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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최소주의행정학

이재명 당대표의 단식과 최소주의 본문

비폭력과 최소주의

이재명 당대표의 단식과 최소주의

못골 2023. 10. 25. 13:52

더불어민주당 이재명대표가 지난 달 31일부터 국정 쇄신과 내각 사퇴를 요구하며 국회에서 천막을 치고 단식을 시작했다. 정권의 퇴행과 폭주, 국민의 고통과 절망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단식 19일째인 지난 18일 병원에 실려간 이씨는 최소한의 치료를 받으며 단식을 강행하겠다는 각오다.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미국을 방문중인 윤석열씨는 잽싸게 체포동의요구서를 결재했다. 격앙된 민주당은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꺼내들었다.

김영삼의 단식과 이정현의 단식

단식斷食은 일정 기간 동안 의도적으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다. 곡기를 끊는다고 하여 절곡이라고 한다. 흔히 절박한 상황에서 간절한 요구나 의사표시를 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단식이라고 무작정 굶는 것은 아니다. 굶어 죽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단식 중에도 소금과 물을 마신다. 또한 단식하기 전과 후에 몸을 잘 다스려야 한다. 상식이다.

김영삼씨는 1983년 5월 18일 자택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박정희에게 의원제명을 당하고 전두환에게는 강제 정계은퇴를 당한 그였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한 그는 단식 8일 만에 경찰에 의해 강제 입원당했지만 일체의 치료를 거부하고 보름을 더 버텼다. 6월 9까지 23일 간의 투쟁이었다. 김대중씨를 비롯한 재야의 지지와 동조단식, 이를 관심있게 보도한 외신을 두려워 했던 전두환은 김씨에 대한 가택연금조치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반면 간절함도 없이 분기탱천憤氣撐天으로 느닷없이 절곡한 자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몸의 고통을 이겨낼 만큼 의지가 굳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당대표였던 이정현씨는 2016년 9월 26일 국회의장 사퇴를 요구하며 당대표실에서 비공개 단식을 시작했다가 7일 만에 슬그머니 접었다. 준비도 명분도 없는 “나 밥안먹을테야”였다. 뜬금없는 단식과 조건없는 단식중단에 민심은 싸늘했다. 그 허무개그 덕에 박근혜의 장관 해임건의안 거부, 최순실·우병우 의혹이 가려졌다. 하지만 박씨의 탄핵을 막지 못했으니 패가망신한 경우다.

한계상황에서 인간의 최소한을 묻는다

나는 단식이 스스로 한계상황으로 다가가 인간의 최소한을 묻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옷, 음식, 집, 일 같은 것은 사람 누구나가 필요로 하는 최소이다. 소정 선생님은 “최소의 것이 침범받았을 때에 본연의 인간이란 무엇일까를 더욱 생각하게 된다. 나는 입은 옷이 벗겨지고 푸른 죄수복이 입혀졌을 때 그리고 머리를 빡빡 깎인 내 모습을 거울로 봤을 때 나 스스로가 나를 무시하는 나를 알게도 되었지만...”이라고 적었다(1986: 96). 스스로 곡기를 끊고 생사를 다툴 때는 자신을 희생하여 이뤄내고자 하는 간절한 뜻이 있기 마련이다. 민주주의같은 인간의 최소가 사람들에게 부여되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식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는 절박한 상황을 말한다. 따라서 단식은 강자가 아닌 포악한 강자의 폭력에 시달리는 약자의 무기다.

“최소를 가질지 말지 하는 한계상황에 사는 사람만이 그 최소마저도 상실된 상태에서의 존재를 음미할 능력이 있다”(96쪽). 참으로 맞는 말이다. 단식하는 자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아군과 적군)의 존재, 그들의 인간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최소주의를 망각한 검찰공화국

이씨의 단식에 대해 여당과 지지자들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냈다. 대통령실은 “막장투쟁”이라고 했고, 여당대표는 (방탄용) “단식쇼”라고 했고, 원내대표는 “사법처리 회피용 단식” “내분 차단용 단식”이라고 했다. 여당대변인들은 “단식 호소인” “뗑깡 단식” “내수용 단식” “쫄보 행보” “간헐적 단식”이라고 했고, 원내대변인들은 “명분없는 쇼” “화성인”이라고 깎아내렸다.

일국의 법무장관 한동훈씨의 일갈은 화룡점정이다. “수사받던 피의자가 단식해서 자해한다고 해서 사법시스템이 정지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안 된다. 그러면 앞으로 잡범들도 이렇게 할 것...” “절도로 체포되거나 사기로 체포되는 사람이 단식하면 누구도 구속되지 않지 않겠나”고 말했다. 평생 양지만 찾아다니며 등따스고 배부르게 살아온 자들일 터이다. 최소가 무엇인지, 단식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안해본 자들이다. 단식하고 자해하면 불쌍해서 봐주리라 믿을 만큼 이씨가 어리석단 말인가? 대체 어느 잡범이 잡혀가지 않으려고 20일 넘게 단식을 한단 말인가? 깐죽대는 잔머리들이다. “수사받던 고위직 검사가 영장을 집행하는 검사를 밀치고 폭행혐의로 고소하고 압수된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감추면 앞으로 잡범들도 이렇게 할 것...”이라고 바로 되치기당할 것 아닌가.

이씨에 대한 검찰의 조사는 2년 동안 60여명의 검사가 동원되었다. 압수수색만 300회에 이른다는데 검찰은 아직까지도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희망사항같은 혐의사실만 흘리고 있다. 조국 일가를 때려잡을 때처럼 이씨의 혐의를 쪼개 질질끌며 덧대고 있다. 소환하는 시기도 횟수도 의심스럽다. 누가 죽어나가든 말든 백기를 들 때까지 백번이든 천번이든 부를 기세다. 영장을 청구하는 시기도 의심스럽다. 박범계씨 말처럼 굳이 국회가 열리지 않는 시기를 피해서 영장을 청구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비회기에 청구하면 영장실질심사를 받겠다고 이씨가 밝히지 않았나? 구속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든 분란을 일으켜 이씨를 압박하려는 정치질 아닌가?

이씨는 피의자로서 최소를 박탈당하고 있다. 윤씨와 한씨였으면 난동을 부리다가 제풀에 지쳐 한 주도 못버텼을 것이다. 검찰공화국은 제동장치없는 폭주기관차다. 법치를 가장한 폭력이다. 문득 <대행사>에 나온 말이 생각난다. 매출이 간절한 그녀였지만 어릴 적 빚쟁이들에게 당한 고통을 생각하며 대부업체 광고를 거절했다. 최소한의 양심과 자존심을 가진 고아인같은 검사는 없는가?

“내가 겪은 고통을 다른 누군가가 똑같이 겪게 되는 일을 나보고 하라고? 내가 제일 잘 아는 일이기 때문에 나만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야. 이건 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양심이자 광고인으로서 내 자존심이야. 난 안해.” 

 

인용: 박헌명. 2023. 이재명 당대표의 단식과 최소주의 <최소주의행정학> 8(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