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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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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6.18 과격한 백성과 과격한 정치꾼의 난장판

얼마 전 가깝게 지내는 분에게 안부를 물었다. 자연스레 코로나 얘기로 흘렀다. 그 분은 기다렸다는 듯이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정책을 비난했다. 부도덕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했다며 분개했다. 방역은 물론 부동산, 경제, 외교까지 최악이라고 했다. 윤석열씨가 잘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어떤 나쁜 짓을 저지른다 해도 문씨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했다. 빨갱이에 대한 증오를 초월하는 저주다. 놀란 나는 그 적개심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과격한 백성이 홧김에 벌인 난동

최고 학위까지 받은 분이 사실관계에 무감각한 것은 충격이었다.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이 미국에서 백만명이 넘고, 작년 말 한국은 인구 만명당 사망자 수에서 OECD 최저치였고, 일본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사망자 2.4만명)이 일본(3.1만명)은 물론 다른 나라보다 사망자가 더 많다고 강변했다. 애초부터 중국유입을 차단했어야 했고, 통계치가 왜곡되었고, 백신을 제때 확보하지 못했다는 등 수구세력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김정숙씨가 전용기를 타고 외국을 제멋대로 드나들었다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무슨 재주로 그 나라의 출입국 기록을 삭제했다는 것인지... 김씨의 의상이나 장신구에 관한 의혹도 마찬가지다. 이미 반증된 사실이 있고 사비로 샀다는데도 막무가내다. 사실이 어찌되었든 간에 문정권은 나빴고 또 나빠야만 한다는 것이 그들의 자존심이고 교리인 것같다. 종편과 수구 유투버들의 우민화가 승리한 것인가.

이른바 친문과 친이라는 자들도 사실과 이성과 상식과 담쌓은 극단주의자들이라는 면에서 수구세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과연 문재인씨는 “친문”의 언행에 동의할까? 이재명씨는 “친이”의 난동을 응원할까? 그 우매한 난사질을 즐기는 자들은 따로 있을터. 이재명 지지자라는 어느 지인은 문정권에 대해 극한 혐오를 보였다. 한 달새 코로나로 부모를 모두 잃은 그는 무지한 방역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비분강개했다. “대깨문” 때문에 망했고 그들과는 이성적인 대화가 안된댄다. 너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이다. 그 “반문”은 문정부의 사실을 말하던 나를 “대깨문”으로 몰아붙였다. 부모를 잃은 황망함은 이해할 수 있으나 나랏일과 뒤섞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외국에서 배울만큼 배운 사람 아닌가. 누가 적인지 망각한 채 서로 물어뜯고 치고 박다가 홧김에 일을 그르친 것이다. 죽쒀서 개준 셈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짐작이 간다. 코로나 사태가 길었던 탓일까? 피로해졌고 예민해졌고 날카로와졌다. 과격한 말전쟁에 신물이 났다. 필요한 것은 시시비비가 아니라 짜증을 해소해 줄 희생양이었다. 정신줄을 놓은 것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패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적들이 써준 주문 그대로를 염불처럼 외고 있다. 친문반문, 586책임, 반미종북, 내로남불, 오기정치, 팬덤정치... 586 전부를 생매장하고 “폭망”을 인정하고 석고대죄를 한다고 해서 수구세력이 주술을 멈추겠는가? 그들이 노무현과 김대중을 칭송하는 까닭은 죽어서 더이상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노무현을 잃은 전철을 반복하고 있다. 나혼자 살겠다며 문재인이든 이재명이든 동지들의 목을 하나하나 먹이로 내어줄 태세다.

과격한 정치꾼이 벌이는 난정

정치권의 과격함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선거기간 내내 말실수와 말폭력으로 일관했던 윤씨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디로 튈 지 본인 스스로도 모르는 언행은 과격 그 자체다. 집무실을 옮긴답시고 느닷없이 국방부를 내쫓았고, 정부부처는 연쇄반응으로 몇달째 술렁이고 애꿎은 시민들은 교통혼란을 겪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과 방사포는 계속되는데, 공언했던 선제타격·원점타격은 깜깜 무소식이다. 다주택소유자 중과세는 징벌이고, 자택 시위는 “법에 따른 국민의 권리”라 했고, 배우자의 기행에 대해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고 답했다. 이 공직자의 직함이 딱할 지경이다.

어쩌다 법무장관이 된 자 역시 과격하다. 보복수사는 물론 그 재판까지 다 해먹겠다는 자신감이다. 거침없는 배우자의 행보는 줄리와 유지 딱 그 수준이다. “내가 말을 뒤집든 뭘 하든, 니덜이 어쩔건데?” 이들에게 못할 일은 없다. 철딱서니없는 왕을 쥐락펴락하는 좌의정과 대왕대비의 품격이다. “윤핵관”들의 입도 거칠어졌다. 연이은 선거 패배로 자중지란에 빠진 야당도 과격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수구언론은 이런 말전쟁을 부추기고 정치혐오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들이 원한 판이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소정 선생님은 “과격한 정부는 민의를 수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패하고 분열하는 국민이... 한덩어리가 되어 그 과격함이 극에 달하게 된다”라고 적었다(2008: 578). 곰곰히 생각해 보라. 누가 방송과 신문에서 날선 칼을 휘두르고 있는지. 여야를 막론하고 그들이 바로 이 때다 싶어 날뛰는 기회주의자들이다. 과격한 정치꾼과 과격한 백성이 어우러져 나라를 난장판을 만들고 있다. 무자비한 폭정暴政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난정亂政이다. 기준이 오락가락하고 고무줄 잣대로 들이대니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작두에 올라탄 무당의 칼춤에 사실과 이성과 상식이 쓰러지고 있다.

절박한 반부패·반분열·반과격 저항

하지만 참혹했던 일제를 버텨내고, 야만스런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를 무너뜨린 우리다. 충분히 좌절하고, 충분히 반성하고, 충분히 절박해져야 한다. 함석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부패하지 말고, 분열하지 말고, 과격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가 궤변과 막말을 쏟아내도 과격한 발언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 폭력의 대안이 폭력일 수 없기 때문이다(1986: 290). 매를 맞으면서도 담담하게 사실과 진실을 말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 (1991: 118). 적의 양심이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말을 해야 한다(2008: 80). 끝까지 참고 감정이 아닌 이성과 상식에 매달려야 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심정으로 동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동지의 허물이 아닌 자신의 미숙함을 고백해야 한다. “대깨문”이나 “수박”을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말을 아껴야 한다. 비폭력 저항의 시작이다.

 

인용: 박헌명. 2022. 과격한 백성과 과격한 정치꾼의 난장판. <최소주의행정학> 7(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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