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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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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으면 어색하고 불편하다. 물과 기름처럼 겉과 속이 따로 놀아 좀처럼 서로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가 현실에 맞지 않아 거리감을 느낄 때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한다. 어쩌면 박근혜 최순실 사건 이후 우리가 느끼는 어색함과 불편함이 이런 것일는지 모른다. 

미국 제도, 일본 관행, 그리고 조선 사람

20년 전 군복무를 하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몸뚱아리와 정신줄은 조선 사람인데 일본군의 관행으로 미군의 제도를 운영하려다 보니 이런 저런 탈이 나는 것은 아닌지. 장비는 물론 하다 못해 교본까지도 미군의 그늘 아래에 있다. 군대의 발길에 일본어 잔재가 흔하게 부딪혀 온다. 요즘 더 분명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을 다루는 방식에도 일본인들의 독특함이 있다. 칼 두 자루를 찬 사무라이들이 일반 백성을 내려다 보거나, 혹은 백성들이 사무라이들의 위세에 설설 기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니 토론이래봤자 토론을 흉내내는 소꿉놀이에 불과하다. 쌍방통행은 이론이고 일방통행은 현실이었다.사람과 관행과 제도가 서로 어긋나다 보니 아무리 애써도 어색함과 불편함을 피할 수 없다. 

우리의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적고 있다. 공화국은 왕(군주)을 인정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주권이 왕이나 특권층이 아닌 백성에게 있다는 뜻이다. 오천 년 우리 역사에서 이런 제도를 가진 것은 고작 70년도 되지 않았다. 20세기 초까지 왕정에서 살다가 우연찮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의 공화정을 덜컥 들여놓았다. 조선 사람이 미국인에 맞춰 지은 옷을 걸친 셈이니 애초부터 우스꽝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또한 사회 구석구석에 아직까지도 일본 식민지 찌거기가 남아 있다. 와사비山葵(고추냉이)와 무대뽀無鐵砲(무작정)는 물론이려니와 심지어는 민주주의民主主義와 대통령大統領도 일본어(일본어 번역) 아닌가? 만일 개헌을 한다면, 민주주의는 그렇다 쳐도 당장 “대통령”부터 우리말로 바꾸어야 할 판이다. 

아직도 “왕조 정신줄”로 살고 있다

그래서 민주공화국은 신화에 가깝고 현실은 왕조에 가까운지 모른다. 말이 민주공화국이지 아버지 옷마냥 몸에 맞지를 않아 어색하고 불편하다. 어쩌면 처음 옷을 입을 때 느끼는 낯섦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익숙해지는 그런… 하지만 70년 세월이 지났어도 우리 주위에서 관찰하는 것은 공화정보다는 왕정의 모습이다. 중국에서도 하는 투표는 껍데기일 뿐이다. 서구(미국)의 민주주의와 공화정이 화려하고 멋있기는 하나 여전히 코쟁이의 옷처럼 커보인다. 

근 오백 년을 이어온 조선왕조가 문을 닫고, 36년 일제 식민지가 끝나고, 운좋게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지만 백성들의 “왕조 정신줄”은 여전하다.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이승만씨를  국부國父라 했고 프란체스카씨를 국모國母라 불렀다. 육영수씨는 마지막 가는 길을 소복입는 백성들이 배웅했던 국모였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모습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씨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부의 반열에 올랐다. 백성들이 스스로 뽑아 임명하는 대통령보다는 하늘에서 내려준다는 임금을 정서상 더 친근하게 생각했다. 민주주를 기치旗幟로 내건 국민의 정부의 김대중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음은 이문영(2008: 529)이 적은 김대중씨 일화다. 

“신년 초에 누군가가 불러서 청와대에 갔다. 대통령의 친인척이랑 늘 보던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있었다. 나는 이 자리에 대통령이 나타날 줄 알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우리를 별실로 인도했다. 내가 제일 앞에 서서 들어갔다. 멀리 대통령 내외가 앉아 있고 마루에는 긴 화문석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나는 이 화문석을 정중히 밟고 들어가 두 내외분과 악수를 했다. 두 분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수를 나눈 후 뒤돌아 나오면서 보니 내 뒤에 따라오던 사람들이 화문석에 부복(俯伏)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배를 했던 것이다. 의외의 구경이었다.”

최근 파면을 당하고 청와대에서 쫓겨난 박근혜씨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같은 정치인보다는 여왕(선거 여왕)과 공주 (수첩 공주, 유신 공주, 변기 공주 등) 칭호로 호사를 누렸다. 박씨는 자의이든 타의이든 조선왕조의 이씨처럼 왕족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육영수씨 사후에는 사실상 국모로 살았다. 박근혜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궁궐에서 쫓겨나 사저에서 눈물로 지새는 여인에게 사약을 내리는 격”이라거나 “산발로 포승줄에 묶여 감옥 가는 것”이라는 김진태씨 표현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정신줄은 아직 15세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다.  

이명박씨의 왕놀이

지금까지 지도자가 된 자들의 정신줄도 사실상 왕정이다. 노무현씨는 그의 이력만큼이나 예외에 가깝다. 특히 이명박씨나 박근혜씨는 생각없이 왕놀이를 하다가 일을 크게 그르친 경우다. 왕은 모든 것을 소유했다. 자신이 국가이고 국가가 곧 자신이었다. 모든 것이 공公이자 사私이기 때문에 공사 구분이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었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존재였다. 왕은 말을 할 뿐 백성에게 묻지 않는다. 어명御名은 그저 받들어 시행해야 하는 것이지 따지고 비판할 대상이 아니다. 왕의 언행에 감히 토를 다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었다. 빨갱이든, 좌익이든, 종북이든 닥치는 대로 낙인을 찍어 응징을 해야 하는 중범죄였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무관하게 이명박씨는 대놓고 대통령질보다는 사장질을 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정치인이 아니라 장사꾼을 하겠다는 소리였다. 주권자인 백성들은 “이명박 사장”에게 고용된 회사원이 아니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제멋대로 밀어붙이던 이씨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을 시작으로 용산 철거민 참사, 민간인 사찰,  천안함 사건, 연평도 피격 등 주옥같은 정치·군사·외교 업적을 남겼다. “명박산성”은 임금의 권위에 도전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식 장사치의 정치무능이 빚은 참극이었다. 한편 백성 다수가 반대하는 4대강사업과 자원외교를 강행하여 기어코 수십 조 국고를 탕진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퍼주기를 했다면서 저주를 쏟아냈지만 정작 본인은 나라의 재물을 제 것인양 물쓰듯 했다. 이명박씨 손을 거쳐간 회사와 조직의 말로末路가 어쩌면 이리 똑같은지…

박근혜씨의 창조군주론

박근혜씨는 한 술 더 떠서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한 군주론을 창조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범죄 혐의만 보더라도 엽기 그 자체다. 박근혜 왕조에서 권력 서열 1위는 박근혜가 아니었다. 이른바 비선실세, 존재가 드러나지 않은 최순실이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이치라고나 할까? 왕조에서 왕이 아닌 자가 감쪽같이 왕노릇을 했으니 <최선생님, 왕이 된 여자>라도 찍었다고 해야 하나? 선거로 뽑아놓은 대통령은 집구석에서 뭉개다가 가끔씩 올림머리를 하고 나와서 써준 글이나 생각없이 읽었고, “공항장애”로 고생하고 심신이 “회폐”한 아줌마가 대통령질을 하면서 옷갖 이권을 챙기고 있었다. 홍준표식으로 말하자면 춘향이로 뽑아놨더니만 허접한 향단이가 설친 셈이다. 박관천씨의 증언이 아니어도 일이 진행된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박씨는 최씨의 꼭두각시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옷입는 것도 태반 주사나 백옥 주사를 맞는 것도 박씨가 간여干與했다. 기업에게 돈을 뜯어내고 민간기업의 인사까지 주무르고 권력을 휘둘러 깔끔하게 마무리(증거인멸과 입단속)하는 솜씨가 참으로 경탄스럽다. 

박근혜씨 본인은 위엄있고 고상하고 정의롭고 인자한 군주였다고 생각했고, 또 지금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헌법 자체이자 법 위의 존재가 어찌 검찰의 조사를 용납한단 말인가. 모두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이고, “최선생님"의 일은 전혀 몰랐으며, 1원 한 푼 안받았다고 악다구니를 쓰는 것 아닌가. 노처녀로서 쪽팔리지만 바이아그라까지 챙겨먹었고 얼굴이 붓고 아파도 기꺼이 미용시술까지 감수하면서 국정은 물론 일개 회사와 개인의 일까지 꼼꼼하게 챙긴 대가가 고작 탄핵이고 구속영장이란 말인가. 만고의 충신인 이정현 윤상현 김진태 등이 반정에 성공하여 용상에 복귀하는 즉시 “좌빨” 역도들을 의금부에 잡아다가 요절을 내버리고 삼족은 물론 구족까지 멸하리라. 주먹을 불끈 쥐고 아버지 박정희 영정 앞에 울먹이며 이렇게 맹세하지 않았을까? 왜냐고? 군주를 능멸한 대역무도大逆無道한 자들을 어찌 살려둘 수 있단 말인가?

박근혜씨는 그동안 본인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추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사람을 만나는 것도 꺼려했다. 걸핏하면 대통령의 권위를 내세웠지만 사생활에 관한 한 연약한 여자의 신비주의로 얼버무렸다. 백성들이 뽑은 것이 지도자가 아니라 여자였단 말인가? 노무현씨와는 전혀 다르게 박씨는 언론 접촉도 꺼렸고, 소수 “친박”을 제외한 정치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장관들의 대면보고도 대부분 서면보고로 대치했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조차도 서면보고했다고 국가안보실장이 진술했다.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조윤선씨도 박씨와 독대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쯤되면 선호나 습관이 아니라 병이다.

이런 박근혜씨의 행태는 일단은 본인의 처참한 약점을 감추려는 본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리분별이 희미하고, 이해와 분석 능력이 약하고, 상대방과 감성과 이성으로 대화할 능력이 빈약함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궁여지책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체성이다. 특히 왕족과 군주라는 집착과 망상이다. 햄버거도 포크와 나이프가 있어야 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왕의 사생활을 들추거나 왕에게 이러니 저러니 말하는 것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군주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 감히 임금과 맞먹는단 말인가?

한마디로 간신과 환관이 활개치기에 딱 좋은 상황이 된 것이다. 이른바 문고리 삼인방이나 윤전추 이영선씨 등이 박씨를 에워싸고 그들만의 왕조를 건설했다. 청와대는 세상을 등진 궁궐이 되었고, 세월호 참사든 촛불집회든 왕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모두 역적들의 궁상(예컨대, 시체장사나 거지근성)으로 치부 되었다. 군주는 품위유지를 위해 세상사 일에 대해 시시콜콜 말하지 않았다(세상 일이 무엇인지 알지도, 따지지도 못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도 없었는지 모른다). 결국 박근혜씨는, 왕이 교지敎旨를 내리듯, 자기가 준비한 혹은 누군가가 써준 것을 들고 나와 읽고 들어가 버리는 방식을 탄핵당할 때까지 고집했다. 아직도 간신배와 광신도같은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서 꿈을 꾸면서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조직개편과 이름 장난질 

과거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정부조직을 개편한다고 난리를 쳤다. 모두 거창한 목적과 기대효과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관료제를 길들이고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한 연막작전이었다. 역대 실력자들이 정부조직을 백성들의 소유가 아니라 자신의 사유물로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권자의 소유물인 관료제를 허락도 없이 제멋대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군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의식도 없이 자연스럽게 찟고 째고 한 것이다. 물론 합리성에 근거한 조직 개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정략일 뿐이었다. 

이명박씨는 노무현씨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폐지하고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를 해체했다. 그 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피격 등 대책없이 얻어터진 뒤에서야 박근혜씨가 국가안보실과 해양수산부를 부활시켰다. 결국은 노무현으로 돌아간 셈이다. 박씨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책임을 묻는다며 눈물찍으며 해양경찰청을 해산했지만 잠시 얼떨떨했던 백성들은 해양경찰청 부활을 요구하고 있다. 왕이야 조직을 이리 째고 저리 붙이는 재미가 솔솔하겠지만 해당 공무원들은 죽을 맛이다.
1)

이명박씨는 “저탄소”와 “녹색성장”를 좋아해서 부서와 공공사업 이름에 넣었다. 정부에서 돈푼깨나 받으려면 두 단어를 넣지 않으면 안될 지경이었다. 정권이 끝나자 탄소와 녹색은 봄눈녹듯 사라졌다. 박근혜씨는 “창조”와 “미래”를 좋아해서 정권의 비전도 “창조 경제”로 내세웠다. 부처이름도 “미래창조과학부”로 했다. 영문 이름은 Ministry of Science, ICT, and Future Planning이다. Creative는 아예 빠져 있고 생뚱맞게 ICT가 들어가 있다. 과학과 정보기술은 업무에 보이지만 미래 설계나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누가 봐도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이름이 바뀔 것이 확실한데 도대체 뭐하러 바꾼 것일까? 또 안전을 강조한다면서 2013년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었다. 안전을 앞에다 놓으면 국가가 안전해지나? 무책임한 이름짓기 놀이에 혈세만 낭비했다.

사람, 관행, 제도가 어울려야 

이런 해괴駭怪한 짓거리들은 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닌 왕국의 군주라는 정신줄에서 생겨난다. 공직과 정부관료제를 사유물로 생각한 결과다. 제도가 사람과 관행과 서로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개헌 논의가 무성한데,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만 있지 정작 주권자인 백성들의 의견은 빠져있는 것같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개헌안이 좋은지는 의미없는 질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주권자들이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를 차분하게 돌아보는 일이다. 그동안 몸이 어찌 변했는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어디가 얼마나 불편한지, 옷에 익숙해지도록 얼마나 노력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스스로를 잘 살펴서 몸에 맞는 제도를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과 성실하게 제도를 실천하면서 문제를 조정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끝주

1) 어느 국장은 부처 이름이라도 바뀌면 얼마나 비용과 노력과 시간이 드는지 아느냐며 푸념했다. 하다 못해 명함부터 시작해서 명패, 간판, 상징물, 문서, 법령 등을 바꿔야 하고 정보시스템 내의 각종 이름을 바꿔야 한다. 


원문: 박헌명. 2017. 민주공화국에서 왕놀이하기: 창조군주론. <최소주의행정학> 2(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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