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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최소주의행정학

뒷간 만듦새, 우측보행, 그리고 무위 행정 본문

민주주의로 가는 길

뒷간 만듦새, 우측보행, 그리고 무위 행정

못골 2019. 4. 7. 21:03

처음으로 식구들을 데리고 나들이에 나섰다. 오래된 동무가 사는 동네에 가서 산에도 올라보고 온천에도 다니면서 며칠 쉬었다 올 생각이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뒷간에 갈 일이 생겼다. 

길게 바닥까지 내려앉은 소변기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소변기 밑에 사방 30cm가 되는 타일이 한 줄로 깔려서 바닥에서 높이 1cm 정도가 되는 턱을 만들고 있었다. 소변기에서 타일 끝까지의 거리가 아주 묘해서 적당히 타일을 밟고 있으면 서 있기가 불안했다. 볼 일을 보려면 어쩔 수 없이 완전히 타일 위로 올라가야 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소변기 가까이에 가도록 했다. 이런 뒷간을 전에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이런 만듦새는 말하지 않고도 그 뜻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소변기를 깨끗하게 쓰라느니, 소변기에 가까이 가서 일을 보라느니 잔소리하지 않는다. 서로 말하고 듣기 민망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볼일을 보러 간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뜻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해준다. 자연스레 그 뜻을 깨닫고 따르도록 한다. 말없이 손자가 제 길을 갈 수 있게 끔 자연스레 이끌어 주는 할머니의 따스함이다. 좋은 정부는 일방적으로 백성에게 이래라 저래라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눈높이에 맞추고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지향한다. 이런 것이 무위無爲이다. 폭군이 나서서 뭔가를 한다고 설쳐대는 유의有爲와 대조된다 (이문영 2001: 250). 

어느 음악방송에서 남자들이 뒷간을 사용하는 버릇을 지적한 것이 생각난다. 소변기에 가까이 가지 않고 일을 보면 오줌이 바닥에 튀게 되고, 다음 사람은 튄 오줌을 밟지 않으려고 더 멀리서 일을 보게 되고, 그러면 청소하는 분들이 애를 먹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뒷간에 “한 걸음만 앞으로” 혹은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라는 문구가 적혀있다는 것이다. 이런 작은 일부터 실천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사회가 좀 더 밝아진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얘기다. 실제 휴게소 뒷간에서 이런 문구를 보고 정말이었나 싶어 놀랍기도 하고 웃음도 나왔다. 하지만 왠지 불편하다. “한 걸음만 앞으로”는 그렇다 쳐도 “남자가 흘리지...”는 지나치다 싶다. 왜 하필 남자이며, 왜 남자는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하는가? 나는 구태여 여성주의(faminism)나 수컷질(machoism)과 연관짓고 싶지는 않다. 벌이나 파리같은 것이 그려져 있는 소변기 얘기가 나올 때에는 헛웃음이 나온다. 화살로 과녁을 맞추듯이 조준을 하도록 유도한댄다. 남자들이 (여자들과는 달리) 똥오줌을 못가리는, 그래서 계몽이 필요한 철부지란 말인가? 이런 지경이니 어느 뒷간의 소변기에 그려놓은 여자의 앞태와 뒤태는 더 말하여 무엇하리. 이런 정신줄이라면 여자 뒷간에 무엇을 그려놓았을 것인가? 그냥 재미삼아 그랬다고 둘러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계몽문구는 말이 아니라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유위·무위를 따지기 이전의 문제다. 

정부(국토해양부)는 2010년부터 길가는 시민들이 오른쪽으로 걷도록 했다. 길가는 사람들이 서로 부딫히거나 차에 치이는 것을 방지한다는 취지에 토달고 싶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불쾌하다. “편리하고 안전한 우측보행! 세계 그리고 우리의 보행문화입니다.” 정부의 선전문구다. 우측보행은 미국·캐나다·일본 등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다고 한다. 문명인은 우측보행을 한다는 문구도 보았다. 어떤 이는 드디어 선진교통국가 대열에 오른다고 흥분하였다. 정말 우측보행이 좌측보행에 비해 편리하고 안전한가? 우측보행만 하면 선진교통국이 되는가? 정말 야만인만이 좌측보행을 하는가? 이 모두가 역린逆鱗을 건드는 말폭력이다.

강준만(2008)에 의하면 조선통독부가 1921년 12월 1일부터 좌측통행을 실시했다. 이때부터 2009년까지 90여년 간 한국은 좌측보행을 해왔다. 당시 소방대원이 부른 ‘교통선전가’에는 “행보는 문명인의 거동, 좌측통행은 그의 표징...”이라고 되어 있다 (강준만 2008). 사람들이 걸어가는 방향을 두고 문명인 어쩌구 하는 것이 재미있다. 90년이 지나도 정신줄이 똑같으니 말이다. 조선총독부나 (독도 문제 등으로) 친일 딱지를 떼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나  지독하게도 일관성이 있으니 말이다.

걸어가는 방향이 왼쪽이 좋은지 오른쪽이 좋은지는 사람들의 생활 습성에 달린 문제다. 자동차가 많은 사회라면 자동차 운전방향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문명과 야만을 결정짓는다면 어처구니없는 궤변이다. 정말 그러하다면 반대편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죄다 잡아다가 처벌을 해야 할 것이다. 야만인처럼 길거리에서 벌거벗고 다니고, 머리끄댕이 잡고 쌈박질을 해대고, 아무데서나 먹고 자고 볼일을 보는 등의 행위를 용납하는 문명국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캐나다·일본에서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고 처벌받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우측보행이 문명인의 거동이라는 것일까? 한국은 90년 동안 야만국이었고, 2010년부터 드디어 문명국으로 개화되었다는 소리인가? 그럼 좌측보행을 하는 일본(이명박 정부의 선전문구는 거짓이다)은 아직도 야만국이라는 소리인가? 당장이라도 눈과 귀를 깨끗이 씻고 싶은 심정이다.

사실 핵심은 왼쪽·오른쪽이 아니다. 문명·야만도 아니다. 물론 국민의 편리와 안전도 아니다. 그저 정부와 공무원의 완장질일 뿐이다. 有爲이다. 백성들이 불편해 하는 것을 찾아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일방적으로 방침을 정해놓고 이것 저것을 동원하여 정당화를 시킨다. 조현오 경찰권력이 벌인 “삼색신호등” 소동에서 보듯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별 상관하지 않는다. 구호를 만들고 표어를 붙이고 어깨띠를 두른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문명을 거부하는 야만인이나 정부를 뒤엎으려는 빨갱이로 몰아 압박한다. 그리고 무슨 비판이 있어도 강제로 밀어붙인다. 실제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전한지, 얼마나 편리한지는 애초부터 관심 밖이다.  

아마도 권력자와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지시에 따라 모든 국민들이 줄지어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흐뭇해 할 것이다. 완장질하는 그 짜릿한 ‘손맛’을 어찌 잊을 것인가. 호루라기를 불거나 깃발을 흔드는 대로 사람들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는 그런 마법을 말이다. 하지만 유치한 것으로 치면 교실서 떠든 동무 이름을 칠판에 적는 줄반장의 완장질과 매한가지일 뿐이다.   

이런 有爲가 백성을 화나게 한다. 백성을 보살피는 행정이 아니라 권력자와 공무원 스스로 즐기는 자위自慰일 뿐이다. 백성을 무지하고 어리석은 철딱서니로 취급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뭉개는 행위다. 구호나 표어나 어깨띠로 백성을 줄세우고 훈계한다. 백성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 아니라 어용御用 언론이나 조직을 동원하여 백성을 들볶는다. 원래 취지와 무관하게 백성을 노엽게 한다. 북한 인권문제는 북한인권법을 만들면 되고, 테러가 걱정되면 테러방지법을 만들면 된다는 정신줄이다. 세상 참 편하게 사는 인간들이다. 내가 뒷간 소변기 만듦새를 無爲처럼 귀하게 살펴본 이유가 있다.      


참고문헌


강준만. 2008.『한국근대사 산책 7: 간토대학살에서 광주학생운동까지』. 인물과 사상사.



원문: 박헌명. 2016. 뒷간 만듦새, 우측보행, 그리고 무위 행정. <최소주의행정학> 1(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