그토록 박하고 모질었던 까닭이다. 마음대로 소환하고 압수수색하고 영장치고 기소하고 흘렸다. 하지만 제동장치 없는 자유나 최소한이 없는 민주주의는 공허할 뿐이다.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4. Goree섬에서 인간과 자유를 생각하다. <최소주의행정학> 9(9): 1.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달 21일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을 위한 입법청문회를 열었다. 출석한 이종섭(국방장관), 임기훈(국방비서관), 김계환(해병대 사령관), 임성근(1사단장)씨의 증언을 들으면서 탄식했다. 현역 장교라면 당당하게 증인선서를 하고 간결·명료하게 답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별을 두 개, 세 개나 단 자들이 선서를 거부하고 구차한 변명과 딴소리로 얼버무리는 모습이라니... 이런 비루한 자들이 지휘관이랍시고 거들먹대는 군대라니...

관료제를 비웃는 똥별들의 궁상

대통령실과 장성들은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권이 없으며, 장관이 수사결과보고서를 결재한 후 이첩보류를 지시했는데 수사단장이 이첩을 강행했다는 주장이다. 판결문도 아닌 보고서가 뭐길래 수백 건의 통화로 난리를 피웠단 말인가. 임사단장은 장병들에게 수중수색을 지시하지 않았고, 해당사실을 사후에 알았다고 했다. 부하들이 자신의 명령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이 사달이 났댄다. 작전통제권이 없으면서 부하들을 다그친 것은 작전지시가 아니라 작전지도라고 했다. 지휘관으로서, 장교로서, 해병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낙제다. 이등병보다도 못한 똥별의 궁상이다.

사건에 연루된 실력자(대통령실), 참모, 장관, 장군급 지휘관 모두 관료제의 원리를 대놓고 무시하였다. 합리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뽑아 일을 시키고, 규정에 따라 문서로 일을 처리하고, 분업화에 따른 갈등을 계서제(hierarchy)로 조정하는 베버의 이념형을 비웃고 있다. 관료제의 이념형에 가까운 조직인 군대를 허물고 있다.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어도 기강이 무너진 군대는 이길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적을 이롭게 한 무지와 어리석음이다.

먼저 해병대 수사단의 전문성이 부정되었다. 군인 사망사건에 관한 군사법원법의 취지에 따라 수사단이 작성한 결과보고서를 느닷없이 장관이 걸고 넘어졌다. 장관은 물론 통수권자도 구체적 사건에 대해 수사단을 지휘·감독할 수 없다. 지휘책임자를 빼라는 것도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것도 법을 거스르는 짓이다. 수사단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한마디로 계급이 깡패니 까라면 까라는 소리다. 별을 달면 어느날 갑자기 오만가지를 다 꿰는 만물박사라도 되는가? 법은 사망사건에서 판단의 주체가 지휘관이 아니라 전문성을 가진 군검사나 경찰관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상급자가 함부로 계급장으로 찍어눌러 장난질치지 말라는 취지다. 일(전문성)보다 계급을 앞세우지 말라는 소리다. 상하간의 질서(계서제)는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데 필요한 장치일 뿐이다. 별이 수백 개가 되어도 법을 넘을 수 없다.

법과 절차를 묻어버린 내부의 적들

해병대 수사단장은 순서대로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에게 수사결과를 대면보고하고 결재를 받았다. 군법원법 228조 3항에 의거한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 7조 1항에 따르면 “군검사 또는 군사법경찰관은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범죄에 대한 고소·고발·진정·신고 등을 접수하거나 해당 범죄가 발생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을 발견하는 등 범죄를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대검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또는 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수사단장은 사망사고에서 범죄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례와는 달리 지체없이 사건을 이첩하지 않았다. 대면보고와 결재를 받는 “지체”를 초래하여 외부의 개입을 불러들였다. 수사단장의 죄가 있다면 항명이 아니라 과실이나 직무유기다.

더 큰 문제는 사령관, 참모총장, 장관이 결재한 문서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취소하지도 않고 문서에 적힌 대로 이행한 박대령을 항명수괴로 몬 것이다. 문서에 의한 일처리 원칙을 비웃는 처사다. 장관이 결재한 문서는 아직도 유효하다. 자신이 결재했다 해도 장관이 멋대로 취소할 수 없다. 생사가 달린 전장에서 지휘관이 장병들에게 말로 명령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장관은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은 직후 참모총장을 건너뛰고 사령관에게 이첩보류를 지시했다. 이어 공직기강비서관, 국방비서관, 법무관리관, 국방차관 등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해병대를 압박했다. 이제 와서는 언제 누구와 통화했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를 반복하고 있다. 국방이 망가지든 말든 책임이나 모면하겠다는 얄팍한 수다. 관료제가 아니라 양아치패거리다.

해병대의 기강을 무너뜨린 용산의 불장난

상관은 자신이 내린 명령에 모든 책임을 지고, 부하를 끝까지 아끼고 보호해준다는 해병대의 기본 약속과 신뢰가 깨졌다. 이제 상관이 언제 어떻게 말을 바꿔 자신은 빠져나가고 부하를 곤경에 빠뜨릴지 모른다. 필요할 때 죽어줘야 하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상관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나? 법과 상식에 따라 일을 수행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장교들은 수개월 째 수사와 재판에 시달리고, 사망사고와 이첩사건에 연루된 똥별들은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군인복무규율이 무색한 상황이다.

이제 지휘관은 반드시 명령서를 작성하거나 직접 부하에게 명령해야 한다. 대대장과 중대장들은 정말 사단장이 지시했는지, 명령인지 지도인지, 어떤 명령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단장에게 직접 전장에 나오거나 공증된 명령서를 제시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명령 계통과 하달을 따지고 발령자의 책임을 살펴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지시는 거부할 것이다. 동영상, 녹취, 명령서 등을 변호인에게 전달할 것이다. 당장 눈앞에 적이 몰려온다 해도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 전투에서 패하여 적에게 죽나 상관에게 뒤통수를 맞고 죽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패할 전투인데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여차하면 별값도 못하는 지휘관의 모가지를 따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한다. 이제 국가도 충성도 명예도 없는 해병대가 되었다. 개념없는 용산의 전화 한통으로 시작된 불장난에 군대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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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4. 누가 해병대의 기강을 망가뜨렸나?. <최소주의행정학> 9(7): 1.

갈수록 가관인 "김여사" 정권이다. 갈팡질팡 행보가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왜 의대정원을 2천명이나 늘려야 하는지, 왜 배우자를 수사하던 중앙지검 검사들을 다른 데로 보내는지 납득할 수 없다. 노동시간을 왜 주 69시간으로 늘려야 하는지, 광화문으로 간다더니 느닷없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겨야 했는지 답이 없다. "바이든 날리면"이라고 우기듯이 일을 뭉개버린다. 어제의 말과 오늘의 말이 극과 극인데도 설명이 없다. 무엇 하나라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건더기도 없다. 이성도 합리성도 없다.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대화도 타협도 없다. 작두탄 무당이 흘리는 주문呪文이 있을 뿐이다. "김여사"에게 비판은 소귀에 경읽기고 비난은 입만 더럽힐 뿐이다.

무식하고 용맹스런 "김여사"의 운전법

"김여사"는 이기심에만 집착하여 민폐를 끼치는 족속이다.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게 몰상식을 감행한다.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다. 남녀 문제가 아니다. 공공의 적이다.

먼저 이들은 운전규칙(정치)이나 자동차(관료제)의 기본을 알지 못한다. 또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듣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힘있는 자신의 욕망이 있을 뿐이다. 주차금지든 일방통행이든 신경쓰지 않는다. 말하자면, "난 모른다, 뭐 어쩔건데?" 둘째, 좌고우면을 못하고 직진에 몰두한다. 차선바꾸는 일을 어려워한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신이 옳고 또 옳아야만 한다. 이유도 설명도 필요없다. 맞든 틀리든 무조건 우기고 본다. 안면몰수하고 구차한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는다. 세째, 후진과 주차를 두려워한다. 형식과 규칙에 구애받지 않고 제멋대로 차를 세워둔다. 황당하든 흉하든 개의치 않는다. 상식으로부터 탈출한 자유인에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금물이다.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으니 반성이 없고 성의가 없다. "부대열중쉬어"는 능력이 아니라 정성이다. 명품을 두른다 한들 태가 나지 않는다. 속이 구린데 향수만 퍼부은 고상함이다. 끝으로 항상 맥락을 놓치니 행동이 굼뜨다. 좌회전을 한 뒤에 우측 깜빡이를 넣는다. 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운전에 집중하지 못한다. 자기 생각에 몰입되어 딴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일하는 순서, 강약, 장단, 단속斷續이 뒤죽박죽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막고 피를 보고야 만다.

공자는 사사로운 뜻이 없으며, 기필코 하겠다는 마음이 없으며,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며, 이기심이 없다고 했다(子絶四毋意毋必毋固毋我). "김여사"는 일을 모르면서 순전히 私意로 추진하고, 기필코 일을 해내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들이대고, 일이 잘못되었어도 반성하지 않고 끝끝내 고집을 피우고, 사리사욕만 생각하다 끝내 일을 망치곤 한다(1996: 391).

"김여사"에게 자유란 "내 맘대로"이고 협치란 "내 뜻대로"다. 그의 "자유민주주의"다. 자유의 반대는 감히 내 앞에서 입을 터는 짓이고, 협치의 반대는 감히 내 말에 토다는 짓이다. 69시간이라 했으면 100시간이나 200시간이 아닌 것을 감읍感泣해야 한다. 2,000명 증원이라 했으면 2만명이 아닌 성은聖恩에 머리를 찧고 절규해야 마땅하다. 왈가왈부하는 일은 불경이요, 반역이다.

무소불위니 무소능위일 수밖에

"김여사" 정권은 한마디로 거칠 것이 없다. 권력기관은 물론이려니와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언론을 틀어쥐고 있다. 합의제인 방통위는 아직도 야당추천 자리를 비워놓고 단독 드리블 중이다. "김여사"를 건드리는 어떤 보도도 무사하기 힘든 판이다. 구석구석에 심어진 검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수구기득권 세력은 언제나 포악한 권력자에게 납짝 엎드린다. 부담없이 재의요구권을 날려주면 알아서들 총알받이가 되어준다. 특검법이 부결되자 총선에서 압승이나 한 듯 감격에 마지않는 국회의원이라니... 국민이 도륙당하고 나라가 망해도 초점없는 눈으로 마약을 쑤셔넣듯 무작정 찍어줄 3할이 건재한 이상 탄핵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여차하면 검사들을 풀고 군화발로 짓밟으면 그만이다. 차마 할 수 없는, 해서는 안되는 일을 가리지 않는 무소불위無所不爲 정권이다.

지난해 7월 해병대원이 악천후에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해병대 수사단에서 이 사건을 조사했고 장관의 결재까지 받아 법이 정한 대로 경찰에 이첩했다. 이종섭 장관은 박정훈 수사단장이 보류지시를 어겼다며 보직을 해임하고 조사보고서를 가져갔다. 박대령은 하루 아침에 항명수괴로 몰렸고 대대장 이하 지휘관들은 사단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생때같은 병사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파렴치범이 되었다. 대통령 격노설이 파다한 가운데, 윤석열씨가 장관에서 물러난 이씨를 호주대사로 임명하면서 파장은 커졌다. 박대령 보직해임 전후로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호떡집에 불이 난 듯 움직였고, 윤씨가 이씨와 세 차례나 통화했다.

군생활을 해본 사람이면 뻔히 보이는 그림이다. 해병대 사령관, 참모총장, 장관이 흔쾌히 결재한 사항을 하루아침에 뒤집었다면 통수권자의 사심이다. 모지리 참모들은 일을 거들었을 뿐이다. 위험천만인 강물에 병사를 들어가게 했다면 대대장의 결심이 아니다. 스스로 떳떳하지 않은 자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사령관을 거스르지 못한다. 사고친 똥별을 구하려는 주군의 사투가 눈물겹다. 

박정훈 대령이 쏘아올린 작은 공

조사단에게 전방위 압력을 가하고, 출국금지된 피의자를 해외로 빼돌리고, 비화기가 아닌 자신의 전화로 통화하고, 관련 특검법을 거부하는 자신감은 무소불위의 힘이다. 뻔한 거짓말로 백성을 속이고 좀비처럼 몰려가 “김여사”를 방탄케 하는 힘이다. 하지만 완전범죄를 꿈꾸면서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하는 업보다. 각자도생이 본격화된 지금 누가 등에 칼을 꽂고 모가지를 딸지, 언제 계란말이가 멍석말이가 될 지 모른다. 세게 쥘수록 배신의 유혹은 달콤하다. 백성의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고 민생이 보일 리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무소능위無所能爲에 빠진다. 박대령이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사필귀정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의 자기희생이 "김여사"를 멈춰세우고 평화를 가져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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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4. "김여사" 정권의 무소불위와 무소능위. <최소주의행정학> 9(5): 1.

 
 

 

 

해병대 제1사단장 임성근씨가 진술서에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 장병들이 물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작전을 수행한 대대장들이 자신의 지시를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녕 별을 둘 씩이나 단 자의 언행이란 말인가. 현재 권력을 틀어쥔 자들의 정신줄과 행동방식을 고스란이 드러내고 있다.

수색이 아니라 죽든지 말든지

지난 7월 19일 예천 내성천에서 수해로 실종된 주민을 수색하던 해병대 포병대대 채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폭우와 영주댐 방류로 거세진 유속 때문에 장갑차 투입도 포기한 상황이었다. 붉은 티셔츠를 갖춰입은 장병들이 줄지어 손을 잡고 허리높이까지 강물을 훑고 있었다. 물속 움직임을 방해하는 멜빵장화를 신기면서 구명조끼도 입히지 않았으니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차라리 죽으라는 소리다.

어이없는 인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병대는 1주간 자체수사를 마치고 사건을 덮었다. 자식을 잃은 가족은 절규하고 전우를 잃은 장병들은 고통에 신음하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악몽에 시달리는 동료 병사의 어머니는 9월 13일 임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그 병사는 전역 당일(10월 24일) 임씨를 같은 혐의로 고발했다. 사단장의 지시를 왜곡하여 전달했다고 지목된 대대장은 반발하며 지난 12월 9일 상관인 임씨를 공수처에 고발했다. 콩가루 집안이 되었다.

해병대 수사단은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결과를 7월 30일 이종섭 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이씨는 31일 해병대 사령관을 통해 조사보고서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날 이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에게 다섯 차례 전화를 걸어 혐의사실과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외압을 느낀 박대령은 법의 취지대로 8월 2일 조사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고, 국방부 검찰단은 당일 저녁 이첩 자료를 가져갔고 해병대는 박대령의 보직을 해임했다. 21일 국방부 조사본부는 기존 8명이 아닌 사단장 등을 제외한 대대장 2인을 과실치사 혐의자로 적시해 경찰에 다시 이첩했다. 군검찰은 8월 8일 박대령을 집단항명수괴 혐의로 입건했고 30일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군사법원은 9월 1일 기각했다. 박대령은 엄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와 군사법원법에 따라 사단장 등 8인의 업무상 과실을 확인하고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장관에게 대면보고한 후 경찰에 이첩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무슨 변명을 해도 지휘관 책임이다

임씨의 강변은 그 자체로 황당하다. 사단장이 절대로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수차례 지시를 내렸다는데 무슨 해석이(그것도 정반대로) 필요하단 말인가? 극단적 관료제인 군대에서 자신들의 안전을 포기하면서까지 집단으로 항명을 할 까닭이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씨가 박대령만 콕 집어 군법을 들이 댄 까닭은 무엇인가? 모든 부하들이 장군의 말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엉터리 부대라는 말 아닌가? 그래도 지휘관이랍시고 염치도 없이 “난 하지 말라고 했떠여. 재들이 말을 안들었떠여. 때찌해주세여”하고 자빠졌으니... 어느 장병이 이런 똥별의 말을 따를 것인가.

사고부터 사건처리까지 의문 투성이다. 빠르게 흐르는 흙탕물에 들어가라면서 왜 구명복을 입히지 않았을까? 물 속에 장화라니 웬말인가? 한 해병대 전역자는 복장으로 보면 물에 들어가지 않는 작전이고, 물에 들어간다면 당연히 고무보트와 구명줄(로프)을 챙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병대 상식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 했다. 애초에 잘 준비된 계획이 아니라 급하게 변경된 비정상 작전이라는 뜻이다. 자식같은 부하들을 무방비로 사지로 내모는 짓이었으니 대대장이나 중대장(포대장) 선에서 결정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장병들의 안전보다 대민 지원과 선전에 몰입한 지휘관의 과욕이 사달을 낸 셈이다. 임씨가 강물에 들어가 수색하는 장병들의 사진을 보고 훌륭한 공보활동이라고 칭찬했다지 않은가.

임씨는 초기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사단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7월 31일 오전 윤씨의 “격노” 이후 말을 바꾸었다. 김사령관 역시 조사관에게 진실되게 조사했으니 잘못된 것이 없다던 말을 뒤집었다. 박대령의 소신을 항명으로 옭아매고 애초에 요구받은 대로 실무자만 때려잡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대통령도, 국가안보실도, 국방장관도, 차관도, 사령관도, 사단장도 속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만 난무하다. “귀신잡는 해병대”가 아니라 “귀신에 홀린 해병대”가 되었다. 해병대의 기강과 명예는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망치는 “김여사” 운전법

국가기관에서 벌어진 중요한 일인데 명령과 그 정당성을 뒷받침할 문서도 없고 설명도 없다. 군 사망사건에서 범죄혐의를 인지하면 지체없이 사건을 경찰에 이첩해야 하는데, 국가안보실에서 수사자료를 요구하고, 국방차관과 법무관리관이 전화질을 하는 것이 정상인가? 해병대가 경찰에 이첩한 서류를 국방부가 가져갔는데, 이것은 회수인가, 탈취인가? 박대령의 죄는 항명이 아니라 지체없이 이첩하지 않은 업무상 과실이지 않은가. 법이든 관행이든 납득할 방법이 없다. 합리성에 기초한 멀쩡한 관료제가 아니다.

이성과 상식에 초연한 “김여사”의 운전법이다. 제멋대로 편을 가르고 자기 편에게만 특혜를 주는 자들이다. 다른 편은 없는 죄를 만들어서라도 괴롭히지만 가족과 측근에게는 무한한 자비를 베푼다. 맘대로 권력을 휘두르지만 결코 책임은 지지 않는다. 국무위원들이 국회의원을 다그치고 탄핵소추를 당한 이상민씨가 당당한 것은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임성근씨는 이명박 청와대에서 김태효씨와 이종섭씨와 같이 근무했다. 2022년에는 힌남노 피해자 구조작전으로 당시 위기에 몰렸던 윤씨를 구해냈다. 내 사람에 대한 눈물겨운 보은이었을까? 개념없이 괴팍한 아집에 빠진 “김여사”가 민주주의와 관료제와 군대를 허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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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4. 해병대를 망가뜨린 "김여사" 운전법. <최소주의행정학> 9(1): 1.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고초를 겪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6년에서야 시작된 1차 소송에서 배춘희 할머니 등은 2021년 승소하였다. 2차 소송은 이용수 할머니 등 16명이 참여하였는데, 2021년 4월 1심 재판부는 이른바 “국가면제”라며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지난 달 23일 열린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2억원씩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일본군 성노예(wartime sexual slavery of Japanese military)가 아니라 가해자의 시각을 담은 위안부慰安婦(comfort women)라는 표현이 탐탁찮다.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의 소송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아니 피고인 일본의 편을 드는 윤석열 정권과 수구세력의 태도가 못마땅하고 속을 불편하게 한다.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매춘부?

지난 달 26일 부산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통해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박진 외교장관은 2015년 한일합의를 존중한다면서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양국이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재판부가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한국 정부가 시정조치를 하라는 일본 외무상의 요구에 대꾸도 못했다.

성노예 피해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본정부의 반성과 사과인데, 도대체 어찌 돈으로 명예와 존엄을 회복한다는 것인가. 일본 정부가 전시에 패악질을 저질렀는데, 왜 한국 기업이 돈을 내고 한국 정부가 사법부 판단을 시정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마당에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가 가당키나 한가?

범죄는 일본이, 수습은 한국이 알아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수구세력의 입장도 다를 바 없다. 2018년 대법원은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이 여운택 할아버지와 양금덕·김성주 할머니에게 피해를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했고, 법원은 두 회사의 한국 내 자산 일부를 압류한 뒤 강제매각하도록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지난 3월 6일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박씨는 한국 정부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만들어 한국 기업이 출연한 재원으로 일본 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대신 변제하겠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을 비난한 한덕수 총리는 “가장 큰 돌덩이를 치웠다”라고 평했다. 법원에 배상금을 공탁하여 강제집행이라도 하겠단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요구한 일본의 사과는 쏙 빠졌다. 포악한 조선총독부의 모습이다.

윤씨는 2022년 8월 17일 취임 100일을 기념한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용에 관한 확정판결이 나왔으니 채권자들이 법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중이라고 밝혔다. 윤씨의 눈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돈푼이나 뜯어내려는 거렁뱅이고,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빚쟁이의 채권을 실현하는 보상일 뿐이다. 잘못을 따져 밝히고,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고, 수십년 곪아온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는 관심조차 없다. 성노예든 강제 징용이든 성가시게 굴지 말고 그냥 좋게 좋게 일본이 원하는 대로 끝내자는 뜻이다. 친일본색을 증명하려는 듯 더 가혹하게 국민을 개돼지로 짓밟는 수구세력들이다. 국민의 뜻을 거스른 1965년 협정과 2015년 합의 모두 종미종일從美從日파들의 충성맹세다.

피해자가 돈뜯으려는 거렁뱅이인가?

지난 3월 27일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박범계 의원은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이 대법원의 판결을 정면으로 위반한다고 했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대법원 판결은 당연히 존중돼야 되는 문제”라고 답했다.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인듯 딴청을 부렸다.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따라야 한다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 표창장이나 인턴 문제로 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추상秋霜같은 기개라면 제3자 변제안을 지시하고 준비하고 결정하고 집행한 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능지처참하고 부관참시해야 할 것 아닌가? 이 나라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부정하고 국민을 배신한 반역도들 아닌가?

한씨는 2020년 2월 13일 인터뷰에서 추미애 법무장관을 겨냥하여 “일개 장관이 헌법상 국민의 알 권리를 포샵질을 하고 앉아 있”다고 했다. 일개 검사장이었던 한씨가 검찰총장도 아닌 법무장관과 맞장뜨는 호기는 가상해 보인다. 하지만 2022년 8월 23일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한씨는 최강욱 의원이 날카롭게 비판하자, “저도 지금 국무위원으로서, 일국의 장관인데...”라며 대꾸했다. 너는 일개一介 장관이고 나는 일국一國의 장관이라는 것 아닌가. 나는 언제나 옳고 너는 언제나 틀리다, 나는 뭘 해도 괜찮고 너는 뭘 해도 안된다는 정신줄이다. 완장차고 설치는 자들의 정신승리다.

一國의 장관, 日國의 장관?

박씨든 윤씨든 한씨든 이들의 황당한 언행을 납득할 길이 없다. 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내뱉는 소리다. 누가 적어준 대로 읽다가 막히면 딴소리를 하는 영혼없는 말장난에 가깝다. 작년 10.29 참사때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경찰청장 등 주요 책임자들의 궤변이 그러하다. 부산액스포 유치를 위해 지구 495바퀴를 돌면 무슨 소용인가? 진심도 성의도 없는 눈빛을 어찌 감출 수 있을까? 문재인씨와 윤씨의 거리가 이리 먼 것이다.

어쩌면 일국이 一國이 아니라 日國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日國의 대통령, 日國의 총리, 日國의 조선총독, 日國의 외교장관, 日國의 법무장관, 日國의 국방장관... 부복하고 日國의 왕과 정부를 섬기는 일을 본분으로 하는... 그러면서 자신의 권력과 잇속을 알뜰하게 뒷주머니로 챙기는... 멀쩡한 一國의 대통령이고 총리고 장관이었으면 감히 그리 입을 놀리지 못했을 것이다.

소정 선생님은 이렇게 한탄했다. “내 나라를 빼앗[았]던 나라의 악을 용서할 능력이 없는 정권이 용서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 일본이 전과를 뉘우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용서할 자격이 있는 세력이 용서하고, 악을 저지른 자가 전과를 뉘우쳐야 한다는 이 두가지 요건이 ... 충족되지 않고 있다”(2008: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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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3. 일국의 대통령, 일국의 총리, 일국의 장관 <최소주의행정학> 8(12): 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사회생起死回生 했다. 지난 달 21일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어 구속위기에 몰렸으나, 27일 법원이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현재 민주당 의원이 168명이고 여당이 111명인데, 다수당 대표를 체포하는 일에 149명이나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이 놀랍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대표를 사지로 몰았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에게 눈초리를 쏘아붙이고 있다. 배신자를 발본색원하여 응징하겠댄다. 여당에서는 법원이 “개딸”(한 정치인을 맹종하는 극렬 지지층)에게 굴복했다며 게거품을 물고 있다. 이 모두가 막말이고 말폭력이다.

왜 그들은 찬성표를 던졌을까?

민주당 의원들이 당대표의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까닭은 무엇일까? 검찰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수사했다고 믿었을까? 이대표의 결백이 못미더웠을까? 한동훈씨가 주절주절 읊은 “혐의별곡”에 감동해서였을까?

몇가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대표가 주요 혐의를 인정한다면 당장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혐의를 부정하고 결백을 주장한다면 검찰과 법원의 태도를 따져봐야 한다. 검찰과 법원 모두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일을 처리한다면(경우 1) 이씨는 당당하게 검찰조사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임하면 된다. 최종 유죄가 나온다 해도 억울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이씨의 정치생명은 끝난다. 검찰은 공정한데 법원이 “밥”과 “앙심”으로 판단한다면(경우 2) 이씨는 불체포특권을 활용해야 한다. 반대로 검찰이 불공정하고 법원이 정상이라면(경우 3) 특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영장이 기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과 법원 모두 공정하지 않다면(경우 4) 작정하고 정적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니 특권으로 방어를 해야 한다. 법원이 복불복이라면 경우 1과 3을 각각 2와 4로 보고 대응하는 것이 위험관리상 안전하다.

검찰은 이대표를 2년동안 조사하여 하나씩 쪼개서 기소하고 있다. 특수부 검사 60여명이 압수수색만 4백건 가까이 했다는 소식이다. 먼지는 물론이고 분자, 원자까지 탈탈 털고 있다. 잡혀간 증인의 말은 오락가락이고 극과 극으로 바뀐다. 차고 넘친다는 증거는 없고 언론에 흘러나온 피의사실만 넘처난다. 뇌물이든 배임이든 수백억 수천억을 들먹였지만 검찰은 물증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대표가 수천억을 흔적도 없이 먹을 만큼 재주가 탁월한 것인가? 이쯤되면 이대표의 결백이나 완전범죄로 결론을 내는 것이 상식이다. 탈탈 털어도 먼지나지 않은 놈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이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죄의 유무와 별개로 사법살인에 가깝다. 측근을 인질삼아 정적을 함정으로 몰아가는 사냥이다. 피의자를 매달아 놓고 온갖 기술을 화려하게 펼치는 마구잡이 검찰권의 향연이다. 누군가는 죽어야 끝나는 잔치다. 참형을 피할 수 없는 범죄자라 해도 인간의 최소한은 지켜줘야 하는 법이거늘.

그냥 이재명이 싫은 것이다

찬성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이 모를 리 없다. 이대표를 중범죄자로 비난해온 여당도 맹탕인 수사결과에 실망했을 것이다. 이대표가 10원 한장 탐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검찰이 1원짜리 뇌물이라도 코 앞에 들이밀었어야 했다며 탄식했을 것이다.

비명계라는 사람들은 “이재명당” “사법리스크” “방탄정당” “팬덤정치” 등으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강변한다. 김종민씨는 당을 하나로 모으고 통합해서 개혁을 이뤄야만 중도층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영장기각으로 구속리스크를 덜고 방탄정당이라는 오명을 벗는 계기가 되었으니 오히려 체포동의안 통과에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얄팍한 궤변이다. 영장이 발부되었어도 똑같은 얘길 하면서 이대표에게 사퇴를 종용했을 것이다. 이대표가 물러나고 몇년 뒤에 무죄를 받는다 해도 나몰라라 할 자들이다.

참기 어려운 대목은 적의 언어를 빌어 동지의 등에 칼을 꽂는 짓이다. 팬덤정치라 했지만 이대표의 말을 안듣는 민주당 팬이다. 노무현·문재인씨 때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3김시절이란 말인가? 물론 극성스러운 과격과 난동은 자제해야 하지만 팬없는 정당이 존재할 수 있는가? 사법리스크라지만 정권(검찰)이 뒤집어 씌운 굴레이고 민주당을 옥죄는 덫이다. 굳이 회기중에 영장을 청구한 것을 보면 “방탄정당”은 그들의 작품이다. 이대표가 일을 안한 것이 아니라 검찰이 손발을 묶은 것이다. 이대표를 흔드는 자들은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들의 정략에 놀아나 장단을 맞춘 셈이다.

김대중이 빨갱이라고 했으니 그를 잡아다가 안기부에 바쳐야 했었나? 문재인이 공산주의자라고 했으니 양산으로 우르르 몰려가 돌팔매질이라도 할텐가? 적이 두려워하는 동지를 하나 둘 내주면 그 다음은 누구 차례인가? 비명계는 검찰에서 시비걸지 않을테니 행복하신가? 왜 당당하게 아니라고,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자신의 용기없음을 속이려 이대표를 손가락질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어리숙해보여도 속내를 다 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결국은 이재명이 싫은 것이다. 78%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대표가 된 사람을 검찰이 기소했다는 이유만으로 내치면 통합이 되고 개혁이 되는가? 누가 되든 비상대책위원회나 비명계에서 당을 이끌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8할에 가까운 민심과 당심을 어찌 하려는가? 윤씨가 “확정적 중범죄자”라고 낙인찍었으니 이대표가 넙죽 엎드려 부형청죄負荊請罪해야 하나? 왜 이씨는 법에 나와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활용하면 안되는가?

"난놈" 이재명이 두려운 것이다

이씨가 천출賤出이기 때문이다. 검정고시와 비명문대 출신인 업보다. 성골·진골이 아님에도 사고와 능력이 출중한 죄다. 천출이 난놈이어서 당하는 곤욕困辱이다. 이대표가 물러난다면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주겠다는 말은 노대통령이 사과하면 탄핵소추를 하지 않겠다와 마찬가지다. 야바위꾼의 달콤한 속임수다. 노씨처럼 이대표도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상식을 택했다. 바보처럼 고난의 길을 자청해서 꾼들이 화가 난 것이다. 내년 선거에서 민의를 받들어 상향 공천을 할까봐 덜컥 겁이 난 것이다. 홧김에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질렀다. 어리석은 속물의 참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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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3. 왜 그들은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나? <최소주의행정학> 8(10): 1.

소정 선생님은 가장 포악한 정권의 모습을 자기비대화自己肥大化로 그렸다. 또한 과다한 체제 경직화硬直化나 우경화右傾化라고 했다(1986: 298; 1996: 383). 이렇게 최악으로 진행된 불치병(1996: 390)은 자기희생으로 치유할 수 있다. “자기 스스로를 자아에 의하여 희생하는,” “자신의 자유의사에 의하여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는 결단”이다(1980: 363; 1986: 327; 1991: 49).

정권의 자기비대화

자기비대화(self-aggrandizement)는 주어진 한계를 넘어 권한을 탐하고 끊임없이 확대하는 것이다. 힘으로 타인을 윽박질러 일을 강요하거나 강제로 타인의 권한을 빼앗는 행위다. “아랫사람을 쥐어 짜고 끝임없이 의심하면서 모든 권력을 빨아들인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몸집이 불고 뼈가 휘고 살이 썩어 문드러져도 멈추지 못한다”(박헌명 2022). 자신에 맞서는 정적과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도전을 용납하지 못한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강자의 정의고 공정이고 상식이고 윤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과도한 경직화(rigidification)다. 지금의 권세가 영원하리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돈 지나친 자기확신이다. 그러니 나와 다르다는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감정과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다. 법과 규칙과 이치가 아닌 약육강식 그 자체다. 경우境遇와 합리성을 짓밟는 폭력이다.

“관官이 주도권을 잡는 통치구도에서는 관이 민民을 한낱 관의 통치수단으로 보며, 자기 스스로의 크기를 굉장히 비대화하게 그린다. ... 민이 주도권을 잡는 통치구도에서는 ... 민이 관에 들어가서는 자기희생을 하며 봉사자의 위치를 지킨다”(2001: 109).

소정 선생님은 가장 나쁜 통치는 (1) 선악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관(신문, 방송, 대학, 종교 등)을 망가뜨리고, (2) 걸림돌이 되는 정적을 제거하고, (3) 일반 시민이(어린 아이까지도) 옳게 살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케 해 도덕을 타락시키고, (4) 필요한 문제해결이 아닌 바벨탑같은 전시효과를 노린 정책을 밀어붙이고, (5) 인접국가들이 폭정을 방치하거나 내정에 간섭하는 단계로 진행한다고 적었다(1991: 87-103; 1996: 383-384; 2001: 184-202). “언로를 막는 정부는 언론을 자체 생산하면서 이 자체 생산된 언론을 믿지 않는 사람을 폭력으로 단속한다”(1986: 316). 정치경쟁자들이 정치공작과 악법에 희생되면서 비판과 반대가 위축된다. 일상과 무관한 자기과시용 정책을 남발하게 되면 국민을 자포자기한다. 올바름과 의로움이 아닌 돈과 권력을 쫓을 뿐이다.

과도한 체제경직화와 자체분열

주변국들은 최악의 상태에 이른 정권을 직접 정벌하거나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정권을 농락한다(1996: 383). 정권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체제를 경성硬性으로 유지하지만, 개혁을 거부하고 사회비용을 줄이지 못한 대가는 가격경쟁력 추락이다(389쪽). 즉, 과다한 체제경직화가 통치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국제경쟁력을 잃게 한다(383쪽). 투자, 고용, 내수, 물가, 무역 등에서 빨간 불이 들어온다. 이런 정권의 약점을 알아챈 주변국들은 외교, 국방, 경제, 역사, 문화 등의 이득을 노리고 달려든다.

인접국조차 우습게 보아 정벌을 받을 만한 정권에서는 부도덕한 위정자들이 자기들끼리 싸운다(1996: 389). 자체 분열이다(2001: 147). 약자를 착취하면서도 자기들끼리 재산 분배를 공정히 하지 않아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못살게 굴고 이를 취한다(1996: 397). 애초부터 잇속에서 시작한 이들에게 법과 정의와 공정은 허공 속의 메아리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서로 합종연횡하지만 충돌할 때는 검을 속내를 드러낸다. 자기편 끼리도 믿지 못하고 경계한다. “끝없는 탐욕은 그들의 잇속 관계를 뒤틀리게 하고, 끝내는 자기편끼리도 잡아먹는 아귀다툼으로 몰아간다”(박헌명 2023).

자기비대화는 끝없는 탐욕에서 비롯된다

왜 악한 정권은 자기비대화, 과도한 경직화, 자체분열(self-disintegration)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첫째는 정당성이 부족해서다. 선거의 공정성과 별개로 유권자 다수가 정당성에 의문을 갖게 되는 상황이다. 권력자의 자질이 부족하여 매사에 좌충우돌하거나, 공약을 손바닥 뒤집듯 파기하고, 밀어붙이는 정책마다 국민의 역린을 건드리면 유권자의 마음은 돌아설 수밖에 없다. 통치자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된다. 불안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한다. 정적과 반대파는 물론 자기 편도 믿지 못한다. 누구든 배신자를 찾아내어 보복하는데 혈안이 된다. 민생과 관련이 없는 통치비용과 사회비용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둘째, 정권의 문제해결 능력이 부족하다. 자신의 지위가 높다고 해서 나이 많고 덕 있는 이를 소홀히 여기기 때문에 항상 하수인만 데리고 일을 한다(1996: 396). 자리를 얻으려 충성경쟁을 하는 자들이다. 유능하고 정직하고 의로운 인재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말잘듣는 이들이 모인 조직은 위기에 직면해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사실과 진실이 어찌되었든 통치자의 언행을 거스르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안)하는 추종자들의 “지당하옵니다”만 있을 뿐이다. 열등의식을 힘으로 극복하려 든다. 현실과 통치자의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면서 문제해결은 요원해진다. 자기확신이 강화되고 경직화된 정권은 자신의 포악한 행동을 스스로 교정할 능력을 상실한다(1986: 317).

결국은 통치자와 그 추종자들의 탐욕 때문이다. 국익을 말하지만 그들만의 잇속이 있을 뿐이다. 시민들이 혹할 만한 일을 벌이지만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잇속 앞에서는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에 벌거벗은 힘(naked power)이 강대강으로 부딪힌다. 끊임없이 돈과 권력을 탐하는 자기비대화다. 탐욕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만든 악법조차 지키지 않는 체제는 적에 의해 망하기보다 자기 스스로가 망한다(2008: 347). 폭주기관차같은 자기비대화는 국정을 말아먹고 충복마저 잡아먹고 급기야 스스로를 집어삼켜야만 끝이 난다(박헌명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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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3. 정권의 자기비대화, 경직화, 자체분열. <최소주의행정학> 8(7): 1.

 
 

 

 

지난 3월 윤석열 정부는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징용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제3자 변제로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일본기업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배상하도록 한 대법원의 판결과 어긋난다. 인권과 법은 사라지고 일본 극우정권이 내세운 돈얘기만 남았다. 2015년 박근혜 정권의 한일 위안부(성노예로 불러야 마땅하다) 문제 합의도 마찬가지다. 당사자도 아닌 정부가 일본이 원하는 대로 밀어붙였다. 어릴 적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고초를 당한 피해자들의 한을 돈푼이나 뜯어내려는 노파老婆의 떼쓰기로 치부했다. 또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윤정권은 일본 편을 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같은 입장이라 밝혔지만 해양투기에 반대한다는 말은 차마 못한다. 시찰단이랍시고 보냈지만, 방사선 물질로 오염된 시료를 독립적으로 확보하지도 못한 과학적·객관적 검증은 말장난이다. 처리된 오염수가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했다. 혹자는 기꺼이 마시겠다고도 했다. 일본 총리나 장관의 말이 아니다.

수구기득권 세력의 생리와 습성

2021년 4월 일본이 방류계획을 발표할 때만 해도 게거품을 물던 자들이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자들이다. 묻지마 “한미일 동맹”에 집착한 나머지 눈과 귀를 닫고 있다. 국민건강과 해양환경을 우려한 사람들의 문제제기는 “괴담”으로 몰아세운다. 여차하면 압수수색으로 홀딱 벗겨내고 구속기소로 때려잡을 태세다. “언로를 막는 정부는 언론을 자체 생산하면서 이 자체 생산된 언론을 믿지 않는 사람을 폭력으로 단속한다”(1986: 316).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소정 선생님은 이들을 ‘구 세력’이라고 불렀고, 구체적으로 친일파와 군사독재자, 이에 동조한 기회주의자들의 연대 세력으로 규정했다(1996: 390-391). 수구기득권 세력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권을 꿰뚫는 그들의 생리와 습성이 있다.

첫째, 기득권자는 고치라는 완곡한 말을 듣기는 좋아해도 정작 허물을 고치지는 않는다(1996: 392). 공자는 사사로운 뜻이 없으며, 기필코 하겠다는 마음이 없으며,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며, 이기심이 없다고 했는데(子絶四毋意毋必毋固毋我), 이들은 일을 의로 하되 私意로 하고, 기필코 일을 해내야 한다며 친일·쿠데타·독재를 가리지 않고 밀어 붙이고, 일을 한 후에는 잘못되었는데도 반성하지 않고 계속 고집하고, 끝내 일이 사사로운 자기들의 私利가 된다(391쪽). 자기 잘난 맛에 꿈 속을 살고 취해서 죽는 자라고 했다(398쪽). 무당의 주술에 신들린 듯 작두를 타는 呪辭정권과 막걸리·맥주에 취해 바지춤을 늘어뜨린 채 횡설수설하는 酒邪정권의 모습이다.

둘째, 자기네끼리의 잘못을 숨겨 주는 집단이기주의를 갖는다(395쪽). 자신의 불법·범법·탈법·편법은 기득권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정적의 사소한 잘못과 실수는 일벌백계해야 하는 중범죄라는 세계관이다. 세째, 이들은 자신의 지위가 높다고 해서 나이 많고 덕 있는 이를 만홀漫忽히 여기기 때문에 항상 하수인만 데리고 일을 한다(396쪽). 성실하고 강직하고 유능한 자가 머물지 않는다. 네째, 수구 세력들은 한번 관직을 떠난 후에도 끈질기게 이사장, 총재, 회장, 위원장 등 이익이 되는 자리를 계속 차지한다. 국가안보실에 이어 방송통신위원장까지 지인이나 “올드보이”를 고집한다. 다섯째, 기득권 세력은 자기들끼리도 재산 분배를 공정히 하지 않아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못살게 굴고 이를 취한다(397쪽). 그들은 단지 끼리끼리 이해가 맞아서 의기투합했을 뿐이다. 끝없는 탐욕은 그들의 잇속 관계를 뒤틀리게 하고, 끝내는 자기편끼리도 잡아먹는 아귀다툼으로 몰아간다. 마지막으로, 수구기득권 세력을 해체시키려면 백 년이 걸린다(394쪽). 그만큼 친일파와 군사독재자와 이에 빌붙은 무리들이 끈질기게 기득권을 틀어쥐고 있다.

그냥 사대주의에 찌든 기회주의자들이다

수구기득권 세력은 事大에 찌든 자들이다. 강자에 대한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스스로는 어느 것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는 강박이다. 그러니 언제나 강자에게 의지해야 연명할 수 있다는 절박감이다. 과거에는 대륙의 대국이었고, 일본이었고, 이제는 미국으로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일제 식민사관과 우민화 정책의 결실일까? 대국이 원하는 대로 절기에 맞추어 朝貢과 貢女를 보냈듯이 천황폐하를 위해 징용·징병·성노예는 물론 숟가락까지 징집해 보냈다. 이제 미국의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망 재편에 손발을 걷어붙이고 인도태평양 전략에 돌격대장으로 나섰다. 당연한 의무이자 예의이자 承恩이다. 대국에 토다는 것은 물론이고 빳빳이 고개를 쳐든다는 것 자체가 불경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소부장” 독립과 일본 불매운동을 감행한 것은 이들에게는 어처구니 없는 짓이자 9족을 멸하고도 남을 죄다. 하물며 돈벌기 위해 몸을 판 할망구들에게 사과하고 자발적으로 징용에 나선 할배들에게 배상을 하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사대주의자들의 정신줄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처자식을 기꺼이 상납하고 망설임없이 나라도 팔아먹을 자들이다. 일본과 미국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윤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수구 세력은 흔히 보수라고 말한다. 우파라고 자부한다. 기득권이기에 보수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언행에는 일관성이 없다. 그때그때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둘러대기 때문이다. 그냥 기회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잡초보다 더 질기게 살아남는가 보다. 보수주의자라면 일본군 성노예, 강제징용, 독도 등에 관해서는 단호한 자세를 취했을 것이다. 나라의 근본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질서와 예절에 순응하는 품격을 보였을 것이다. 안보가 어쩌느니 늘어놓지만 번번히 북한에게 쥐어터지고 포탄인지 마호병인지도 헷갈리는 안보구멍이다. 시장을 만병특효약처럼 들먹이지만 정작 시장을 제멋대로 주무른다. 요행이 아니라면 시장이 망가지고 경제가 망한다. 자유를 부르짖지만 자신을 비판하는 학문과 문화와 놀이는 그냥 놔두지 못한다. 영화든 만화든 노래든 검찰을 동원하여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을 기세다. 자유는 자기편의 특권일 뿐이지 남의 편에게는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 역린을 거스르는 윤정권의 대일 행보는 수구기득권 세력의 본질을 드러낸다. “내 나라를 빼앗았던 나라의 악을 용서할 능력이 없는 정권이 용서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또한 일본이 전과를 뉘우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용서할 자격이 있는 세력이 용서하고, 악을 저지른 자가 전과를 뉘우쳐야 한다는 이 두가지 요건이 한국 정치에서는 ... 충족되지 않고 있다”(2008: 148).

기회주의자의 생리를 깨달아야

소정 선생님은 이솝우화를 빌어 악한 통치자는 상대를 속이기 위해 위장하고 교묘한 말을 한다고 했다(2001: 138).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세우며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존재가 아니다(148쪽).

문정권에서 승승장구했던 윤씨는 마치 구박받고 탄압받은 피해자 행세를 했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의 엄호를 받으며 검찰총장이 되었고, 계속되는 갈등 속에서도 문재인씨는 끝까지 그를 내쫓지 않았다. 나쁜 강자는 백성에게 아첨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걸인같이 구걸을 하여 얻어낸 것으로 백성을 해치기도 한다(139쪽). 코로나에 지쳐 잠시 혼미해진 유권자들이 정의와 공정으로 위장한 자의 교묘한 말에 속아 어리석게도 자신들을 해칠 도끼 자루(검찰을 동원할 권한)를 스스로 내어준 셈이다.

강자는 또 약속을 어긴다고 했다(139쪽). 병사월급 200만원부터 시작하여 여성가족부 폐지, 주식 양도소득세 폐지 등 이제 약속뒤집기는 일상이 되었다. 윤씨가 대선기간 약속했던 간호사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나 스스로 거부하였다. 약속한 적이 없댄다. “바이든이 쪽팔려서”가 “날리면”으로 둔갑하는 마당이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국민이 납득하는 말을 하여 신뢰를 얻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방법을 사용해서 일을 하는 민주 정부가 아니다( 240쪽).

결국 수구기득권 세력은 기회주의자들이다. 그들 자신의 잇속이 있을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국익은 그들만의 사익이며, 나라의 미래는 그들만이 살아남는 길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나랏일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일이다(142쪽).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는 법이다. 사대주의와 기회주의 세력의 생리를 꿰뚫고 있어야 처절하게 당하지 않는다. 탈바가지를 뒤집어 쓴 자의 참모습을 알아봐야 하며, 긴가민가 달콤한 말에 속아넘어가지 말아야 하며, 국익과 미래라는 모호한 구호에 덮여있는 채울 수 없는 탐욕을 알아봐야 한다. 깨어있는 유권자의 냉철함이 절실한 계절이다. 

 

인용: 박헌명. 2023. 수구기득권 세력의 사대주의와 기회주의. <최소주의행정학> 8(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