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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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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이 시끄럽다. 정부가 수차례 대책을 발표해왔지만 아파트 가격이 치솟고 전세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며 아우성이다. 수구세력은 정부가 시장에 맞서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발라놓은 각종 정부 규제를 철폐하고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댄다. 내 돈으로 집을 사고 파는데 왜 정부가 시비를 거냐는 얘기다. 수구세력은 주택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으니 국토부 장관을 갈아치우라며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주택시장은 왜 실패하는가?

왜 정부가 주택시장에 개입하는가? 경제학의 논리로 치면 시장실패다. 주택시장에서 공정한 주고 받기가 잘 안된다. 완전한 경쟁이 어려운 상황에서 가격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주택은 (1) 대부분 개인이 아닌 독과점 기업이 자재를 생산하고 집을 짓고(불완전 경쟁), (2) 일반 소비자는 품질과 가격이 적정한지 정확히 알기 어렵고(비대칭 정보), (3) 외부효과를 관리하기 어렵다. 요컨대, 주택은 시장이 실패하기 쉬운 재화다. 물론 정부가 개입한다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정부는 어떻게 시장에 개입하는가?

첫째, 옛날과는 달리 요즘에는 개인이 아닌 주택(도시)공사나 건설 회사가 주로 집을 짓는다. 물론 개인이 설계와 시공 과정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지만 드문 경우다. 집을 짓는 기술과 자금과 법절차가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공급자인 기관(회사)이 우위에 서게 되었다. 독과점을 형성하는 이들이 주택 공급량과 품질과 가격을 주도하게 되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도 수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맛보기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까닭이다. 이에 정부는 주택 공급에 관련한 인허가, 입찰담합, 분양가, 부실시공 등에 개입한다.

둘째, 일반 소비자는 정해진 선택지(입지, 상표, 크기, 디자인, 가격 등)에서 고를 수밖에 없다. 얼마나 좋은 자재를 썼는지, 얼마나 마무리가 잘 되었는지, 제시된 가격이 적정한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건설사들은 원가공개와 후분양제를 꺼리기 마련이다. 원가를 낱낱이 공개하면 큰 이득을 취하기 어렵고, 집을 다 지은 후에 분양하게 되면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고 품질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일반인은 관련 법규정이나 행정절차나 시장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 언론이나 세무사나 중개사에게 의존하기 마련이다.

주택시장에서 독과점과 정보 비대칭성은 애초부터 강자와 약자가 구조화되어 있음을 뜻한다. 정치, 사법, 행정, 경제, 사회, 언론, 대학 등에서 가진 자들이 권력과 돈과 정보로 시장을 왜곡하고 약자들을 농락하기 쉬운 판이다. 주택 정책에 관련된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 기업인 등이 거의 언제나 재미를 보는 까닭이다. 아무나 몰려다니며 아파트를 쇼핑하고 어느날 갑자기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다. 주택시장의 생리(취약점)를 잘 알고 활용법을 꿰고 있어야 한다. 일반 소비자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이에 정부는 주택 품질에 관한 기준과 분쟁관리 절차를 마련하고, 아파트 가격과 전월세 가격 등을 정확히 알리고, 다운계약이나 가격담합이나 허위매물과 같은 교란행위를 억제한다. 기울어진 주택시장에서 정보 격차를 줄이고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조치다.

세째, 시장은 정당하지 않게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는 외부성(externality)에 무기력하다. 주택 가격에는 주변 기반시설과 환경 조건이 반영되어 있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이익은 공짜로 누리고 손해는 절대로 안보려는 태도를 보인다. 주변에 도로나 공원이 생기면 하늘에서 떨어진 복(당연한 내 것)이라 여기고 공해를 배출하는 공장이나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결사 반대한다. 시설주는 측정하기 어려운 피해와 불만을 외면한다. 특히 공공시설과 건물이 밀집해있는 대도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당한 이익은 대개 가진 자들이 보고 부당한 비용(피해)은 대다수 시민이 나눠진다. 정부는 도시계획을 세우고, 각종 개발로 발생한 이익을 환수하고, 공해나 기피 시설에 대해 비용을 물려야 한다.

집은 소유가 아니라 소비하는 것이다

집은 오래 사용되는 내구재(durable goods)로서 값이 비싸다. 가진 자들의 놀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중요한 것은 음식과 옷처럼 집은 생활필수품이다.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주거는 보장되어야 한다. 주거 비용이 지나치게 높으면 개인이나 사회나 탈이 날 수밖에 없다. 다른 소비가 줄 수밖에 없고 경제활동이 위축된다. 또한 집은 가격탄력성이 적기 때문에 장기 공급계획이 필요하다.

현재 주택수가 가구수를 초월하여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고 있다. 공급보다는 주택 분배와 수요에서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 사람이 집을 2천 채나 가지고 있거나, 10채 이상을 소유한 사람이 4만명이나 된다면 심각한 문제다. 하물며 소위 “갭 투자”로 남의 돈을 빌어다가 집투기를 하는 일임에랴... 집이 부를 축적하는 확실한 수단으로 인식되는 한 수백만 채를 짓는다 해도 아귀餓鬼같은 탐욕을 채울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대출을 규제하고 세금(취득세, 보유세, 양도세 등)을 올리는 조치는 불가피하다. 미국과 일본에 비하면 지금의 “세금폭탄”은 아직도 약하다. 다주택자에게 무겁게 세금을 물려야 한다. 전기료와 물값을 올려 불필요하거나 불합리한 수요를 누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말 심각한 상황에서는 일부일처제처럼 사실상 가구당 한 채로 제한할 수도 있다. 자본의 자유보다는 주거 안정(생존)이 더 중요하다.

주택 문제를 시장에 맡겨두라는 소리는 약육강식 논리이다. 지금까지 시장을 휘젓고, 그 아수라장에서 배를 불린 수구 기득권의 밥투정이다. “전세절벽”이나 “패닉바잉”이라며 선동하는 짓이다. 이제 집을 소유가 아닌 소비라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 자식에게 물려줄 금덩이가 아니라 일생 동안 사용하는 필수품이다. 쫓겨날 걱정없이 월세를 살면서 생산적인 일과 인간다운 생활에 집중하면 안되는가? 집값이 좀 내리고 전세가 없어지면 세상이 망하나? 대체 언제까지 “로또 분양권”과 투기질에 휘둘릴 것인가? 

같이 읽기

 

인용하기: 박헌명. 2020. 정부는 왜 주택시장에 개입하는가? <최소주의행정학> 5(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