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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최소주의행정학
흔히 사람들은 이문영 선생님을 이상주의자라고 곡해한다. 선생님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행동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선생님께서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고집스레 추구해서 쓸데없는 분란을 만들고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뜻이다. 또한 운동권 학생들과 그 태도와 주장이 같은, 혹은 그들을 배후조종하는 “운동권 교수”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을 추구하는 맹목적인 열정이 같다는 뜻일 게다. 이러한 곡해는 선생님의 행정 철학과 사상을 이해하거나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지만, 직접 원인이 된 것은 쿠데타 정권의 낙인찍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못된 정권은 폭력을 동원하거나 언론사를 사주하여 멀쩡한 (평범한) 사람을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낙인찍곤 한다. 조기숙(2012)은 이런 것..
나는 이문영 선생님의 마지막 학부 지도학생이다. 1987년 봄 고대 행정학과에 입학했을 때 동기생이 65여명 되었는데, 가나다 순으로 학번을 매겼다. 절반을 나눠서 앞쪽에 있는 동기생들이 정년을 앞둔 선생님께 지도를 받도록 배정되었다. 그 앞쪽 절반의 거의 끝에 내 이름이 있었으니 마지막 지도학생이라 해도 과한 말은 아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지도교수와 “고대스러운” 사제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다. 많은 동기생들이 지도교수가 누군지도 모르거나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선생님 화갑기념 논문집 출간회에 가서 심부름을 하고, 동기생과 북한산 등산을 마치고 쌍문동 선생님 댁을 불쑥 방문하고, 현민 유진오 선생 빈소사건에 사용된 피켓을 만드는 일을 거들고, 다른 대학의 행정고시반 운영현황을 조..
권위란 무엇인가? 20여년 전 직위가 높은 윗사람의 권위에 도전한 대가代價로 적어낸 반성문의 첫번째 문장이다. 많은 아랫사람들이 보는 데서 윗사람의 체면과 위신을 땅바닥에 패대기친 그 불경을 참회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떳떳한 마음으로 대의를 선택하기로 하고 나는 두번째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권위란 그 자리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황당한 반성문을 읽어본 어느 상급자가 혀를 끌끌 찼다. 반성문을 가장한 훈계문에 당혹해하면서도 차마 나무라지 못하는 심경을 그의 낯빛에서 읽었다. 나는 어쩌다가 이런 “불경스런 반성문”을 적었을까? 무관심영역? 수용영역? 이문영은『인간 종교 국가』(2001: 388)에서 “바너드(Chester I. Barnard)는 1938년에 저술한 Funct..
공직자와 정치인의 부적절한 말법으로 사회의 공분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은 그 사람의 지식수준과 편견과 도덕성이 기대이하임을 민낯처럼 드러낸다. 화가 나기보다는 참담할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여 백성들이 당면한 문제를 풀어야 할 공복公僕이기 때문이다. 대화가 서로 오해를 풀고 화합을 하기 위함인데 그런 말법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듣는 사람들을 화나게 하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이 적절하지 못한 말법을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보다도 그 말하는 모냥새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책임도 져야 한다. 비열하고 무책임한 공직자의 말법 두 가지를 살펴보자. 2010년 1월 17일 이명박씨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처음으로 식구들을 데리고 나들이에 나섰다. 오래된 동무가 사는 동네에 가서 산에도 올라보고 온천에도 다니면서 며칠 쉬었다 올 생각이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뒷간에 갈 일이 생겼다. 길게 바닥까지 내려앉은 소변기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소변기 밑에 사방 30cm가 되는 타일이 한 줄로 깔려서 바닥에서 높이 1cm 정도가 되는 턱을 만들고 있었다. 소변기에서 타일 끝까지의 거리가 아주 묘해서 적당히 타일을 밟고 있으면 서 있기가 불안했다. 볼 일을 보려면 어쩔 수 없이 완전히 타일 위로 올라가야 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소변기 가까이에 가도록 했다. 이런 뒷간을 전에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이런 만듦새는 말하지 않고도 그 뜻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소변기를 깨끗하게 쓰라느니, 소변기에..
테러 의심만으로도 국가정보원이 제멋대로 (법원의 영장없이 자의恣意로) 국민을 감청하고 금융계좌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한 안이 2016년 2월 2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입법부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이 법안에 합의를 보지 못하고 행정부에서는 박근혜씨가 법안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비분강개하여 책상을 내리친 가운데 국회의장 정의화씨가 북한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발사 등을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고 규정하고 법안을 직권상정하였다. 이에 야당의원들이 반발하여 국회법 제 106조 2에 근거하여 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 무제한 토론을 며칠째 진행하고 있다.이 무제한 토론은 지난 수십 년 간 벌어진 법안 날치기와 이를 둘러싼 폭력을 막기 위해 도입되었다. 이 제도는 다수당의 횡포를 소수당이 폭력이 아닌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