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비폭력과 최소주의 (20)
월간 최소주의행정학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달 14일 사임했다. 장관에 임명된 지 35일 만이다. 8월 9일 장관후보로 지명된 이후 수구세력들은 수많은 의혹을 제기하고 검찰에 고발하였다. 수구 야당은 시간을 질질 끌면서 의혹공세에 집중하다가 9월 2일로 예정되었던 인사청문회를 무산시켰다. 조후보자는 당일 11시간 가까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여당과 야당은 우여곡절 끝에 6일 인사청문회를 열었고,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상태에서 문대통령은 9일 장관임명을 결정하였다. 이른바 “조국전쟁”이다. “가족사기단”과 “가족인질극” 수구 야당은 반발하면서 조장관을 장관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적법하게 임명된 장관을 장관이라 부르지 못하겠다며 꾸역꾸역 “조국씨”라고 우겼다. 제기된 의혹을 반복하여 물고 늘어지면서 국정감사는 “조국..
조국 전 민정수석이 지난 9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기 전부터 결사반대를 공언하고 나선 기득권 세력들은 한 달 넘게 자진사퇴를 압박했다. 수구언론은 조국 후보자의 배우자, 여식, 동생 내외, 웅동학원 등에 대한 신상털기 기사를 쏟아냈다. 여식이 포르쉐를 탄다거나 특별전형으로 진학을 했다는 헛소문을 보도했고, 심지어 어느 수구채널은 조국 후보자가 자택 아파트 주자창에 주차했음을 뉴스속보로 보도했다. 융단폭격같은 의혹제기에도 납득할 만한 사실은 찾아보기 어렵다. 수구야당은 여론전에 몰입하면서 인사청문회를 질질끌었지만 결국 소문만 요란한 잔치가 되어버렸다. 조장관이 임명되자 그들은 해임건의, 국정조사, 특검을 들고 나왔다. 의혹을 반복하고 단식을 벌이고 삭발削髮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조국 전 정무수석이 지난 달 9일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었다. 수구 야당의 파상공세 속에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지금까지 관련기사가 무려 120여만 건에 이른다고 한다. 황당한 수치다. 청문회를 앞두고 조후보자의 식구들과 관련된 압수수색이 전격적으로 단행되고 있다. 시시각각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고 입과 입을 거치면서 자가발전하고 있다. 애초에 제기된 조후보자 여식女息의 포르쉐나 특례입학이나 성적 문제는 벌써 갑오경장 시절 얘기가 되었다. 청문회 정국이 요동치고 점입가경이다. 고대생의 촛불집회가 불편하다 조후보자의 도덕성 논란은 자신이 아닌 여식의 입학과 장학금 문제에 집중되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과 “강남좌파”라는 조후보자의 ..
이달 초 일본 정부는 한국으로 수출되는 불화수소를 포함한 3개 품목에 대한 규제강화를 발표했다. 나아가 수출통제절차 간소화 대상국에서 한국을 제외할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자유무역에 역행하는 조치이며 불공정한 경제보복이라고 보았다. 박근혜 정권에서 강행한 성노예피해자 문제에 대한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고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에 대한 아베 정부의 분노와 응징이라는 것이다. 비상한 상황으로 규정한 문대통령은 국제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여 경제체질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정치갈등으로 경제협력의 틀을 깨버린 이번 조치는 부당하며 양국 모두에게 큰 피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도전을 국민의 힘으로 극복해..
올해가 己未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꼭 백 년이 된다. 백 년 전 오늘 전국에서 각계각층의 남녀노소가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을사늑약乙巳勒約(1905)과 경술국치庚戌國恥(1910)를 거치면서 조선 민중을 옥죄던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하고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무장봉기가 아닌 철저한 비폭력 평화운동에 일제는 잔혹한 무력진압으로 맞섰다. 공식 집계만 해도 백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각지에서 참여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거나 다치거나 무자비하게 끌려갔다. 3.1만세운동을 계기로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일제는 무단통치방식을 포기하였다. 헌법 전문에 나와 있듯이 3.1운동은 대한민국이란 물줄기의 발원지였다. 하지만 해방 후 조선총독부 앞에 휘..
지난 23일 노회찬이 스스로 몸을 던졌다. 인터넷 게시물의 조회수를 조작한 “드루킹” 김동원 일당이 건넨 돈이 화근이 되었다. 그는 사건이 불거진 후 줄곧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유서에서 4천만 원을 대가없이 받았다고 인정했다. 예기치 못한 비보에 많은 시민들이 지역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빈소를 찾았다. 여야는 물론이려니와 수구냉전 세력까지도 이심전심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폭염에도 조문객이 7만 명에 이르렀다니... 하물며 진보가 빨갱이로 낙인찍힌 나라에서. 유시민씨의 말대로 노회찬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다정하고 정의롭고 품격있는 논객이었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 손을 잡아준 운동가였다. 척박한 토양에서 진보정치를 대중화시킨 정치가였다. 우리는 그런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