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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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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꾼들이 내뱉는 말이 종종 세상을 어지럽힌다. 모호함으로 자신을 방어하면서 힘으로 정적을 찍어누른다. 참과 거짓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피아를 갈라서 이득을 보겠다는 셈법이다. 대선을 전후한 윤석열씨의 “자유민주주의”와 안철수씨의 “과학방역”이 그러하다.

Liberal vs Illiberal Democracy

“자유민주주의”는 영어로 liberal democracy라고 한다. 자유주의(liberalism)가 개인의 권리와 정부(왕의 부당한 간섭)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이념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형태를 말하는 민주주의와의 궁합은 어색하다.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주의(progressivism)와 안정을 지향하는 보수주의(conservatism)의 연속선에서도 벗어나 있다. 사실 윤씨의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와 별 상관이 없다. 자신의 잇속을 차리려는 기회주의자들의 속임수다. 그들의 이념은 정치지향이 아니라 사람을 홀리는 주문呪文이다.

그냥 “민주주의”면 그만이다. 일반 대중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시하고 그 결과(법이든 약속이든)에 따라 정치를 구현하는 제도다. 그 이름이 어찌 되었든 간에 민주주의 원리가 현실에서 구현되는가를 따져야 한다. 영국은 불문법으로도 민주주의를 뿌리내린 왕국이다. 미국은 민주주의 기수라지만 정작 헌법에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가 적혀있지 않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라오스는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라 하지만 선거를 치른다고 다 민주주의인가?

윤씨나 수구세력이 굳이 “자유”를 붙이는 까닭은 북한의 “인민”과 차별화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강박감이다. 자유와 인민의 뜻과는 상관이 없다. “자유”를 들먹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근혜, 윤석열을 보라. 뿔달린 공산당을 때려잡는다며 멸공을 부르짖는 “이승복”들 아닌가. 그들의 “자유”가 저질렀던 것은 내 편이 아닌 자들은 골라내어, 사실과 관계없이 법의 이름으로 좌익종북으로 몰고, 기득권자의 약육강식을 공고화한 것이다. 이렇게 공민권이 박탈된 “빨갱이”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적敵이다. 천민으로 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수구세력이 말하는 자유요, 법치요, 정의요, 공정이다. 이름과는 정반대로 “자유가 문드러진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다. 대중을 현혹하여 권력을 취한 뒤 내 편만 핧아주는 “유지誘舐 민주주의”다.

윤씨는 구체적인 사실이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보다는(사고가 나니까), 원칙과 일반론을 말한다. 헌법과 법률을 들먹인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야 하고 불법 파업은 엄단해야 한댄다. 누가 토를 달겠는가? 그 자체로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는 지도자의 말이 아니다. 범법자를 때려잡는 검사의 말이다. 지도자는 본인의 결단이 어떻게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는지 설명하고 책임져야 한다. 윤씨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비판을 틀어막고 벌거벗은 힘으로 자기 맘대로 해먹겠다는 소리다. 문재인 정권은 모든 것이 반헌법이고 그들은 무슨 짓을 해도 친헌법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왜냐고? 그렇게 마음을 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심(윤심이 아니라)을 거스르는 검찰·경찰·감사원·국회·법원은 그 자체로 위헌이고 국기문란이고 쿠데타다. “유지민주주의” 헌법질서와 상식이 이런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껍데기를 방패삼아 마음껏 독재를 하겠다는 소리다. “자유시장경제”는 “계획경제”와 차별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그저 “시장”이 있을 뿐이다. 경제 주체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시장은 이미 시장이 아니다. 반대로 어떠한 제한도 없는 100%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도 아니다. 윤씨의 행보는 “자유시장경제”가 가진 자들만 맘껏 누리고 나머지는 노예처럼 살라는 뜻임을 암시한다.

“과학방역” 자체가 나쁜 정치다

한편 안철수씨는 문재인 정권을 “정치방역”이라고 공격하고 “과학방역”을 강조했다. 하지만 무엇이 정치방역이고 과학방역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모호함을 최대로 활용한 선동이다. 방역 자체가 과학인데 정치방역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방역은 미신이나 마녀사냥이다. 안씨는 26일 과학방역은 방역정책을 관료나 정치인이 아닌 전문가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질병관리청장에게 방역정책에 관한 전권을 줘야 “과학방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의학을 공부하고 오랫동안 방역에 헌신한 정은경씨는 관료이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현재 질병관리청장으로 임명된, 안씨의 후배이자 집사람의 동기인 백경란씨는 전문가인가? 같은 대학의 의학박사인데도 문씨가 임명하면 돌팔이고 본인(윤씨)이 밀어넣으면 전문가인가? 문대통령은 항상 정씨가 이끄는 질병관리청의 전문성과 헌신을 존중했다. 2021년 초에는 그녀에게 백신에 관한 전권을 쥐고 전 부처를 지휘하라고 지시했고, 부처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또 <Time>이 정씨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으로 선정하도록 추천했다. 정씨의 입이 사실상 대통령의 입이었다. 대체 안씨는 어느 별에서 살다 왔길래 아직까지도 코흘리개 잠꼬대인가?

관료제와 정책과정에 대한 안씨의 이해수준은 처참하다. 방역과 같은 국가 중대사를 공직자(관료)가 아닌 민간인 전문가가 최종 결정하는 나라가 있는가? 그럼 반도체정책은 삼성전자 직원이 결정하고 부동산 정책은 유명한 공인중개사가 해야 하나? 그들이 정책을 책임지는가? 정부관료제가 무슨 비서실이나 매품팔이인가? 전문가라 해도 서로 의견이 엇갈리기 마련인데, 왜 관료인 백씨가 전권을 행사해야 하나? 전문가의 의견이 모아졌다 해도 지도자는 당연히 다른 영역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해서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자리에 따라 보는 시야와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책임은 정치인과 관료들의 몫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정치과정이자 정책과정이다. 권한위임이 아니라 지도자의 자질과 관료제의 합리성에 관한 문제다. 문정권의 “정치방역”은 순리이자 과학이지만 안씨의 “과학방역”은 방역이 아니라 나쁜 정치이다. 결과는 뻔하다. 근본없는 윤·안씨의 말장난에 쓴웃음을 짓는 까닭이다.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2. "자유민주주의"와 "유지민주주의". <최소주의행정학> 7(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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