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세네갈의 수도 Dakar에 출장을 다녀왔다. 지도를 보면 서아프리카 가장 끝에 튀어나온 곳이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 기반시설은 부족하고 민생은 힘겨워 보인다. 오랜 시간 고난을 겪어온 시민들의 얼굴이 외려 밝고 온화하다. 죄지은 것이 없으니 발을 쭉 뻗고 자는 선량들일까?
고레섬의 노예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카는 식민지 쟁탈전 시절 미국으로 가는 최단 항로를 제공했다. Westernmost Point of Afro-Eurasia에 가면 남쪽과 북쪽의 파도가 부딪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런 요지에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차례로 들이쳤다. 다카에서 남동쪽으로 3km 떨어진 고레(Goree)섬을 방문했다. 가로 300미터 세로 900미터의 화산섬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2천만명에 이르는 아프리카인들이 영문도 모르게 잡혀와서 이곳에서 유럽, 미국, 남미로 팔려갔다. 서구 열강의 반인간적인 노예무역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고레섬은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럽 각국의 식민지 확장은 노동력 수요를 폭발시켰고 노예무역에 불을 지폈다. 노예를 사냥하고 거래하는 자들이 서아프리카로 모여들었다. 무능하고 탐욕에 눈이 먼 아프리카 정부(왕)는 짐승처럼 사냥당하고 노예로 끌려가는 국민을 방관하거나 팔아버렸다. 서구에서는 노예제로 번영을 누렸으나 정부는 노예의 인권 문제를 방임했다.
1776년 네덜란드 상인들이 지었다는 노예의 집(House of Slaves)을 방문했다. 여기서 상인들은 노예의 키와 몸무게를 재고, 젖가슴과 성기를 관찰하고, 입을 벌려 치아를 살폈다. 성체와 새끼로 분류하고 수컷과 암컷과 처녀를 나누었다. 노예들을 벌거숭이로 좁은 토굴방에 밀어넣었다. 목과 손발을 묶고 쇠덩어리를 매달아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상품이 상하지 않을 만큼 먹였고, 저체중이면 콩을 강제로 먹였다. 반항하는 자들은 벽에 묶어 매질을 하고 좁은 감옥에 가두었다. 병들거나 성가신 자들은 바다에 던졌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처럼 생긴 짐승일 뿐이었다. 노예장사꾼들은 맘에 드는 암컷을 골라 2층 객실에서 마음껏 욕심을 채웠다. 노예들을 한 명씩 마당에 세워두고 값을 매겼다. 힘좋은 짐승과 때깔좋은 곡물을 고르는 경매 시장과 다름이 없었다. 흥정과 셈이 끝난 노예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문(Door of No Return)”을 지나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했다.
노예는 고레섬만의 일이 아니다. 이름과 개념이 다를지언정 동서고금의 현상이다. 로마는 전쟁에서 잡아온 노예로 치부했고, 아랍인들은 동아프리카인을 군인이나 성노예로 끌고 갔다. 조선의 노비제는 1894년 철폐되었지만 인신매매와 갑질 등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노예무역은 200년 전 유럽에서 금지되었지만, 1948년에서야 유엔총회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노예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이다. 힘세고 우월한 인간이 동족인 인간을 짐승처럼 부리고 잡아먹는 야만이다. 그러면서 인권과 인간 존엄을 말하는 고상함이라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민낯이다.
자유는 인간의 최소가 만인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노예의 집 구석에는 넬슨 만델라(Nelson R. Mandela)의 문구가 적혀 있다. “To be free is not merely to cast off one’s chains, but to live in a way that respects and enhances the freedom of others.” 자유라는 것은 단지 자신에게 씌워진 쇠사슬을 벗어던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고 증진하려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노예에게 자유는 마음까지 옥죄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속박이 있기에 자유가 의미를 갖는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이에게는 속박이 없으니 자유도 (의미)없다. 하지만 목과 손발을 감고 있는 쇠사슬을 풀었다고 해서 인간의 자유라고 말할 수 없다.
소정 선생님(1986: 96)은 “최소의 것이 침범받았을 때에 본연의 인간이란 무엇일까를 더욱 생각하게 된다” “최소를 가질지 말지 하는 한계상황에 사는 사람만이 그 최소마저도 상실된 상태에서의 존재를 음미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최소한은 부끄러움과 추위를 면할 수 있는 옷이며, 갈증을 달랠 한 모금의 물과 허기를 채워줄 음식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밀어를 속삭이며 살고 싶은 곳에서 식구들과 머무는 것이다. 한계상황을 경험한 사람만이 인간의 최소(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 수 있다.
소정 선생님(1986: 96)은 또 “최소의 것을 빼앗긴 자가 갖는 행복을 하나 더 찾는다면 빼앗은 자를 미움으로만으로 대하지 못하는 인간의 품위를 갖게 되는 행복이다” “최소에의 흠모를 존중시하는 이는 최소의 것을 빼앗은 이에 대하여도 최소의 것이 부여되기를 바라는 인간 본연에 대한 흠모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최소를 빼앗기고 고통을 당해본 사람은 다른 사람(심지어 자신의 최소를 박탈한 자까지도) 역시 최소한이 보장되어야 함을 믿는다.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소정 선생님의 최소가 만델라의 자유다.
윤씨 패거리의 자유는 기회주의자의 제멋대로다
윤석열씨는 걸핏하면 자유를 들먹인다. 그가 읽은 원고에 자유가 몇 번 나오는지가 기사거리가 된다. 도대체 그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그의 언행과 측근들의 면면을 보면 윤씨의 “자유”는 인간의 최소한이나 공감능력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 인간의 최소한를 박탈당한 한계상황을 의미있게 경험한 이가 드문 까닭이다.
양심을 버리고 양지만 쫓은 자들에게 자유는 승자의 전리품이다. 간도 쓸개도 없이 잇속만 차리는 기회주의자들의 패악질이다. 패자를 노예로 삼고 아무런 제한없이 제멋대로 능욕할 수 있는 권리다. 승자만이 인간이고 패자에게 인간의 최소한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승자의 언행은 모든 법과 윤리에 우선한다. 모든 책임은 패자에게 있다. 이것이 윤씨 패거리들이 말하는 자유다. 노예사냥꾼이나 인신매매범의 정신줄이다. 윤씨의 “자유 민주주의”가 조국·이재명씨에게 그토록 박하고 모질었던 까닭이다. 마음대로 소환하고 압수수색하고 영장치고 기소하고 흘렸다. 하지만 제동장치 없는 자유나 최소한이 없는 민주주의는 공허할 뿐이다.
같이 읽기
- 박헌명. 2024. "김여사" 정권의 무소불위와 무소능위. <최소주의행정학> 9(5):1.
- 박헌명. 2022. 자유민주주의와 "유지민주주의". <최소주의행정학> 7(7):1.
- 박헌명. 2022. 무소불위無所不爲와 무소능위無所能爲. <최소주의행정학> 7(1):1.
인용: 박헌명. 2024. Goree섬에서 인간과 자유를 생각하다. <최소주의행정학> 9(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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