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5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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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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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렇다면 시민의 비폭력 운동이면 충분한가? 독재자와 악한 정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악한 정권이 무서워하는 것은 시민들의 폭력과 난동이 아니다. 시민들이 자신이 저질러 놓은 나쁜 짓을 알아차리고 주권자로서 권리를 깨닫는 것을 싫어한다. 진실을 따져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밝혀내는 것을 주저한다. 사실과 진리를 말하는 것을 꺼려한다. 주권자의 기본 권리를 요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시민들이 스스로 모여서 군중의 목소리로 외치는 것을 무서워한다. 시민들이 주먹질이 아닌 비폭력으로 질서있게 최소한의 요구를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시민들이 흔들리지 않고, 참고 견디면서, 정당한 주장을 계속 요구하는 것을 괴롭게 생각한다. 

반면에 악한 정권은 시민들이 주권자임을 잊고 현실 문제에 무관심한 것을 좋아한다. 사실과 진실에 무감각한 시민들을 사랑한다. 시민들이 서로 비난하고 다투고, 단합하지 못하고 약속을 서로 어기고, 뿔뿔이 흩어지기를 원한다. 성난 시민들이 모여서 잇속이나 챙기고 부당한 주장을 남발하길 고대한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리고 그 난동이 그저 일회성 행사로 끝나기를 내심 바란다. 독재자들은 이런 시민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만만하기 때문이다.  

이문영(1996)은 중도中道를 잡아나가는 시민의 운동이 악한 정권을 몰아낼 수 있는데, 이렇게 執中하는 시민 운동의 뿌리를『논어』와『맹자』에서 찾았다. 시민 운동은 (1) 좌파나 우파 극단이 주도권을 잡는 운동을 멀리하고(620쪽), (2) 공개적이고, 비폭력적이고, 참여자간 합의가 존중되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떳떳한 운동을 하고(620쪽), (3) 참여자간 동지애가 있어서 숙청이 아니라 관용과 합의를 하고(621쪽), (4)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소신껏 운동을 하기 때문에 인기를 얻기 위한 발언을 하지 않고—때에 맞추어 신중하고 공손하게 대중의 지지를 받는 꼭 할 말만 하고(622-623쪽), (5) 중용中庸을 실천하는 훌륭한 인물을 얻지 못하면 차선책으로 진취적인 광자狂者나 융통성없이 올곧은 견자狷者와도 함께 하고(625-626쪽),1) (6) 설령 일이 잘못되어 불이익을 받는다 하더라도 올바른 말을 하고(628쪽), (7) 정권에게 빌붙어 귀여움을 받고 이름을 날리는 시골의 향원鄕原이 되지 않는다(628쪽).

바람직한 시민운동이란?   

이문영(1991)은 3·1독립운동,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29 선언을 이끌어낸 6월 민주항쟁을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바람직한 시민 운동의 특성을 밝혀냈다. (1)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부정했다, (2) 운동 참여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합의에 따라 행동했다, (3) 운동 참여자와 일반 시민들 간에 굳은 연대를 유지했다, (4) 이념 대립이 없는 단일한 요구(고유한 시민의 기본권리)를 하였다, (5) 운동 참여자들이 권력쟁취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자기희생을 기꺼이 감수했다(330-332쪽).2) 바람직하지 않은 시민 운동은 폭력을 사용하고, 참여자들 간 합의가 존중되지 않고,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다수의 요구를 하여 본질을 흐리고, 시대정신을 구현하기보다는 권력을 잡으려는 데 몰두한다. 

비폭력 운동이어야 한다

이문영의 비폭력은 (1) 어떠한 폭력도 사용하지 않고 “말”만 하며, (2) 완전한 비폭력을 철저하게 실천하며(어설프고 불완전한 비폭력이 아니라), (3) 통치자조차도 양심상 거부할 수 없는 합당한 말을 하며, (4) 옳은 말만 최소한으로 하며, (5) 법, 관습, 상식, 약속과 같은 객관성있고 합리성이 있는 기준에 의지하는 것이다(Park 2015: 290-291). “비폭력이란 저쪽에서 때리더라도 이쪽에서는 말로만 대응하는 것”이지 “말의 형식을 빌린 폭력의 행사”가 아니다(이문영 2001: 246). 비폭력은 철저하게 비폭력이야 하는데(149쪽), 이런 성숙하고 완전한 약자의 대응이 악한 강자의 악행을 멈출 수 있다(이문영 2008: 59). 아무리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해도 합당한 말(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기본권리나 진리)을 계속하는 일이다(이문영 1986: 295, 2001: 246). 백만 명이 넘는 촛불들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지만 폭력과 무질서가 없는 평화로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 왜 비폭력인가? 포악한 정권이 쥐고 있는 것은 무기와 폭력이지만 약자인 시민이 갖고 있는 것은 정의에 입각한 말함과 저항이기 때문이다(이문영 2001: 88). 강자의 쿠데타와 폭력 뿐만 아니라 약자의 난동亂動과 폭력 모두 평화와 거리가 멀다(이문영 1986: 297). 다만 난동은 “상대방의 강경화에 구실을 주는 단순하고 감정발산적인 폭력행위”를 말하는 것이지 4·19 혁명과 같은 저항권의 행사나 항일독립군의 무력 활동을 뜻하지 않는다(297쪽). 만일 경찰이 무차별 폭력진압으로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중국의 천안문 사태처럼 중무장한 게엄군이 시위대를 깔아뭉개려 한다면 주권자의 정당한 저항이 있을 뿐 난동은 없는 것이다. 폭력과 비폭력 문제가 아니라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인간의 생명과 주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동지를 존중하고 합의를 존중하라

시민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상대방을 이용하고 수단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존중하고 목적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이문영 1991: 330). 이런 태도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리고 동지들 간의 합의에 따라 철저하게 함께 행동해야 한다(이문영 1991: 25, 330).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촛불을 든 시민들이 자유발언으로 생각을 공유하고, 합의된 비폭력 투쟁을 위해 질서를 외치며 서로를 자제시키고, 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인 집회에 불미스러운 일이나 지저분한 것이 남아있지 않다. 바람직한 시민 운동의 모범이며 촛불의 물결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평화 그 자체다.

<이솝우화>에서 약자가 사는 비결(전략)은 포악한 강자를 피해서 살거나 지혜를 갖거나 단결하는 것이다(이문영 2001: 366). 개인의 인기를 위한 돌발행동은 참여자들을 존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상호간 합의한 것을 깨뜨리는 짓이다. 시민 운동의 대열을 흩으려 나쁜 정권을 돕는 어리석은 짓이다. 야당이 공조하는 마당에 서로 가시돋힌 말을 주고 받는 것은 바람직한 운동과 거리가 멀다. 소위 “비박”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그들을 자극하는 언행은 어리석다. 강자의 폭력에 대항하는 약자는 서로 남을 탓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이문영 2001: 349). 추미애씨의 박근혜씨와의 양자회담 소동과 김무성씨와의 단독회담은 혼자만 잇속을 챙기려는 “단독 드리블”이며, 골을 넣어봤자 동지들과의 합의와 단결을 걷어차 버리는 자살골이다. 분열행위이며 이적행위일 뿐이다. 

시민의 호응과 연대를 도모하라

시민 운동은 참여자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의 호응과 연대連帶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이문영 1991: 26, 330). 왜 그러한가? 민심이 천심이기 때문이다. 백성은 꽁꽁 묶이고 짓밟히더라도 시대정신을 본능으로 깨닫는다. 시인 이수영의 <풀>처럼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일반 시민들이 공감하는 시민운동은 참여자의 폭을 확대시키고 운동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은 학생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사원, 청소년, 장년층, 노년층까지 동참하였다.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에도 남녀노소는 물론 심지어는 박근혜씨를 찍었던 사람들까지 참여하여 평화로운 잔치를 벌이고 있다. “주권자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린 것이다. 

단일한 요구를 하라

바람직한 시민운동은 “이념적 대립이 없는 단일한 요구”를 한다(이문영 1991: 330). 이 요구는 대개 시대정신으로 표현되는데 3·1운동은 독립, 4·19 혁명은 부정선거 규탄, 5·18은 민주화(군부독재청산), 6·29 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라 할 수있다(이문영 1991: 330). 무서운 상황에서는 신중하게 최소한의 행동에 집중해야 하며 가장 긴요한 요구 하나만을 주장한다(이문영 1991: 25-26). 여러 가지를 주장하게 되면 삼각뿔 바닥(꼭지가 아니라)으로 누르는 것처럼 시민 운동의 힘이 분산되고 효과는 반감된다(Park 2015: 291).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에 참여하여 촛불을 든 시민들은 무엇이 핵심이 되는 “한 가지 주장”인지를 잘 알고 있다.  

덜 무서운 상황에서는 기회주의자들은 철저한 비폭력을 내세우지 않고(잡혀갈 가능성이 없으니까), 그래서 시민의 호응과 연대를 잃게 만들고, 영웅주의나 인기를 얻기 위해 과격한 말을 하고, 긴요하지도 않은 요구를 남발하여 시민운동의 초점과 역량을 분산시키고, 젯밥(운동)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권력을 쥘 생각만 한다(이문영 1991: 673, 1996: 623).  

지금 촛불시위의 시대정신은 한마디로 박근혜 퇴진이다. 즉각 퇴진은 불필요한 강조다. 질서있는 퇴진, 명예로운 퇴진, 임기단축개헌, 국정공백 최소, 거국내각총리, 책임총리, 특별검사, 국정조사, 탄핵 등은 본질에서 벗어난 곁다리다. 

대체 누구를 위한 질서이며 누구를 위한 명예인가? 주권자는 이미 아름다운 촛불시위로 질서와 명예를 보여줬는데, 무슨 뚱단지같은 소리인가? 질서와 명예를 내팽개친 정치권이 무슨 염치로 질서를 구걸하는가? 주권자가 “정치권의 무질서”를 통해 새 질서를 만들고 싶다고 하지 않는가? “질서있는 퇴진”이나 임기단축 개헌은 이래서 정치공작에 가깝다. 박근혜씨의 퇴진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과연 순순히 퇴진을 선언할까? 세 번의 대국민 담화는 변명과 푸념과 잔꾀로 시민들의 화를 돋구었다. 당장 검찰조사도 거부한 박씨인데 퇴진을 선언한다 한들 그 약속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어떤 식으로든 대통령 임기를 채우도록 하겠다는 것 아닌가?  

박근혜 퇴진이 없는 한 거국내각총리든 책임총리든 아무런 소용이 없다. 국정공백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박근혜씨와 현 정권의 내각이 그 자체로 국정공백이거나 국정 위기인데 퇴진 말고 무슨 수가 있단 말인가? 한일군사정보보호헙정과 국정역사교과서 문제만 해도 안하느니만 못한 짓이다. 소위 내치와 외치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헌법에 부합하는지를 따지는 것도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내치든 외치든 박근혜씨는 더 이상 어떠한 일도 벌이지 말아야 한다. 특히 외교와 군사에 관한 권한부터 당장 회수하여 국가안보를 확보해야 한다. 특별검사와 국정조사와 탄핵은 국회의 일이고 절차이지 핵심이 아니다. 이런 정치공작 냄새가 짙거나 곁다리 문제를 들먹거리는 것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본질을 호도하는(반대하거나 방해하는) 불필요한 말이다.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단일한 요구를 하지 않고 쓸데없이 혼동과 분열을 초래하는 짓이다.  

60일 내에 선거를 왜 못하나?

많은 정치인, 학자, 평론가, 언론인들은 박근혜씨가 퇴진을 하면 60일 내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며 우려하고 있다. 선거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고 후보를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질서있는 퇴진”을 주장하고 4개월이든 6개월이든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합당한 말인가?

먼저 헌법 규정(60일 내 선거)을 그토록 금과옥조처럼 말하면서 왜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조항을 간과하는가? 60일이 그토록 절대불변인 조항인가? 주권자가 더 못참겠다며 퇴진을 요구하면 그만이다. 둘째, 60일 내에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없다는 것은 정치권과 기득권의 입장일 뿐이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 위대한 이 나라의 백성들을 폄하하는 소리다. 주인이 머슴을 내치고 새로운 머슴을 뽑겠다고 나섰는데 머슴 후보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머뭇거리는 형국이다. 그런 후보들은 아예 대선에 나올 필요가 없다. 잠룡이든 정치인이든 자신이 이 나라의 주인인 줄 착각하고 있다. 세째,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씨를 걸러내지 못한 것이 어디 검증할 시간이 없어서였던가? 박근혜씨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엉터리 토론회를 되풀이한다면 60년을 줘도 소용이 없다. 제대로 된 검증절차와 노력이 있다면 60시간이라 해도 충분하다. 더 이상 60일을 핑계로 국민의 명령을 회피하지 말라.  
시대정신을 위해 자기희생하라

시민 운동 참여자들은 大義를 위해 자기희생을 해야 한다. “무릇 민주화운동은 어긋난 原則을 바로 세우는 운동이지 이해관계를 추구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다”(이문영 1991: 330). 원칙을 세우는 것이 대의이며 시대정신이다. “순수한 민주화운동이란 쿠데타 정부의 이성이 감히 거절하지 못하는 민주화 요구를 하여, 그 대가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었다”(이문영 2008: 615-616). 대의가 아니라 개인의 잇속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기회주의자들은 자기희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운동을 발판으로 한몫(정권장악) 챙기려는 사기꾼들이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먼 곳에서도 찾아와 오랜 시간동안 욕보고 있다. 주권자로서 나라의 원칙을 세우는 대의와 역사에 참여하고 싶은 것이다. 입을 모아 박근혜퇴진을 외치면서 시대정신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닥치고 “박근혜 퇴진”

결국 열쇠는 주권자인 백성들이 쥐고 있다. 한 목소리로 “박근혜 퇴진”을 외쳐야 한다.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치지 말아야 한다.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기다려라. 마지막 순간까지 인내하고 버텨내라. 악한 정권은 스스로 무너지게 되어 있으니 섣불리 감정을 폭발시켜 반격할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비폭력 촛불시위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주인인 국민이 만들어내는 감동, ...국민의 合理性的 抵抗, 祝祭분위기의 편재[遍在]가 국민의 종인 통치자를 변하게 만든다”(이문영 1991: 29-30). “노예는 죽음을 무릅쓰고서야 자유인이 되며, ... 국가는 국민의 피흘린 대가가 있어야 진정한 민주국가로 태어날 수 있다”(이문영 2001: 16). 왜 그러하냐? 박근혜씨나 잠룡이 아니라 백성이 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꿰뚤고 있는데, 정치인과 언론인 등이 쓸데없는 말로 본질을 흐리고 머뭇거리고 있다. 주권자의 요구를 무시하고 시간을 벌어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그만 그 입을 다물라. 닥치고 “박근혜 퇴진”이 답이다.


1) “과·불급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도를 실천하는 인물을 얻어 더불어 할 수가 없을 바에야 차라리 나는 광자나 견자와 더불어 할 것이다.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행하지 아니 해야 할 것은 의연히 하지 않는 바가 있는 확실한 인물들이다”(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 狂者進取 狷者有所不爲也) (김용옥 2012: 844-848).

2) 이에 더하여 <이솝우화>에서는 약자에게 사물의 이치를 알고, 성의정심을 갖을 것을 권한다 (이문영 2001: 150-162). 먼저 격물치지格物致知로 사물을 알고, 안전한 곳을 알고, 적이 위장하고 기만하고, 욕심내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의정심誠意正心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알고(장단점, 역할, 잘못, 언행의 불일치), 헛된 소망을 갖지 않고, 욕심을 버린다.


참고문헌


김용옥. 2012.『맹자 사람의 길 下』서울: 통나무.
박헌명. 2016. 비폭력은 참고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다.『 최소주의 행정학』1(9): 1-3. 


Park, Hun Myoung. 2015. Moon-Young Lee’s Transcendence Ethics for Democratic Public Administration. World Environment and Island Studies 5(4): 283-296.


원문: 박헌명. 2016. 바람직한 시민운동 조건과 촛불시위.『 최소주의 행정학』 1(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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