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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4.07 비열한 공직자의 말법과 선공후사

공직자와 정치인의 부적절한 말법으로 사회의 공분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은 그 사람의 지식수준과 편견과 도덕성이 기대이하임을 민낯처럼 드러낸다. 화가 나기보다는 참담할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여 백성들이 당면한 문제를 풀어야 할 공복公僕이기 때문이다. 대화가 서로 오해를 풀고 화합을 하기 위함인데 그런 말법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듣는 사람들을 화나게 하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이 적절하지 못한 말법을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보다도 그 말하는 모냥새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책임도 져야 한다. 비열하고 무책임한 공직자의 말법 두 가지를 살펴보자. 

2010년 1월 17일 이명박씨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세종시 수정안이 백년대계를 위한 고육책임을 넌지지 말하고, 같은날 정운찬씨는 세종시에 한 부처라도 옮겨 “행정부처가 분할되면 나라가 거덜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2010년 1월 18일). 노무현씨의 세종시 계획안은 나라를 거덜낼 지도 모르는 흉악한 정책이고 세종시 수정안은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이라는 소리다. 사람마다 가치와 선호가 다르기 마련이나 국가 정책을 놓고 뜬금없이 낙인을 찍고 저주하는 것은 지나치다. 아무리 정치 수사라 해도 비열한 짓이다.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정말 세종시 계획안이 백년대계가 아니라 나라를 거덜내는 것이라고 믿었다면 선거때에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철썩같이 약속하지 말아야 했다. 원안추진이 어렵다면 불가피한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약속한 것을 뒤집는 것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참회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백년대계는 커녕 나라를 거덜낼지도 모르는 흉악한 짓거리로 몰아붙였다. 자신이 공약한 것을 저주하는 황당한 자기부정이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소리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나라가 거덜나든 말든 상관없다는 소리다.

정말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공직자라면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다면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답해서는 안된다. 수정안이 나라의 백년대계임을 확신한다면 대통령이든 총리든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백성들에게 엎드려 호소할 것이다. 이명박씨의 말대로 “정권에 도움이 안될지라도”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수정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백성의 신뢰를 잃었으니 그 자리에 머물 수는 없으나 다시 한번 냉철히 생각해줄 것을 읍소할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씨도 정운찬씨도 이렇게 하지 않았다. 수정안이 부결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자리에 눌러앉아 원안을 추진하였다. 또다른 자기부정이다. 애초부터 수정안이 그들의 신념이나 국가의 백년대계와는 관계가 없었다는 뜻이다. 국가나 백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가 있었을 뿐이다. 이문영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선공후사先公後私와 정반대이다. 기껏 해봤자 ‘나는 노무현이 싫다’ 자신의 심사를 고백한 것일 뿐이다.  

박근혜씨도 마찬가지다. 강한 자의 권리만 있지 책임은 없다. 상대방이 어찌하든 자신의 입장을 반복하는 독백만 있지 상대방과 교감하는 진지한 대화는 없다. 2004년 4월 18일 밤에 한국방송공사에서 열린 특집 <국민대토론 : 17대국회 어떻게 풀 것인가?>에서 사회자가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전화인터뷰를 한 내용을 적어보자.

사회자: 헌재결정이 만일 탄핵안에 대해 기각 결정을 할 경우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한나라당이 어떤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질것인가를 물었는데 여기에 대한 박대표의 입장은 어떠 하십니까?

박근혜: 헌재결정은 당연히 수용해야되고 저희는 일관되게 그런 주장을 해 왔습니다.

사회자: 아니 질문의 요지는요, 한나라당이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박근혜: 저희 입장은 수용하는 것이지요.

사회자: 단순히 수용하자는 것이 다입니까?

박근혜: 네!

모두들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김영삼씨의 “굶으면 학실히 죽는다”에 필적하는 사오정 말법이다. 잘 들리냐는 질문에 ‘잘 안보여요’라는 답변이다. 게다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날치기하여(합의가 아닌 무력으로) 헌정질서를 어지럽혀 놓고, 헌재 결정을 그냥 수용한다니... 힘을 남용하여 사회 혼란과 분열을 초래해 놓고 책임은 모르쇠란 말인가. 어찌 그리 쉽게 “네!”라고 잘라 말할  수 있을까? 반성도 없을 뿐더라 책임이라는 개념조차 찾을 수 없다. 이게 공직자(당시는 공당의 우두머리)의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허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고 기어이 어떻게든 끝장을 내보겠다는 심산이었나? 암살자나 반란군을 동원하지는 않을테니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라는 소리인가? 온갖 패악질은 다 해놓고 자기편조차도 민망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져서 구석에 몰리니까 어쩔 수 없이 꼬리를 내리려는 양아치 수작이다. 그것도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것이 아니라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마치 큰 양보라도 하듯이 떠벌리면서 끝까지 허세를 부린다. 그러면서 정작 선거 때에는 “잘못했다” “살려달라” 애걸복걸하며 백성들에게 표를 구걸하는 기회주의자로 잽싸게 탈바꿈한다. 

이런 자들에게는 公은 없고 私만 있다. 이문영(1996: 311)은 논어「자로子路」편을 인용하며 “일은 國政이어야지 사사로운 집안일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는데, 정반대 길을 걷는 자들이다. 힘을 얻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공복이라는 생각이 혼미하거나 아예 그런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권한과 이득만 생각하지 책임과 백성을 마음에 담지 않는다. 체면이고 염치고 따지지 않는다. 私만 있고 利만 있기 때문이다. 자기 호주머니 돈으로 4대강 사업과 자원 외교를 하는 것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의 돈(백성의 세금)이기에 자기 돈처럼 뿌려대면서 생색을 내고 다닌 것이다. 부처이름을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예컨대, ‘미래’와 ‘창조’)를 넣어 바꾼 것도 公과 私 구분이 없는 정신줄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심하고 비열하고 무책임한 말법 그대로여서 한없이 부끄럽고 비참하다.




원문: 박헌명. 2016. 비열한 공직자의 말법과 선공후사. <최소주의행정학> 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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