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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이문영 선생님의 최소주의 행정학, 비폭력, 협력형 민주주의를 밝히고 알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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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파트 두레기(승강기)에 시뻘건 글씨가 적힌 인쇄물이 붙었다. 두서도 없이 1, 2, 3... 으로 적고 밑에다 손글씨로 이름 석자를 갈겨썼다. 주소도 연락처도 없다. 떼면 재물손괴로 처벌받을 수 있다면서 으름장이다. 맥락도 없고, 문장도 형편없다. 배배꼬인 심술만 덕지덕지 붙어있다. 한마디로 “나 승질나써, 재 시러”였다. 사실여부는 따지기도 싫다. 짖궂은 낙서가 아니라 막돼먹은 악당이 사람들이 오가는 담장에 똥칠을 해놓고 튄 것이다.

토착왜구들의 아무말과 어거지

이런 악당은 차라리 귀엽다. 주변국의 지도자들을 보라. 트럼프, 푸틴, 시진핑, 아베... 제왕(대통령) 놀이에 푹 빠져있는 김명신, 숙취인듯 반국가세력을 운운하는 윤석열, 그들이 임명한 장차관들... 국회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은 공직자들. 국가안보와 수사를 들먹이며 자료제출과 답변을 거부하는 공복들.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자들. 국회의원을 윽박지르고 뒤에서 낄낄대는 자들. 차마 친일을 부정하지 못하고 멍한 눈으로 동문서답하는 자들. 임사단장은 똥별이 되었고 방통위는 빵통위가 되었다.

이들의 주장은 양지만 쫓는 기회주의자의 고백이다. 신념을 팔아먹은 자들의 과시용 간증이다. 일제 강점기에 모두가 일본국적이었다(사람취급도 못받았다), 일제의 곡물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었다(원하지 않았다), 일제 식민지 덕에 근대화를 이루었다(일제를 위한 일이었다), 광복이 아니라 건국이다(개천절이 건국절이다). 천황폐하의 항복을 의미하는 광복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안중근과 김구는 황은皇恩을 배신한 반역도이자 테러리스트이다. 오매불망 끗발있는 일본인이 되고 싶었고, 황민皇民으로서 당연히 곡물과 군수물자를 바친 것이고, 황군皇軍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남의 자식들을 징용으로 성노예로 보냈을 뿐이다...

또 상해임시정부는 국민, 영토, 주권 어느 것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니 정부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감히 대일본제국에 맞선 불경스런 집단아닌가. 이런 식이면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쓸어버리지 못했고, 헌법에 나와 있는 한반도를 영토로 확보하지 못했고, 북한 인권을 들먹이면서도 주석궁을 압수수색조차 못하고, 작전통제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지금의 대한민국은 대체 뭐란 말인가. 자존自存과 자존自尊으로 살아가는 국민, 온전한 영토, 멀쩡한 주권을 갖추지 못했으니 국가라 할 수 있는가? 입에서 나왔다고 다 말이 아니다. 도대체 누가 어디서 이런 기라성같은 토착왜구들을 발굴했는지... 뼛속까지 왜놈 본색인 기회주의자들을...

교양있는 대화와 논쟁으로 대적하라

지난 8월 21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 오프라 윈프리(Oprah G. Winfrey)가 등장하였다.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대화쇼(talkshow) 달인으로 성공한 흑인여성이다. 나는 윈프리의 지지연설을 듣고 무릎을 쳤다. “We know all the old tricks and tropes that are designed to distract us from what actually matters, but ... and they require adult conversation. ... because civilized debate is vital to democracy...” 철지난 속임수와 말공작이 우리들을 문제의 핵심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한다. 필요한 것은 성숙한 어른다운 대화다. (야만스런 말싸움이 아닌) 교양있는 논쟁은 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토착왜구들의 배설에 가까운 궤변과 막말이 “old tricks and trops”이다. 종북, 주사파, 공산주의, 반국가세력 등 끝간데없는 빨갱이칠이다. “흘러간 주문呪文”도 신물이 날 지경인데, 한물 간 자들이 돌아와 철지난 사술邪術을 부리고 있다. 일제 강점기 선조들의 국적이 일본인 것을 몰랐냐고 당당하게 훈계하는 변절자,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는 국가안보 책임자. 어떻게든 천황의 황민으로 승천하려는 왜구의 발악질이다.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법제사법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벌어진 딴죽걸기를 보라. 쟁점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건다.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도록 난장판을 만든다. 성숙한 대화와 논쟁을 저지하는 육탄방어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따져보려는 의욕마저 무참하게 꺾는다. 청중들은 악다구니같은 횡설수설에 어질어질하다가 분별력이 흐려진다. 듣기도 쳐다보기도 싫다. 그 놈이 그 놈이라며 자포자기한다. 감언이설에 통달한 기회주의자들에게 유리한 판이 된다. 공작이 성공하는 순간이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자가 장관이 되고, 환경을 보호할 의지가 없는 자가 환경부를 지휘하고, 방송통신에 문외한인 검사가 방통위를 맡고, 임시정부와 광복이 탐탁찮은 자가 독립기념관장이 된다. 조직은 방향감각을 잃고 유인체계가 뒤집힌다. 지향이 다르니 하는 일마다 엉뚱하고 황당하다. 일을 모르니 무엇을 해도 되는 일이 없다. 소신있게 일하는 자는 좌천이고 말만 잘듣는 자는 영전이다. 근본없는 낙하산이나 앞잡이가 완장을 차고 설친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된다. 하지만 책임지는 자는 없다. 관료제가 급속도로 와해된다. 토착왜구의 숙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적들의 난동에 맞서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윈프리는 또 힘주어 말했다. “[T]he work is not done, the work will never be done because freedom isn’t free... It requires commitment. ... every now and then it requires standing up to life’s bullies.”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따라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여정은 끝나지 않았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언제나 인생 최대의 악당들과 당당히 맞서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영원히 완성될 수 없다. 시민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찾아내서 수정해야 하는 과정과 절차일 뿐이다. 민주주의 적들은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고 있다. 이들의 난동에 맞서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적들의 요설에 흥분하면 안된다. 말폭력으로 맞대응하면 말려드는 것이다. 정신줄을 잡고 참아야 한다. 차분하게 사실과 논리로 말하고, 성숙한 토론으로 적들을 제압해야 한다. 아무말과 어거지가 난무하는 판에 강유정, 김영환, 이소영, 이해민, 임광현, 임미애, 최기상의 이성과 상식이 대안이 되길 바란다.

 

인용: 박헌명. 2024. 토착왜구들의 난동과 교양있는 논쟁. <최소주의행정학> 9(10): 1.

지난 5월 세네갈의 수도 Dakar에 출장을 다녀왔다. 지도를 보면 서아프리카 가장 끝에 튀어나온 곳이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 기반시설은 부족하고 민생은 힘겨워 보인다. 오랜 시간 고난을 겪어온 시민들의 얼굴이 외려 밝고 온화하다. 죄지은 것이 없으니 발을 쭉 뻗고 자는 선량들일까?

고레섬의 노예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카는 식민지 쟁탈전 시절 미국으로 가는 최단 항로를 제공했다. Westernmost Point of Afro-Eurasia에 가면 남쪽과 북쪽의 파도가 부딪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런 요지에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차례로 들이쳤다. 다카에서 남동쪽으로 3km 떨어진 고레(Goree)섬을 방문했다. 가로 300미터 세로 900미터의 화산섬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2천만명에 이르는 아프리카인들이 영문도 모르게 잡혀와서 이곳에서 유럽, 미국, 남미로 팔려갔다. 서구 열강의 반인간적인 노예무역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고레섬은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럽 각국의 식민지 확장은 노동력 수요를 폭발시켰고 노예무역에 불을 지폈다. 노예를 사냥하고 거래하는 자들이 서아프리카로 모여들었다. 무능하고 탐욕에 눈이 먼 아프리카 정부(왕)는 짐승처럼 사냥당하고 노예로 끌려가는 국민을 방관하거나 팔아버렸다. 서구에서는 노예제로 번영을 누렸으나 정부는 노예의 인권 문제를 방임했다.

1776년 네덜란드 상인들이 지었다는 노예의 집(House of Slaves)을 방문했다. 여기서 상인들은 노예의 키와 몸무게를 재고, 젖가슴과 성기를 관찰하고, 입을 벌려 치아를 살폈다. 성체와 새끼로 분류하고 수컷과 암컷과 처녀를 나누었다. 노예들을 벌거숭이로 좁은 토굴방에 밀어넣었다. 목과 손발을 묶고 쇠덩어리를 매달아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상품이 상하지 않을 만큼 먹였고, 저체중이면 콩을 강제로 먹였다. 반항하는 자들은 벽에 묶어 매질을 하고 좁은 감옥에 가두었다. 병들거나 성가신 자들은 바다에 던졌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처럼 생긴 짐승일 뿐이었다. 노예장사꾼들은 맘에 드는 암컷을 골라 2층 객실에서 마음껏 욕심을 채웠다. 노예들을 한 명씩 마당에 세워두고 값을 매겼다. 힘좋은 짐승과 때깔좋은 곡물을 고르는 경매 시장과 다름이 없었다. 흥정과 셈이 끝난 노예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문(Door of No Return)”을 지나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했다.

노예는 고레섬만의 일이 아니다. 이름과 개념이 다를지언정 동서고금의 현상이다. 로마는 전쟁에서 잡아온 노예로 치부했고, 아랍인들은 동아프리카인을 군인이나 성노예로 끌고 갔다. 조선의 노비제는 1894년 철폐되었지만 인신매매와 갑질 등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노예무역은 200년 전 유럽에서 금지되었지만, 1948년에서야 유엔총회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노예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이다. 힘세고 우월한 인간이 동족인 인간을 짐승처럼 부리고 잡아먹는 야만이다. 그러면서 인권과 인간 존엄을 말하는 고상함이라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민낯이다.

자유는 인간의 최소가 만인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노예의 집 구석에는 넬슨 만델라(Nelson R. Mandela)의 문구가 적혀 있다. “To be free is not merely to cast off one’s chains, but to live in a way that respects and enhances the freedom of others.” 자유라는 것은 단지 자신에게 씌워진 쇠사슬을 벗어던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고 증진하려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노예에게 자유는 마음까지 옥죄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속박이 있기에 자유가 의미를 갖는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이에게는 속박이 없으니 자유도 (의미)없다. 하지만 목과 손발을 감고 있는 쇠사슬을 풀었다고 해서 인간의 자유라고 말할 수 없다.

소정 선생님(1986: 96)은 “최소의 것이 침범받았을 때에 본연의 인간이란 무엇일까를 더욱 생각하게 된다” “최소를 가질지 말지 하는 한계상황에 사는 사람만이 그 최소마저도 상실된 상태에서의 존재를 음미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최소한은 부끄러움과 추위를 면할 수 있는 옷이며, 갈증을 달랠 한 모금의 물과 허기를 채워줄 음식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밀어를 속삭이며 살고 싶은 곳에서 식구들과 머무는 것이다. 한계상황을 경험한 사람만이 인간의 최소(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 수 있다.

소정 선생님(1986: 96)은 또 “최소의 것을 빼앗긴 자가 갖는 행복을 하나 더 찾는다면 빼앗은 자를 미움으로만으로 대하지 못하는 인간의 품위를 갖게 되는 행복이다” “최소에의 흠모를 존중시하는 이는 최소의 것을 빼앗은 이에 대하여도 최소의 것이 부여되기를 바라는 인간 본연에 대한 흠모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최소를 빼앗기고 고통을 당해본 사람은 다른 사람(심지어 자신의 최소를 박탈한 자까지도) 역시 최소한이 보장되어야 함을 믿는다.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소정 선생님의 최소가 만델라의 자유다.

윤씨 패거리의 자유는 기회주의자의 제멋대로다

윤석열씨는 걸핏하면 자유를 들먹인다. 그가 읽은 원고에 자유가 몇 번 나오는지가 기사거리가 된다. 도대체 그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그의 언행과 측근들의 면면을 보면 윤씨의 “자유”는 인간의 최소한이나 공감능력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 인간의 최소한를 박탈당한 한계상황을 의미있게 경험한 이가 드문 까닭이다.

양심을 버리고 양지만 쫓은 자들에게 자유는 승자의 전리품이다. 간도 쓸개도 없이 잇속만 차리는 기회주의자들의 패악질이다. 패자를 노예로 삼고 아무런 제한없이 제멋대로 능욕할 수 있는 권리다. 승자만이 인간이고 패자에게 인간의 최소한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승자의 언행은 모든 법과 윤리에 우선한다. 모든 책임은 패자에게 있다. 이것이 윤씨 패거리들이 말하는 자유다. 노예사냥꾼이나 인신매매범의 정신줄이다. 윤씨의 “자유 민주주의”가 조국·이재명씨에게 그토록 박하고 모질었던 까닭이다. 마음대로 소환하고 압수수색하고 영장치고 기소하고 흘렸다. 하지만 제동장치 없는 자유나 최소한이 없는 민주주의는 공허할 뿐이다.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4. Goree섬에서 인간과 자유를 생각하다. <최소주의행정학> 9(9): 1.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 6월 21일 열린 입법청무회에서 임성근(전 해병대 제1사단장)씨에게 일갈한다. “김성근 야신의 리더쉽은 게임에서 지면 감독에게 책임이 있다. 선수에게는 책임이 없다. ... 게임에서 져서 책임을 져야 한다면 감독이 물러나야 한다. 선수기용, 경기력 등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므로. ... 설령 부하들이 잘못을 했다 할지라도 다 내가 교육을 잘못하거나 지시를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부하들을 탓하지 마라. 징계하지 마라. 내가 책임지고 사표를 쓰겠다. 이것이 진정한 리더쉽 아닌가요?” 절대로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부하들이 멋대로 수중수색을 했다고 횡설수설하는 임씨에 대한 훈계다.

리더쉽이란 대장다움이다

과연 리더쉽(leadership)이란 무엇인가?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말하는 리더쉽인데, 막상 리더쉽을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장이든 관리자든, 직위가 높든 낮든 실제 집단을 이끄는 자가 대장(우두머리)이다. 흔히 리더쉽은 조직에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리더쉽은 우두머리가 마땅히 보여줘야 하는 태도와 언행을 말한다. 대장의 처신, 대장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장을 비난하는 이유다. 혹자는 리더쉽을 각 분야의 우두머리가 해야 하는 기능(functions)이나 역할(leadership roles)로 보기도 하고, 리더의 행태(leadership behavior)나 리더쉽 유형(leadership style)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대장의 힘은 권위에서 나오고 대장의 재량행사로 발현된다. 대장은 자리(직위)에서 나오는 권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leadership)에서 나오는 권위를 적절하게 관리해야 한다. 늘 수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발휘하든 도덕성이나 인간성을 내세우든 자신의 명령을 조직구성원들이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영역(zone of acceptance)을 넓혀놓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권위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장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며, 특권이 아니라 조직을 이끄는데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다(박헌명 2016). 대장은 주어진 상황에서 가용한 자원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그럴듯한 어느 하나를 결정하는 재량행위다. 그 결과는 다시 대장의 권위(수용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당장 어떤 탈법적인 명령을 밀어붙여 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대신 대장의 권위는 줄어든다. 누차례 대장다운 처신을 하지 못하면 권위가 바닥나(수용영역이 쪼그라들어 어떠한 명령도 받아들여지 않는다) 결국 대장노릇을 못하게 된다.

스스로 지휘관임을 포기한 임사단장

정위원장이 말한 리더쉽은 문제해결능력이 아니라 “대장다움”이다. 계서제(hierarchy)의 극단을 보이는 군대에서 상관의 책임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어떤 명령이 그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1) 아랫사람이 그 명령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2) 조직의 목적과 불일치하지 않아야 하고, (3) 자신의 이해관계와 부합해야 하고, (4)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따를 수 있어야 한다(Barnard 1968: 165). 안전대책도 없이 악천후로 유량이 늘고 유속이 빠른 강물에 들어가 수색하라는 것은 차라리 죽으라는 소리다. 임씨의 부하들이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고, 조직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은 명령이었고, 부하들의 이해관계와 부합하지 않은 명령이었고, 따를 수 없는 명령이었다. 수용영역에 들어있지 않은 명령이었다.

임사단장은 별을 두 개나 단 지휘관이었지만, 전혀 “대장다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사실상 부하들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던 지휘관이면 마땅히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지휘관은 정당한 명령을 명료하게 내려야 하고, 부하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하는지를 감독해야 한다. 어찌하여 그 많은 장병들이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사단장의 지시를 정반대로 알아들었다는 것인가? 이제와서 지시가 아닌 지도를 했을 뿐이라는 똥별의 비루함이여... 장교들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설령 임씨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나는 멀쩡한 지휘관이 아니었다는 자백일 뿐이다. 한마디로 “나는 잘못이 없다. 나를 탓하지 마라. 제멋대로 수중수색을 벌인 부하들을 징계하라” 아닌가? 작전통제권도 없는 자가 위험천만이라는 부하들의 건의를 묵살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밀고 자빠졌으니... 이등병만도 못한 처신이다. 통수권자부터 상관과 부하의 신뢰와 존중이 무너졌으니 군대의 기강이 무너진 것이다. 이런 오합지졸인 군대가 어찌 싸워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고통받는 박정훈과 이용민의 대장다움

반면에 해병대 박정훈 대령(전 조사단장)은 해병순직사건을 법에 따라 수사하고 경찰에 이첩하였다. 장관의 부당한 명령을 받고 망설이는 사령관에게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수사단과 해병대를 고려한 판단이었다. 대통령실과 장관실이 폭주하는 상황에서 소신있고 당당한 처신을 보여줬다. 박대령의 “대장다움”은 불이익을 감수한 자기희생으로 승화되었다. 또한 수중수색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상관의 지시를 이행했던 이용민 중령(전 7 포병대대장)은 지휘관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난폭하게 휩쓰는 강물에 부하를 떠밀어야만 했던 대대장의 참담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한 임씨와는 달리 박대령과 이중령은 아랫사람에게 충실하였다. 부하를 탓하지 않고 자신에게 책임을 물었다. 자기희생은 “독재자에 의하여 피해를 본 사람을 보살피는 태도”다(1980: 363). 지금은 항명수괴와 과실치사라는 굴레를 쓰고 있지만 이들의 “대장다움”은 어떤 별보다 빛나고 있다.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고 “희생자가 지켰던 규칙이 악한 세상을 구출하는 원칙으로 만인에게 인식”될 것이다(1996: 437-438). 

참고문헌

  • 박헌명. 2016. 권위란 무엇인가? Barnard 다시 읽기. <최소주의 행정학> 1(4): 1-3.
  • Barnard, Chester, I. 1968. The Functions of Executiv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4. 박정훈 대령과 이용민 중령의 대장다움. <최소주의행정학> 9(8): 1.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달 21일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을 위한 입법청문회를 열었다. 출석한 이종섭(국방장관), 임기훈(국방비서관), 김계환(해병대 사령관), 임성근(1사단장)씨의 증언을 들으면서 탄식했다. 현역 장교라면 당당하게 증인선서를 하고 간결·명료하게 답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별을 두 개, 세 개나 단 자들이 선서를 거부하고 구차한 변명과 딴소리로 얼버무리는 모습이라니... 이런 비루한 자들이 지휘관이랍시고 거들먹대는 군대라니...

관료제를 비웃는 똥별들의 궁상

대통령실과 장성들은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권이 없으며, 장관이 수사결과보고서를 결재한 후 이첩보류를 지시했는데 수사단장이 이첩을 강행했다는 주장이다. 판결문도 아닌 보고서가 뭐길래 수백 건의 통화로 난리를 피웠단 말인가. 임사단장은 장병들에게 수중수색을 지시하지 않았고, 해당사실을 사후에 알았다고 했다. 부하들이 자신의 명령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이 사달이 났댄다. 작전통제권이 없으면서 부하들을 다그친 것은 작전지시가 아니라 작전지도라고 했다. 지휘관으로서, 장교로서, 해병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낙제다. 이등병보다도 못한 똥별의 궁상이다.

사건에 연루된 실력자(대통령실), 참모, 장관, 장군급 지휘관 모두 관료제의 원리를 대놓고 무시하였다. 합리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뽑아 일을 시키고, 규정에 따라 문서로 일을 처리하고, 분업화에 따른 갈등을 계서제(hierarchy)로 조정하는 베버의 이념형을 비웃고 있다. 관료제의 이념형에 가까운 조직인 군대를 허물고 있다.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어도 기강이 무너진 군대는 이길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적을 이롭게 한 무지와 어리석음이다.

먼저 해병대 수사단의 전문성이 부정되었다. 군인 사망사건에 관한 군사법원법의 취지에 따라 수사단이 작성한 결과보고서를 느닷없이 장관이 걸고 넘어졌다. 장관은 물론 통수권자도 구체적 사건에 대해 수사단을 지휘·감독할 수 없다. 지휘책임자를 빼라는 것도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것도 법을 거스르는 짓이다. 수사단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한마디로 계급이 깡패니 까라면 까라는 소리다. 별을 달면 어느날 갑자기 오만가지를 다 꿰는 만물박사라도 되는가? 법은 사망사건에서 판단의 주체가 지휘관이 아니라 전문성을 가진 군검사나 경찰관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상급자가 함부로 계급장으로 찍어눌러 장난질치지 말라는 취지다. 일(전문성)보다 계급을 앞세우지 말라는 소리다. 상하간의 질서(계서제)는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데 필요한 장치일 뿐이다. 별이 수백 개가 되어도 법을 넘을 수 없다.

법과 절차를 묻어버린 내부의 적들

해병대 수사단장은 순서대로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에게 수사결과를 대면보고하고 결재를 받았다. 군법원법 228조 3항에 의거한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 7조 1항에 따르면 “군검사 또는 군사법경찰관은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범죄에 대한 고소·고발·진정·신고 등을 접수하거나 해당 범죄가 발생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을 발견하는 등 범죄를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대검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또는 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수사단장은 사망사고에서 범죄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례와는 달리 지체없이 사건을 이첩하지 않았다. 대면보고와 결재를 받는 “지체”를 초래하여 외부의 개입을 불러들였다. 수사단장의 죄가 있다면 항명이 아니라 과실이나 직무유기다.

더 큰 문제는 사령관, 참모총장, 장관이 결재한 문서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취소하지도 않고 문서에 적힌 대로 이행한 박대령을 항명수괴로 몬 것이다. 문서에 의한 일처리 원칙을 비웃는 처사다. 장관이 결재한 문서는 아직도 유효하다. 자신이 결재했다 해도 장관이 멋대로 취소할 수 없다. 생사가 달린 전장에서 지휘관이 장병들에게 말로 명령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장관은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은 직후 참모총장을 건너뛰고 사령관에게 이첩보류를 지시했다. 이어 공직기강비서관, 국방비서관, 법무관리관, 국방차관 등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해병대를 압박했다. 이제 와서는 언제 누구와 통화했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를 반복하고 있다. 국방이 망가지든 말든 책임이나 모면하겠다는 얄팍한 수다. 관료제가 아니라 양아치패거리다.

해병대의 기강을 무너뜨린 용산의 불장난

상관은 자신이 내린 명령에 모든 책임을 지고, 부하를 끝까지 아끼고 보호해준다는 해병대의 기본 약속과 신뢰가 깨졌다. 이제 상관이 언제 어떻게 말을 바꿔 자신은 빠져나가고 부하를 곤경에 빠뜨릴지 모른다. 필요할 때 죽어줘야 하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상관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나? 법과 상식에 따라 일을 수행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장교들은 수개월 째 수사와 재판에 시달리고, 사망사고와 이첩사건에 연루된 똥별들은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군인복무규율이 무색한 상황이다.

이제 지휘관은 반드시 명령서를 작성하거나 직접 부하에게 명령해야 한다. 대대장과 중대장들은 정말 사단장이 지시했는지, 명령인지 지도인지, 어떤 명령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단장에게 직접 전장에 나오거나 공증된 명령서를 제시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명령 계통과 하달을 따지고 발령자의 책임을 살펴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지시는 거부할 것이다. 동영상, 녹취, 명령서 등을 변호인에게 전달할 것이다. 당장 눈앞에 적이 몰려온다 해도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 전투에서 패하여 적에게 죽나 상관에게 뒤통수를 맞고 죽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패할 전투인데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여차하면 별값도 못하는 지휘관의 모가지를 따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한다. 이제 국가도 충성도 명예도 없는 해병대가 되었다. 개념없는 용산의 전화 한통으로 시작된 불장난에 군대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같이 읽기

 

인용: 박헌명. 2024. 누가 해병대의 기강을 망가뜨렸나?. <최소주의행정학> 9(7): 1.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일본 니이가타新潟현 사도佐渡시를 방문하였다. 니이가타항에서 북쪽으로 70km를 달려 료츠兩津항에 도착했다. 해무 속에 드러난 사도섬은 조용하고 평화롭게만 보였다. 한반도를 위아래로 누른 듯한 모양이고 제주도의 절반이 못되는 크기다.

인간의 탐욕과 따오기의 죽음

사도는 희귀새 따오기(“토키”)의 도래지로 유명하다. 섬 어디를 가도 따오기를 주제로 한 물건과 형상을 볼 수 있다. 동경에서 니이가타로 가는 신칸센 열차의 이름도 토키다. 때마침 눈썰미 좋은 버스운전기사의 배려로 논가에서 먹이를 구하는 따오기 내외를 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마지막 따오기가 2003년 죽은 후 중국에서 기증받아 인공으로 부화시킨 것이다. 인간의 탐욕은 산업화로 질주했고 따오기를 멸종위기로 내몰았다. 창녕의 우포늪과 마찬가지로 사도시는 사라진 따오기를 복원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사도금광의 흑역사

사도는 또한 일본 최대의 금광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폐광이 되었지만 거의 900년 동안 금과 은을 캐냈다. 특히 아이카와相川 금광은 에도 막부(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무너뜨린 도쿠가와 정권)부터 400년(1596-1989)을 이어왔는데, 지금까지 금 80톤과 은 2,500톤을 생산했다고 한다. 100여년 전에는 아이카와에만 5만명(현재 사도섬 전체 인구)이 몰렸다고 한다. 한 가운데만 농지인 섬에 쌀, 물, 집이 부족해졌고 따오기가 밀려났다. 사금을 채취하는 다른 광산과는 달리 아이카와광산에서는 굴을 파고 광석(ore)을 캐냈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금맥을 파들어가는 채굴방식이다. 여기에서 생산된 금화로 네덜란드 등 서구와 교역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으니 일본에서 보면 자랑스러운 산업유산이다.

에도 막부(1603-1868)와 메이지 정부(1868-1912)에 이어 1896년 미쓰비시三菱가 아이카와 광산을 넘겨받아 충실하게 일본제국에 부역했다. 일제는 사도광산에서 캐낸 금과 은으로 전쟁을 벌였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중일전쟁을 벌이면서 1938년 4월부터 점령지에서 무자비하게 인력과 물자를 총동원하였다. 미쓰비시의 활약이 두드러진 시기다. 사람들을 끌어와서 광산에 집어넣고 채석을 강요했다. 임금을 주기는 커녕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면서 노동을 착취했다. 최소한의 음식과 옷가지와 잠자리를 제공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오도 가도 못하게 했다. 석탄을 캐낸 군함도에서 벌인 미쓰비시의 만행과 닮은 꼴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제, 그 전쟁에 부역한 전범기업 미쓰비시, 그리고 악랄한 강제동원은 사도금광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갉아먹었다.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무일푼으로 돌아오신 당숙

어릴 적 집안 어른들이 일본으로 돈벌러 간 얘기를 종종 하셨다. 종조부께서는 일본에 가셔서 돈을 벌어오셨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운좋게도 품삵을 제대로 쳐준 관리자를 만난 모양이다. 당숙은 금광에서 일하셨다 했다. 1,500여명의 조선인이 사도금광에서 일했다는 자료도 있고, 1940년 논산에서 100여명을 집단모집으로 강제동원했다는 증언도 있다. 고향이 논산에서 멀지 않았으니 그 무리에 포함되었던 것은 아닐까?

당숙은 거의 매일 몽둥이로 맞으면서 일만 하셨다고 했다. 우직하셨던 당숙이니 꾀를 내서 매를 피할 줄도 모르셨을 터. 가장 힘들고 위험한 채석일을 하고도 당숙은 결국 거의 무일푼으로 돌아오셨다. 사람들은 살아서 돌아온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종종 당숙은 약주를 하시고 동네 어귀부터 악다구니를 쓰셨다. 작은 체구지만 장사같은 힘을 가졌던 당숙이었다. 하지만 한창 나이에 허무하게 돌아가셨다. 화병이나 진폐증같은 후유증이었을까? 그때 나는 잔치인 줄만 알고 화덕에 걸린 가마솥을 맴돌며 7남매를 건사해야 했던 당숙모의 하얀 치마자락을 끌고 있었다.

에도시대와 무관한 미쓰비시의 전범유산이다

사도금광관광은 주로 (1) 금광코스 체험, (2) 근대금광산업유산 견학, (3) 금광정보센터와 전시자료관 방문이다. 일본은 에도시대에 한정하여 세계유산등록을 신청했다. 한마디로 꼼수다. 거품을 일으켜 금을 농축한 浮遊選鑛場(1935), 시멘트가 보급되기 전에 돌로 세워진 浮選鑛所, 광석저장소(1938), 광석을 깨뜨린 착광장搗鑛場, 부족한 물을 재활용하기 위한 thickener(1940), 금주조공장 등 관광상품 대부분이 에도시대와 무관하다. 모두 사도광산을 불하받은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작품이다. 심지어 광산의 명물인 도유노와리토道遊の割戶 역시 19세기 말 발파에 의해 꼭대기가 V자로 갈라진 것이다. 에도시대의 유산에 에도시절은 없다. 주조공장은 수영장으로, 부유선광장 아래는 골프장으로 쓰였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공장 비탈 위에 있던 소학교를 다녔던 센터장의 설명이다. 반면 조선인들이 사용하던 숙소와 식당 자리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반성없는 아베정권의 역사 부정과 왜곡이다.

산비탈에 조성된 거대한 부선광소와 부유선광장은 현재 역사 유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낮에는 담쟁이가 삭은 철근 콘크리트를 뒤덮고 있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발이 과거를 수놓고 있다. 어둠 속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로마의 콜로세움을 보듯 웅장하다. 순간 미쓰비시가 저지른 범죄와 소리없이 죽어간 원혼은 사라진다. 인쇄물, 동영상, 강의 어디에도 관련 사실을 찾아볼 수가 없다. 반짝이는 금과 산업시설만 미화되었다. 따오기와 공생을 말하지만 근대화 시절의 과오에는 입을 닫는 식이다. 아직까지 소유권을 가진 미쓰비시는 침묵하는 가운데 정부가 전범행적를 분칠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설치고 있다. 어떤 미사여구를 늘어놓는다 한들 경우가 아니다. 그저 미쓰비시 전범유산일 뿐이다.

사도섬은 조선인이 끌려가서 매맞은 슬픈 섬이다. 춥고 배고파서 서럽고 떠나지 못해 목이 멘 섬이다. 진실이 묻혀가는 원통한 섬이다. 눈감지 못하고 죽은 조선 따오기들이 떠도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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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박헌명. 2024.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미쯔비시 전범유산. <최소주의행정학> 9(6): 1.