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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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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요 추잡스런 변태 행각이라고 박근혜 최순실 스캔들을 비난하면서도 나는 영 개운치가 않다. 정말 봉건시대에서도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일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간과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행정학자가 대통령이 “비선실세”가 권한 옷을 입고, 회의를 열고, 정책을 만들고, 상벌을 내리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맞춤법도 “공항장애” 수준이고 말법도 “이그저”인 갑질 아줌마에게 연설문까지 “컨펌”을 받으리라 생각했단 말인가? 참으로 입에 담기조차 “거시기”한 일이다. 정부 관료제가 박근혜 최순실에게 완전히 털린 것이다. 농락籠絡을 당하고 강간을 당하고도 찍소리 못하고 따귀질을 당하고 발길질까지 당한 것이다. 배울 것 다 배우고 알 것 다 아는 엘리트 공무원들이 어찌하여 “이그저”에게 속절없이 농락당했을까?  

“아주 나쁜 사람” 노태강은 공직자의 좌절

박근혜씨는 2013년 8월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를 청와대로 불러 놓고 수첩을 꺼내 두 공직자를 지목하여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비난하면서 인사조치를 요구했다(김의겸·노형석 2016). 그 해 10월 노태강 체육국장은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으로,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무과장으로 각각 좌천되었고, 박근혜씨가 2016년 3월경 “이 사람 아직도 있어요?”라고 문제삼은 뒤 그 해 7월 두 사람 모두 공직을 떠났다(같은 기사).

대통령이 공무원을 지목하여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는 기사 제목을 보고(내용을 읽지 않고) 나는 어이없어 했다. 첫번째 이유는 공사公私 구분이 없는 천둥벌거숭이의 말법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씨를 겨냥한 “참 나쁜 대통령”과 마찬가지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딱 그 수준이다. 둘째는 어디서 고자질을 듣고 와서 대뜸 나쁘다니까 자르라고 쏘아대는 품이 영락없이 푼수 소갈딱지다. 재 싫으니까 때찌해달라는 칭얼댐이다. 정말로 나쁜 사람인지 따져보고 나서 결정을 할 일 아닌가? 세째는 대통령이 체통없이 장·차관도 아닌 국·과장을 들먹이고 있다는 점이다. 군대로 치면 군통수권자가 “박상사”를 자청한 것이다. 낄 데 안낄 데 구분못하여 생뚱맞은 짓만 골라서 하는 고문관顧問官 그대로다.1)

그리고 지난 해 “이 사람이 아직도...” 그러길래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하면서 짜증을 내었다. 스토커마냥 국·과장의 일을 그리 집요하게 들먹이는 것이 수상했다. 이 때만 해도 청와대가 요구한 전시회를 거부하여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경질된 일과 관련된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애초부터 박근혜씨는 대통령이 아닌 "왕놀이"를 해왔기 때문에 제멋대로 인사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직업공무원제도가 어쩌구 국가공무원법이 어쩌구는 아예 기대도 안했다. 하지만 어찌하여 이런 고문관 짓을 계속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수많은 참모들을 거느리고 있을텐데 한 사람도 “박상사”를 제지하지 않았단 말인가? 대통령을 잘 모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박씨의 참모나 측근이라는 것이 쪽팔려서라도 그만 하라고 단호하게 말했어야 하지 않을까? 법과 절차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기본 양식이나 품격에 관한 일이 아닌가? 삼성의 이재용씨가 업무보고를 공손하게 하지 않았다며 늙은 과장의 멱살을 잡고 따귀를 올려붙였다고 상상해 보라. 그런 본능에 가까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주변에 한 사람도 없었단 말인가?

결국 노국장과 진과장은 지난 해 7월 공직에서 물러났다. 정권이 하라는 일을 거부하거나 대놓고 맞선 것이 아니라 일상 업무를 한 결과가 하필이면 “비선실세”가 원치 않은 쪽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씨는 무슨 일인지, 뭐가 문제인지, 노국장이 누구인지 전혀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사리분별을 못하는 간난이가 칼을 들고 휘두르른 셈이다. 유신독재를 밀어붙인 그의 아버지 박정희씨가 즐겨쓰던 방식대로 법으로 신분이 보장된 공직자에게 직장 동료와 조직을 볼모로 명예퇴직을 강요했다(김의겸·노형석 2016). 폭군과 독재에 맞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이문영(2008)은 “나는 처음 해직되었다가 복직되기 전에 거친 여름과 한 학기와 겨울의 반을 한마디로 땅 속에 묻힌 암흑기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흙을 파고 나를 묻고 꾹꾹 밟아 묻어버려 나는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였다. 어느 신문도 단 한 줄이라도 우리 두 사람의 해직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내 집에 찾아오던 사람들은 발길을 싹 끊었다”(260쪽)고 회고했다. 아마도 두 사람은 억울하고 더럽고 치사하지만 그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을 것이다.  

구조악이냐? 개인악이냐?

그러면 “순실”시대의 미꾸라지들이 마음껏 정부 관료제를 휘젓고 다닐 때 일반 공직자들이 어떻게 대응했을까? 그들이 처한 상황은 어떠했으며 어떤 보상체계에 직면해 있었을까? 직업공무원제도는 도대체 왜 작동을 멈춘 것일까? 공복公僕이라는 본문을 망각하고 미꾸라지들의 부역자 노릇을 했다며 비난을 퍼부을 것인가? 아님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니 무슨 죄가 있겠냐며 한숨만 내쉴 것인가? 공무원의 의무와 책임은 다 어디를 갔단 말인가? 진정한 백성의 심부름꾼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나?

이문영(1991: 131-133)은 조직과 그 구성원 일반이 탈권력화를 지향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4가지 상황을 상정하였다. 조직과 인간의 지향을 윤리 차원에서 선善과 악惡 양극단으로 단순화하였다. 즉, Hodgkinson (1978)의 힘([naked] power), 권위, 영향력, 전문성, 반권위주의(anti-authoritarianism), 지도력, 최고 지도력(leadership as excellence)이라는 개념 순서를 이용하여, 조직과 구성원 일반의 지향이 힘 논리에 가까우면 악, 지도력에 가까우면 선이라고 구분하였다(이문영 1991: 104-106, 131-132). 예컨대, 국민의 요구에 순응하고, 상하 간 대화와 설득을 강조하고, 도덕성을 가진 지도력으로 갈수록 정부 조직과 공직자는 선에 가까와 진다. 이문영(1991)은 각각의 구도에 따라 개혁을 추구하는 공무원이 가져야 할 (초월)윤리가 어떠한 것인지를 논구했다.

먼저 탈권위주의 조직에서 구성원 일반 역시 탈권력을 지향하는 경우다. 이처럼 조직과 구성원 모두 선한 상황에서는 공무원은 그저 비폭력으로 스스로 퇴화하는 것을 경계하면 된다. 제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일상의 기본 활동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둘째, 만일 조직은 선한데 구성원 일반이 선하지 않으면 개혁성향을 가진 공무원은 개인윤리를 가져야 한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것에 더하여 효율적 합리적 관리(분업)와 인간 관계 향상을 추구해야 한다. 세 번째 상황은 조직은 날것 그대로의 힘을 휘두르고 권위주의에 찌들어 있는데 구성원 일반은 탈권력화를 지향하는 경우이다. 개혁을 지향하는 공무원은 전문성을 높이고 합의를 모색하는 노력에 더하여 사회윤리를 가져야 한다. 정부조직 밖(국민)의 요구에 대응하여 다원성과 형평성을 추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조직과 구성원 일반 모두 권력화를 지향하면 개혁을 추구하는 공무원은 자기희생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 이런 이상형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상사와 조직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한다.  
 
이문영(1986)은 이른바 개인악個人惡보다 구조악構造惡이 더 나쁘다고 했다. “선한 집단에서 일하는 나쁜 사람보다는 악한 집단에서 일하는 의리있고 멋진 사나이가 더 나쁘다”(47쪽). 그래서 구조선-개인악보다 구조악-개인선이 훨씬 나쁜 구도라고 보았다(이문영 1991: 133). 그래서 흔히 우리가 구조선 속에 있는 개인악에는 가혹하지만 구조악 속에 있는 개인선에는 너그러운 면이 있다면서 개인선에 홀려 그 개인이 속해 있는 구조의 악을 못 보는 일을 경계했다(이문영 1986: 48-49). 그렇다면 “순실”시대의 공무원들은 어떤 구도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구조악과 개인악이란 올가미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법과 원칙과 절차에 따라 조직을 운영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해관계와 훈수와 감정에 따라 칼을 휘두른 결과다. 각종 미꾸라지들은 말을 듣지 않는 공무원들을 좌천시키고 군말없이 말을 따르는 자들을 중용했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초연금 공약을 파기한 것을 반대해 물러났고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소위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을 비판하다 해임되었다. “왕의 여자”라 불리던 조윤선씨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될 때까지 여성가족부 장관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거쳐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 이르기까지 박근혜씨 밑에서 온갖 영화를 누렸다. 껄끄러운 자들은 무슨 수를 쓰든 찍어내고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자리에 앉혀셔 서로 “해먹기” 딱 좋은 상황을 만든 것이다. 환관과 간신들로 둘러싸인 “사실상 절대왕정”이 들어서면서 관료제가 구조악이 된 것이다.  

그러면 공직자 일반은 어떠할까? 개인악에 가까울까? 개인선에 가까울까? 아마도 대다수는 복지부동伏地不動하면서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대놓고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생각하고 부당한 지시를 뭉개거나 질질 끌거나 마지못해 건성건성 했을 것이다. 물론 힘센 쪽에 붙어 부역질하면서 짧고 화려하게 불꽃을 태우려는 공무원도 있었을 것이다.

현재 비난 화살을 고슴도치 등짝처럼 맞아 산 송장이 된 문화체육광광부를 생각해 보자. 복지부동하면서도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집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범죄인지는 다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섭고 불쾌하고 창피했을 테지만 그렇다고 “윗선”이 시키는 일을 거역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당장 좌천당하고 왕따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블랙리스트 사태가 정점을 치달을 때 조윤선씨에서 이실직고以實直告할 것을 권한 것으로 보아 최소한 심각한 개인악은 아니었을 것같다. 하지만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내부인의 호루라기 불기(whistle blowing)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개인선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공무원의 선서는 어디로 갔을까? 결국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은 개인윤리는 챙겼는지 모르지만 공직자로서 사회윤리를 갖고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청와대에서 일한 공직자들은 어떠할까?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따랐다기보다는 힘 센 쪽에 붙어서 호의호식을 한 쪽에 가까왔다고 본다. 언감생심으로 자리를 꿰차고 앉았기 때문에 박근혜와 최순실씨에게 대가를 제공해야 했을 것이다. 군말없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는 “영혼이 맑은” 사람들로 뽑았기 때문이다. 박근혜씨를 “주군”으로 부르고 그의 지시를 “하명”이라고 받았다는 김기춘씨에게는 판단이 있을 수 없다. 오직 맹종盲從이 있을 뿐이다. 민정수석이었으면서도 아는 것이 없다고 자신의 무능과 직무유기를 자랑하는 우병우씨나 소위 문고리 3인방도 마찬가지다. 이런 음흉한 미꾸라지들이 뱀처럼 서로 몸을 비벼대면서 청와대에 똬리를 틀고 않아 관료사회를 농락하고, 증거를 없애고, 내부자 고발을 차단했던 것이다.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던 청와대 공무원이 검찰과 국회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라. 구조악이 된 청와대에서 공직자 역시 개인악이었다. 이처럼 올가미에 걸린 상황에서 공무원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네 네”할 뿐이었다. 공직자의 자기희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묻는다. 관료제를 발기어 구조악을 구축해온 막장 미꾸라지들을 한탄해야 하나?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에 몸던져 저항하지 못한 공무원을 탓해야 하나? 결국 우리는 헌법 제 1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국민이 답이다.

끝주

1) 어느 장군이 예하 부대 내무반을 순시차 들렀는데 신입 이등병이 보고 너무 놀라서 엉겁결에 도망을 쳤다. 장군은 화를 내면서 당장 잡아오게 했고, 잡혀와 무릎꿇린 그 이등병에게 경례를 왜 안했냐면서 벼락치듯 소리를 내질렀다. 사색이 되어 부르르 떨면서 눈물 콧물을 빼는 모습에 해당 지휘관은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원사·상사들이 뒤에서 혀를 끌끌 찼다.

참고문헌

김의겸·노형석. 2016. “이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 박대통령 한마디에 국·과장 강제 퇴직. <한겨레신문>. 2016. 10. 12.

Hodgkinson, Christopher. 1978. Towards a Philosophy of Administration. St. Martins Press.


원문: 박헌명. 2017. "순실"시대의 공직자들: 구조악과 개인악이란 올가미. <최소주의 행정학> 2(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