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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최소주의행정학

후보의 "인격검증"과 국민의 알권리 본문

반민주주의 증상

후보의 "인격검증"과 국민의 알권리

못골 2019. 4. 11. 14:25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3일 앞으로 다가왔다. 촛불혁명 이후 지난 1년간 국정농단에 연루된 자들이 줄줄이 재판정에 섰다. 주역인 최순실 박근혜씨가 감옥에 끌려갔고, 다스 실소유주 논란의 당사자인 이명박씨도 뇌물수수, 조세포탈,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구치소에 갖혔다. 두 전직 대통령이 각각 수인번호 503과 716을 달고 재판을 받고 있다. 한편 내우외환에서 출발한 문재인 정부는 완강한 저항과 냉소에도 불구하고 적폐청산과 한반도의 비핵화를 묵묵히 추진하였다.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비명에 가까운 환호를 이끌어냈고, 끈질기게 문재인씨가 중재한 북미정상회담은 우연히도 선거 전날 열리게 되었다. 문재인씨의 지지율이 7할을 상회하고 여당인 민주당의 지지율이 5할을 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일까? 이런 낯선 풍경은 이번 선거의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

누가 감히 “인격검증”을 한단 말인가?

민주당이 압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선거다. 얼마나 철저하게 국정농단 세력을 심판하느냐에 관심이 더 몰린다. 호사가好事家들의 술안주로 치면 드루킹과 한나라당/새누리당의 댓글조작이나 홍준표씨의 “아무말 잔치” 정도가 입에 오르내렸다. 그런데 경기도지사 선거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남경필씨는 이재명씨가 수 년 전 친형과 형수에게 폭언을 했다며 통화음성파일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공직 후보의 인격을 검증하겠다고 했다. “인간성 말살”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자행한 이재명씨를 후보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민주당에게는 후보를 당장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지나치다. 텔레비젼 토론에 나선 바른미래당의 김영환씨는 이재명씨가 권한을 남용하여 친형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고, 김부선씨와 밀회한 사실을 회유와 협박으로 은폐했다고 비난했다. 불륜은 아니지만 거짓말로 “여배우에 대한 인격살인”을 자행했으니 공직자 후보에서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이재명씨는 식구들과 다투는 과정에서 심한 욕설을 했고, 김부선씨와 만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나머지는 각자의 주장이 있을 뿐이다. 어느 말이 맞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남경필씨와 김영환씨가 이씨의 사생활 문제를 “인격검증”이나 “국민의 알권리”라면서 공식자리에서 끄집어 내었다. 이씨의 지지율이 5할인 상황에서 남씨와 김씨가 선택한 궁여지책이라 이해할 수도 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먼저 “인격검증”이라는 말을 듣고 탄식한다. “사상검증”과 마찬가지로 도대체 누가 인격을 어떻게 검증한다는 것인가? 누가 “인격검증”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가? 욕설을 하고 폭력를 사용했다고 해서 다짜고짜 인격파탄으로 몰아도 되는 것인가? 사람의 인격이란 것이 그리도 간단하고 쉽단 말인가? 남씨는 누군가가 해치려고 본인에게 달려들 때 인격을 생각해서 점잖게 공자왈 맹자왈 훈계를 할 셈인가? 그렇게 인격을 따지면서 어찌하여 이명박과 박근혜씨의 인격을 검증하는 일에는 게을렀던 것일까? 사상검증과 마찬가지로 인격검증도 가능하지 않다. 기껏해봤자 제멋대로 “관심법”으로 상대방을 빨갱이칠하기 위한 수작일 뿐이다. 민주주의에서 “인격검증”이라니... 참으로 유치하고 한심하다. 

“국민의 알권리”라굽쇼? 

음성파일에 나온 폭언은 이재명씨 스스로 인정하고 사과한 사생활이다. 언행에 잘못이 있든 없든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한다. 사생활은 잘잘못을 따지지 않으며 정보수집 뿐만 아니라 수집된 정보가 어떻게 처리되고 사용되고 폐기되는지까지 본인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Solove 2011). 따라서 이씨의 의사를 무시하고 음성파일을 정당의 웹집에 올려놓거나 유세현장에서 트는 것은 사생활을 침해하는 일이다. 여배우와 밀회도 마찬가지다. 여배우 스스로 심심해서 만났고 비용도 본인이 다 내면서 즐겼다니 성추행도 성폭력도 아닌 셈이다. 박수받을 행동은 아니지만 사실이라 해도 공개된 자리에서 비난을 받거나 처벌을 받아야 할 사안도 아니다. 남씨와 김씨는 공직자 후보의 자질을 따진다고 했지만 사실은 이씨의 사생활을 윤리와 도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어 모욕을 주고 있다. 특히 김씨는 밀회(불륜)를 기정사실화하고 자신이 감옥에 갈 각오라고 기염을 토했다. 공직 후보인지 여배우의 변호사인지...

또한 국민의 알권리라고 하지만 도대체 누가 그런 욕설을 듣고 싶단 말인가? 무슨 공공의 이익이 있단 말인가? 유세장을 오가는 청소년들까지 그런 험한 말을 들어야 하는가? 그 자체로 말폭력이고 공해다. 남경필씨는 일단 국민이 들어보고 판단할 일이며 당이 공개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비열하고 무책임하다. 후보로 인정을 안한다면서 토론회에서 말을 섞는 모순은 무어란 말인가? 왜 국민들이 어떤 후보가 누구에게 무슨 욕을 했는지, 후보의 친형이 어떻게 병원에 입원했는지, 후보가 누구와 즐기는지를 알아야 하는가? 호사가들은 그렇다 쳐도 어느 멀쩡한 유권자들이 알고 싶어하는가? 과연 방송토론회에서 이전투구할만한 내용인가? 방송에다 대고 질척거리는 추문을 늘어놓는 것 자체가 낯뜨겁고 구역질나는 것 아닌가? 시청자와 유권자를 능멸하는 짓이 아닌가? 
 
언젠가 북한에서 내려온 인민군을 소탕하기 위해 군부대가 출동했다. 어느 일보 기자라는 자가 전화를 걸어와서 어느 병력이 언제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알려달라고 했다. 군사작전이니 알려줄 수 없다고 했더니 역시나 “국민의 알권리”라며 막무가내였다. 나는 어느 국민이 그런 작전을 알고 싶냐며 힐난했다. 국민은 작전이 아니라 인민군을 소탕했는지, 이젠 안전한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선거는 성인군자를 뽑는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성인군자를 뽑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덜 나쁘고 덜 게으른 머슴을 고르는 일이다. 주권자의 입장에서 꼭 필요한 내용을 냉철하게 따져서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 방송토론회에서 사생활을 들춰내고 험악한 진실공방을 벌임으로써 유권자를 불쾌하고 혼란스럽게 한 자들을 한표로 응징해야 한다. 

참고문헌


Solove, Daniel J. 2011. Nothing to Hide. New Haven: Yale Univ. Press.


원문: 박헌명. 2018. 후보의 "인격검증"과 국민의 알권리. <최소주의행정학> 3(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