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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최소주의행정학
지난 2월 9일부터 25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제 23회 동계 올림픽이 열렸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아대는 바람에 과연 올림픽이 개최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전쟁위기설까지 퍼지는 와중에 선수파견을 유보하겠다는 나라도 있었다. 하지만 연초에 북한이 태도를 바꾸어 올림픽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하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결국 92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남북 선수단은 한반도기를 내걸고 개막식에 들어섰다.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은 1승도 건지지 못했지만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내외신 모두 이번 동계 올림픽이 성공적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문제를 놓고 일부 야당이 비난을 쏟아냈다. 이른바 판싸움(프레임 경쟁)를 시도한 것이다. 평창올림픽이 아니..
청와대의 국민청원이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구호는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국민이 지지한 청원에 대하여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가 답한다는 것이다. 이미 청소년보호법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폐지하고, 낙태죄를 폐지하고, 흉악범 조두순을 다시 재판하여 처벌하고, 권역외상센터의 중증외상분야를 지원하고, 술을 마시고 저지른 범죄을 깎아주는 “주취감형”을 없애달라는 요구에 답을 했다. 국민청원의 빛과 그림자 지난 9년 이명박근혜 정권은 국민의 애절한 요구를 외면하고 억압했던 벽창碧昌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규제를 덜컥 풀어준 것에 항의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을 소위 “명박산성”을 쌓아 물리쳤다. 세월호가 침몰하여 삼백여 명의 젊은 목숨이 수장되었는데도 대통령이 업무시간에 ..
소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비폭력은 주먹을 내려놓고 말로 하자는 것이다(1986: 318). 이문영(2008)은 “무서웠을 때 내가 한 말은 적의 이성이 거절하지 못하는 최소의 말”(491쪽)이라 했고, “정부도 거절하지 못하는 말을 하되 말만 한다”라고 적었다(497쪽). 하지만 비폭력의 참뜻을 이해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물리력을 사용하지 말고 거친 말을 내뱉지 말라는 뜻일까? 어떤 상황에서든 화내지 말고 성내지 말라는 소린가? 노무현씨처럼 최루탄이 터져도 도망가지 않고 길바닥에 앉아 연좌시위를 계속해야 하는가? 전투경찰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들거나 군인들이 총을 난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만히 앉아서 품격있게 군자왈 맹자왈 하다가 맞아죽는 것이 비폭력인가? 이런 상황에..
얼마 전에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노벨 박물관에 다녀왔다며 누군가가 내게 Elinor Ostrom (1951-2012) 사진을 선물했다.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고 3년 뒤에 세상을 떠난 인디애나대학교의 정치경제학자다. 짧은 인연을 생각하며 바라본 사진 속 린(엘리노어의 애칭)은 너무 근엄해 보였다. 정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했다. 자상하고 활기찬 모습 뒤에 엄격함과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음을 안다. 그래도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린의 동반자였던 Vincent Alfred Ostrom (1919-2012)도 비슷한 양면성을 가진 분이다. 빈센트와 소정 선생님 언젠가 안도경 교수가 빈센트와 소정 선생님(1927-2014)께서 많이 닮았다는 얘기를 했다. 수년 간 린..
소정 선생님은 구민법의 대상이 되거나 세금을 내지 않으면 숫제 선거권을 주지 않는 제한선거제도를 채택했더라면 우리나라 정치가 훨씬 나아졌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008: 219). 어느 수업시간이었는데, 당시 나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른바 보통 ·평등·직접·비밀 선거라는 원칙에서 벗어나는 말씀이셨기 때문이다. 인종, 지역, 성별, 교육, 소득 등에서 차별을 두지 않는 보편선거(universal suffrage)가 상식에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원칙은 원칙이 아니라 주입된 이념에 가깝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내가 후원금을 내는 이유 나는 몇년 전부터 참여연대를 비롯한 몇몇 사회단체에 후원금을 내고 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꾸준함을 깊이 새겨 매달 꼬박꼬박 내려고 한..
지난 5월 문재인씨가 제 19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청와대 위민관爲民館의 이름을 여민관與民館으로 되돌린다고 했다. 2004년 노무현씨가 청와대에 비서실 건물을 새로 짓고서 여민관으로 이름지었는데, 2008년 이명박씨가 청와대에 들어가서 위민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다수가 이명박씨의 “Anything But Rho”라는 구호로 추진된 “노무현 흔적 지우기”라고 생각했다. 임석규 (2017)는 여민이든 위민이든 뜻은 다 훌륭하니 문패를 갈아치우는 악순환을 피하고 그 뜻을 제대로 구현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러한 두리뭉실한 양비론이 몹시 불편하다. 과연 여민과 위민은 같은가? 에 나오는 여민 여민관의 “與民”은 에 나오는 말로 “백성과 더불어 같이 즐긴다(與民同樂)”는 표현에 있다. 반면 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