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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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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갑질이 화두다. 이른바 ‘갑질’은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불공정한 행위를 말한다. 힘이 센 ‘갑’이 힘이 약한 ‘을’을 강제로 몰아붙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짓이다. ‘갑’과 ‘을’ 사이의 특별한 (권력) 관계를 올가미로 삼아 강자가 약자를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놓고 쥐어짠다.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무차별로 발길질과 주먹질을 해대는 야비한 패악질이다. 일방적인 강자의 횡포이다. 악질의 적나라한 폭력 그 자체다. 

‘갑질’과 ‘을’의 반란 

그동안 갑질은 사회 구석구석에서 여러가지 양태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현상인 양 gapjil로 표현되기도 한다. 갑질공화국이라는 말도 생겼다. 하지만 그동안 갑질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공론장에 오르기 어려웠다. ‘갑’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기득권을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을’들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무자비한 보복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갑’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것은 한마디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 사회매체가 보편화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갑질에 무관심하거나 ‘갑’을 편들던 정부기관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을’들이 참아왔던 울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비정상’(박근혜씨의 ‘정상’)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던 ‘을의 반란’이었다.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씨의 ‘땅콩회항’과 종근당 회장 이장한씨의 운전기사 폭언은 ‘을’들의 반란을 예고했다. 미스터피자 회장 정우현씨의 갑질은 프랜차이즈업계에서 가맹점들을 착취했던 삐뚤어진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육군대장 박찬주씨와 그의 부인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은 오래된 군대 내 인권 침해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8월 12일자 <한겨레신문>은 서연이화의 ‘을질’을 통해 갑질이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상대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임을 보였다. 모두 법(계약) 문제라기보다는 기본이나 상식에 관한 문제이다. 인간의 양심과 품격에 관한 문제이다. 

관료주의 갑질과 권한 남용

관료제에서 벌어지는 갑질은 어떠한가? 막스 베버의 관료제 이념형에서 일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유기적으로 분화되어 있고, 그 자리에 필요한 전문성을 가진 자가 일을 담당한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직책에 따라 권한과 책임을 나누어 일을 해야 한다. 각각의 일은 계서제를 통해 규칙과 절차에 따라 조율된다. 만일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직책과 권한을 무시하고 누르기만 하면 관료 조직이 아니라 관료주의적 조직과 권위주의 사회가 된다 (이문영 2001: 71). 계서제에서 윗사람이 부당하게 아랫사람의 고유한 권한을 빼앗는 관행이 일반화된 사회이다 (이문영 2001: 111). 이런 관행이 ‘관료주의 갑질’이며, 그 본질은 한마디로 권한 침해와 권한 남용이다. 권한 남용은 관료제의 계속성과 합리주의를 가로막는 근본 이유이다 (이문영 1980: 6).

대통령인 이명박씨가 나서서 대불공단의 전봇대를 뽑아버리고 규제철폐를 독려했다. 하지만 당장 결과물을 내려는 욕심에 실무 담당자에 이르는 관료들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관료들은 맡은 일을 소신을 가지고 해나가기보다는 위를 쳐다보면서 지시가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복지부동이다. 또한 장관에게 일개 국장 이름을 들먹이며 나쁜 사람이라느니 아직도 그 자리에 있냐느니 말한 박근혜씨도 권한 침해인 것을 매한가지다. 국가정보원 등의 부정선거를 법대로 조사하려던 검찰총장과 검사를 내쫓은 것은 권한 남용이 아니라 그냥 볼썽사나운 짓이다.   

관료제에서 갑질은 윗사람이 모든 일을 혼자 알아서 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착각하는 데서 시작한다.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라면서 시시콜콜 참견하다 일을 그르친다. 윗사람이면 규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언제 어디서든 아랫사람의 권한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다는 무지나 시대착오다. 공화정에서 살면서도 정신줄은 양반이 천민을 마음대로 부리는 왕조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관료제를 전문성과 자율성을 가진 관료들의 조직체계로 보지 않고 명령대로 움직이는 똘마니 집단이나 기계 뭉치로 보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이 맘에 들지 않으면 부품을 교체하듯 바로 쫓아내고 말잘듣는 ‘내사람’으로 채워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터미네이터’같은 관료제는 찾아보기도 어렵거니와 있다 해도 좋은 결과를 내지도 못한다.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회자되는 갑질은 모두 ‘갑’이 끝간데 모르고 횡포를 부리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을’이 몸종이나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와 공직자의 비폭력 

공무원은 전문지식을 매일매일 닦아서 조직 내에서는 상사를 존중하며 조직 밖에서는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며, 전문지식 앞에서 존귀한 존재이지 상사와 조직 앞에 세워지는 존재가 아니며, 상사에게 굴종하고 상납하는 대가로 利를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문영 2001: 277). ‘관료주의 갑질’은 아랫사람에게 전문지식은 내팽개치고 상사에게 굴종하고 잇속이나 챙기는 공무원이 될 것을 강요한다. 권위주의 조직에서 아랫사람은 일에 맞는 고유한 권한을 갖은 인간이 아니라 그냥 써먹고 내버리는 기계 부품이거나 그저 굽실대며 “네, 네”하는 노예일 따름이다 (이문영 2008: 606).

주어진 권한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것이 非暴力이다 (이문영1996: 404). 주먹질(권한 남용)이 멈춘 뒤에야 우리는 지혜를 쌓고(智), 합의를 모색하고(禮), 나아가 사회윤리(仁)와 자기희생(義)을 실천할 수 있다 (이문영 2008: 143). 관료주의 갑질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비폭력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경험했듯이 강자의 폭력이 통제되지 않은 판에 관료제에서 전문성, 효율성, 동의와 협력(‘협치’), 복지와 사회통합을 따지는 일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최소한의 인권과 공정성을 훼손하는 갑질을 방치한 채 관료제의 합리성을 따지니 말이다.  

참고문


곽정수. 2017. 고발합니다, 갑질공화국. <한겨레신문>. 2017. 8. 12.


원문: 박헌명. 2017. 관료주의 갑질과 공직자의 권한 남용. <최소주의행정학> 2(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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