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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최소주의행정학

정세균 의장에게 무엇을 당부하셨을까? 본문

민주주의로 가는 길

정세균 의장에게 무엇을 당부하셨을까?

못골 2019. 4. 7. 21:26

정세균 국회의장이 수난을 겪고 있다. 농림수산부장관 해임안을 9월 24일 본회의 차수를 바꾸어 표결에 부쳤고,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해임안은 통과되었다. 이에 앞서 대정부질문에서 국무위원들은 시간을 벌려는 듯이 일부러 길게 답을 했다. 자정이 가까와 오자 여당 원내대표는 밥먹을 시간도 안주냐며 의장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이른바 여당의 “필리밥스터”라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 


해임안 표결처리에 반발하여 여당대표는 정의장이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했다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정의장이 죽든 자신이 죽든 끝장을 보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다른 여당 의원들도 동조해서 밖으로 뛰쳐나가 반공멸공 시위를 하듯이 정의장을 규탄하고 사퇴할 것을 요구하였다. 뜬금없고 우스꽝스런 허세일 뿐이다. 표결처리는 핑계일 뿐 국정감사를 파행으로 이끌어 박근혜씨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덮겠다는 의도다. 희생양이 필요했던 차에 마침 정의장이 꼬투리를 잡혀 애먼 시비거리가 된 것이다. 서슬을 시퍼렇게 세운 이정현씨든 정진석씨든 국정감사가 끝나면 아마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의장에게 다가가 인사도 하고 농담도 건넬 것이다. 애초부터 “의로움”이 아닌 “이로움”을 쫓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이번 일은 어쩌다 벌어진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이미 뿌리깊게 박힌 “진영 논리”를 대변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기득권을 둘러싼 힘겨루기이고, 그 잔상이 “필리밥스터”인 것이다. 복잡하고 미묘한 이해관계가 뒤얽혀 있는 문제이다. 소정 선생심께서 계셨더라면 아마도 정의장은 찾아뵙고 말씀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권유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정치인이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나는 선생님께서 정의장에게 어떤 말씀을 당부하셨을지 궁금해진다. 특별히 당면한 상황을 어찌 인식해야 하는지, 국회의장의 일을 어떤 방향과 원칙으로 해나가야 할 지, 어떻게 처신를 해야 할지에 관한 말씀을 상상해본다. 정의장이 이미 선생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겠지만, 선생님의 초월윤리를 비폭력과 최소주의에 중점을 둔 당부 말씀으로 적어본다. 

   
끝까지 참고 견뎌라


첫번째 말씀은 아마도 “참아라”였을 것이다(이문영 1991: 113-115). “참는다는 것은 포악함에 시달리는 사람이 갖출 덕목의 모두이며 비폭력과 동의어이다”(이문영 1986: 336). 순간 순간 짜증이 나고, 억울하고, 화가 나더라도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 아무리 분노가 치밀어 올라도 속으로 삭여야 한다.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쏟아내는 순간 그것이 끝이다. 되돌릴 수 없는 惡手다. 비폭력에서 시작하여 개인윤리, 사회윤리, 자기희생에 이르는 긴 여정을 참아야 한다(이문영 2001: 349). 현재 아무리 여소야대가 되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지금은 민생이 어려운 시기이고 경제와 안보가 위험한 상황이고 헌정질서가 흔들리는 무서운 정국임을 직시하여 이를 악물고 참고 견뎌야 한다. 끝까지 참고 견디고 기다려라(박헌명 2016다).


천부의 마음을 놓지 말아라


기득권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이 아무리 떼를 쓰고 난동을 부린다 해도 그들도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온 天賦의 마음이 있음을 잊지 말아라(이문영 1991: 44). “모든 나쁜 것은 官에서 나온 것이며 모든 좋은 것은 民에서 나왔다”(이문영 1991: 42). 그들은 단지 나쁜 정치 구조 속에서 무조건 해먹는 것이 제일이라는 악을 배운 것이다. 친일파의 매국매족, 이승만의 독재와 부정부패,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부 쿠데타 등을 통해 무슨 수를 쓰든 수단방법 안가리고 권력을 잡고 봐야 한다는 악을 온 몸으로 배운 자들이다. 


하지만 그 기회주의자들도 반성하고 천부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설령 천부의 마음을 잊고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며 패악질을 한다 해도 그들에게도 인간으로서 최소한(먹을 것이든 기본권이든 간에)은 주어져야 한다는 연민과 긍휼을 가져야 한다. 절대로 “너 죽고 나 살자”라는 배타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이정현씨의 사생결단은 애초부터 빗나간 치기일 뿐이지만, 밉든 곱든 그들과 이 땅에서 같이 살아가야 한다. 저들도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는 이웃이다. 그래도 한 켠에는 천부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놓지 말라. 이런 인간관은 종교를 초월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거지에게 적선하듯 나쁜 짓을 하는 상대방에게 무조건 베푸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자신의 마음을 평안하게 다스리고 인간으로서 품격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합리성과 객관성에 의지하라


모든 언행은 합리성과 객관성에 근거하라. 헌법과 법률의 내용에 따라서 판단해야 하고, 어떤 주장이 원칙과 이치에 맞는지를 따져야 한다. 합리성과 상식에 어긋나는 언행은 절대 하지 말라. “일단 어떠한 경우에도—그러니까 돌을 던지도록 유도된 상황하에서도—학생들이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 ... 그리고 안할 것은 세상없이 무서워도 안해라”(이문영 1986: 291-292). 특히 단순히 노여운 감정을 발산하는 행동은 상대방(힘센 자)의 강경대응으로 이어지는 어리석은 짓이다(이문영 1986: 297). 합리성에 비추어 문제가 있다면 세상없어도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예컨대, 권력을 움켜쥔 자가 아닌 백성이 이 나라의 주권자이고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룬다는 민주공화국의 “최소”는 죽었다 깨나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내용면에서 합리성을 확신할 수 없다면 절차를 따져본다.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각종 조례, 규칙, 절차를 따르는 것은 기본이다. 아랫사람에게 하나하나 물어서 국회법과 각종 절차를 따를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읽고 묻고 철저하게 공부하라. 지식을 습득하는 개인윤리이자 초월윤리의 두 번째 덕목이다. 토씨 하나가 중요한 대목에서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 그래서 앞으로 벌어질 각종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라. 또한 자연의 질서나 사회에서 보편성있게 받아들이는 규범과 상식을 존중하고 순종하라. 일단 다른 사람과 약속한 것은 당장 손해가 나더라도 무겁게 지켜라. 그만큼 합의를 신중하게 하라.  


이도 저도 기댈 데가 없는 사안이라면 최소한 객관성이라도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하나씩 양보하거나 나눠줄 수도 있고, 한 쪽이 빵을 나누고 다른 쪽이 먼저 고르게 할 수도 있다. 의결정족수를 따져 다수결로 정할 수도 있다. 하다 못해 제비뽑기나 동전던지기를 할 수도 있고 제 3자에게 의견을 물어 정할 수도 있다. 상대방이 쉽게 동의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성 있는 문제해결 방식을 찾아라. 물론 기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공정한 주고 받기를 낯설어 하고 불편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합리성과 객관성에 의지하여 일을 처리하라. 


주먹질이 아닌 말로 하라


국회의장이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할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生死가 갈리는 상황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아무리 불손하게 대들고 패악질을 해댄다 해도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 초월윤리의 첫번째 덕목인 비폭력이다. 여기서 폭력은 실제 폭력행위과 위협을 구분하지 않는다. 발길질도 폭력이고 주먹을 코앞에 들이밀고 윽박지르는 것도 폭력이다. 폭력에 물리력을 동원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언어폭력일 수도 있고, 몸짓 폭력일 수도 있고(예컨대, 손가락욕), 심리 폭력일 수도 있다. 강한 자가 하든 약한 자가 하든, 웃사람이 하든 아랫사람이 하든 폭력은 폭력이다. 


예컨대, 대통령이 측근 비리에 침묵하고 판결지침을 내린다 해도 국회의장으로서 거친 언동과 난동은 자제해야 한다. 법원에서 야당에게 불리한 판결을 거듭해서 내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특히, 기회주의자들이 음흉하게 폭력을 유도하는 계략을 펼칠 때에 주의해야 한다. 험한 말폭력에 똑같이 대응하는 것은 정치판에 대한 혐오감을 키울 뿐이다. 정치불신과 무관심을 조장하려는 잔머리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기득권의 논리에 빠져들면 답이 없다. 소정 선생님의 민주화 운동의 화두가 “정부도 거절하지 못하는 말을 하되 말만 한다”였음을 상기하라(이문영 2008: 497).


폭력을 거두고 차분하게 이치에 닿는 말을 하여 상대방과 백성의 이성에 호소해야 한다. 국회를 대표해서 할 수 있고 해야 할 말을 해야 한다. 자신의 양심과 신념과 합리성에 의지하여 진심을 담아 당당하게 말을 하라. 국회가 백성을 대의하는 기관인 이상 백성의 입장을 끈질기게 고수하여 행정부와 사법부에 맞서면 된다. 예컨대, 지난 9월 1일 정기국회 개회사는 民意를 대변하는 국회의 본분에 충실한 말이다. 그래서 폭력의 반대말은 비폭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말하는 것이다(이문영 1986: 290, 1991: 322, 2001: 246).  


합당한 말을 하라


주먹질을 하지 말고 말을 계속 하되, 꼭 합당한 말을 하라. 패악질을 당하더라도 참고 견디면서 옳은 말을 계속 하라. 무방비로 매를 맞는다 해도 (부당한 비난을 받는다 해도) 말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 대통령이 싫어한다고 입을 다물고, 여당이 기분나빠한다고 주저하고, 야당이 꺼려한다고 멈칫하고, 공무원들이 반발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국회의장의 본분을 망각한 일이다. 정의장이 박근혜씨가 싫어할 것같다며 현안인 THAAD 배치에 대해 침묵했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장관 해임안이 통과된 뒤에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의례 인사만 건네는 것이 아니라 장관을 해임하는 것이 순리이고 공론에 따라 THAAD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위협하거나, 떼쓰거나, 조롱하는 식이 아니라) 말했었야 했다. 서로 얼굴을 붉힐 수도 있겠지만 계속 할 말을 했어야 했다.


그러면 합당한 말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통치자도 가지고 있는 이성(理性)이 감히 거절하지 못하며 이 이성을 환기하는 말”이다(이문영: 2008: 66, 80, 435). 정말 이치에 꼭 들어맞고 합당해서 누구도 반대하지 못할 못할 만큼 옳은 말이다. 진리다. 심지어는 박근혜, 이정현, 정진석, 김무성씨조차도 차마 양심상 반박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말을 하라는 것이다. 그럴수록 말의 효과가 커진다. 물론 그들이 자기최면을 걸어 이치에 합당한 말을 무시하거나 비난할 수도 있으나, 자기 양심을 영원히 속이거나 백성의 양심까지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만큼 정의장은 그 상황에 꼭 맞는 그런 말(진리)를 찾도록 애써야 한다. 


기회주의자의 궤변에 놀아나지 말라


주의할 것은 기회주의자들의 음흉한 말장난에 놀아나면 안된다. 그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과 합리성과 객관성을 목숨줄처럼 붙들고 있어야 한다. 기회주의자들은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유리한 대로 말을 바꾸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치면 안된다. 소피스트들의 비열한 말법에 넘어가면 안된다. 오감을 자극하며 주의를 끄는 궤변 속에 비수와 함정이 여기저기 감춰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 여당의원들은 정의장이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있지만,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결의안을 강행처리한 후에는 “의회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비아냥거렸던 자들이다. 국정원과 군대가 개입한 지난 대선에서 야당에게 불복하는 것이냐고 윽박질렀지만, 2002년 대선에서 불복하고 재검표를 요구했던 자들이다. 그때 그때 이익을 쫓아 말을 바꾸고, 속이고, 윽박지르고, 떼를 쓰는 기회주의자들이다.


그러므로 정의장은 “그들의 합리성” 안쪽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있는 속내(이해관계나 욕심)를 날카롭게 꿰뚫어 봐야 한다(이문영 1991: 120). 그 합리성이라는 거죽은 보통 입장(position 혹은stance)으로 표현되는데, 기회주의자들은 종종 속내와는 다른 입장을 내세워 상대방을 헷갈리게 한다. 따라서 기회주의자들의 궤변을 원칙과 기준에 비춰 차분하게 가늠해봐야 한다. 말폭력에 밀려서, 세력 싸움에 밀려서 아무런 생각없이 “허허허” 방심하면 안된다. 그 순간 死地에 들어서는 것이다. 중정과 안기부 직원들이 곱게 말하면서 회유할 때 도장을 찍으면 바로 죽은 목숨이다. 살아도 이미 산 목숨이 아니다. 소위 “덕장형” 의원이나 “신사의원”이라는 정의장이 특별히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싸움꾼은 감을 가지고 싸운다”(이문영 2008: 346)는 말 뜻을 깊이 새기라.


철저한 비폭력이어야 한다


비폭력은 철저하게 비폭력이어야 한다(이문영 2001: 149). 어설픈 비폭력은 폭력과 마찬가지다. 말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이성이 아닌 감성을 자극하여 불필요한 대립을 초래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말하는 표정, 발음, 높고 낮음, 몸짓 모두 상대방을 쓸데없이 흥분시켜서는 안된다(박헌명 2016나). 욕설은 물론이려니와 무심코 내뱉은 가시돋은 말, 빈정대는 농담, 불쾌한 눈빛 모두를 피해야 한다. 입에서 나왔다고 다 말이 아니다. 말 형식만을 빌린 폭행에 가까운 말이며 사실상 폭력이다(이문영 1986: 242, 2008: 246). “악한 통치자의 악은 피치자 ...의 성숙하고 완전한 제재에 의하여 견제되어야” 하는데(이문영 2008: 59), 이것이 철저한 비폭력이다.


특히 강자가 악랄한 폭력을 행사해올수록 더 철저하게 비폭력의 길을 가야 한다(이문영 1986: 289). 악한 통치자가 일부러 음흉한 폭력을 밑밥으로 던져 약자의 분노를 유발하고 성숙하지 못한 폭력을 유도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양아치들의 잔꾀에 넘어가면 더 잔혹한 폭력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아채야 한다. 그렇다고 악한 강자의 협박과 물리력에 못이겨 옳지 않은 말을 하거나 비굴하게 진리(옳은 말)를 더듬거려서는 안된다. 어느 상황에서든 오호 감정을 잘 다스려 자신의 정당한 의사표시를 충실하게 전달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신사의원”이라는 정의장에게 굳이 철저한 비폭력을 거듭 강조하는 까닭을 곱씹어보았으면 한다.   


“교과서 읽기” 신공을 연마하라


무서운 상황에 직면할수록, 일촉즉발의 위기에 몰릴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분노와 흥분과 긴장과 두려움을 억누르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을 얕잡아 보거나, 무서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감정 모두 위험하다. 마음을 끝까지 집중하지 못하고 흩으리는 순간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찰라의 방심, 티끌같은 실수가 빌미가 되어 삽시간에 적들의 십자포화를 받게 될 것이다. 진리에 가까운 옳은 말을 찾아냈어도 제대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달변일 필요는 없다. 감정을 죽이면서 필요한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때 “교과서 읽기”는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다(Park 2016). 교과서를 읽듯이, 공자왈 맹자왈 하듯이 옳은 말을 또박또막 읽어나가면 된다. 특히 소정 선생님 말투처럼 좀 어눌하게 찍어눌러 말하면 효과가 배가 된다. 그렇다고 “발연기”하듯이 티를 내거나 상대방을 약올리는 듯한 느낌을 주면 안된다. 좋고 싫은 감정을 완전히 죽이고 그냥 평서문에 가깝게 발언을 하면 된다. 정진석씨의 밥타령에 대꾸하지 말고, 예컨대, “국회법에 의하면 ... 입니다”라고 일러주면 그만이다. 물론 이런 神工은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체득할 수밖에 없다. 위기 상황에서 치열하게 참고 견디는 과정에서 온 몸으로, “감”으로 느껴야 한다.


꼭 필요한 말만 최소한으로 하라


합당한 말을 하되 꼭 필요한 말만 하라. 가장 절실한 실존적 발언 혹은 최소한의 발언을 말한다. 말하자면 “긴요한 최소행동”을 하라(이문영 1991: 25). 먼저 불필요한 말을 해서 기회주의자들을 자극하거나 그들에게 반격할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본회의장에서 어떻게든 트집을 잡으려는 정진석씨와 언쟁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밥먹을 시간 30분은 중요한 논쟁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규칙을 말하고 그의 시비질에 일절 대꾸하지 말았어야 했다. 붓다도 말같잖은 궤변에 대응하지 않고 침묵했다.


노무현씨도 노건평씨에 대한 의혹으로 몰렸을 때 방송에 나와서 구구절절 친형을 변명하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간단히 “그러면 검찰이 조사하도록 하자”라고만 답했어야 했다. 조사해서 죄가 있으면 죄값을 받으면 되고 아니면 의혹을 제기한 자가 책임을 지면 된다. 방송에서 친형을 옹호한다 한들 누가 믿을 것인가.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며 간절한 말이 아니었다. 기회주의자들이 의혹을 증폭시키고 압박을 강화하는데 활용한 불쏘시개였을 뿐이다. 이에 반하여 박근혜씨가 최순실 등 측근들에 대한 수많은  의혹이 사실이 아닌 비방, 폭로, 유언비어라고 깎아내린 것은 말은 짧되 불필요한 말만 한 것이다. 어차피 그대로 믿을 사람도 없으며, 죄가 있고 없음은 대통령이 아니라 검찰과 판사의 몫이다. 


다른 하나는 가장 중요한 말만 최소로 하는 것이다. 꼭 필요한 것이 여러 개 있더라도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것 하나만 말해라. 상황이 어려울수록 힘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손바닥을 삼각뿔 꼭지로 누를 때가 삼각뿔 바닥으로 누를 때보다 아픈 법이다(Park 2015: 291). 이것 저것 말이 많으면 정작 필요한 것을 얻기 어렵다. 고구마 줄기를 잡아다니면 주렁주렁 고구마가 매달려 올라오듯이, 그런 핵심 고리가 되는 줄기를 찾아서 집중해서 말하라. 


마지막까지 때를 잘 기다려라


말을 하는 것도 때가 있다. 말을 계속하라는 의미는 쉬지 말고 입을 놀리라는 뜻이 아니다. 꼭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는 뜻이다. 남이 꼬드긴다고 해도, 협박을 한다고 해도, 매질이든 한다 해도 옳은 말을 하라는 뜻이다. 단 말을 해야 하는 때를 잘 포착해야 한다. 맹수가 먹이에게 달려들 순간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항상 입을 열어 이 소리 저 소리를 늘어놓으면 귀를 기울여 듣는 사람이 없다. 말의 값이 싸구려가 된다. 


말을 해야 하는 때는 대개 옳은 말을 하기가 어려운 때다. 옳은 말이지만 직접 나서서 말하기 껄끄러운 상황이나 말하지 못하도록 위협을 받는 때다. 이런 때가 말의 값이 비쌀 때다. 말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이 마지막 순간까지 말을 아끼면서, 기회주의자들의 난동을 잘 참고 견디고 기다려야 한다. 그 순간을  포착한 다음에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행동해야 한다. 반박자라도 늦거나 빠르면 맹수는 먹이의 명줄을 물어뜯기 어렵다. 어렵고 무서운 상황에서 그 정점을 기다려 주저하지 말고 적의 급소에 “진리라는 칼”을 깊숙히 찔러넣어라. 물론 이치에 합당한 최소한의 말이어야 한다. 그런 진리를 사자후獅子吼로 위엄있게 토해내라.   


약자인 여당에게 관용을 베풀라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보면 야당 국회의장은 왕조같은 체제에서 약자에 해당한다. 입법부가 행정부에 종속되어 있는 한(여당이 청와대에 휘둘리는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국회 내에서 보면 국회의장은 강자다. 한편으로는 제왕의 폭정을 참고 견뎌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수인 여당이 힘을 동원하는 “약자의 패악질”을 참고 견뎌야 한다. 전자가 인고(persistence)라면 후자는 관용(tolerance)에 가깝다. 서로 지위와 힘이 다른 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이다. 


정의장은 국회 내에서 소수인 여당의원들을 차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과 규칙 내에서 더 배려하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콩쥐의 새어머니가 자신이 낳은 팥쥐가 아닌 콩쥐에게 더 관심을 둬야 하는 이치와 같다(이문영 1991: 230). 초월윤리의 세 번째 덕목인 사회윤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용은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기회주의자들의 막무가내를 예방할 수 있다. 주먹질이 아닌 말로 대화하도록 이끌 것이다. “진영 논리”가 아닌 합리성에 비추어 의견을 견주도록 할 것이다. 그 결과 합의와 협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합의모색은 초월윤리의 두 번째 덕목인 개인윤리이다. 


하지만 모든 패악질과 난동을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당이 국회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하여 판을 뒤엎는 것은 잘못이다. 장관 해임안을 국회법에 따라 처리한 것은 여당이 즐거움을 못얻은 것이지만 그것으로 국회의장을 규탄하고 고소한 것은 지나친 난동이다. 반면에 국회의장으로서 여당의원의 기본권을 외면한다면 이것 역시 잘못한 것이다. 만일 국회의장이 이승만씨와 박정희씨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여당의원들을 물리력을 동원하여 내쫓거나 강금하고 투표를 강행했다면 국회의장은 그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야 마땅하다.  


“(백성이) 즐거움을 못얻었다고 해서 그의 上을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며, 백성의 위에 있으면서 백성과 동락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不得而非其上者非也 爲民上而不與民同樂者亦非也)”(『孔孟 』「梁惠王」下 4장).
따라서 천부의 마음을 갖고 여당 의원들을 적이나 원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반자로 보고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지켜봐주라. 관용을 베풀어 대화를 유도하고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 다만 부당하게 上을 비난하고 판을 뒤엎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물론 폭력이 아닌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  


안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 있다


해야 할 것을 안하는 것보다는, 마땅히 안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 더 나쁘다(이문영 1996: 420). 국회의장이라는 자리를 권위와 권리와 명예로 생각하지 말고 책임과 의무와 멍에로 받아들여라.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 권위가 있고 힘이 있는 법이다. 일을 그르치면 권위도 명예도 없다. 권위는 그 자리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만들고 다듬어야 한다(박헌명 2016가). 조지훈 선생님의 말씀대로 안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 있다.


공식 업무는 물론이려니와 업무 외의 언행에도 절제가 있어야 한다. 본인은 물론 친지와 측근을 잘 다스려 조심하도록 하라. 김대중 정부가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측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허물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기억하라. 그러니 밖에서 저승사자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처럼 경계해야 한다. 국정원이든 사이버사령부든 아무리 뒤지고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절대왕정으로 회귀하는 듯한 무서운 때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절제가 무기력이 아니라 기다리는 힘이며 성장하는 힘이며 폭력보다 강한 힘이다”라고 말씀하셨다(이문영 1991: 19).


관행과 관습은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것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부당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관행과 관습이 있다면 합리성과 객관성을 따져서 고쳐라. 법인카드로 방울토마토 사고 명품 지갑을 사는 것이 관행이라면 과감하게 거부해야 한다. 적법성과 합리성을 따지기 전에 누가 그런 것을 용납하겠는가? 국회의장의 권한과 예우도 잘 따져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라. 자신의 권위를 다지고 키우는 일이다. 소정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비폭력이자 스스로 가진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자기희생의 길이다.  


인터넷에서도 참아라


요즘 Facebook, Youtube, Twitter 등 유권자와 대화가 가능한 인터넷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런 사회매체(Social media)의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정치 견해, 최근 활동 등을 유권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지만, 쌍방향 소통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실제 대화에 몰입해서는 안된다. 본인이 바쁜 것도 바쁜 것이지만, 유권자와 불필요한 논쟁을 벌이거나 정치인 입장의 모호성을 해치는 일은 결코 현명하지 않다(Stromer-Galley 2000). 유권자의 질문에 답하느라 인터넷에 오래 머무는 것은 실익이 없다. 인터넷에서 대화는 쉽게 걷잡을 수 없는 언쟁(flaming)으로 번질 수 있다. 본전도 챙기지 못하는 선택이다. 또한 사회논란이 있는 특정 사안에 대해 찬반을 밝히라는 요구에 섯불리 답하는 것 역시 어리석다. 기회주의자들이 “사상검증”을 한다면서 다그쳤을 때 빨갱이가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치는 격이다. 그래봤자 믿어줄 사람도 없고 잘해봤자 순진무구일 뿐이다. 그러니 국회에서도, 인터넷에서도, 사회매체에서도 참아야 한다.


정치인으로서 유권자와 쌍방향 소통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이론과 명분과 당위와 다른 길에 있다. 이런 당위와 현실간의 긴장을 모호함으로 잘 관리해야 한다. 첫째, 직접 Facebook을 열어보지 말고 계정관리자가 잘 정리해온 유권자의 의견을 파악하라. 바로 답글을 다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한 뒤에 관리자를 통하여 소통을 하는 것이 좋다. 계정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도 주위를 환기시켜야 한다. 아무리 짧은 글이나 단순한 사진이라도 충분히 협의를 거쳐서 게재하도록 한다. 특히 실무자 개인의 감정과 선택으로 답하고 사진을 올리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조그마한 실수와 방심이 기회주의자들이 원하는 시비거리가 되고 반격의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견디어 국회의장의 전범이 되시라


소정 선생님은 정의장이 비폭력에서 개인윤리, 사회윤리, 그리고 자기희생에 이르는 초월윤리를 실천하여 평화로운 국회를 구현하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무모한 진영 대결로는 民意를 대변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기득권을 틀어쥐고 있는 기회주의자들이 원하는 방향이다. “자칭 보수”들에게 휘둘려서도 안되지만 똑같이 폭력으로 대응해서도 안된다. 폭력을 당하더라도 참고 견디면서 옳은 말을 계속 해 나가는 비폭력이 절실할 때다. 주먹질과 발길질과 말폭력을 자제하면서 “말로 하는 국회”로 바꿔나가야 한다. 옳은 말로 경쟁을 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정의장이 폭력 구도를 극복하고 야당은 물론이려니와 여당에서도 인정하는 국회의장의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 후세에 議長典範으로 오래 불리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박헌명. 2016가. 권위란 무엇인가? Barnard 다시 읽기.『최소주의 행정학』1(4): 1-3.

박헌명. 2016나. 이문영의 비폭력과 현실적 이상주의.『 최소주의 행정학』1(6): 1-2. 
박헌명. 2016다. 비폭력은 참고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다.『 최소주의 행정학』1(9): 1-3.
이문영. 1986.『겁많은 자의 용기』, 2판. 서울: 중원문화.
이문영. 1991.『자전적 행정학』서울: 실천문학. 
이문영. 1996.『논어맹자와 행정학』서울: 나남출판.
이문영. 2001.『인간 종교 국가』서울: 나남출판.
이문영. 2008.『겁많은 자의 용기: 지켜야 할 최소에 관한 이야기』서울: 삼인. 

Park, Hun Myoung. 2015. Moon-Young Lee’s Transcendence Ethics for Democratic Public Administration: Meanings and Rationales of Lee’s Nonviolence. World Environment and Island Studies 5(4): 283-296.

Park, Hun Myoung. 2016. Moon-Young Lee’s Transcendence Ethics in Conflict Management: Lee’s Nonviolence, Conflict Episode, and Principled Negotiation. World Environment and Island Studies 6(2): 99-108.


Stromer-Galley, Jennifer. 2000. on-Line Interaction and Why Candidates Avoid It. Journal of Communication 50(4): 111-132.




원문: 박헌명. 2016. 정세균 의장에게 무엇을 당부하셨을까? <최소주의 행정학> 1(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