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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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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 6월 21일 열린 입법청무회에서 임성근(전 해병대 제1사단장)씨에게 일갈한다. “김성근 야신의 리더쉽은 게임에서 지면 감독에게 책임이 있다. 선수에게는 책임이 없다. ... 게임에서 져서 책임을 져야 한다면 감독이 물러나야 한다. 선수기용, 경기력 등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므로. ... 설령 부하들이 잘못을 했다 할지라도 다 내가 교육을 잘못하거나 지시를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부하들을 탓하지 마라. 징계하지 마라. 내가 책임지고 사표를 쓰겠다. 이것이 진정한 리더쉽 아닌가요?” 절대로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부하들이 멋대로 수중수색을 했다고 횡설수설하는 임씨에 대한 훈계다.

리더쉽이란 대장다움이다

과연 리더쉽(leadership)이란 무엇인가?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말하는 리더쉽인데, 막상 리더쉽을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장이든 관리자든, 직위가 높든 낮든 실제 집단을 이끄는 자가 대장(우두머리)이다. 흔히 리더쉽은 조직에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리더쉽은 우두머리가 마땅히 보여줘야 하는 태도와 언행을 말한다. 대장의 처신, 대장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장을 비난하는 이유다. 혹자는 리더쉽을 각 분야의 우두머리가 해야 하는 기능(functions)이나 역할(leadership roles)로 보기도 하고, 리더의 행태(leadership behavior)나 리더쉽 유형(leadership style)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대장의 힘은 권위에서 나오고 대장의 재량행사로 발현된다. 대장은 자리(직위)에서 나오는 권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leadership)에서 나오는 권위를 적절하게 관리해야 한다. 늘 수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발휘하든 도덕성이나 인간성을 내세우든 자신의 명령을 조직구성원들이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영역(zone of acceptance)을 넓혀놓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권위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장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며, 특권이 아니라 조직을 이끄는데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다(박헌명 2016). 대장은 주어진 상황에서 가용한 자원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그럴듯한 어느 하나를 결정하는 재량행위다. 그 결과는 다시 대장의 권위(수용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당장 어떤 탈법적인 명령을 밀어붙여 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대신 대장의 권위는 줄어든다. 누차례 대장다운 처신을 하지 못하면 권위가 바닥나(수용영역이 쪼그라들어 어떠한 명령도 받아들여지 않는다) 결국 대장노릇을 못하게 된다.

스스로 지휘관임을 포기한 임사단장

정위원장이 말한 리더쉽은 문제해결능력이 아니라 “대장다움”이다. 계서제(hierarchy)의 극단을 보이는 군대에서 상관의 책임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어떤 명령이 그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1) 아랫사람이 그 명령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2) 조직의 목적과 불일치하지 않아야 하고, (3) 자신의 이해관계와 부합해야 하고, (4)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따를 수 있어야 한다(Barnard 1968: 165). 안전대책도 없이 악천후로 유량이 늘고 유속이 빠른 강물에 들어가 수색하라는 것은 차라리 죽으라는 소리다. 임씨의 부하들이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고, 조직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은 명령이었고, 부하들의 이해관계와 부합하지 않은 명령이었고, 따를 수 없는 명령이었다. 수용영역에 들어있지 않은 명령이었다.

임사단장은 별을 두 개나 단 지휘관이었지만, 전혀 “대장다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사실상 부하들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던 지휘관이면 마땅히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지휘관은 정당한 명령을 명료하게 내려야 하고, 부하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하는지를 감독해야 한다. 어찌하여 그 많은 장병들이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사단장의 지시를 정반대로 알아들었다는 것인가? 이제와서 지시가 아닌 지도를 했을 뿐이라는 똥별의 비루함이여... 장교들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설령 임씨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나는 멀쩡한 지휘관이 아니었다는 자백일 뿐이다. 한마디로 “나는 잘못이 없다. 나를 탓하지 마라. 제멋대로 수중수색을 벌인 부하들을 징계하라” 아닌가? 작전통제권도 없는 자가 위험천만이라는 부하들의 건의를 묵살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밀고 자빠졌으니... 이등병만도 못한 처신이다. 통수권자부터 상관과 부하의 신뢰와 존중이 무너졌으니 군대의 기강이 무너진 것이다. 이런 오합지졸인 군대가 어찌 싸워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고통받는 박정훈과 이용민의 대장다움

반면에 해병대 박정훈 대령(전 조사단장)은 해병순직사건을 법에 따라 수사하고 경찰에 이첩하였다. 장관의 부당한 명령을 받고 망설이는 사령관에게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수사단과 해병대를 고려한 판단이었다. 대통령실과 장관실이 폭주하는 상황에서 소신있고 당당한 처신을 보여줬다. 박대령의 “대장다움”은 불이익을 감수한 자기희생으로 승화되었다. 또한 수중수색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상관의 지시를 이행했던 이용민 중령(전 7 포병대대장)은 지휘관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난폭하게 휩쓰는 강물에 부하를 떠밀어야만 했던 대대장의 참담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한 임씨와는 달리 박대령과 이중령은 아랫사람에게 충실하였다. 부하를 탓하지 않고 자신에게 책임을 물었다. 자기희생은 “독재자에 의하여 피해를 본 사람을 보살피는 태도”다(1980: 363). 지금은 항명수괴와 과실치사라는 굴레를 쓰고 있지만 이들의 “대장다움”은 어떤 별보다 빛나고 있다.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고 “희생자가 지켰던 규칙이 악한 세상을 구출하는 원칙으로 만인에게 인식”될 것이다(1996: 437-438). 

참고문헌

  • 박헌명. 2016. 권위란 무엇인가? Barnard 다시 읽기. <최소주의 행정학> 1(4): 1-3.
  • Barnard, Chester, I. 1968. The Functions of Executiv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4. 박정훈 대령과 이용민 중령의 대장다움. <최소주의행정학> 9(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